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 만드는국립극장

가치 만드는 국립극장 - 지휘자 프로젝트
젊은 지휘자들의 비팅에 담긴
수개월의 성과
우리 사회에서 어떤 가치를 만들어낸다는 것은 일종의 사명감과 열정 그리고 익숙한 한계를 벗어나야 가능해진다. 국악관현악 안에서도 마찬가지다. 관현악 지휘를 연습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는 기존의 한계를 깨고 공생한다는 마음으로 각자의 시간과 마음을 내어 연주하는 연주자들을 바탕에 둔 뒤에야 젊은 지휘자들의 열정에 날개를 달 수 있었다. 그들의 도약을 기대하며 <국립국악관현악단 지휘자 프로젝트>의 시연회를 방문해 보았다.

국립극장 내의 한 연습실. 익숙하게 제자리를 찾아 앉은 국립국악관현악단원들이 제각기 악기를 조율하는 소리로 소란하다. 그 사이로 조금 상기된 표정의 젊은 지휘자가 포디엄을 향해 걸어온다. “선생님들과의 시간이 무척 감사했다.”는 말로 나누는 짧은 소감과 인사. 긴장감 속에 지휘자의 손이 허공을 가르고, 그 손을 따라 관현악 가락이 흘러나온다. 비팅 하나하나에, 설렘과 열정이 넘치게 담겨 있다. 단원들의 능숙한 연주는 탄탄한 균형을 갖춘 소리막이 되어 그 열정을 공감의 범위로 끌어들인다. 그렇게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세월은, 젊은이들을 위한 요람이 되고 있었다.

국립국악관현악단의 단원과 전문가들이 만든 울타리

‘가치 만드는 국립극장’이라는 중장기 사업 아래 국립국악관현악단이 시작한 프로젝트는 차세대 유망 지휘자를 발굴 및 육성하기 위함이다. 지난해 공모를 진행했고, 심사를 통해 선발된 세 명의 지휘자, 유숭산·이재훈·정예지가 올 2월부터 프로젝트에 함께했다.
“한 아이를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고 했던가. 지휘자를 위한 프로젝트에 국립국악관현악단원 전부의 참여가 필요했다. 아무리 훌륭한 지휘자도, 소리를 내주는 악단이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프로젝트 참여 지휘자 유숭산은 “국악이 너무 좋아 유학도 포기하고 공부를 시작했으나, 막막했다. 경험을 쌓을 곳이 없었다. (단원) 선생님들을 만난 경험을 잊지 못할 것 같다.”라고 밝혔다. 젊은 지휘자에겐 무엇보다 악단을 지휘해 보는 경험이 절실했고, 지난 6개월간 이를 위해 국립국악관현악단원들은 기꺼이 나섰다. 처음에는 젊은 지휘자를 따르는 것이 낯설었지만, 이내 그들의 진심을 느꼈다. 다음 세대를 위해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도 컸다. 프로젝트 참여 지휘자 정예지는 “따뜻함과 열정이 동시에 느껴지는 오케스트라는 처음이었다. 이 경험을 토대로 더 좋은 지휘자가 돼야겠다고 생각했다.”라고 전했다.

‘지휘자 프로젝트’에 선발된 이재훈·유숭산·정예지(왼쪽부터)

차세대 지휘자를 위해 울타리가 된 것은 단원들뿐만이 아니었다. 지휘자 원영석과 최수열이 멘토로 참여, 지휘자로서 역량을 쌓을 수 있도록 훈련을 진행했다. 최수열은 “현실적인 조언을 많이 건넸다. 리허설 과정 전체를 비디오로 찍어서 함께 보며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포디엄 위에 올라갔을 때에는 행동 하나, 말투 하나도 영향을 끼친다. 지휘자는 악기를 소유하면서 연습할 수 없기 때문에, 정해진 시간 내에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사실을 나도 현장에서 많은 시행착오 끝에 느꼈었다.”라며 “현장의 경험을 알려주고 싶었다. 연습 과정을 거치며 이들의 리허설이 점차 좋아졌고, 이에 따른 단원들의 반응도 미세하게 변화하는 것을 느꼈다.”라고 전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악에 대한 이해였다. 서양음악에서 사용하는 오케스트레이션에 대한 이해만으로는 국악관현악단을 이끌 수 없었다. 이를 위해서는 국악관현악계에 오랫동안 몸담은 전문가들이 나섰다. 다수의 국악관현악 작품을 작곡해 온 작곡가 김택수·황호준, 그리고 지휘자 박범훈·임헌정이 마스터클래스와 워크숍을 열었다. 멘토 지휘자로 함께한 원영석 또한 프로젝트 기간에 국악에 대한 이해를 가장 강조해 왔다고.
“국악관현악단을 지휘할 때 가장 어려운 점 두 가지를 뽑으라면 첫째는 국악기를 컨트롤하는 것, 둘째는 작품에서 전통음악에 대한 근본적 이해를 바탕으로 접근하고 표현해 나가는 것이다. 국악관현악 작품에는 총보에 적혀 있지 않은 것이 많다. 서양음악의 형식에 전통음악과 악기가 차용됐을 때, 어떻게 ‘우리 음악답게’ 만들어가야 하는지를 많이 강조했다. 예를 들면 똑같은 8분의 12박자여도, 이를 굿거리장단으로 이해하고 연주할 수 있어야 한다. 필요한 부분은 세미나를 열어서 설명하기도 했고, 참가한 지휘자들 자신도 연구를 많이 해왔다.”

