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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악관현악단 이음 음악제
관현악시리즈I <Vivid(비비드): 음악의 채도> <2022 3분 관현악>
시대의 표지석이 될 무대
2021년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새로운 브랜드 이음 음악제는 자연음향 극장으로 거듭난 해오름극장 시대를 새롭게 여는 기념비적 기획이었다. 시간의 무게를 견디고 현대의 시간을 관통한 국악관현악은 우리에게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다시 질문하며, 이제 모든 경계를 넘어 변방에서 중심으로 당당히 나아갈 것임을 선언했다.

고립과 불안의 한가운데를 지나던 팬데믹 시대에 탄생한 이음 음악제는 우리의 존재만으로 서로에게 힘이 될 수 있다는 회복과 상생의 메시지를 전하며 큰 감동을 선사했다. 시간과 시간이 만나 역사를 잇고(Continue), 장르와 장르가 만나 새로움을 창조하며(Create), 예술가와 예술가, 예술가와 관객을 연결(Connect)하겠다는 ‘이음’의 정신은 국경·젠더·음악적 언어와 관습·편견·시간·세대를 넘어 한국 창작음악을 더는 변방에 두지 않겠다는 포부이자 시대의 컨템포러리가 되겠다는 굳건한 다짐이다.
2022 이음 음악제를 관통하는 주제 ‘Vivid(비비드)’는 개성 넘치는 예술가들을 주인공으로, 우리 음악 원형질을 향한 구도자적 탐구와 동시대성의 실험을 이어 이음의 정신을 실천한다.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역량과 주제를 담아낼 개막공연 관현악시리즈Ⅰ <Vivid(비비드): 음악의 채도>, 국악관현악단의 고유 레퍼토리를 실력 있는 청년 예술가들이 연주하는 <2022 오케스트라 이음>, 국악을 떠받치는 또 다른 기둥인 지역 악단 초청 공연 ‘부산시립국악관현악단’, 우리 음악의 미래 젊은 작곡가 10인의 개성으로 빛나는 폐막공연 <2022 3분 관현악>까지, 다양한 빛깔의 예술가들이 미래의 시간으로 관객과 동행한다.

명작을 향한 ‘선명’한 치열함 관현악시리즈I <Vivid(비비드): 음악의 채도> 09.22.목 19:30

이음 음악제의 문을 여는 관현악시리즈Ⅰ <Vivid(비비드): 음악의 채도>는 세 곡의 위촉 초연곡과 기존 초연곡의 재공연을 통해 시대의 명작을 향한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치열함과 이음의 정신을 담는다. 다양한 장르와 폭넓은 레퍼토리까지 경계를 넘나드는 활동으로 국제적 명성이 높은 장윤성이 지휘를 맡았다.

지휘자 장윤성

양승환은 국악작곡을 전공한 후 유학을 통해 음악적 지경을 확장해 앙상블, 작곡 집단, 음악감독 등 폭넓은 활동을 펼치고 있다. 앞서 2019년 <3분 관현악>에 젊은 작곡가로 참여하기도 했다. 국악관현악 ‘자각몽(Lucid Dream)’은 작곡가 자신의 자각몽 경험을 모티프로 발전시킨 작품이다. 미니멀리즘이 보여주는 간결함에 구조의 정교함을 더한 포스트미니멀리즘(post-minimalism)이 국악관현악의 어법으로 어떻게 표현될지 궁금하다.
한국 전통, 자연, 인간의 근원과 본성을 탐구의 주제로 삼는 이신우는 국제 작곡 콩쿠르에서 여러 상을 수상하며 이미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작곡가다. 앞서 전통예술과 음악을 소재로 한 ‘1997년의 보태평’ ‘풍경 II’ ‘여민락 교향시’ 등 여러 작품을 발표한 바 있다. 위촉 초연곡 비올라와 국악관현악을 위한 협주곡 ‘대지의 시’는 작곡가의 세계관인 자연 탐구의 연장선에 있다. 자연이 주는 감동·치유·휴식·회복의 신비한 에너지를 비올라와 국악관현악을 위한 협주곡으로 다른 시간, 다른 공간에서 배태돼 만난 두 음악의 이음을 탐색한다. 어려서 판소리로 음악에 입문한 비올라 연주자 이화윤은 앞서 이신우의 ‘비올라와 소리북을 위한 적벽’을 세계 초연한 바 있어 이들의 탐색을 기대해도 좋겠다.
국악작곡을 전공한 후 오스트리아에서 작곡으로 유학을 마친 작곡가 이정호는 국내 유수의 작곡대회에서 입상했으며 ARKO한국창작음악제의 국악 부문에 당선됐고, 현재 부산대학교 작곡 전공 교수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대구·영남·부산을 중심으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작곡가의 위촉으로 지역의 경계를 잇고자 하는 이음 음악제의 지향도 읽어낼 수 있다. 위촉 작품 국악관현악 ‘Imagination’은 바다가 선물하는 무한한 상상의 세계로 관객을 초대한다. 파도의 몰아침과 스밈, 화려한 밤바다가 보여주는 야광의 빛은 환상적이면서 한편 우리의 인생 이야기를 해주는 듯하다.

