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보기하나

2022 <여우락 페스티벌>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하여
10여 년을 이어온 <여우락 페스티벌>은 그 자체로 다채로운 우리 음악의 도전과 변화의 기록이다. 때로는 신선한 감동을 때로는 아쉬움을 남긴 모든 무대에 대한 성찰이 빛나는 내일의 자양분이 될 것이라 기대하며, 지난 2022 <여우락 페스티벌>을 돌아본다.

<여우락 페스티벌>은 한국 전통음악과 크로스오버 음악의 변화에 힘입어 등장하고 성장했다. 2010년 시작한 <여우락 페스티벌>의 공연 횟수와 출연진만 보아도 안다. 그동안 <여우락 페스티벌>이 열리는 기간이 늘었고, 출연진은 많아졌으며, 출연진의 국적 또한 국내외를 아우른다. 출연팀이 선보이는 음악 장르와 스타일 역시 첫해에는 상상할 수 없었을 정도로 다채로워졌다. 이제 <여우락 페스티벌>은 한국 최고의 전통음악&크로스오버 음악 페스티벌이다. 많은 이들이 해마다 <여우락 페스티벌>을 기다리고, 출연진의 면면을 보지도 않고 패키지 티켓을 구입한다. 음악 팬들의 반응이 뜨거워 티켓이 매진되는 일은 드물지 않다. 당연히 출연진도 여우락 페스티벌 무대에 서고 싶어 하며, 호명을 받으면 영광스러운 마음으로 공연에 임하곤 한다.
하지만 <여우락 페스티벌>이 항상 만족스럽기만 했을 리 없다. <여우락 페스티벌>이 해마다 이어지는 동안 한국의 전통음악&크로스오버 음악계도 함께 성장했지만, 항상 새로운 팀으로 만족스러운 무대를 구현해 낼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여우락 페스티벌>은 계속 예술감독을 바꾸고, 새로운 조합을 선보였다. 대중가수가 함께하기도 하고, 협연으로 앙상블 무대를 만들기도 했다. 그럼에도 최근에는 마땅한 출연진을 찾지 못해 무리한 도전을 한 것처럼 보이는 공연이 늘어났다. 공연장에서 만난 일부 음악 전문가들은 아쉬움을 드러내며 실망했다는 뒷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고, 산이 높으면 골짜기도 깊게 마련인 것일까. 게다가 최근에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여우락 페스티벌>을 온라인으로 진행하기도 했다.
다행히 올해는 모처럼 오프라인으로 공연을 진행할 수 있었다. 한여름의 남산은 무덥기도 하고 습하기도 했지만, 공연을 보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2022년의 <여우락 페스티벌>은 7월 1일부터 23일까지 국립극장 달오름극장과 하늘극장, 문화광장에서 12회의 공연을 선보였다. 거문고 연주자인 박우재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았고, 여우락 초이스/여우락 컬래버/여우락 익스텐션이라는 카테고리로 나눠 공연을 진행했다. 올해의 출연진 중에는 무토, 공명, 이디오테잎처럼 여우락이 처음이 아닌 이들과 서도밴드처럼 여우락이 처음인 뮤지션이 섞여 있었다.

이번 <여우락 페스티벌>의 특징은 화려한 무대와 일렉트로닉 음악의 전진 배치였다. 대부분의 뮤지션은 각자의 공연을 위해 새롭게 무대를 제작하고, 영상을 디자인했다. 박다울은 세 명의 장치 오퍼레이터와 함께 공연을 펼쳤고, 천지윤과 상흠 역시 영상오퍼레이터 안홍근과 함께 공연을 진행했다. 비주얼아티스트 이선재와 함께 연주한 밤 새, 영상디자이너 라지웅이 조력한 팍과 이일우의 무대를 비롯해 대부분의 공연은 눈까지 즐거운 공연이었다. 차승민과 장진아의 공연에서는 다큐멘터리 영상이 공연의 서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그리고 올해는 일렉트로닉 음악가가 포진한 무토뿐만 아니라, 여러 뮤지션이 일렉트로닉 음악을 배합하거나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박다울은 스스로 장비를 만지며 루핑 기법을 선보였고, 임용주 역시 마찬가지였다. 천지윤과 상흠의 무대는 일렉트로닉 음악으로 버무린 컬래버레이션이었다. 밤 새의 공연에서도 전자음이 함께했다. 대중음악계에서 불어온 일렉트로닉 음악의 바람에 전통음악계가 화답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적지 않았다.
이 모든 도전이 다 성공하지는 못했다. 전반적으로 공들인 무대는 매회 여우락 무대에 대한 기대를 높였지만, 공연 퍼포먼스가 무대 디자인과 영상만큼의 감동을 선사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절반의 성공으로 그쳤다. 12회의 공연 중에는 실망을 넘어 대체 왜 <여우락 페스티벌> 무대에 섰는지 납득하기 어려운 공연이 적지 않았다. 여우락이 선정한 올해의 아티스트 4팀 중 하나로 무대에 선 서도밴드의 공연은 이틀 동안 자신들의 라이브 공연을 했을 뿐, <여우락 페스티벌>의 지향에 걸맞은 공연을 선보였다고 하기 어려웠다. TV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인기를 끌고, 팬들을 몰고 다니는 인기 밴드가 되었다 해도 <여우락 페스티벌> 무대에 선다면 이 무대에서만큼은 전통음악과 이룰 접점을 치열하게 고민했어야 했는데 서도밴드의 공연에서는 리듬 연주자들이 이따금 전통음악의 장단을 연주하고, 전통음악의 질감이 묻어나는 곡을 잠시 열창했을 뿐이었다.