성장과 기대가 공존한 시연회 현장에서

지난 8월 11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연습실에 있었던 시연회는 지난 수개월간 이들이 함께 이뤄낸 성과를 확인하는 자리였다. 시연회에는 국립국악관현악단 김성진 예술감독을 비롯해, 프로젝트 과정에 함께 참여한 원영석·최수열 지휘자, 박범훈·황호준 작곡가, 그리고 시연회 선정곡 작곡가 김성국 등이 자리했다. “지휘자 프로젝트에 함께해 주신 분들께 감사하다. 세계 어디를 찾아봐도, 이렇게 갖춰진 시스템으로 지휘자를 양성하는 곳은 없었다.”라는 인사말로 시연회를 연 김성진 예술감독은 “유일무이한 프로젝트를 만들어주셔서 감사하며, 꿈나무 지휘자 세 분께 격려의 박수, 그리고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신 국립국악관현악단원 모두에게 박수를 보낸다.”라며 격려했다.
시연회에서는 세 지휘자가 각각 한 곡씩 지휘했다. 유숭산은 황호준의 새야새야 주제에 의한 ‘바르도(Bardo)’를, 이재훈은 김대성의 ‘청산’, 그리고 정예지는 김성국의 국악관현악 ‘영원한왕국’을 선보였다. 이들은 4월부터 7곡 정도의 곡을 받아 연습하기 시작했다. 작품은 멘토들의 추천과 지휘자 각자가 원하는 곡들을 취합해 결정했다. 이날 시연회에서는 연습한 것 중 지휘자가 선보이고 싶은 작품을 직접 골랐다. 원영석은 “세 곡 다 어려운 곡이다. 15분여 길이의 작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공연처럼 끌고 가는 것을 해냈다는 자체에도 의미가 있다.”라고 언급했다.

8월 11일 해오름극장 연습실에서 진행된 ‘지휘자 프로젝트’ 시연회

세 지휘자 모두 연주가 시작되자 빠르게 작품에 몰입했다. 수개월의 연습과 멘토링을 거친 작품답게 지휘 테크닉 하나하나에 담겨 있는 의미가 진중했다. 국악 연주자로 커리어를 시작한 이부터 서양음악 지휘를 바탕으로 하는 이까지 각자가 가지고 있는 지휘의 베이스가 달랐는데, 그에 따른 개성과 강점 또한 다르게 발현됐다. 멘토 지휘자 최수열은 “지휘자들이 가지고 있는 개성은 다르다. 좋은 점은 살리고, 아쉬운 점은 개선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원영석 또한 “지휘자들이 처음에 모두 의욕이 넘쳤다. 연습 지휘 때는 긴장하기도 하고 의욕이 앞서기도 해 준비한 것을 모두 펼쳐 보이지 못하기도 했다. 프로젝트 과정을 거치면서 이들의 지휘 테크닉이 많이 좋아진 것이 보인다.”라고 평가했다.
이들은 2022년 10·11·12월 국립국악관현악단 상설공연 <정오의 음악회> 무대에 오르게 된다. 이를 앞두고 시연회에서는 내외부 전문가와 단원들의 피드백을 적극 수용했다. 전문가들에게는 코멘트를, 단원들에게는 설문지를 배포해 답변을 받았다. 설문에는 의사소통, 작품 해석, 표현, 지휘 테크닉의 정확도 등을 수치로 게재하도록 했다. “참여 지휘자 모두 단원들과 진심으로 소통하려는 모습이 좋았으며, 멘토들의 가르침에 따라 지휘자들이 성장하는 것을 느꼈다.”라는 것이 단원의 전반적인 의견이었다. “6개월이라는 기간에 걸쳐서 진행되고, 악단 공연 일정과도 겹치다 보니 밀도 높은 연습 일정이 아니었던 것 같다. 세 지휘자가 같은 곡을 연습할 경우, 지휘자별 디렉션을 기보해 놓을 수 있도록 각각의 파트보 배부가 필요하다.” 등 앞으로의 프로젝트를 위한 의견도 함께 내놓았다.

글. 허서현 월간 『객석』 기자. 학부에서 음악을 전공했다. 예술과 대중 사이의 유쾌한 전달자를 꿈꾸며, 부끄럽지 않은 문장을 위해 고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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