깊이보기

장애인예술
자랑스러운 자산
어설픈 평등주의자들이 예술에 경계가 없음을 말할 때, 장애예술인이 설 무대가 어디에 있는지 되묻고 싶다. 예술에 경계가 없음을 실감할 만한 무언가를 예술 현장 곳곳에서 마주하길 기대하며 오늘날 장애예술인의 현주소를 짚어본다.

“요즘은 거리에서 장애인을 많이 보게 돼요. 예전에는 장애인이 없었는데….”라는 말을 듣는 경우가 있다. 예전에는 장애인이 없었을까? 아니다. 장애인이 없는 시대는 없었다. 동굴 벽화에 다리가 하나인 절단 장애인이 발견되기도 한다. 요즘 장애인이 많이 보이는 것은 장애인 편의시설이 갖춰지면서 외출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장애인복지가 발전한 것도 사실이다. 민주화가 되면서 사회 소외계층을 인권 관점에서 바라보게 되었다.
그럼에도 장애인복지 서비스의 대상자 가운데 예술인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은 최근이다. 우리나라 장애인복지가 공식적으로 시작되던 1981년 당시는 장애인에게 필요한 것은 빵이고, 장애인에게 예술은 사치라고 장애인예술을 묵살해 버렸다. 하지만 예술은 선택이 아니라 타고나는 재능이라서 운명적으로 예술을 하게 된다. 그래서 그 척박했던 시절에도 장애예술인은 어렵게 예술을 하고 있었다. 장애인복지에서 차별받고 배제됐던 장애인예술이지만 꾸준히 노력한 결과 2020년 세계 최초로「장애예술인 문화예술 활동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장애예술인 지원법」)이 제정되었다. 이 법은 시위 한 번 없이 오로지 문건과 설득으로 장애인 운동의 새로운 역사를 썼다.

휠체어 댄스스포츠 선수 김용우와 지체장애인, 청각장애인 무용가로 구성된 ‘K휠댄스 프로젝트’의 정기공연(2019)

장애인예술계의 변화

「장애예술인 지원법」이 제정되면 장애예술인이 경제적으로 안정되고, 예술인의 지위가 사회적으로 인정받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현실적으로 크게 달라진 것이 없어서 답답하기도 했다. 그런데 요즘 희망이 느껴진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 국정과제를 발표하는데 윤석열 정부 120대 국정과제 가운데 57번째에서 ‘장애예술인의 제약 없는 예술활동 기회 보장’을 약속하고 있다. 국정과제에 장애인예술이 포함된 것은 헌정사상 최초이다. 지난 7월에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주최한 ‘장애예술인 현장 간담회’에는 장애예술인이 참여해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이 역시 처음 있는 일이다. 문화체육관광부 대통령 업무보고 주요 5대 어젠다에 ‘장애예술인지원 기본계획 수립’이 포함돼 있어서 깜짝 놀랐다.
그뿐이 아니다. 서울시의 문화예술사업을 관장하는 서울문화재단에서 대학로 극장 쿼드를 개관하며 신대학로 시대를 열기 위한 세 가지 핵심 과제를 발표했는데, 그 가운데 서울장애예술창작센터가 있는 것을 보고 장애예술인의 위치를 실감했다. 40년 전에는 이런 세상이 오리라고 상상조차 못 했다. 장애인복지 관련 회의에 참석해 장애인의 문학과 미술 사업의 필요성을 얘기하면 상황 판단 못 하는 한심한 사람 취급을 받았었는데, 이제는 서로 장애인예술 관련 자료가 있으면 보내달라며 큰 관심을 보인다.

