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보기하나

헨리크 입센
강렬하게 파헤쳐진 인간과 사회
마지막 희곡으로 ‘극적 에필로그’라는 부제가 붙은 <우리 죽어 깨어날 때>를 발표한 것이 1899년이었으니 온전히 19세기에 활동한 노르웨이 작가 헨리크 입센은 ‘사실주의의 비조’로 평가된다. 그는 무엇보다도 인간의 삶과 그들이 사는 사회의 문제점을 넓은 스펙트럼의 작품들을 통해 파헤쳤다. 그의 작품은 21세기인 오늘에도 여전히 유효해 연극무대로, 영화 스크린 위로 심심치 않게 소환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헨리크 입센(Henrik Ibsen, 1828~1906)은 1850년부터 반세기 동안 25편의 희곡을 발표했다. 그 작품을 분명하게 구획 짓는 것은 허망한 시도이다. 인간의 야망과 좌절을 그린 작품, 노르웨이적인 연극 문화가 전무했던 자신의 당대에 과거의 영광스러웠던 노르웨이 왕국을 상기시키는 작품, 편협한 노르웨이인의 삶과 사회의 가장 작은 커뮤니티인 가정생활을 숨 막히게 하는 부조리한 관습과 그것을 극복하고자 대치하는 인물들이 필연적인 비극을 낳는 작품도 있다.

노르웨이 베르겐에 있는 ‘노르웨이 국립극장’ ⓒDignity100/Shutterstock.com

입센이 활동하던 시기 노르웨이에는 노르웨이적인 연극 문화가 전무했다. 그런 때에 입센은 베르겐에 새로 오픈한 ‘노르웨이 극장’에서 6년간 희곡을 쓰고 연출했으며 무대와 의상 디자인까지 맡았던 연극 실천가이자 화가였고 시인이기도 했다. 타계하기 10여 년 전부터 상징성 짙은 작품에서 예술가 내지는 예술적 성향이 강한 인물을 그려낸 것은 그런 그의 성향에 기인한다.
현재의 노르웨이는 국민소득 세계 4위의 부국(富國)이다. 그러나 바이킹의 시대를 지나 14세기경부터 노르웨이는 대략 400년간 덴마크의 지배를 받았고, 입센이 살던 당시에는 스웨덴의 속국이었으며 독립은 1905년에야 이루어졌다. 옛 노르웨이인들은 과거의 영광에 사로잡혀 애써 현실을 외면했고, 그런 조국이 자신을 옥죈다고 느꼈던 입센은 망명해 1864년부터 27년간 이탈리아와 독일에서 살았다. 이 기간 그는 이탈리아에선 예술품의 ‘크기’를 인식했으며, 독일에서는 자신의 조국을 한결 객관적이고 비판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인간성과 사회를 비판하는 작품을 씀으로써 세계적 작가로 부상했다.

1917년 미국에서 개봉한 영화 <인형의 집>의 포스터 ⓒ위키피디아커먼즈

자의적 망명 기간 동안 입센의 대표작인 <브란>(1865), <페르 귄트>(1867), <황제와 갈릴리 사람>(1873), <사회의 기둥들>(1877), <인형의 집>(1879), <유령>(1881), <민중의 적>(1882), <들오리>(1884), <로스메르스홀름>(1886), <바다에서 온 여인>(1888), <헤다 가블레르>(1890) 등이 창작됐다. 이 중 <브란>, <페르 귄트>, <황제와 갈릴리 사람>은 무대화가 어려울 정도의 대작이라 읽기를 위한 레제드라마(Lesedrama)로 쓰였으며 한국에서는 <페르 귄트>만이 몇 번 무대화되었다.
입센 연구자들은 2부로 된 <황제와 갈릴리 사람들>을 그의 대표작으로 본다. 입센 창작 시기의 한가운데를 점하고 있으며 입센의 현대성이 가장 잘 드러나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로마 시대에 실존한 율리안 황제가 의무와 실존, 정치와 예술 사이에서 치열하게 갈등하는 면모를 매우 잘 그리고 있어 과거를 소재로 한 작품임에도 현대의 우리에게 공감을 준다. 우리 역시 소의와 대의, 실존하는 진짜 ‘나’와 사회 속의 ‘나’ 사이의 괴리 때문에 평생을 갈등하고 고민하지 않는가?
1891년 다시 고국으로 돌아온 입센은 <대건축가 솔네스>(1892), <어린 에욜프>(1894), <욘 가브리엘 보르크만>(1896), 그리고 이미 언급한 <우리 죽어 깨어날 때>(1899)를 발표했다. <페르 귄트>를 통해 20세기 후반기 이후 미학의 한 갈래로 부상하는 ‘그로테스크’를 일찌감치 받아들인 입센은 이 후기 희곡에서는 20세기에 풍미하게 되는 상징주의와 부조리의 미학까지 선취한 매우 ‘모던’한 작가였다.
그러나 입센은 무엇보다 ‘사회문제극’의 작가로서 현재에도 세계 무대에 뚜렷한 족적을 남기고 있다. 대표작은 단연 <인형의 집>(독일어권에선 대개 <노라>로 번역됨)이다. 결혼 생활의 ‘기적’을 꿈꾸던 노라는 자신을 ‘다람쥐’ ‘종달새’라는 애칭으로 부르며 인형처럼 취급하는 남편 토르발은 물론 아내인 여성은 남편의 허락 없이 어떤 것도 할 수 없게끔 돼 있는 사회의 법과 관습에 의문을 품고 ‘스스로를 가르치기 위해’ 남편과 아이들을 떠나 미지의 세계로 나간다. 이때 유럽에 페미니즘적 소설 등이 이미 존재했지만 연극에선 <인형의 집>이 그 시발점이 됐다는 걸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헨리크 입센 ⓒ위키피디아커먼즈

