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선율

‘지지대’가 꼽은 김대성의 ‘청산’
우리의 첫 국악관현악
2021년 3월 국립국악관현악단에 입단한 거문고 신지희, 피리 홍지혜, 대금 김대곤. 이들은 서로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을 따 ‘지지대’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그리고 그 이름처럼 서로 지지하며 국악관현악의 세계에 다가서고 있다. 이들이 한마음으로 소개하는 첫 국악관현악은 고려속요 청산별곡과 여러 무속 장단을 고루 만날 수 있는 김대성의 ‘청산’이다.
국립국악관현악단원 홍지혜(피리·생황), 김대곤(대금), 신지희(거문고)

곡 선정 단계에서 세 분 모두 곧바로 김대성의 ‘청산’을 떠올리셨다고 들었습니다. 김대성의 ‘청산’은 세 분께 어떤 곡인가요?

김대곤 이야기를 나누다가 알게 됐는데, 저희가 모두 학생 때부터 ‘청산’을 제일 좋아했더라고요.
신지희 맞아요. 신기하게도 처음으로 얘기한 게 모두 이 곡이었어요. 저에게는 국악관현악 하면 ‘청산’. 딱 이렇게 생각이 나는 곡이었고요.
홍지혜 대학생 때 처음 연주한 관현악곡이기도 하고, 국립국악관현악단에 입단해 이 곡을 연주하는 것이 선망이기도 했어요. 국악관현악의 매력을 알게 해준 곡이에요.

‘첫 국악관현악곡’인 셈이네요. 서로 다른 악기를 맡고 계신 만큼 ‘청산’에 대한 인상이나 기억도 조금씩 다를 것 같습니다.

신지희 거문고는 국악관현악에서 베이스처럼 쓰이는 경우가 많은데, ‘청산’에서는 거문고가 시작부터 나오는 데다 음악을 발전시키는 데에도 중요한 선율을 맡아요. 여러모로 거문고의 매력을 뽐낼 수 있게 하는 부분이 많아서 기억에 남는 작품이에요.
홍지혜 저는 피리 음색이 꿋꿋하고 청아하다고 생각하는데, 그 느낌을 가장 잘 살린 곡 중 하나가 ‘청산’인 것 같아요. 곡 초반에 참 단아하고 청아한 피리 선율이 등장하는데, 저에게는 그 부분이 연주의 성패를 결정한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하게 느껴져요. 또 피리뿐 아니라 대피리·태평소, 그리고 제가 맡은 생황도 굉장히 매력적으로 잘 표현돼 있어서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합니다.
김대곤 ‘청산’은 청산별곡의 선율을 발전시키고, 다양한 무속 장단을 잘 녹여낸 곡이지만, 또 음악의 진행을 봤을 때 서사가 매우 잘 보이는 곡이라고 생각해요. 와중에 대금은 주제 선율을 처음과 중간, 그리고 끝부분에서 연주해요. 솔로 파트가 꾸준히 나오다 보니 더욱 기억에 남았어요. 제가 학생 때, 대금 솔로를 맡아 연주한 적이 있어서 그런지 더욱 인상에 남네요.(웃음) 저희가 입단한 후에 이 곡을 함께 무대에 올리진 못했지만 저희끼리 같이 연습한 곡이라 여러모로 추억이 담겨 있어요.

화성 진행으로 ‘청산’의 느낌을 잘 표현한 생황 파트보
대금 연주가 김대곤이 서정적인 해금 선율이 돋보인다고 느낀 부분의 악보
거문고가 현을 훑으며(스르렁) 사뭇 다른 분위기를 연출하는 부분의 거문고 파트보

‘청산’을 생각하면 곧장 떠오르는 부분을 짚어주신다면요?

홍지혜 곡 중간에 생황이 도드라지는 부분이 있어요. 청산별곡의 음들로 구성된 화성 진행인데, 앞의 주제 선율을 마무리해 주는 느낌도 나고, 새로운 주제 선율의 도입 같은 느낌도 나요. 주제 선율도 독특하지만 그 화성 진행도 ‘청산’의 느낌을 잘 표현한 부분이 아닌가 싶어요.
김대곤 두 부분이 생각나는데요. 하나는 처음으로 주제 선율이 나오는 부분, 다른 하나는 해금이 느리고 굉장히 서정적으로 나오는 부분이에요.
신지희 초반에 대금과 양금이 청산별곡 선율을 조용히 연주하다가, 이와 상반되게 거문고가 강하고 멋있게 스르렁하는 11마디 부분이 가장 먼저 떠올라요. 그리고 앞의 서정적 분위기를 뒤로한 채 다른 분위기로 발전해 나가는 78마디 부분도 생각나네요. 거문고와 가야금이 ‘딴 따딴 따딴 딴딴’ 하며 사뭇 다른 분위기로 이끌거든요.