비몽사몽을 표방한 천지윤과 상흠의 공연 역시 당혹스러웠다. 공연 내내 음향은 과하게 커서 모든 사운드 출력이 거슬릴 정도였다. 천지윤과 상흠이 써낸 곡들 가운데 마음을 흔드는 곡이 드물었고, 두 뮤지션이 구사하는 일렉트로닉 사운드는 구태의연하고 식상했다. 이날 공연은 역대 <여우락 페스티벌> 공연 가운데 가장 실망스러운 순간이었다. 일렉트로닉 음악으로 공연을 처음 해본다는 상흠의 멘트는 이날 공연이 왜 이렇게 벌어졌는지 설명해 주었을 뿐 아니라, <여우락 페스티벌>의 출연진을 선택하고 기획하는 시스템을 재검토해야 할지 모른다는 의구심을 품게 하기 충분한 이유가 되었다.
TV 오디션 프로그램 등에서 화제가 된 뮤지션을 데려오는 방식은 박다울의 경우에도 실패했다. 그의 일렉트로닉 음악 기법이나 음악 창작 역시 기존의 어법을 반복했고, 음악 자체로 설득하지 못했다. 이번에도 거문고의 줄을 끊는 방식은 공연을 쇼로 전락시켰고, 여러 소도구와 무대장치는 잔재미 이상의 즐거움을 주지 못했다. 자신이 새로운 줄 알고 있으나 전혀 새롭지 못할 때 벌어지는 참사를 목격하는 힘겨운 시간이었다.
기대를 모았던 무토와 밤 새의 공연 또한 빼어난 영상만큼의 감동을 주지 못했다. 지혜리 오케스트라의 공연은 충분히 무르익었다고 보기 어려웠고, 리마이더스와 달음의 공연은 평이했다. 만약 임용주, 팍과 이일우, 공명과 이디오테잎, 차승민과 장진아의 공연마저 없었다면 내년 <여우락 페스티벌>을 다시 찾아야 할지 고심했을 게 분명했다.
다행히 전통음악과 함께 전자음악을 오래도록 천착해 온 임용주는 그간의 경력이 무색하지 않은 소리의 변형으로 깔끔하게 60분을 채웠다. 편경과 아날로그 모듈러신스를 연결하고 조명 연출로 드라마를 더한 공연은 시간이 짧아 아쉽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리고 헤비니스 신에서 함께 활동해 온 팍과 이일우의 협연은 시종일관 한국적인 귀기와 혼곤으로 몰아붙였다. 사운드는 폭발적이었고, 연주는 잠시도 에둘러 가지 않으며 내내 흥건하게 놀아재꼈다. 자신들의 모든 것을 다 내던진 공연이었다.

비가 그친 저녁 야외무대에서 열린 공명과 이디오테잎의 공연은 여러 번 호흡을 맞춰온 정상급 뮤지션의 협연다웠다. 전통음악과 일렉트로닉 음악을 오가며 서로를 보조하거나 일체가 되면서 결합한 공연은 모든 공연의 성공과 실패는 음악에서 판가름 난다는 진실을 다시 한번 확인시켰다. 제목만으로는 어떤 공연인지 짐작하기 어려웠던 차승민과 장진아의 공연은 자신의 삶을 고백하고 영상과 연주, 노래로 연결해 예상하지 못한 감동을 선사했다. 음악적으로 새롭거나 화려하거나 복잡하지 않았음에도 소박하고 담담하게 풀어낸 공연은 <여우락 페스티벌>에서 치유의 시간을 만날 수도 있다는 의외의 기쁨을 안겨주었다. 다만 출연진이 운영하는 매장 이름을 공연의 제목으로 쓰는 방식에 대해서만큼은 분명히 지적하고 싶다.
특정 공연의 감동이 다른 공연의 부족함을 가릴 수 없고, 특정 공연의 부족함이 다른 공연의 감동을 가릴 수 없을 것이다. 이제는 뮤지션의 열의와 스태프들의 고심이 왜 어긋났는지 찬찬히 들여다볼 시간이다. 명성을 쌓기도 어렵지만 이어나가는 일 역시 쉽지 않다. 실패 역시 소중한 재산이고, 빛나는 내일은 고심의 결과다.

글.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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