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선율

거문고 수석 이현경이 말하는 조원행의 ‘청청’
맑고 푸른, 자연을 닮은 음악
흐르는 시냇물 소리, 정답게 지저귀는 새소리, 눈앞에 펼쳐진 맑고도 푸른 풍경. 자연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를 치유하고, 깊은 평온함을 선사한다. 조원행 작곡가의 ‘청청’은 바로 그런 자연의 힘을 담고 있는 음악이다.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창단부터 현재까지 꾸준히 악기를 타온 거문고 수석 이현경이 소개하는 ‘청청’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조원행 작곡가의 ‘청청’은 어떻게 만난 곡인가요?

2019년 4월에 이어 올해 5월 <정오의 음악회> 공연에서 이 곡을 만났는데, 여전히 곡이 좋더라고요. ‘청청(淸靑)’은 맑을 청에 푸를 청자를 써요. 음악도 제목처럼 자연의 소리를 생동하게 담아내면서도 악기가 각기 선율을 풍성하게 드러낼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주죠. 빠름과 느림의 대조 안에서 여러 악기가 들려주는 풍성하고 깊은 멋이 잘 어우러지고요. 그러면서도 굉장히 친근한 매력이 있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이 곡이 2011년에 대한민국 작곡상 우수상을 받기도 했더라고요. 여러모로 좋은 곡을 널리 알리고 싶다는 마음에 오늘 이렇게 소개하게 됐습니다.

저도 곡을 들으면서 음악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흘러가며 여러 장면을 보여준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연주하실 때는 어떤 느낌을 받으셨어요?

‘청청’이 자연이 주는 소중한 것을 표현하기 때문인지, 전반적으로 연주하면서 참 편안했어요. 물론 작곡가가 악기를 잘 알고 그에 맞게 곡을 써서 부담 없이 연주할 수 있었던 것이기도 하지만, 음악으로부터 자연을 느끼게 되더라고요. 대금이나 소금 같은 경우는 새소리처럼, 현악기는 시냇물이 흘러가는 듯한 소리로 들리기도 했고요. 상상일 뿐이지만, 작곡가가 자연에서 만날 수 있는 여러 아름다운 장면에 영감을 받아서 하나씩 써 내려가지 않았을까 싶었어요. 그래서 연주하면서 ‘힐링’되는 느낌이었다고 할까요.

마음에 와닿는 힘이 있는 곡이군요.

네, 이 곡에는 한국 음악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유의 정서가 분명히 있고, 전통적 요소도 중요하게 자리 잡고 있어요. 하지만 꼭 한국 음악을 잘 알지 않더라도, 예컨대 외국 청중이 들어도 이 음악에 쉽게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몰라도 듣고 느낄 수 있는 보편적인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해요. 또 지난 5월 공연에서는 조원행 작곡가가 직접 지휘했는데, 시원시원하게 지휘해 주시더라고요. 그래서 곡의 매력을 더 잘 느낄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이 곡에서 거문고가 특별히 인상적으로 쓰인 부분이 있나요?

전반적으로 관현악의 조화가 좋은 곡이라 딱 한 부분을 잡아내기는 사실 힘들지만, 그래도 거문고 선율이 돋보이는 순간이 있어요. 현악기가 마치 물소리처럼 묘사되고, 물이 꼭 스스로 흥이 나서 어딘가로 흘러가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부분이에요. 생동감 있는 봄의 소리를 표현한 것 같기도 하고요. 협주곡처럼 거문고가 더 확실히 돋보이는 곡도 여럿 있지만 ‘청청’은 관현악곡으로서 다양한 면모를 보여주는 곡이다 보니, 거문고도 전체 안에서 함께 흐름을 만들어가고 있어요.

물 흐르듯 연주하는 부분의 거문고 파트보

말씀하신 시냇물이 흐르는 듯한 부분이군요. 새소리처럼 들린 곳은 어디일까요?

그보다는 조금 더 뒤에 나오는 소금 파트예요. 정말 맑은 새소리 같죠.

소금 연주 소리가 새소리처럼 들리도록 연주하는 부분의 파트보

이 곡을 포함해서, 거문고는 보통 국악관현악에서 어떤 역할을 주로 맡아왔나요?

