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여섯

국립오페라단 <가을의 향기: 가곡과 아리아의 밤>
깊어가는 가을밤, 아름다운 노래
가을은 음악의 계절이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을 때도 깊은 사색을 하게 되고, 시심이 음악처럼 내려앉는다. 선선한 계절에 귓가에 착 달라붙는 고전음악은 애호가에게 최대 고비인 더운 여름을 견뎌낸 보상이다. 음악을 벗 삼은 기간이 오래될수록 성악, 목소리의 예술에 반응하게 된다. 같은 곡이라도 가수가 누구냐에 따라 현저하고 미묘한 차이를 음미할 수 있게 되면서 반복 감상해도 질리지 않는 성악 예술의 묘미에 빠지게 된다.

가을에 더 잘 들리는 가곡과 오페라의 명곡을 한자리에서 만끽할 수 있는 연주회가 열린다. 10월 7일 국립극장에서 펼쳐지는 국립오페라단의 <가을의 향기: 가곡과 아리아의 밤>이다. 평소 진취적인 기획과 수준 높고 우수한 기량으로 이름난 국립오페라단이 준비했다니 믿고 들을 수 있다. 1부에는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유명 오페라 아리아와 이중창을 들을 수 있고, 2부에서는 오랫동안 사랑받은 한국 가곡과 최근에 관심을 받는 신작 가곡들로 무대를 꾸민다. 아름다운 목소리와 관현악의 어우러짐에 풍덩 빠질 수 있는 시간이 돼줄 것이다.

깊이 있는 고전 오페라

국내 최고의 지휘자 중 하나인 여자경이 이끄는 프라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모차르트 ‘피가로의 결혼’ 서곡으로 1부의 문을 연다. 모차르트의 천재성이 돋보이는 서곡은 오페라 중의 어느 주제나 동기를 사용하지 않고도 관객을 무대에 바로 몰입시킬 수 있을 정도로 분위기 묘사에 성공한다. 재치와 유머, 우아한 표현을 함께 섞어놓은 서곡은 기분 좋은 애피타이저다.
모차르트 서곡의 발랄한 분위기를 계속 이어서 바리톤 김동섭이 ‘피가로의 결혼’ 중 ‘더 이상 날지 못하리’를 부른다. 바람둥이인 케루비노를 못마땅하게 여긴 백작이 케루비노의 군 입대 명령을 내리자, 절망하는 케루비노를 고소하게 생각하며 피가로가 부르는 아리아다.
테너 윤병길이 ‘이 여자도 저 여자도’를 부른다. 베르디 ‘리골레토’ 1막에서 만토바 공작이 자신의 궁정에서 호화로운 옷차림의 여성들을 살펴보며 리골레토에게 “이 여자도 저 여자도 주변의 미녀를 살펴보면 모두 똑같아 보여. 하지만 내 마음, 한 여자에게만 쏠리지 않는다네.” 라며 이야기하듯 부르는 노래다.
만토바 공작 역을 테너 최원휘가 바통터치하고 ‘여자의 마음’을 부른다. 3막에서 군인으로 변장하고 스파라푸칠레의 여동생을 찾아 술집에 들어선 만토바 공작이 변덕스러운 여자의 마음을 노래하는 이 선율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하다. 베르디는 이 곡이 금방 온 세계에 퍼져나갈 것을 예견하고 무대 외에서는 연습 시간 외에는 절대 못 부르게 했다. 초연 이튿날 아침 이 노래는 온 거리에 퍼져서 유행했다고 한다.
다음은 비제 오페라 ‘카르멘’ 차례다. 메조소프라노 백재은이 카르멘으로 분해 수많은 명장면과 명곡 중 가장 먼저 떠오르는 ‘하바네라’를 부른다. “사랑은 자유로운 새, 아무도 길들일 수 없어요…”로 시작한다. 돈 호세를 유혹하는 이 노래로 카르멘의 팜 파탈로서의 치명적 매력은 극대화된다. 하바네라는 19세기 초 쿠바 아바나에서 유행한 춤곡이다. 아르헨티나 사람들이 아바나에서 이 우아한 춤곡을 접하고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가져가 탱고가 탄생했다.