입센은 ‘사회문제극’의 작가로서 무엇보다 사회의 가장 작은 집단인 가정에서조차 가족 간 구습과 위선에 싸여 가장(假裝)하며 살고 있음을 간파했고 탄핵했다. 가족이지만 그들은 모두 ‘연극’을 하며 살고 있다. 이런 ‘메타연극적’ 요소들은 20세기 후반에나 운위되는데 입센은 19세기에 이미 실천한 것이다. 매우 현대적인 이런 극작 기법을 통해 입센은 인간과 그들 삶의 조건에 질문을 던진 작가였다. 동시대 극작가인 체호프의 작품이 자칫 과거를 추억하는 감상성에 빠져들게 한다면, 입센의 작품은 이런 질문을 통해 관객을 불편하게 하면서도 생각하게 만든다. 이는 한국에서 그의 수용이 활발하게 이루어지지 못한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한국에서 그를 받아들인 초기에 입센이 극작가라기보다 ‘사상가’로 인식됐다는 사실을 보면 알 수 있다.

입센은 작가로서 민중이 깨어나도록 가르쳐야 한다는 ‘소명 의식’이 투철한 작가였다. 그는 한 개인이 갖는 자의식과 자유의지의 신봉자였다. 그러나 그 자유의지에는 반드시 책임이 뒤따라야 한다고 그는 주장했다. 그의 작가적 철학은 어느 틈엔가 현실을 애써 외면하는 우리의 민낯을 헤집어 놓는다.
입센은 강렬한 여성 캐릭터를 창조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남편과 자식을 버리고 집을 나가는 노라의 발전은 작품의 진전과 함께 일어나지만 많은 경우 그의 여성 캐릭터들은 극의 처음부터 가부장 사회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남성들을 능가하며 자신의 가치관과 자유의지 때문에 그녀가 속한 사회의 이방인으로서 굳은 의지에 따라 행동하고 결국 비극적 종말을 맞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이들과 대비되는 여성들도 등장한다. 그러나 비현실적으로 헌신적이고 착하기만 한 이 여성 캐릭터들은 강렬한 여성 캐릭터의 그늘에 가려 있다.
입센이 창조한 강렬한 여성으로는 <페르 귄트>의 술바이(솔베이지는 영어식 발음), <사회의 기둥들>의 로나 헤셀, <유령>의 헬레네, <바다에서 온 여인>의 엘리다, <로스메르스홀름>의 레베카 베스트, <헤다 가블레르>의 동명의 주인공, <어린 에욜프>의 리타 등이 있다. 이 강렬한 여성 캐릭터들은 어느 나라에서건 당대 최고의 여배우들에 의해 창조되었다. 이탈리아의 엘레오노라 두세(Eleonora Duse, 1858~1924)는 자신에게 너무나 매력적인 여성 캐릭터들을 창조할 기회를 준 작가에게 최고의 오마주를 보내고 싶어 따뜻한 로마에서 추운 크리스티아니아(현재의 오슬로)로 입센을 만나러 갔으나 입센이 이미 와병 중이어서 직접 만날 수가 없었다. 두세는 눈(雪)장화와 두꺼운 털망토를 구입하고 입센의 집(현 입센 뮤지엄) 맞은편 거리에 서서 입센이 창가로 나올 때까지 해바라기 하듯 기다렸다. 입센의 실루엣이라도 보기 위해서였다. 그 정도의 오마주를 받은 작가는 세계적으로 흔치 않을 것이다.

글. 김미혜 한양대학교 명예교수. 한국 유일의 입센 전문가로 14년간 노르웨이어를 한국어로 번역해 2022년 5월, 『완역 헨리크 입센 희곡 전집』10권을 출간했다.
※ 본 글의 작품명과 작중 인물은 『완역 헨리크 입센 희곡 전집』(2022.05)을 기준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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