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짓언어

한국춤의 발바닥
64개 은밀한 근육의 군무
국립무용단 무용수들은 매일 아침을 ‘국립기본’으로 시작한다. 발레에 바가노바 혹은 체케티 메소드가 있다면, 한국춤에는 ‘기본’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신무용을 주창한 송범 선생이 다듬은 국립기본은 전통춤의 아성을 간직하는 동시에, 판이 아니라 극장 무대에 서야 하는 무용수들에게 꼭 맞는 ‘기본’으로 자리 잡았다. 굿거리장단으로 시작되는 기본은 무용수에게 규율이자 그 위에 새로운 것들을 쌓기 위한 기반이 돼왔다. 그리하여 한국춤의 몸짓에 깃든 이야기를 되새겨 보고자 국립기본에서 그 흔적을 찾았다. 팔다리부터 손과 발, 허리, 어깨,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호흡에 이르기까지 차근차근 짚어본다.

큰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손과 팔, 발과 다리로 시작해 머리와 어깨, 가슴과 등, 허리와 엉덩이, 그리고 무릎까지 춤을 이루는 신체 부위별 동작을 차근차근 살펴봤다. 길고 미끈한 저고리 소매를 지나 뻗어 나온 손의 화려하고도 고고한 맵시. 유연한 굴신과 함께 장단을 만들어내는 무릎과 발의 디딤. 움직임에 따라 자연스럽게 장단을 타는 머리의 고갯짓. 팔과 다리의 춤을 단단하게 받쳐주는 가슴과 등의 힘. 몸이라는 축을 기준으로 허리와 엉덩이가 회전하며 만드는 풍성한 동선. 관객의 눈길이 화려한 무대에 경도된 순간에도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하는 각각의 몸이 있어 춤이 완성됨을 알 수 있다.
또 하나, 한국춤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호흡이다. 비록 신체의 특정 부위는 아니나, 모든 동작이 매끄럽게 이뤄지도록 하는 윤활유 같은 존재. 움직임에서 이토록 중요한 호흡을 다루기 위해서는 그 디딤돌이 되는 발바닥에 관해 짚고 넘어가야 한다. 발 혹은 발목이 아닌 발바닥이라니. 무용 공연을 접해 온 관객 혹은 독자로서도 발바닥의 섬세한 움직임을 확인할 방법이 없지 않은가. 두 눈으로 또렷하게 살필 수는 없지만, 그 은밀하고도 치열한 세계에 관해 잠시 이야기를 나눠보려 한다.
흔히 발은 ‘제2의 심장’으로 불릴 정도로 중요한 신체 부위다. 온몸이 추진할 수 있도록 하며, 동작의 수행에서 발생하는 충격을 흡수하고, 무용수의 체중을 지지하는 역할을 한다. 일반적으로는 사람이 보행하는 데 역할을 하는 단순한 존재라 생각할 수 있으나, 사람의 발은 한쪽만 해도 26개의 뼈와 32개의 근육과 건, 107개의 인대로 이루어져 있을 정도로 정교하고 섬세하다. 두 발을 이루는 뼈의 개수가 성인 기준 몸 전체 뼈의 4분의 1이나 차지한다는 사실은 발에서 이뤄지는 움직임이 얼마나 다채로운 범주를 아우르는지 짐작하게 한다.

발디딤의 기본 동작은 발바닥 근육이 둥근 곡선을 그리며 리듬을 타는 데서 시작한다.
무용수의 하체 동작은 발바닥으로부터 연결된 근육과 건의 유기적인 연결로 구현된다.

