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일곱

<완창판소리> 장문희의 동초제 '심청가'
뿌리 깊은 나무, 바람에 아니 뮐 쌔
장문희 소리에는 판소리가 추구하는 인간사의 희로애락이 깊게 담겨 있다. 누구보다 외롭고 고되게 소리 학습을 한 그녀의 삶이 이러한 소리의 면면을 만들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예술은 참으로 지독히 잔인하면서도 숭고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런 그녀가 오랜 시간 공들여 쌓아 올린 <심청가> 한바탕을 고스란히 관객 앞에 내놓는다.

타고난 천재의 완고한 소릿길

‘전주대사습놀이 최연소 만점 장원’ ‘전주대사습놀이 학생부·일반부·명창부 3관왕’ ‘괴물 소리꾼’ ‘소리 천재’. 소리꾼 장문희를 수식하는 표현이다. 2004년 제30회 전주대사습놀이 명창부 장원을 거머쥐었을 당시 심사위원이던 조통달과 안숙선 명창은 “100년에 한 번 나올 소리꾼” “금년 대사습이 낳은 대어”라는 찬사를 그녀에게 보냈다. 당시 27세의 장문희는 자신이 그간 쌓아온 실력을 가늠하고자 대사습에 도전했을 뿐 수상에 대한 기대는 없었다. 그런데 명창부 첫 출전에서 대상을 받아버렸다. ‘명창’이 되기엔 너무 이른 나이에 명창의 반열에 올랐다. 그래서 장문희는 긴장했고 안주할 수 없었다고 한다.
주지하다시피 장문희는 판소리 명가의 후예다. 그녀의 이모이자 스승인 이일주 명창은 19세기 후반의 이름난 소리꾼 이날치(1820~1892)의 증손녀다. 이일주의 아버지 이기중 또한 임방울·김연수 등과 교유한 소리꾼이다. 장문희의 목구성은 그녀의 집안 내력을 알고 나면 ‘타고남은 결코 무시할 수 없구나’라는 생각을 절로 하게 한다. 풍부한 성량과 시원시원한 발성, 깨끗하면서도 애원성 가득한 목소리 질감은 누구나 가질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녀의 소리에는 ‘서슬’이 있다. 서슬이란 무엇인가? 일찍이 최동현은 여자 목소리는 가볍기 때문에 자연히 고음의 효과에 의존하게 되는데, 애원성으로 정수리를 치는 듯한 고음을 발할 때 소리에 팽팽한 긴장감이 형성된다고 했다. 그리고 그 긴장감으로부터 느낄 수 있는 전율의 판소리적 표현이 ‘서슬’이라고 했고, 그 목소리의 서슬을 대표하는 소리꾼이 바로 이일주다. 신기하게도 혹은 어쩌면 당연하게도 장문희의 소리에도 서슬이 있다. 거침없이 통성으로 힘 있게 올라가는 상청에서 찌르는 듯한 전율의 서슬을 느낄 수 있는데, 아마도 이일주의 가르침은 물론이거니와 집안의 타고난 목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그러나 그녀의 기량이 모두 타고남에서 비롯됐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천재는 결코 타고남만으로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장문희의 소리를 들으면 ‘완고하다’는 단어가 떠오른다. 융통성이 없이 올곧다는 뜻의 ‘頑固하다’와 완전하고 단단하다는 뜻의 ‘完固하다’가 모두 해당된다. 이것은 타고남을 넘어서 어린 시절부터 치열하고 꾸준하게 수련한 장문희만의 내공이다. 장문희는 6세 때 엄마 곁을 떠나 전주의 이일주 명창 문하에 들어갔다. 약 1년간은 판소리를 듣고 접하는 시간을 가졌고, 7세 때부터 본격적으로 소리 학습을 시작했다. 아직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나이에 이모에게 맡겨져 판소리에 입문한 그녀는 그저 소리를 숙명처럼 받아들이며 이 길을 걸었다고 한다. 엄마가 그리울 때도 많았지만 눈물로 삼켰고, 외로움에 사무칠 때도 있었지만 묵묵히 견디며 그날그날의 소리를 해냈다. 소리 앞에서는 꾀를 부릴 수도, 어리광을 부릴 수도 없었다. 장문희 소리에는 판소리가 추구하는 인간사의 희로애락이 깊게 담겨 있다. 누구보다 외롭고 고되게 소리 학습을 한 그녀의 삶이 이러한 소리의 면면을 만들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예술은 참으로 지독히 잔인하면서도 숭고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올곧게 걷는 전통의 길

