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보기하나

청소년극이 갖는 의미
질문하고 진화하는 동시대성
만나고, 연결하고, 실험하며 끊임없이 진화하는 장르가 있다. 바로 청소년극이다. 이 끊임없는 변화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청소년극이라 정의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 존재의 의미와 깊이에 대해 자문해 봐야 할 시간이 도래했다.

2022년 9월, <발가락 육상천재>라는 작품으로 천안의 청소년을 만났을 때다. 12~13세, 초등학교 5~6학년 590명의 관객을 만나는 오전 10시 30분 공연. 2022년에 만나는 첫 번째 관객이고, 관객 수가 주는 압박감으로 연출부와 배우들 모두 잔뜩 긴장한 상태였다. 공연이 시작되자 실의에 빠진 무대 위 주인공에게 “힘내”라고 외치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그런 친구에게 “조용히 해”라고 소리치는 아이가 있었다. 70분간 진행되는 공연에 10대 초반 청소년 관객은 실시간 실감 나는 반응을 보인다. 이 반응은 공연이 끝난 후 극장 로비까지 이어지고, 우리는 그것을 다시 선물처럼 담아 무대 뒤에 풀어놓는다.

<2020 발가락 육상천재> (사진제공 국립극단, ⓒ스튜디오 그린비)

서울 청구초등학교와 부천 양지초등학교가 함께했던 <발가락 육상천재> 프로덕션 ‘오픈 리허설’ 현장. 육상부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보니 운동으로 진로를 정했거나 취미로 하고 있는 이를 포함해 열댓 명의 청소년이 연습실을 방문했다. 간단한 워크숍 이후, 준비한 장면을 시연한 후 작품에 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갖는다. 어떤 캐릭터가 와닿았고, 이 노래가 좋았고, 욕설은 없으면 좋겠다는 생생한 피드백이 전달됐다. 우리는 연습실을 흔들어놓는 청소년 손님의 소음과 에너지가 반갑다. 그리고 그들이 떠난 후 남겨진 이야기로 작품 제작 과정에 청신호가 켜졌는지 적신호가 켜졌는지 점검한다.

청소년을 만나는, 청소년극

청소년극은 청소년을 만나는 연극이다. 제작 과정에서, 작품 속에서, 극장에서 만난다. 청소년을 소재로, 대상으로, 청소년이 출연한다고 청소년극이 아니라, 이 세 단계에서 청소년과 꼭 만나야 하는 것이 청소년극이다. 그러하기에 청소년극 프로덕션은 현재 존재하는 대상과의 지속적인 만남을 통해서만 실존적 질문과 함께 동시대성을 띠는 구조화된 작업을 할 수 있다.
2011년 <소년이그랬다>를 시작으로 10여 년간 청소년극을 제작해 온 국립극단 어린이청소년극연구소는 ‘Research by Practice & Practice by Research(실행을 통한 연구, 연구를 통한 실행)’라는 비전을 갖고, 그간 청소년극 공연 제작, 어린이청소년극 연구·개발 프로그램을 진행해 왔다. 이 비전은 ‘질문과 실험, 발견 그리고 다시 질문’이라는 과정을 경험함으로써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찾게 하는 동력이 된다. 그리고 이 동력의 주춧돌이 바로 어린이와 청소년이다. 청소년극 제작 과정에서 청소년은 단순히 관객이나 대상으로만 존재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만드는 이는 성인 예술가이나, 청소년은 준비된 관객 또는 조사 대상으로만 함께하는 것이 아니라, 유무형의 여러 형태로 영향을 미치고 작동한다고 볼 수 있다. 그 작동의 터전이 되는 것이 프로덕션과 청소년 참여 협력 파트가 함께 만나는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당연히 이 ‘만남’은 만남을 통한 충돌과 파장, 나아가 ‘파트너십’의 의미를 담고 있다.

<2021 소년이그랬다> (사진제공 국립극단, ⓒ스튜디오 그린비)

