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인마르쉐

만남이 중심이 되는 문화시장
극장을 넘어 광장으로
국립극장이라고 하면 흔히 떠올리는 이미지가 있다. 남산 아래에 자리 잡은 커다란 극장. 제법 웅장한 건물, 화려한 로비와 공연장, 그리고 다른 곳에서는 쉽게 보기 힘든 엄선된 공연들. 그런데 문득 새롭게 느껴지는 프로그램이 국립극장에 등장했다. ‘아트 인 마르쉐(Art in Marche)’다. 국립극장과 마르쉐라니, 어쩐지 생경한 두 조합이다. 분명 이전까지 알던 국립극장과는 다른 시도일 텐데, 극장은 어떤 일들을 꾸미고 있는 걸까.

아직은 햇살이 제법 뜨거운 9월의 어느 날,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앞 문화광장에 파라솔이 늘어섰다. 어쩌면 극장의 공연을 보러 가기 전에 잠시 지나치는 공간이었을 이 장소는 많은 이들이 의도적으로 찾거나 방문하는 곳은 아니었다. ‘아트 인 마르쉐’는 국립극장의 광장을 모두에게 열어낸다. 풍성한 농작물을 거래하는 장터가 된 이 광장에는 무언가를 사거나 구경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해오름극장 전면에는 야외무대가 마련돼 음악 공연이 진행되고 있었다. 코로나19와 함께해야 했던 지난 2년이 지나고 나니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만 보아도 반갑게 느껴진다.
국립극장과 함께 이 자리를 마련한 ‘농부시장 마르쉐(http://marcheat.net)’는 대화하는 시장을 모토로 농부와 제철 채소에 더욱 집중하는 장터를 기획해 왔다. 생산자가 직접 제철 농산물을 전시하고 판매하거나, 출점한 재료를 가지고 바로 요리된 음식을 맛볼 수 있게 하는 콘셉트 등으로 수년간 이어오고 있는 하나의 마켓 브랜드다. 자연에 해가 되지 않는 방식의 농작물 재배를 지향하고, 소품종 대량생산에 집중할 수 있게 디딤돌을 놓으며, 대화하는 농부들이 더욱 주목받을 수 있는 자리를 만든다. 소비라는 행위보다 만남이 중심이 되는 자리다. 국립극장은 마르쉐와 함께 장터가 있는 광장을 기획해 농부와 소비자, 그리고 아티스트가 한데 어울리는 문화시장을 꾸려냈다.

함께 맛있는, 함께 멋있는

건강한 가을 소풍이라는 주제에 어울리는 열매채소와 제철 작물이 광장을 가득 채웠고, 여느 때보다 더 많은 50여 팀이 직접 출점해 참여하는 등 프로그램 규모도 확장되었다. 주최 측에 따르면 이날 행사는 마르쉐가 개최하는 채소시장 시리즈 중 가장 많은 인원이 참여하는 자리였다. 달콤한 사과와 배의 향기, 향긋한 뿌리채소, 꿀과 빵, 치즈, 비건 식자재 등 농장을 중심으로 한 먹을거리와 식탁에 어울리는 수공예품 등이 함께 구성되었다. 한 바구니 장을 봐서 남산 어딘가에서 잠시 쉬며 휴식을 즐기고 싶은 날이었다.
마르쉐를 찾게 되면 종종 ‘건강하게 살겠다’고 다짐하곤 하는데,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남산 아래의 맑은 가을 하늘, 씩씩하게 보인다고 느낄 만큼 신선한 작물, 그리고 라이브로 연주하는 음악 공연까지. 주로 텅 비어 있던 국립극장 앞 광장이 건강한 광장, 생동하는 자리가 된다. 사람들은 일상과 닿아 있는 장보기에서 시작해서 무대가 있는 자리에 잠시 머무르고 그렇게 한발 더 극장과 가까워진다.

빵과 장미, 장터와 극장

국립극장 광장을 가득 채운 ‘아트 인 마르쉐’는 ‘빵과 장미’의 가치를 떠올리게 한다. 캐서린 피터슨의 소설 『빵과 장미』에서는 생계를 위한 먹을거리를 상징하는 빵, 그리고 인간의 존엄과 삶의 질을 상징하는 장미를 메타포로 산업화 이후 노동자의 현실과 삶을 그려나간다. 그리고 이내 인간의 삶을 위해서는 빵과 장미가 모두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풀어낸다.
마치 빵과 장미의 이야기처럼 ‘아트 인 마르쉐’는 삶과 예술의 가치가 맞닿을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한다. 누구나의 삶과 맞닿아 있는 ‘일상적 장보기’라는 행위를 매개로 국립극장의 광장이 가득 찰 수 있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장터를 열기에 이렇게 좋은 장소였음을 몰랐다는 게 놀라울 정도였으니 말이다. 극장 앞의 광장은 더는 관리의 대상이 아니다. 극장은 광장을 공공의 자산으로 공유하며, 각자의 삶과 극장을 연관시킬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마르쉐가 만들어내는 ‘장을 본다는 일’은 국립극장의 보이지 않는 벽을 금세 허무는 행위였다.

지속 가능한 극장을 위한 시도

최근의 마르쉐 행사에서 중요한 한자리를 차지하는 ‘채소 봉투 접기’ 코너는 국립극장과의 협업을 통해 시작하게 된 프로젝트다. 농부와 자연, 그리고 지속 가능한 장보기를 위해 국립극장에서 사용하고 남은 포스터를 활용해 재사용함으로써 불필요한 포장재의 사용을 줄이고, 극장이 가지고 있는 유휴 자원의 적극적인 활용 방안을 모색한 결과다. 무대를 위한 부산물이 먹을거리를 담아내는 봉투가 되어 누군가의 집으로 옮겨진다. 극장이 할 수 있는, 소박하고도 새로운 상상은 이런 일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아트 인 마르쉐’를 찾은 사람들은 풍성한 농작물과 음악, 대화와 만남으로 가득 찬 광장을 마주한다. 바구니 가득 신선한 채소와 과일을 담은 사람들이 한데 모여 함께 음악을 듣는다. 함께 웃고 함께 손뼉 친다. 음악의 선율만큼이나 광장의 활력이 아름답다. 광장에 모인 이들은 모두 일시적인 공동체, 마이크로 커뮤니티가 된다. 사람을 모이게 하는 극장의 힘이 더욱 다채로워진다.

글. 임현진 기획자, 서울아트마켓 협력감독이자 포항거리예술축제 프로그래머로 일하고 있다. 도시·공간에 관한 관심을 바탕으로 여러 축제, 예술단체들과 함께 작업한다. 공연하며 만난 세상을 이야기하고, 재미난 질문을 찾아내는 것이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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