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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장 <합★체>
장애와 성장이 함께 가는 길
사회 구성원 모두의 이상적인 합체를 꿈꾸는 사람들의 무대가 세상에 나왔다.
완전을 향하는 불완전의 상태일지라도, 우리는 함께 노래하고 함께 성장한다.

청소년극은 청소년을 위한 연극이지만 우리 사회를 그대로 반영한다는 점에서 확장적인 의미를 지닌다. 박지리 원작의 청소년 소설 『합★체』를 음악극으로 만든 <합★체>에서도 이러한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남들과는 다르다는 점이 청소년 시기에는 더욱 큰 고민거리일 수밖에 없기에 주인공들의 고뇌가 개별적으로도 와닿지만 동시에 장애에 대한 사회적 시선을 다시 생각해 보게 만든다. 성인 관객에게도 청소년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서 정서적 공감대를 기반으로 다가가는 효과가 있다.

왼쪽부터 엄마(김혜정), 합(이성민), 체(박정혁), 아빠(김범진)

‘밀당’ 가득한 상호 텍스트성의 언어

이 작품은 음악극이란 형식으로 관객에게 한결 친근하게 다가가지만 원작이 지닌 미덕과 가치를 놓치지 않도록 비교적 원작에 충실하게 각색되었다. 이 원작을 선택했다는 것은 이미 이러한 전제를 가늠하게 해준다. 사실 박지리 원작 『합★체』에서는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물론 『합★체』는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서 제기된 계층 간 자본의 불평등에 대한 무거운 문제 제기를 수용하지만 작가 특유의 유머를 청소년의 시선으로 해석해 장애의 문제로 초점화하고, 그다음 단계의 문제 해결을 시도한다. 그리고 음악극 <합★체>는 시각·청각·움직임의 수행성을 통해 이를 구체적이고 입체적으로 제시한다.
여기서 장애는 다층적 함의를 지닌다. 주로 신체적·정신적 측면에서만 장애를 생각하지만 정서적·윤리적 측면도 고려할 수 있다. 또한 남들과는 다르다는 상대적 관점과 주관적 관점도 포괄한다. 누구에게나 어려움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장애의 개념은 더 확장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장애에 대한 문제를 희석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이 작품의 핵심은 장애에 대한 대처를 통해 우리 사회가 어떻게 조금이라도 성숙할 것인지에 있다. 다시 말해 수많은 난쟁이가 쏘아 올린 공을 리바운드해서 더 나은 기회를 만들 수 있을까를 모색하는 작품이다.
주인공 쌍둥이 형제 합(이성민)과 체(박정혁)는 저신장 장애인 아버지(김범진)와 비장애인 엄마(김혜정)의 아들이다. 아버지는 사고로 돌아가셔서 현재는 엄마와 함께 살고 있다. 합과 체는 성격이 다르지만 키가 작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닌 일란성 쌍둥이다. 합은 공부를 잘해 키가 작다는 문제를 적어도 겉으로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반면, 체는 운동에 진심이라 키가 작다는 것에 매우 예민하다. 그렇지 않아도 청소년기 학생들에게 ‘키 컸으면’은 소망보다 성장에 대한 압박으로 다가오는데 자신의 장래 꿈과 관련해 키가 커야 하는 체에게는 더욱 중요한 목표가 된다. 물론 윤아(김지윤)에게 멋진 남자로 보이고 싶은 심리도 작용하지만 저신장 장애인 아버지를 둔 체에게 이는 단순한 어려움을 넘어선다. 아버지의 죽음은 체에게 작은 키가 생존을 위협하는 어마어마한 공포일 수 있음을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합과 체의 문제 해결 방식은 상상을 초월한다. 계도사(라준)의 등장과 형제동굴에서의 수련, 상상력 가득한 서사는 이 작품을 웃으며 볼 수 있게 만드는 소중한 요소다. 그렇다고 무협지 스타일의 황당무계하기만 한 이야기는 아니다. 이성적인 합과 열정적인 체가 문제를 대하는 태도에는 대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서로 말을 들어주면서도 자신의 관점을 설득하는 자세가 유머에서도 빛을 발한다. 키 크기 위한 계도사의 방법에 동의할 수 없는 합과 그래도 해보자는 체의 대화에서 이것이 잘 드러나는데 극적 재미에서 볼 때 합과 체가 힘을 합쳐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된다. ‘합체’라고 하면 로봇 놀이에서 적의 공격에 맞서 힘을 합치며 승리를 예감하던 어린 시절이 가장 먼저 떠오르지만 합과 체의 합체는 형제의 합심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어쩌면 우리 사회의 상반되는 특성의 융합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키 큰 사람과 작은 사람, 공부를 잘하는 사람과 운동을 잘하는 사람, 현실과 이상, 일상과 혁명,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합체해 성장해야 하는 일이다. 저글링을 하며 공을 잘 다루었던 쇼쟁이 아버지의 유산을 합과 체가 마지막 농구 경기 장면에서 보여주듯 좋은 공을 알아보고 기회를 잡을 수 있는 힘은 우리 사회의 성장 동력으로 신나게 다가올 것이다.