작곡가 양승환·이신우·이정호·황호준(왼쪽부터)

황호준의 새야새야 주제에 의한 ‘바르도(Bardo)’는 전쟁으로 희생된 영혼을 위로하는 깊이 있고 진지한 작품이다. 2016년 국립국악관현악단 <베스트 컬렉션-민요> 공연에 위촉 초연된 곡으로 이번 이음 음악제에서 재공연된다. 국악관현악의 웅장함과 개별 악기의 색채감과 섬세함이 잘 살아 있는 수작이다. 위촉 초연 이후 여러 국악관현악단에서 연주됐으며 2019년 대한민국 작곡상 최우수상 수상으로 예술성을 인정받았다. 국립국악관현악단의 레퍼토리 확장의 성과가 빛을 발하는 작품으로 이번 재공연이 반갑다.

‘강렬’한 미래적 패러다임 <2022 3분 관현악> 09.30.금 19:30

개막공연 <Vivid(비비드): 음악의 채도>가 다른 시공간에 존재한 다양한 음악언어의 ‘이음’을 국악관현악의 진중함으로 열었다면, 폐막공연 <2022 3분 관현악>은 관습에 도전하는 세대의 ‘이음’을 ‘쇼트폼’의 명쾌함으로 마무리한다. 2019년 시작한 <3분 관현악>은 국립국악관현악단에서 최초로 시도한 도발적이고 미래적인 패러다임이다. 악기군이 빚어내는 두툼한 소리층으로 국악관현악은 이미 무겁고 진지하다. 관현악의 관습을 유쾌하게 비틀어 국악관현악이 받아온 아류나 모방이라는 의혹의 시선을 과거의 시간 속으로 시원하게 날려버린다. 시대의 대세인 쇼트폼의 이미지는 강렬하고 메시지는 명료하다.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 압축한 고농축 예술적 상상력이 담긴다.

2019년 <3분 관현악> 본공연

<2022 3분 관현악>은 가지각색 사탕으로 가득 차 보기만 해도 행복하고 흥분되는 캔디숍 같다. 젊음은 미래라고 외치는 듯 각각 다른 배경의 작곡가 10인은 개성이 넘치는 상상력을 풀어놓는다.
강한뫼는 교향적 창곡 ‘폭포’에서 서양 예술가곡과 판소리를 접목한다. 국립창극단원이자 창극 스타인 박성우의 교향적 창곡을 기대해도 좋겠다. 공혜린의 ‘서울의 밤’은 국립극장 오는 길을 모티프로 헤르만 헤세의 사색을 도시적 감성으로 들려준다. 백유미의 ‘빗소리’는 국악기의 음색·주법·흐름·농현으로 자연의 소리를 표제적으로 표현한다. 손일훈의 윷놀이 ‘모 아니면 도’는 ‘음악적 유희 시리즈’의 일환이다. 무대 위에서 전개되는 게임의 알고리즘은 윷놀이의 규칙. 2015년 네덜란드에서 진행한 목관 8중주 작업을 기반으로 국악기의 윷놀이 명승부가 무대 위에서 펼쳐진다. 엄기환의 ‘구름정원’은 작곡가가 어린 시절에 쌓은 추억과 상상력의 기원을 상징한다. 작곡가가 초대하는 상상의 구름정원에서 함께 날아다니는 관객의 모습을 미리 상상해 본다. 작곡가 이재준의 ‘최애’ 야식은 신라면. 작품 辛라면 협주곡 ‘라면’은 유혹적이고 치명적인 라면 조리 과정을 기승전결로 담은 음악과 함께 협연자 박소희가 등장해 라면을 조리한다. 관객에게는 3분 컵라면이라도 취식한 후 공연을 관람하길 권한다. ‘나무의 결’을 작곡한 지성민은 관현악의 장점인 여러 악기의 결합과 증폭에 주목한다. 국악관현악의 헤테로포니적 소리 중첩은 의도하지 않은 소리의 확대·축소·변형·왜곡을 만들어낸다. 여기에 박지윤이 직조해 내는 바이올린의 결이 더할 소리의 중첩이 기대된다.

작곡가 강한뫼·공혜린·백유미·손일훈·엄기환(윗줄 왼쪽부터)
이재준·지성민·채지혜·최한별·홍민웅(아랫줄 왼쪽부터)

채지혜 작곡의 ‘감정의 바다’는 바다를 모티프로 이 시대 젊은이들의 꿈과 삶, 생존, 감정의 요동, 희망을 담는다. 고민과 불안이 희망으로 마무리돼 다행이다. 씩씩한 다짐을 담은 우렁찬 태평소 소리가 들릴 때 관객은 흐뭇한 마음으로 안도할 것 같다. 최한별의 ‘유니뻐스(UniBuss)’는 우주를 여행하는 가상의 버스로 ‘버스’ 대신 ‘뻐스’라고 발음해야 하는 유의 사항을 지켜주길 바란다. 메텔과 철이의 <은하철도 999>가 아닌 유니뻐스 우주여행에서 행성과 운석을 피해 무사히 여행을 마칠 때까지 관객은 안전벨트를 단단히 착용하시라. ‘화류동풍’의 홍민웅은 고전을 좀 아는 젊은 작곡가다. 시조 같은 가사 “어디선가 향긋한 바람이 불어오니…. 꽃과 풀은 향기로워 생명의 기운이 일어나니….”는 따뜻한 민화 같은 소리 풍경 한 폭을 관객에게 선사한다.

이음 음악제가 미래 우리 음악의 표지석이 되고 한국 창작음악에 상생의 역사를 쓰며 오늘 우리의 자부심으로 기억되기를 바란다.

글. 김희선 국민대학교 교수로 국악과 음악인류학을 전공했다. 동시대 국악에 관심을 기울이는 현장 학자이며 한국음악 현대사를 아시아와 글로벌 음악사의 맥락에서 재해석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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