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뒤의사람들

어린이 놀이공간 ‘라온누리’
화려한 조명 뒤 바쁘게 움직이는 발걸음.
수면 아래 빠르게 움직이는 백조의 물갈퀴처럼
관객과 가장 가까이서 소통하며 극장 곳곳을 채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나본다.
부모도 아이도 행복한 시간

알록달록 화려하지만, 눈을 자극하지 않는 편안한 색감. 구름 위를 걷듯 폭신한 바닥. 하나같이 작은 책걸상과 거울 그리고 선반. 그 안을 가득 채운 색연필·스티커·그림책·자석인형·블록 등의 놀잇감. 어쩌면 아이들에게 이곳은 천국일지 모른다. 아이를 이곳에 맡긴 부모에게도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운 공간. 극장의 어린이 놀이공간이다.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은 대부분 피곤하지만 즐겁다. 그래서 부모들은 집 안팎에서 아이와 편안하면서도 특별한 시간을 즐기기 위해 언제나 고군분투한다. 하지만 어른들은 때로 아이 없이 고요히 자신만의 시간을 즐기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때, 사막의 오아시스를 만난 듯 반가운 곳이 바로 극장(미술관 등)의 어린이 놀이공간이다. 저마다 이름은 다르지만, 홈페이지 혹은 기관에 유선으로 문의하면 아이들을 위해 준비된 공간을 안내해 준다. 국립극장 역시 2001년부터 어린이를 위한 공간을 운영하고 있다. 반가운 마음에 직접 방문해 보았다.

김은희: 국립극장의 어린이 놀이공간은 2001년에 만들어져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어요. 2014년 ‘실내 어린이놀이터’로 이름이 변경되기도 했죠. 이후 2018년 해오름극장 리모델링 공사로 다른 건물에서 운영돼 오다가 2021년 해오름극장 재개관과 함께 지금의 ‘국립극장 라온누리’(이하 라온누리)로 명칭을 바꾸어 새롭게 문을 열었어요. 현재 어린이 12명 내외를 수용할 수 있는 놀이 공간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해오름극장 로비 층에 위치한 라온누리는 약 24평(약 80제곱미터) 규모의 실내 어린이 놀이터다. 벙커같이 생긴 어린이 오름 틀과 주방 놀이 기구, 만들기 재료가 공간 곳곳에 비치돼 있다. 내부에는 낮잠 이불부터 어린이용 화장실과 세면대가 마련돼 있어 어린이 위생 문제도 걱정이 없다. 게다가 매월 자체 안전 점검을 실시하고 연 2회 지차체(중구청)에서 이를 관리 감독하니 더욱 믿을 수 있다. 또한 상주하는 전문 보육교사 1인과 때에 따라 함께하는 2인의 보조교사가 아이들의 영역별 놀이 활동을 지원하고 있어 안전과 즐거움이라는 두 가지 과제를 모두 해결할 수 있다.

김은희: 어린이 눈높이에 맞는 다양한 교구와 놀잇감이 갖춰져 있고, 어린이 전용 세면대까지 마련돼 있어 아이들이 무척 좋아해요. 놀이 공간에 들어올 때는 망설이다가도 공연이 끝나고 부모님이 오시면 아직 다 놀지 못해서 못 간다며 공연을 더 보고 오라고 우는 친구가 있을 정도예요.

아이들이 사랑하는 이 공간의 인기 비결은 깔끔하게 정돈된 수많은 놀잇감에 기인하기도 하지만 언제나 온화한 미소로 아이들을 대하는 전문 보육교사의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라온누리에는 ‘유치원 정교사 자격증, 보육교사 1급 자격증, 어린이집 원장 자격증, 문화예술교육사 자격증을 소지한’ 전문 보육교사 1인이 상근하고 있다. 그리고 보육교사 1인당 유아 3인을 보육할 수 있다는 원칙에 따라 비상근 보조교사가 함께한다.

김은희: 보조교사의 경우 유아교육 전공이나 미술 전공 학생들을 우대해 선발해요. 하지만 가장 중요한 선발 기준은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이곳 라온누리엔 한눈에 보아도 일일이 세기 어려울 만큼 많은 수의 놀잇감이 존재하지만 본래 사람의 마음이란 ‘남의 떡이 더 커 보이는 법’이다. 아이들 역시 다른 친구가 가지고 노는 물건이 더 재밌어 보이고 신기해 보일 터. 게다가 친한 친구끼리도 매일같이 다툼이 일어나는 것이 아이들 세상 아닌가. 그 갈등 중재 비결이 궁금해졌다.

김은희: 대부분 이곳에서 처음 만나는 아이들이다 보니 서로 어울려 놀기보다 타인의 장난감을 뺏고 싶어 하는 경우가 종종 생겨요. 그래서 놀잇감을 종류별로 최소 두 가지씩 준비해 두죠. 그런데도 다툼의 소지가 생긴다면 교사가 서로 다른 놀이를 할 수 있도록 옆에서 유도합니다. 그래서 놀잇감으로 인한 큰 다툼은 잘 일어나지 않는 편이에요. 한 가지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한 유아가 부모와 떨어지고 난 뒤 유달리 많이 뛰고 다른 친구를 때리거나 장난감을 던지는 모습을 보인 적이 있어요. 그래서 다른 유아와 분리하고 교사가 아이를 한껏 안아줬죠. 또 다양한 놀잇감으로 놀이를 유도했더니 불안한 상황에서 벗어났다고 느꼈는지 남은 1시간 30분 정도를 편안하게 놀이하며 시간을 보내더라고요. 후에 아이를 데리러 온 부모의 말을 들어보니 심하지 않은 자폐 증상이 있는 아이라고 하셨어요.

세상엔 다양한 성향의 아이들이 존재한다. 때론 우리와 조금 다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아이도 있기 마련이다. 우리가 편견 없이 아이를 소중히 대하면 이처럼 햇살 같은 순간이 우리를 찾아온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는 아이와의 만남은 유아 돌봄 전문가이지만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우선이라는 이곳의 원칙을 확인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이곳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또 하나의 원칙은 바로 안전이다.

김은희: 안전은 언제나 중요한 문제죠. 그래서 어린이 배상책임보험과 교사 안전교육을 철저히 하고 있어요. 또 실내 환경을 청결하게 유지하기 위해 장난감 소독과 살균 청소를 매일 시행합니다.

라온누리 이용 가능 연령은 만 36개월 이상의 4세부터 7세까지다. 2022년 상반기 이용객은 총 171명(21.07 기준)에 불과하지만, 팬데믹 이전에는 연간 평균 1,300명 이상의 아이들이 이곳을 이용했다. 얼마나 많은 어린이가 이곳에서 추억을 만들고 성장했을지 가늠할 수 있는 수치다. 이곳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 적 있는 키 작은 손님들이 청소년이 돼 때로 찾아오기도 한다. 무엇이든 작은 이 공간에서 더는 함께 어울리지 못하지만 반갑게 찾아와 인사하는 이들을 볼 때 라온누리 교사들은 큰 기쁨과 보람을 느낀다. 어린이날 100주년을 맞은 2022년, 어린이가 행복한 나라를 만들자는 슬로건이 곳곳에 붙었다. 어린이도 어른도 행복한 이곳에서의 시간이 우리 삶에 긍정적인 자양분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 본 기사는 국립극장 라온누리의 전문 보육교사 김은희 님과 진행한 인터뷰를 토대로 작성했습니다.
글. 김보나 국립극장 홍보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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