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

국립창극단 <나무, 물고기, 달>
여백을 익히는 노래
노래가 길이 되고 이야기가 되는, 익숙하면서도 낯선 시공간으로 통하는 문이 다시 열렸다. 누구나 하나쯤은 품고 있을 열망을 생각하면 소원나무로 향하는 여정은 너무나도 당연하게 느껴진다. 삶과 죽음이 맞물리는 그곳으로 길을 떠나보자.

“우리는 이야기 소리꾼/ 세상 모든 잠든 이야기를 깨우고/ 숨어 있는 이야기를 캐묻고/ 희미해진 이야기를 깨물어/ 소리로 노래로 춤으로 야이야이야이 어이야”
빈 무대. 흰옷을 입은 소리꾼들이 둥근 무대를 따라 줄지어 걸으며 노래 부른다. 노래는 길이 되고, 길은 이야기로 이어지고, 이야기는 노래를 품고, 노래는 이야기를 펼친다. 이야기가 펼쳐지면 빈 무대는 강물이 되고, 들판이 되고, 깊은 산중이 되고, 높이 솟은 수미산이 된다. 둥근 무대를 따라 걷는 길이 끝나지 않는 것처럼 이야기는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온다. ‘또 하나의 바스라진 인생’에서 이야기가 시작되고, 여정은 수미산에서 세상으로 떨어진 금어(물고기)의 길잡이로 시작된다. ‘길·이야기·삶’은, 끝과 시작이 맞물리고 죽음을 거쳐 다시 나아간다. 길도 이야기도 죽음도 그리고 삶도 갈망에서 시작된다.

끝과 시작, 죽음과 삶이 맞물려

<나무, 물고기, 달>(김봉춘 작, 배요섭 연출, 이자람 작창 작곡 음악감독)은 모든 소원을 이루게 해준다는 수미산 소원나무를 찾아가는 여정이다. 강물이 썩어가는 가난한 마을에 살고 있는 소녀는 먹을 것을 얻기 위해, 홀로 소를 키우며 살아가는 소년은 가족을 얻기 위해, 꽃을 피울 수 없는 슬픈 사슴나무는 다시 꽃을 피우기 위해, 그리고 순례자는 깨달음을 얻기 위해 소원나무를 찾아간다. 이들의 ‘소원’은 누군가에게는 물과 공기처럼 당연한 것이지만 이들에게는 먼 길을 떠날 만큼 절박한 것이다. 배불리 먹고, 가족과 함께 살고, 위협 없이 삶을 영위하는 것은 삶이 삶이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내용이다. 그러니 그것의 결핍은 절박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이들의 여정에는 난관도 찾아온다. 어렵사리 수미산에 도착하지만 길이 끊긴 것이다. 이 난관 앞에서 금어는 깊은 물에 스스로를 던지고 코끼리로 다시 태어나 일행을 소원나무로 데려간다. 금어가 수미산에서 세상으로 떨어짐으로써 이들의 여정이 시작되고 다시 한번 몸을 던짐으로써 금어는 다시 태어난다. 끝과 시작, 죽음과 삶이 맞물려 이어지는 이야기다.
여기까지라면 약자가 소원을 이루고 금어의 희생을 통해 환생하는, 모두가 행복한 이야기일 것이다. 여정은 고단할지언정 고난은 아니었다. 흰옷을 입은 광대들과 인물들이 일렬로 늘어서 원형의 빈 무대를 노래를 부르며 걷는 발걸음은 흥겹고 아름답다. 빈 무대에 광대들의 노래와 몸짓만으로 무대가 흥청흥청 출렁인다. 게다가 이 길은 모든 소원을 이루어준다는 소원나무로 향하는 길이 아닌가. 가장 큰 난관이었던 수미산 앞의 끊어진 길은 금어의 희생과 환생으로 다시 이어진다. 그리고 드디어 소원나무에 당도한 것이다. 그러나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나무, 물고기, 달>은 모든 소원을 이루게 해준다는 수미산 소원나무를 찾아가는 여정이면서, 죽음으로써 태어나는 이야기이자, 제 마음을 바라보는 것으로 완성되는 이야기다. 제목에 등장하는 나무·물고기·달은 수미산 소원나무를 찾아가는 사람들, 갈망하는 인간을 돌보는 존재들이다. 금어는 수미산으로 가는 길을 안내하고, 스스로 몸을 던져 소원나무에 이르게 한다. 나무와 달은, 갈망하는 인간의 마음에 무엇이 있는지를 보여주고 위기에서 구해 준다. 나무· 물고기·달은 우리 삶에서 쉽게 마주치는, 우리 삶과 가까이 있는 존재다. 이들은 종종 신화에서 인간을 뛰어넘는 영험한 존재로 등장하는데 이 이야기에서도 마찬가지다. 여기서 한 가지 매력적인 점은 이들이 특별한 능력으로 인간의 어려움을 제거해 주는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금어는 이들 여정에서 안내자 역할이지만, 희생과 환생을 경험하는 여행자 즉 여정의 당사자이기도 하다. 소원나무는 인간의 욕망을 대신 실현해 주는 존재가 아니다. 소원나무는 욕망하는 인간이 있기에 소원나무인 것이다. 이처럼 나무와 물고기는 결핍된 인간에 의해 제 존재를 완성할 수 있거나 갈망하는 인간 때문에 존재한다. 그리고 바로 그 때문에 인간을 돌본다. 반면 달지기는 나무, 물고기와 달리 인간과의 관계를 통해 완성되는 존재라기보다는 인간 밖에 독립적으로 존재한다. 그러나 달 역시 인간을 대신해 위기를 제거하는 것은 아니다. 금어가 여정의 길잡이였던 것처럼, 위기에서 빠져나갈 길을 알려줄 뿐이다. 길은 인간이 스스로 나설 때 길이다. 달은 이 약하고 여린, 갈망하는 인간에게 빛처럼 내리쬐는 선물 같다.