지금 여기에 질문을 던지는, 동시대성

‘청소년’이 인생의 한 시기이자, 사회의 구성원을 일컫는 말인 것처럼 ‘청소년극’도 이 두 가지 측면과 연결되어 있다. 하나는 청소년의 시기에 대해 세밀하게 접근하는 것, 그로써 인생의 나이테를 면밀하게 들여다보고, 시기별 근원적 의미와 연극 작업을 연결하는 측면이다. 또 하나는 사회적 좌표 아래 청소년의 위치를 다각도로 살펴보고,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를 끊임없이 질문하는 측면이다. 이 두 날개가 청소년극의 시간성과 사회성(공간성)을 확보케 하는 주요한 축이라 할 수 있으며, 청소년극이 동시대성을 확보할 수 있는 근간이 된다.
전 세계적으로 2020년 ‘코로나19’ 이후 동시대성을 담은 청소년극이 더욱 강화된 듯하다. 난민과 인종 문제 등 기존에 존재하던 사회적 이슈 외에도 펜데믹과 기후 위기 등의 영향으로 변화된 청소년의 삶에 주목하고 있다. 그 예로 2022년 에든버러 프린지에서 발표된 몇 작품을 소개한다.
먼저 <Everything Has Changed>(2020)는 ‘코로나19’와 ‘기후 위기’라는 주제로 ‘7~11세’ 관객을 대상으로 한 공연이다. 뉴노멀을 맞이하는 어린이를 위한 생존 안내서(A children’s guide to navigating our new normal)라는 평가를 받았다. 어느 날 아침, 두 학생은 학교 종이 울리기도 전에 타는 듯한 더위에서 눈으로 바뀌는 (주로 환경적 용어로 ‘대재앙’이라고 묘사되는) 풍경을 목격한다. 끔찍한 소문이 삽시간에 학교 운동장으로 퍼지고, 사람들은 모두 재채기하는 걸 두려워하게 된다. 맷(Matt)과 라케이샤(Lakeisha)는 이제 불 끄고 잠자기를 원치 않는다. 설상가상으로, 어른들은 이제 해답을 지니지 않은 것 같다. 극은 어린이들이 팬데믹 경험을 길러내도록 도울 뿐 아니라 기후 비상사태의 지속적이고 파괴적인 영향을 예상할 수 있도록 한다.
<Brown Boys Swim>(2020)은 인종차별을 주제로 한 유쾌한 작품이다. 무슬림 청소년 카슈(Kash)와 모센(Mohsen)은 학급 풀파티에서 여학생들의 마음을 사로잡고자 수영을 배운다. 재미있는 고등학교 시트콤물처럼 보이지만, 극은 오늘날 유색인종 청소년이 직면하는 현실을 심층적이고 도발적인 시선으로 바라본다. 에든버러 프린지에서 최고의 극작 상인 팝콘 어워드(Popcorn award)를 수상했다.

세대 간의 연결

청소년극의 동시대성을 획득하는 작업에는 위와 같은 현재 사회적 이슈 외에도 더욱 다양한 청소년을 만나는 작업도 포함된다. 2020년 ‘영지’를 1탄으로 시작한 국립극단 청소년극의 ‘12살 프로젝트’는 14~19세, 중고생으로 범주화되는 청소년 시기를 확장해 우리 사회에서 다소 조명받지 못했던 12~13세 연령을 조명하고, 청소년의 시작 지점에서 발견되는 새로운 것을 연극적 통찰로 만나보고자 했다.
사회적 사각지대에 놓인, 좀 더 다양한 청소년을 만나보는 작업도 청소년극의 동시대성을 향한 시도다. <자전거도둑헬멧을쓴소년>(2019)은 박완서 작가의 『자전거 도둑』을 원작으로, 일하는 청소년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우리 사회가 모른 척했던 사각지대 속 청소년의 삶과 사회의 모순을 그려내기 위해 노력했다.
영국 국립극장에서 공연한 <Our generation>(2020)은 열두 청소년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5년 동안 수백 시간의 인터뷰를 통해 청소년의 삶을 추적하고 기록한 뒤, 출연진이 이 기록을 관찰하며 극으로 만들었다. 상당한 제작 시간이 소요되는 방식을 통해 청소년의 다양한 면면을 캐릭터화하고 조명했다는 점에서 큰 호응만큼이나 값진 의미를 갖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더 자유로운 진화를 꿈꾸다

‘청소년극’은 청소년은 늘 문제가 따라다니고, 교육의 대상이라는 인식, 그리고 언제나 교훈적이고 교육적이어야 한다는 명제에 부딪혀 왔다. 그럼에도 감사한 것은 최근 몇 년간 쌓인 청소년극의 연극적·사회적 자산 위에 좀 더 자유로운 시도와 진화를 꿈꿀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국립극장 기획공연 <합★체>와 <틴에이지 딕>은 청소년극의 자유로운 진화에 있어 무척 반가운 작품이다. 작품의 내용과 프로덕션 디자인 등에서 장애를 자유롭게 넘나들고 있기 때문이다. 작품의 내용과 형식이 연결되어 있고, 배리어프리의 의무가 아닌 배리어프리의 유머가 내재한다. 특히 <틴에이지 딕>은 고전과 장애, 청소년 모두를 연결해 의미화한 작업이기에 기대가 크다. 가까운 시기에 ‘청소년’에 대해 출연 배우의 신체성과 나이에 제한받지 않고, 그 ‘나이’의 의미를 재미있게 들여다볼 수 있는 작업을 만날 수 있기를 또한 희망해 본다.

‘청소년’의 현재성, 그리고 예술가와 청소년의 충돌, 그리고 그로 인해 생기는 파장이 청소년극 프로덕션의 주요한 자원이자 에너지가 되듯이 지금의 다양한 요구를 담아내며 실존과 현재에 대해서 끊임없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 청소년극이다. “인생에서 ‘청소년’ 시기는 어떠한 시간대이며, 우리 사회는 청소년을 어떻게 호명하고 있는가. 그리고 이들을 위한 연극이 필요하다면 무엇일까?” 이것은 청소년극에서 언제나 유효한 질문일 것이다.

글. 김미선 2011년 <소년이그랬다>를 시작으로 (재)국립극단 어린이청소년극연구소 프로듀서로서 새로운 청소년극 제작, 개발에 힘쓰고 있다. 흥미로운 질문과 찾아가는 여정을 즐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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