보통은 베이스죠. 악기 자체의 음역은 세 옥타브 정도로 고음도 많이 낼 수 있지만, 베이스 역할을 맡는 건 거문고의 특징적인 음색이 아무래도 고음보다는 저음 쪽에서 더 잘 드러나기 때문일 거예요. 저도 처음에 거문고 소리를 들었을 때 그 굵고 중후한 음색에 굉장한 매력을 느껴서 전공하고 싶다고 생각하기도 했어요. 거문고뿐만 아니라 낮은음을 아름답게 내는 악기들을 제가 두루 좋아해요. 더블베이스나 첼로처럼, 베이스 악기가 푸근하고 좋더라고요. 국악관현악 초창기엔 거문고가 베이스를 깔아주는 역할로 생각된 것 같은데 지금은 조금씩 달라지고 있어요. 베이스는 사실 음역만 잡아주는 것이 아니라 그 아래에서 곡의 가장 중요한 리듬을 함께 만들어주잖아요. 그래서 지금은 말하자면 ‘베이스기타’ 같은 역할을 하지 않나 싶어요.
물론 정악이나 가곡 반주를 할 때는 거문고가 중심 선율을 맡아요. 그땐 아주 정갈하게 악기를 타야 한다면, 산조나 민속악을 할 때는 감정을 넣어서 타기 때문에 섬세한 표현이 중요해져요. 신곡은 작곡가의 의도에 따라 성격이 워낙 많이 달라지니까 그때그때 맞춰서 하고요. 그렇지만 국악관현악에서는 특별히 앙상블을 맞추는 게 중요해요. 거문고로만 할 수 있는 표현을 하고, 힘 조절도 해가면서 연주해야 하죠.

거문고 악보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있을까요?

몇 가지가 있어요. 일단은 대점 표시가 있죠. 또 가야금도 그렇지만 거문고도 싸랭을 하니까 그것도 있고요. 술대로 괘를 긁으라는 표시, 또 ‘스르렁’도 있어요. 전체 줄을 ‘드르렁’ 하면서 긁을 때 쓰는 건데 가야금은 현 전체를 쓰지만 거문고는 밑의 세 줄만 연주해요. 악보에 내려가는 화살표를 그려놓았으면 아래로, 올라가는 화살표를 그려놓았으면 끌어올리는 식으로요. 또 그리고 최근에는 술대로 줄 위를 미끄러지듯이 ‘슬라이드’를 하라는 악보, 그리고 스프링처럼 생긴 기호를 써서 손톱으로 줄을 긁으라는 표시를 해둔 악보도 있어요. 늘 새로운 음악을 만드는 것이다 보니, 없던 주법과 표기도 자꾸 생기더라고요.

농현·대점·스르렁 기호(왼쪽부터)

보통 어떤 주법들이 생기나요? 거문고는 현악기지만 타악기적 속성을 지니고 있기도 하잖아요. 술대와 현, 거문고통의 앞면이 동시에 부딪칠 때 나는 현의 소리와 나무의 소리를 분리할 수 없기도 하고요. 그런 악기 자체의 이중적 매력을 잘 살리는 것이 많아지는 걸까요?

그렇죠. 저도 그게 이 악기의 멋진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의외로 대점을 싫어하시는 분도, 그래서 거문고를 피하는 분도 드물게 있었어요. 거문고는 백악지장(百樂之丈, 악기 중 으뜸이라는 뜻)인데 말이죠. 보통 새로운 주법은 젊은 작곡가가 많이 개발하는 것 같아요. 예전엔 저희가 악기를 타는 방식을 넘어서 다른 줄을 뜯기만 해도 파격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훨씬 새로워지고 있어요. 이 악기에 비교적 익숙한 작곡가뿐 아니라 외국 작곡가들도 한국 악기를 위한 음악을 만드니까 더욱 변화 폭이 크죠.
거문고 술대를 활용한 주법도 많고, 괘가 부러지면 어떡하나 싶은 정도로 힘을 많이 줘야 하는 것도 있어요. 거문고 뒤판을 치거나 옆머리를 치는 경우도 꽤 있죠. 새로운 주법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곡은 음향적으로도 흥미롭지만 거문고라는 악기 자체를 공부하고 연습하는 곡으로 사용하기에도 좋아요. 앞으로 그런 주법을 계속 쓰게 될 텐데, 손을 익혀놓으면 여러모로 좋을 테니까요. 그렇지만 저는 이런 다양한 표현이 흥이 나는 장단과 함께 있을 때 더 빛을 발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더 효과적으로 눈에 띌 것 같고요.