빈 무대, 광대 그리고 이야기

2012년 시즌제 이후 국립창극단은 다양한 레퍼토리를 보여왔다. 전혀 다른 사회문화적 맥락이나 장르에서 확고한 스타일을 구축한 연출가들과 작품을 다시 만든다든지, 그리스 비극부터 경극까지 동서양의 고전을 저본으로 한 작업이 이어졌다. 오페라 연출가이자 무대미술가인 아힘 프라이어의 <수궁가>, 실험적 연출가인 안드레이 서반의 <다른 춘향>, 한국 연극에서 누구보다 스타일이 강한 고선웅의 <변강쇠 점 찍고 옹녀> <귀토> 등이 전자라면, 우싱궈의 <패왕별희>, 옹켄센의 <트로이의 여인들>, 정의신의 <코카서스의 백묵원>, 서재형의 <메디아>, 배삼식·정영두의 <리어> 등이 후자다. 전통의 계승에서 나아가 ‘창극’을 동시대 공연예술로 정립해 가는 활발한 행보가 주목됐다.
<나무, 물고기, 달>은 그간의 레퍼토리가 고전이거나 현대극, 또는 시·소설·동화 등 원작을 두고 이를 판소리와 창극으로 재해석하는 작업이었던 것과 달리 따로 원작을 두지 않았다. 물론 설화 등의 모티프가 차용됐지만 새롭게 쓰인 이야기다. 또한 기존 레퍼토리가 현대 무대예술의 기술과 양식 그리고 기법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여 화려한 스펙터클을 추구해 온 것과도 다르다. <나무, 물고기, 달>은 하늘극장 한가운데에 원형의 빈 무대를 펼치고 광대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라는 소박한 설정으로 전개된다. 광대들의 의상은 장식 없는 흰옷으로 역할에 따라 의상을 바꿔 입기도 하지만 역할이 끝나면 다시 흰옷의 광대옷으로 갈아입고 이야기꾼으로 돌아간다. 역할에 따라 화려한 의상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인물의 특징만을 단순하게 드러내기도 한다. 대소도구도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이야기의 절정에서 등장하는 거대한 오브제(코끼리 탈)가 압도적인 스펙터클로 연출되는 유일한 장면이다. <나무, 물고기, 달>은 화려함을 가시화하기보다는 절제를 만들어가는 무대다.

광대들이 만들어가는 공연의 특징인 이야기는, 이 작품을 연출한 배요섭과 그가 활동한 ‘공연창작집단 뛰다’(이하 ‘뛰다’)의 작품들과 이어진다. 이야기와 광대는 ‘뛰다’의 창작에서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그들의 대표작 중 하나인 <노래하듯이 햄릿>은 광야를 떠돌던 광대가 햄릿의 무덤에서 그의 일기를 발견해 읽어가는 것으로 전개된다. 한편으로는 <햄릿>을 고쳐 쓰는 것이지만, 햄릿의 이야기만큼이나 도드라지는 것이 바로 이야기하는 광대다. 뛰다의 광대와 이야기 개념에는 무대에 선 존재들이 무대, 이야기, 그것을 재현하는 광대라는 존재를 자각하길 원한다. 그것은 브레히트적인 ‘낯설게 하기’와도 다르고, 마당극의 현장성과도 다르다. 이들은 허구의 이야기를 거부하지 않으며 도리어 허구의 이야기에서 진실을 찾고자 하는 구도자에 가깝다. 그래서 이들의 출발은 무대 위에 지금 존재하는 광대 자신이다. 이 작품에서도 시작은 이야기도 세상도 아니다. 오직 관객을 앞에 두고 앞으로 이야기를 펼쳐갈 광대 자신이다. 무대가 있고, 관객이 있고, 그 앞에 광대들이 있다. 그래서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달라진 점도 있다. 여백이 더욱 강조되는 것이다. ‘뛰다’의 작업이 광대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면, <나무, 물고기, 달>은 관객 앞에 선 광대들, 그 사이의 여백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광대들은 ‘지금’ ‘여기’에서 이야기를 짓는다. 이 변화에는 판소리와 창극의 양식성과 ‘뛰다’의 광대와 이야기 개념의 만남이 한몫을 하고 있다.
이자람은 이 작품의 대본을 두고 “달콤한 포도송이처럼 알알이 맺혀야 하는 이야기로 가득”하다고 말한다. 이자람의 소리와 음악은 송이송이 열려 있는 포도알 같은 이야기를 정성스레 익혀놓았다. 스스로 밝히고 있는 것처럼 그간의 창작 판소리나 창극의 음악 작업에서 보여준 실험에서 이 작품은 한껏 더 나아간다. 능청능청한 여백은 이자람의 음악이 마련한 것이기도 하다. 편안하게 흐르지만 낯설기도 한 새로운 소리다.

글. 김소연 연극평론가. 『문화정책리뷰』 편집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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