현대 판소리는 어느 때보다 다변화된 면모를 보인다. 창작판소리와 판소리 뮤지컬, 판소리극 등의 이른바 대중적·현대적 면모가 한 흐름을 차지하고 있다면 보존과 전승의 길을 이어가는 전통의 고수가 또 하나를 차지하고 있다. 양 갈래의 길 모두 판소리의 전승과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할 때, 전통 판소리의 전승과 보존을 지향하는 장문희의 역할은 자못 크다고 하겠다.
장문희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의 전 바탕을, 대학교 무렵에는 <수궁가>까지 동초제 소리를 익혔다. 이후 안숙선 명창에게 <적벽가>를 사사하며 전승 오가를 모두 학습했다. 그럼에도 명창은 여전히 공부할 것 투성이라고 한다. 장문희는 전통 판소리는 들을수록 좋고, 알아갈수록 새롭다고 한다. 그래서 그녀는 판소리 자체로도 충분히 대중과 교감할 수 있다고 믿는다.
장문희는 지난해 전라북도 무형무화재 ‘심청가’ 예능 보유자가 되었다.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은 전통의 소리를 꾀부리지 않고 잘 익히고 또 후학들에게 전하는 것이라고 한다. 여러 음악과 교유하는 판소리도 물론 좋지만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판소리 본래의 것 또한 알아갈수록 좋기에 그것을 대중에게 꾸준히 알려나가겠다고 한다. 그 길만을 걷는 것이 외롭고 한편으론 고되지 않겠냐는 필자의 질문에 장문희는 말한다.

“저는 소릿길이 힘들다는 것을 이미 여섯 살 때부터 알았어요. 쉬운 길이 있다는 생각, 그것을 찾을 생각은 한 번도 해보지 않았어요. 지금도 귀명창이 있는 무대가 여전히 두렵습니다.”

뿌리 깊은 소리 <심청가>

동초제는 김연수가 오랜 창극 활동을 통해 자신의 판소리 이념에 맞게 완성한 것이다. 판소리의 전통성을 추구하면서도 판소리를 창극과 동일하게 여기며 시대 흐름을 적극적으로 수용해 재정립했다. 이에 동초제는 사설의 정확성과 합리성, 그리고 연극적 면모와 더불어 음악에서 다양한 붙임새와 기교의 사용을 특징으로 한다.
극적인 면모를 살린 동초제 <심청가>의 대표 대목 가운데 하나는 심청이 인당수로 향하기 전 장승상 댁 부인에게 하직하는 장면이다. 심청이 팔려간다는 소식을 들은 장승상은 심청을 불러 자신이 대신 공양미 삼백 석을 주겠다며 심청을 말리지만 심청은 이를 거절한다. 심청은 장승상 댁 부인을 향해 어머니라 부르며 눈물의 이별을 하는데, 극적 비극성이 농축된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이외에도 ‘딸타령’ ‘맹인 통성명’ ‘뺑덕이네’ 등의 대목도 확장돼 있는데 풍부한 장면으로 연극성을 강화하고 관객의 흥미를 배가했다. 소리꾼 정수인은 동초제 <심청가>는 기존의 더늠을 활용하면서도 여러 바디의 사설을 차용하고 연극적 요소를 첨가하는 과정에서 37개의 독자적 소리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이로 볼 때 동초제 <심청가>는 현재 전승되는 판소리 <심청가> 창본 중 가장 확장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이에 전 대목을 빠짐없이 부를 경우 완창은 5시간 남짓 소요된다.
이번 공연에서 장문희는 동초제 <심청가>의 전 대목을 부를 예정이며 대략 5시간을 예상한다. 동초제 <심청가>의 모든 대목을 들을 수 있는 더없이 소중한 기회가 아닐 수 없다. 뿌리 깊은 집안의 뿌리 깊은 소리는 흔들리는 법이 없다. 단단한 내공과 완고함을 지닌 장문희가 보여줄 동초제 <심청가>가 사뭇 기대되는 이유다.

참고 자료
최동현, 「전주 명창 이일주」, 『국악누리』 71, 국립국악원, 2006.
정수인, 「동초제 <심청가>의 특징과 지향」,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8.
글. 송소라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연구교수. <20세기 창극의 음반, 방송화 양상과 창극사적 의미>(2017)로 박사 논문을 제출하고 판소리와 창극 관련한 연구를 꾸준히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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