장단처럼, 시간의 흐름을 따라갈 수 있는 좋은 힌트가 있다면 새로운 것들도 더 잘 몰입해서 들을 수 있게 되는 듯합니다. ‘청청’부터 새로운 주법이 가득한 현대적인 곡까지, 폭넓은 레퍼토리를 접해 오고 계시는데요, 또 추천하고 싶은 곡을 가볍게 소개해 주신다면요.

많이 알려진 곡인데, 김대성 작곡가의 ‘청산’을 좋아해요. 이 곡 첫머리에 거문고 솔로가 나오는데 매우 청초한 느낌이 들어요. 화려하지 않지만 담백하고, 머리를 맑게 해주는 듯한 느낌이지만 뒤에는 또 파격적인 변박이 이어져요. 지금은 그보다 더한 곡도 많지만요. 또 손다혜 작곡가의 ‘하나의 노래, 애국가’라는 곡이 있어요. 웅장하면서도 큰 메시지를 담은 곡이지만, 변박 등 곡이 무거워지지 않게 해주는 여러 포인트가 있더라고요. 그런 균형감이 좋았습니다.

오늘날 국악관현악은 많은 변화를 마주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양한 시도를 담은 신곡이 꾸준히 나오는 만큼, 이를 실현하는 음악가들의 역할이 더더욱 중요해지는 것 같고요. 마지막으로 그간의 흐름을 되돌아보신다면요.

제가 창단 멤버인데, 많이 변했어요. 창단 후 10년 동안은 전통음악을 중심으로 흘러간 것 같지만 그다음은 우리 전통음악과 현대음악이 뒤섞이던 과도기였어요. 정체성이 애매하다는 생각도 종종 들었죠. 저희가 공감하지 못한다면 청중은 어떻게 들을지 궁금할 때도 있었어요. 그렇지만 연주에서 그걸 많이 보완해 보려 했죠.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연주력으로 구현할 수 있는 게 있었고, 또 국립단체인 만큼 여러 방향의 음악을 다 포용하다 보니까 그 시기를 잘 넘어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최근엔 그 방향이 더 다양해지고 있는 것 같아요. 가끔은 눈으론 악보를 읽겠는데 손으로 연주해 보면 뜻대로 수월하지 않은 곡도 있어서 약이 오를 때도 있어요. (웃음) 그래서 제가 이 ‘청청’이라는 곡을 더 좋아하는 것 같아요. 이 곡은 정말 자연스럽게 나오니까요.
앞으로의 국악관현악에 대해서는 음향 밸런스, 새로운 작품의 필요성, 악기 개량의 문제 등 많은 이야기가 언급되지만, 저는 지휘자의 존재가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말할 것도 없이 어떤 지휘자가 오느냐에 따라 곡이 확 변하거든요. 현대적인 것을 수용하고 잘 해내는 능력도 점점 중요해지고, 전통에 대한 깊은 이해도 당연히 필요하고요. 국립국악관현악단에서는 ‘지휘자 프로젝트’ 등을 진행하며 새로운 지휘자를 발굴하려는 노력도 기울이고 있어요. 처음 만나는 지휘자와 함께 국악관현악곡을 연습하면서, 서로에게 공부가 되는 시간을 보내고 있죠. 다른 것만큼이나 지휘에 대해서도 저희가 꾸준히 관심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요? 결국 무대에서 청중을 만나기 전까지, 가장 마지막에 음악을 만드는 건 지휘자와 연주가니까요.

글. 신예슬 비평가, 헤테로포니 동인. 음악학을 공부했고, 『음악의 사물들』을 썼다. 종종 기획자, 드라마투르기, 편집자로 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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