국립국악관현악단원 신지희(거문고), 김대곤(대금), 홍지혜(피리·생황)

주제 선율, 곡의 핵심 음들을 압축한 화성 진행, 곡의 중요한 전환점을 만들어주는 음형 등 다양한 부분을 짚어주셨네요. 이번 대화에 앞서 세 분께서 ‘청산’을 여러모로 다시 살펴보셨을 텐데요. 알면 알수록 더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부분이 있다면요?

신지희 차근히 들여다보니까 청산별곡의 선율이 정말 곳곳에 숨어 있더라고요. 어디서는 거문고가 선율 일부를 노래하고, 다음엔 해금이 노래하는 식으로 주제 선율이 꾸준히 활용되고 있음에도 다채롭게 표현할 수 있다는 점에 새삼 놀랐어요.
김대곤 ‘청산’의 선율이 정말로 그 오래된 고려 시대의 고악보를 충실히 해석한 결과라는 점도 인상 깊었어요. 예전에는 몰랐는데, 대학원에서 고악보 해석을 공부하면서 보니 그 선율의 원형이 고스란히 이 곡에 담겨 있더라고요.
홍지혜 이 곡에는 청배 장단도 쓰이고, 엇모리·푸살 등 정말 다양한 장단이 쓰이는데, 그런 장단의 활용이 큰 매력 중 하나죠. 그리고 저는 이 곡 이후로 국악관현악의 장단이 한층 복합적이고 다채로워졌다고 생각해요. 시기상 맞물린 것인지 영향을 받아 변화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청산’ 이후로는 장단의 쓰임새가 좀 달라진 것 같았어요.

음악가들이 국악관현악에 기대하는 여러 형태를 잘 갖추고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홍지혜 많은 작곡가가 전통에 입각한 곡을 쓰지만, 김대성 작곡가의 음악에서는 특히 그런 요소를 더 잘 찾을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러면서도 아름다운 멜로디나 화성, 풍부한 사운드가 나오죠. 음악적으로도, 음향적으로도 밸런스가 참 좋다는 느낌을 받아요.
김대곤 맞아요. 그리고 김대성 작곡가의 음악에는 기억에 남는 멜로디가 있어요. ‘청산’이나 ‘열반’, 또 대금 연주가에게 바이블이 된 대금 협주곡 ‘풀꽃’을 비롯한 여러 실내악곡. 연주하고 나면 저도 모르게 선율을 흥얼거리게 되더라고요.
신지희 저도 개인적으로 전통에 입각한 음악을 좋아해요. 또 김대성 작곡가의 음악에는 풍부한 선율도 있지만, 장단도 다채로워서 연주가들끼리 호흡을 맞춰가는 과정도 정말 즐거워요. 아무래도 저희가 집중해서 재미있게 연주하다 보면 자연스레 관객도 그런 감동과 에너지를 느끼는 것 같더라고요.

‘청산’은 2000년에 작곡됐습니다. 이 곡은 세 분께 국악관현악의 고전처럼 느껴지나요? 혹은 동시대적인 곡으로 느껴지나요?

김대곤 생각보다 오래된 곡이긴 하지만, 사실 지금 연주해도 손색없죠. 전통에 기반하면서도 특히 장단을 잘 활용한 곡이 더 나오면 좋겠다는 측면에서, 저는 이 곡이 동시대적 가치를 담고 있다고 생각해요.
홍지혜 저는 ‘청산’이 고전으로 딱 자리를 잡아줬으면 좋겠어요. 이런 레퍼토리가 고전으로 받아들여지다 보면, 다른 작곡가가 이 곡을 탐구하면서 여기에 담긴 가치를 이해하는 새로운 곡을 만들 수 있을 테니까요.
신지희 두 분 말씀에 모두 동의해요. 22년 전, 한창 국악관현악이 발전하는 시기에 쓰인 대곡이라는 점에선 분명 고전 중 하나지만, 지금 저희도 좋아하고 오늘날의 관객이 여전히 찾는 곡이라는 점에서는 동시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가까운 친구들이 국악관현악에 대해 궁금해한다면 어떻게 소개해 주시겠어요?

김대곤 (웃음) 저는 일단 보러 오라고 하겠어요.
신지희 저도요. 일단 <정오의 음악회>나 <3분 관현악>을 시작으로, <리컴포즈>까지 초대하는 거예요.
홍지혜 저도 일단 들려주는 게 확실하고 좋지만 그래도 설명해 본다면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전통을 아름답게 표현하는 음악이다. 전통을 아름답게 표현하기 위해서 실험적인 것도, 대중적인 것도, 서양음악적인 것도 고루 포용할 수 있다.’ 이게 제가 지금 생각하는 국악관현악이에요.

글. 신예슬 비평가, 헤테로포니 동인. 음악학을 공부했고, 『음악의 사물들』을 썼다. 종종 기획자, 드라마투르기, 편집자로 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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