‘카르멘’은 주인공 혼자 다 하는 오페라가 아니다. 베이스바리톤 우경식이 투우사의 노래로 알려진 에스카미요의 ‘여러분의 건배에 보답하리라’를 부른다. 수많은 여인의 인기를 한 몸에 받는 투우사의 가창은 늠름하고 매력적이다.
이제 자크 오펜바흐의 ‘호프만 이야기’로 넘어간다. 극 중 호프만은 기계인형 올림피아, 순수한 영혼을 지녔지만 병약한 안토니아, 베네치아의 창녀 줄리에타와 차례로 사랑에 빠지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소프라노 안유정이 부르는 ‘인형의 아리아’는 기계인형 올림피아가 부르는 아리아로, 콜로라투라의 현란한 기교가 요구된다. 이 오페라에서 가장 유명한 곡이자 베네치아 편에 등장하는 아름다운 이중창 ‘아름다운 밤, 사랑의 밤’은 백재은과 소프라노 윤상아가 부른다. ‘세비야의 이발사’의 곡 중에서는 단 한 곡만 나오지만 김동섭이 부르는 피가로의 아리아 ‘나는 이 거리의 만능일꾼’은 모르는 사람이 없는 유명한 곡이다. 우경식과 안유정은 모차르트 ‘마술피리’ 중 방자와 향단에 해당하는 파파게노와 파파게나의 이중창을 익살맞게 부르고 윤상아는 드보르자크 ‘루살카’ 중 물의 요정 루살카가 왕자에게 마음을 전해 달라고 달에 비는 ‘달에게 바치는 노래’를 부른다. 이어서 소프라노 강혜정의 목소리로 프란츠 레하르의 오페레타 ‘주디타’ 중에서 ‘뜨겁게 입맞춤하는 내 입술’을 듣는다. “내 입술에 키스할 때마다 와인보다 달콤할 겁니다”라고 주디타가 부르는 유혹적인 아리아다.
최원휘가 레하르의 오페레타 ‘미소의 나라’ 중에서 ‘그대는 나의 모든 것’을 부른다. 사랑하는 이를 따라 중국에 온 ‘리자’를 떠나보내는 ‘스춴’ 왕자의 심정을 노래한다. 스춴 왕자는 중국의 풍습 때문에 네 명과 결혼해야 하지만, 결혼해도 리자를 향한 마음 변치 않겠다고 설득한다.
레하르의 오페레타 ‘유쾌한 과부’ 중 ‘입술은 침묵하고’는 강혜정과 김동섭의 2중창으로 듣는다. 과부 한나가 옛사랑 다닐로 백작에게 진심을 말하며 남녀가 부르는 러브송이다.
1부의 피날레는 푸치니 ‘투란도트’ 중 ‘네순 도르마’다. 중국을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의 3막 중 주인공 칼라프 왕자가 부른다. 타타르의 왕자 칼라프는 투란도트 공주가 구혼자에게 내놓은 수수께끼 세 개를 모두 풀어버린다. 그럼에도 그와 결혼하기를 거부하는 투란도트에게 칼라프 왕자는 역으로 자신의 이름을 맞힌다면 목숨을 내놓겠다고 제안한다. 이에 투란도트는 “이름을 알아낼 때까지 어느 누구도 잘 수 없다”는 명령을 내리고 왕자는 “아무도 잠들지 마라”고 아리아를 부르며 승리를 확신한다.

한국적 미감이 녹아든 노래

우리 가곡으로 펼쳐지는 2부 첫 곡은 최원휘가 부르는 조두남의 ‘뱃노래’다. 작곡자 자신이 작사해 1946년 서울에서 작곡된 가곡이다. 광복의 기쁨을 안고 이역만리 하얼빈에서 고국으로 돌아왔을 무렵, 우리 선율의 참된 아름다움을 살려보겠다는 의욕이 강했다. 민요풍의 선율에 우리 민족 고유의 흥취 있는 장단으로 작곡했다. 시도 낭만적이고 곡도 흥겹다.
이어서 김동섭이 ‘이별의 노래’를 부른다. 박목월 시에 김성태가 곡을 붙였다. 6·25전쟁 후 암울한 시기에 그의 가곡은 한국인의 가슴을 위로했고, 대중적으로도 사랑받았다.
백재은의 목소리로 ‘아! 가을인가’를 듣는다. 나운영의 대표작인 이 곡을 듣다 보면 물동이에 떨어진 버들잎, 창에 비친 둥근 달의 이미지가 온통 가을임을 깨닫게 된다. 강혜정이 부르는 ‘내 마음의 강물’은 이수인의 곡이다.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을 쓴 그는 ‘둥글게 둥글게’ ‘앞으로 앞으로’ 등 동요로도 유명하다. 도도하게 흐르는 강물에 마음을 빗대 세월이 지나도 한결같음을 노래한다. 윤병길과 우경식은 정지용 시 김희갑 작곡 ‘향수’를 함께 소화한다. 테너 박인수와 대중가수 이동원의 앙상블로 유명한 곡이다. 윤상아가 부르는 김성태의 ‘동심초’는 한국적인 정감을 표현하는 독특한 서법이 느껴진다. 우경식은 윤학준 곡 ‘마중’을 부른다. 화천비목콩쿠르 창작가곡 부문 1위, KBS창작동요대회 대상 수상 등 국내 유수의 콩쿠르에서 두각을 나타낸 작곡가 윤학준이 하림의 시에 곡을 붙였다. 안유정이 부르는 ‘첫사랑’은 ‘눈’을 비롯한 수많은 작품으로 아트팝을 개척한 작곡가 김효근의 곡이다. 마지막 곡은 윤병길의 목소리로 듣는 조두남의 ‘산촌’이다. 작곡가가 1958년 경남 창원에서 요양하고 있을 때 전원 풍경에 감명받아 쓴 곡이다.
국립오페라단이 준비한 <가을의 향기: 가곡과 아리아의 밤>은 한자리에서 오페라와 우리 가곡을 통해 목소리의 예술을 만끽할 좋은 기회다. 깊어가는 가을밤, 평소 아끼는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찾고 싶은 공연이다.

글. 류태형 음악 칼럼니스트. 공연장에서 공연을 보거나 집에서 음반을 듣고 글을 쓴다. 학구적이지만 유리된 글보다 음악 애호가 부족(Tribe)의 일원으로 소속감을 가지고 감동의 온기를 지속시킬 수 있는 메시지를 지향한다.
사진제공. 국립오페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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