왼쪽부터 합 역의 수어 통역 배우 성지윤, 합 역의 이성민, 체 역의 박정혁, 체 역의 수어 통역 배우 송윤

배리어프리(barrier free) 공연의 진화

최근 연극에서 장애인 배우의 입지가 조금씩 넓어지는 경향을 발견할 수 있다. 장애인 극단의 활약은 물론이고 비장애인과 장애인 배우가 함께하는 공연에서 장애인 배우의 역할이 크지 않음에도 돋보이는 경우가 눈에 띄기도 하고, 장애인 비장애인 배우의 역할이 비슷한 비중인데도 장애인 배우가 더 눈길을 끄는 경우도 찾을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흐름의 기저에는 장애인 관객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이 있었다. 배리어프리 공연이 공공극장으로 확대된 것이 2019년 정도이니 오래된 것은 아니지만 휠체어 이동을 고려해 동선을 확보하고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어 통역을 제공함으로써 변화가 시작됐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 수어 통역사의 역할도 점점 커져서 배우 못지않은 존재감을 보여주기도 한다.
<합★체>는 장애와 성장이라는 모순적 상황을 돌파하는 두 친구의 모습을 단지 극적인 서사로만 전달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실천적 측면까지 공연에서 담아내고자 수어 통역의 역할을 더욱 확대했다. 이 작품에는 수어 통역 배우 다섯 명이 등장한다. 주인공에 수어 통역 배우 두 명(성지윤·송윤), 다른 등장인물들에 세 명(정은혜·이수현·우내리)이 배치되어 인물의 동선을 따라다니며 역할을 소화하는 방식이다. 이는 수어 통역만이 아니라 간단한 안무나 동작을 함께 한다는 의미다. 이렇게 수어 통역 배우가 늘어난 경우를 보지 못했기에 이러한 시도가 어떤 영향을 줄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공연의 연출 김지원은 이러한 시도가 새로운 것이라 걱정되기도 하지만 배우의 동선을 따라가면서 동시에 수어 통역사의 동작을 봐야 하는 청각장애인의 불편함을 해소할 필요성에서 비롯됐다고 이야기했다. 물론 비장애인 관객 처지에서는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르겠다고 여길 수도 있지만 그렇게 느끼지 않도록 맹연습 중이라고도 전했다. ‘수어 통역 배우’라는 용어에 이미 내포돼 있기도 하지만 배우이면서 수어 통역이 가능한 이들이 참여하면서 수어 통역사와 배우의 경계를 허물고 장애인 관객의 접근성을 높이고자 했다는 점이 잘 드러난다. 그럼에도 이번 공연이 도전적 과제임에 분명하다. 새로운 시도는 늘 불안정하기 마련이다. 이번 시도는 실험에 가까울 것이다. 그럼에도 진화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싶다. 진화 역시 무수한 시도와 실패 속에서 이루어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글. 김유미 연극평론가. 모든 드라마를 사랑하지만 특히 아동청소년극에 관심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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