잠시 자신의 발을 내려다보자. 우리의 발은 앞쪽에서부터 뒤쪽으로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발가락이 있는 전족부와 발의 아치를 이루는 중족부, 그리고 뒤꿈치가 있는 후족부. 뒤꿈치를 맞붙이고 발가락은 양 바깥쪽으로 살짝 벌린, 한국춤의 기본 발 자세에서 무게중심은 중족부에 위치한다. 다만 중족부의 발바닥은 바닥 면에 완전히 닿지 않고 어느 정도 아치 형태를 유지하면서 단단하게 서 있어야 한다. 중심은 중족부에, 그리고 전족부와 후족부는 그 무게를 분산해 안정적 자세를 취하게 하는 데 도움을 준다.
발에서 가장 큰 뼈인 종골(발뒤꿈치뼈)은 실제로 동작이 행해질 때 가장 먼저 그 충격과 무게를 견디는 역할을 한다. ‘발과 다리’ 편에서 언급한 것처럼 디딤 동작은 발뒤꿈치를 가장 먼저 땅에 대고 아치와 발볼, 발가락 순으로 무게를 옮기며 이뤄진다. 발바닥이 지면에 닿는 순간 그 힘은 발뒤꿈치로 시작해 중족부의 아치를 지나 족지골(발가락뼈)로 퍼져나간다. 이때 그 힘은 발가락 쪽으로 나아가면서 점차 약해질 수도, 더욱 강해질 수도 있다. 그 힘의 크기는 무용수의 동작이 뻗어내는 공간의 크기와 비례한다. 동그란 원을 그리듯 반복되는 발 움직임은 음악의 리듬을 타고, 호흡에 맞춰서 춤이 되어 펼쳐진다.
아킬레스건을 제외하고 모든 발의 근육과 건(힘줄, 근육과 뼈를 연결하는 역할)이 발바닥에 있다는 점, 그리고 그중 거의 전부가 발바닥을 거쳐 하체의 건으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발바닥은 무용수의 하체 전체를 움직이게 한다고 볼 수도 있다. 한국춤에서 발바닥은 언제나 바닥과 친밀하게 움직인다. 발레가 바닥을 도움닫기 삼아 위로 올라가고자 하는 춤이라면, 한국춤은 오히려 바닥과 가깝게 그 지면의 힘을 품어내는 춤이다. 호흡을 길고 묵직하게 내뱉으며 땅 밑 언저리까지 닿을 듯 무겁게 바닥을 디디고, 찬찬히 숨을 끌어올려 상승할 때도 발바닥은 더없이 강한 힘으로 나무가 뿌리를 내리듯 바닥을 누른다. 결국 무용수가 만들어내는 모든 동작은 그 반대급부만큼의 힘이 발바닥으로 향해야 가능한 것이다.

묵직하게 디딘 발바닥에 실린 무게와 반대로 뻗은 손끝. 양편으로 뻗어나가는 에너지로 말미암아 순간을 포착한 사진에서도 움직임의 역동성을 엿볼 수 있다.

발바닥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또 하나 있으니, 바로 동그란 족궁(아치)이다. 발뒤꿈치에서 엄지발가락 관절 바로 뒤까지 동그랗게 곡선을 이룬 아치는 인체의 발에만 존재하는 부분으로, 무용수가 뛰고 돌고 움직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평상시에는 공간이 넉넉하다가도 체중이 실릴 때는 다소 편평해지면서 마치 스프링이 되어 발에 가해지는 충격을 흡수하는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그 생김새조차 동그란 아치는 무용수의 발디딤에 아름다운 버선발의 모양을 만드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한복 소매의 길고 넉넉한 곡선처럼, 발목에서 버선코까지 이어지는 올록볼록한 곡선 또한 무척 아름답다.
몸으로 이뤄지는 대부분의 예술이 주어진 환경과는 반대로, 그러니까 ‘자연적’이기 보다는 ‘인위적’인 아름다움을 만들어내고자 한다. 궁정의 춤은 화려한 복식 탓에 치마 속에 가려진 발은 하찮은 존재로 취급했고, 하늘에 닿고자 하는 갈망으로 포인트슈즈(토슈즈)를 선택한 발레는 무용수의 발에 숱한 상처를 남겼다. 그러나 우리 춤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와 달리 자연의 곁에서 그와 어울리며 합을 맞추는 예술이라는 인상이다. 물론 이것이 비단 한국무용수의 발이 언제나 깨끗하고 안전하고 튼튼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래전 우리 궁중 시대에도 예쁜 버선발을 만들기 위해 작은 버선에 발을 욱여넣는 일이 허다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한국춤 원형에 깃든 호흡을 느낀다면 그 춤이 단순히 허공을 가르는 교태로운 몸짓이 아니라 땅을 느끼고 바람과 어우러지고자 했던 움직임이라는 것을 자연히 알 수 있지 않은가.

자문. 국립무용단 훈련장 장현수
무용. 국립무용단 송설·송지영
사진. 전강인
글. 김태희 춤으로 시작해 전통예술·연극·시각예술까지 범위를 넓혀가며 예술을 글과 책으로 엮어내고 있다.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발레를 전공하고 동 대학원에서 무용이론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월간 국립극장> 구독신청 <월간 국립극장> 과월호 보기
닫기

월간지 '월간 국립극장' 뉴스레터 구독 신청

뉴스레터 구독은 홈페이지 회원 가입 시 신청 가능하며, 다양한 국립극장 소식을 함께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또는 카카오톡 채널을 통해 편리하게 '월간 국립극장' 뉴스레터를 받아보세요.
※회원가입 시 이메일 수신 동의 필요 (기존회원인 경우 회원정보수정 > 고객서비스 > 메일링 수신 동의 선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