이음 야외무대에서 공연한 발달장애인앙상블 국민엔젤스(왼쪽)와 시작장애인 이현학 밴드(오른쪽)

세계의 장애인예술

장애인예술에 대한 필요성을 설명하기 위해 미국의 법철학자 마사 누스바움(Martha C. Nussbaum)의 이론을 인용하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은 행복을 추구하는 존재이기에 인류는 언제나 행복추구권을 확보하기 위해 투쟁하고 있는데 인류의 불행은 소수집단에 대한 차별로 발생한다고 했다. 소수집단이 차별의 대상이 되는 것은 투사적 혐오 때문인데, 투사적 혐오란 아무런 근거도 없이 특정한 사람이나 집단에 자신의 불쾌감을 전가하는 것이다. 누스바움은 『혐오에서 인류애로』(2016)에서 그 해결 방법을 예술에서 찾았다. 즉 혐오로 인한 편견과 싸워 행복을 찾는 데 예술이 가장 강력한 도구가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소수집단 가운데 가장 차별이 심한 장애인의 행복도 예술을 통해 이루어낼 수 있다는 논리가 가능하기에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 팽배한 우리 사회에 장애인예술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또한 경제학자 파블리나 R. 체르네바(Pavlina R. Tcherneva)는 저서 『일자리 보장(The case for job guarantee)』(2021)에서 4차산업으로 일자리는 줄어들지만 일거리 자체가 감소하지는 않는다며 새로운 일거리는 문화예술 활동과 돌봄 서비스 분야라고 했다. 따라서 장애인예술도 아주 훌륭한 직업이 되며, 장애인은 비장애인의 노동을 창출해 주는 아주 귀한 일자리 제공자가 될 것이다. 특히나 장애예술인은 이 두 가지 조건을 다 갖추고 있으니 얼마나 매력적인가.
이미 선진국에서는 사회통합 차원에서 장애인예술 정책이 효과적으로 실시되고 있다. 영국은 영국예술위원회를 통해 두 차례에 걸친 장애평등계획(2007~2013년)을 실시해 장애예술인에게 많은 기회를 주고 있으며, 독일의 장애인예술은 유크레아(EUCREA)가 대표적으로 ‘예술과 장애’라는 주제가 사회 전반에 걸쳐 논의되기 시작하면서 장애예술인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미국의 VSA(Very Special Arts)는 장애인을 전문예술인으로 양성하기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으며, 일본은 1970년대부터 장애인은 무능력한 사람이 아니라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란 의미의 ‘Able Art’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장애인의 문화예술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한국·베트남 문화교류의 밤 행사(2018)에서 퍼포먼스를 하고 있는 수묵 크로키 화가 석창우

장애인예술의 미래

어설픈 평등주의자들은 예술에 장애·비장애가 어디 있느냐고 하면서 장애예술인에 대한 차별은 있을 수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장애예술인들은 발표의 기회가 없어서 경제적으로 매우 힘든 상태이다. 2021년 ‘장애예술인 문화예술활동 실태 조사’에 따르면 장애예술인은 문화예술 활동으로 발생하는 수입이 월 18만 원가량이다. 그래서 장애예술인이 가장 원하는 것은 창작 지원 확대가 70.5%로 가장 높은 욕구를 보였다.
따라서「장애예술인 지원법」가운데 장애예술인창작지원금제도의 근간이 될 제9조(장애예술인의 창작활동 지원)와 장애예술인공공쿼터제도의 법적 근거인 제10조(장애예술인의 참여 확대) 그리고 장애예술인지원고용제도의 기반인 제11조(장애예술인 고용지원)가 반드시 정책으로 시행돼야 한다.
이제 우리도 장애예술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고 “나는 장애예술인이다.”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장애인예술이 하나의 예술 콘텐츠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청각장애인을 위한 한글 자막 서비스 또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음성해설 서비스를 제공하는 배리어프리, 즉 무장애 공연은 일반 관객에게 다양한 관점으로 공연을 관람하는 새로운 문화를 형성시킬 것이다.
우리나라 문화예술이 K-문화로 세계적인 사랑을 받으며 많은 경제효과를 창출하고 있듯이 우리나라 장애인예술은 국제사회에서 더 많은 인정을 받을 수 있다. 대한민국은 장애인예술로 또다시 세계적 주목을 받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 장애예술인은 오랜 세월 치열하게 노력하며 수준 높은 예술 세계를 구축했기 때문이다. 장애인예술이 우리나라의 자랑스러운 자산이 될 수 있도록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글. 방귀희 사단법인 한국장애예술인협회 대표
사진.『E美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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