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여섯

국립국악관현악단 <정오의 음악회>
국악으로 평화를 노래할 수 있을까?
‘평화’를 키워드로 삼은 2022년의 마지막 <정오의 음악회>가 12월의 첫날, 해오름극장에 오른다. 평화에 대한 염원이 무대와 객석을 가득 채울 것이다.
국립국악관현악단 <정오의 음악회> 10월 공연에서 지휘를 맡은 정예지

진화하지 않으면 도태된다. 흔한 말이지만 어느 분야에나 관통하는 진리이기도 하다. 물론 공연을 기획할 때에도 적용되는 말이다. 10년 전만 해도 특정 공연장에서만 시도하던 ‘마티네(matinee) 콘서트’가 전국에 퍼지며, 최근 2~3년 전부터는 공연마다 개성 있는 테마로 관객을 맞이하고 있다. 마티네 콘서트에 대한 관객의 선택 폭이 넓어진 만큼 치밀한 기획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2009년에 시작한, 국립극장을 대표하는 마티네 콘서트인 <정오의 음악회>는 이 점에서 좀 특별하다. 티켓 예매 플랫폼 인터파크에 따르면, 마티네 콘서트는 클래식 음악 장르의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다. 2021년에 개최된 마티네 콘서트의 86%, 2022년은 88%가 클래식 음악 분야인 것으로 나타났다. 국악을 대상으로 한 마티네 공연이라는 것만으로도 독특한 개성을 보여준다.
그동안 <정오의 음악회>는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연주로 국악관현악 명곡을 소개해 왔다. 국악관현악이 낯선 관객이 있을 것을 고려해 대중가수·뮤지컬 배우·소리꾼 등과 협업 무대도 구성했다. 10년이 넘는 시간을 지속하며 국립극장의 대표 스테디셀러 공연으로 자리매김한 <정오의 음악회>는 “진화하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말을 아로새기며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지난 시즌부터 프로그램의 유기적 연결성을 위해 공연 당일에 해당하는 탄생화 꽃말을 주제로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있다. 또한 <정오의 음악회>가 국악계의 새로운 인큐베이팅 현장이 될 수 있도록 국립국악관현악단 ‘가치 만드는 국립극장-지휘자 프로젝트’에 선정된 젊은 지휘자들에게 지휘봉을 맡긴다. 지휘자 프로젝트에 선정된 3명의 신진 지휘자(정예지·유숭산·이재훈)는 하반기 <정오의 음악회> 공연을 차례로 이끌며 국립극장 무대에 오른다. 이들은 음악적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 기획 단계부터 레퍼토리 선정에 관여했다.

지휘 이재훈

12월 공연을 이끌 지휘자는 이재훈. 그는 한양대 대학원에서 국악관현악 지휘를 전공했고, 폴란드 슈체친 국립예술대학에서 오케스트라 지휘 연수 과정을 수료했다. 국악을 두고 “개개인의 선율과 음악, 개성이 살아 있는 음악”이라고 설명하는 그는 ‘한국음악 오케스트라 바론’을 결성해 초연 후 재연되지 않은 국악관현악 작품을 다시 꺼내 보였다. 아울러 대규모 편성의 국악관현악단이 주도해 온 시장에서 중·소형 편성 오케스트라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는 등 음악적 도전을 멈추지 않는 지휘자다. “연주자가 가장 편한 상태에서 원하는 음악을 만들어가는 지휘자가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힌 이재훈이 이번 <정오의 음악회>에서 어떠한 역량을 보여줄지 기대를 모은다.

어느 때보다 평화가 그리운 계절

12월 1일에 선보이는 <정오의 음악회>는 탄생화 ‘쑥국화’의 꽃말인 ‘평화’를 키워드로 프로그램이 구성됐다. 사실 12월만큼 ‘평화’와 잘 어울리는 계절이 있을까. 12월이 되면 클래식 음악 공연장에서 한 번은 꼭 공연되는 작품이 있다. 바로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이 곡이 송년 클래식 음악회의 단골 레퍼토리로 자리 잡은 이유는 ‘합창’의 가사에 박애 정신이 담겼기 때문이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연말에는 인류의 평화, 개인의 평화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곤 한다. 이번 <정오의 음악회>에서는 추운 겨울, 안락한 평화를 노래하는 국악 작품들로 선곡돼 색다른 분위기를 준다.
<정오의 음악회>를 여는 ‘정오의 시작’에서는 작곡가 최지혜의 메나리토리에 의한 국악관현악 ‘감정의 집’ 1·3악장이 연주된다. 2018년 국립국악관현악단 <리컴포즈×상주작곡가> 위촉 초연작으로, 최지혜 작곡가가 2017~2018 국립국악관현악단 상주작곡가로 활동하며 작곡한 곡이다. 한국의 크고 작은 강이 갖는 생명력, 그 안에 담긴 정화의 이미지를 서사적으로 펼쳐낸 작품으로, 강을 감정을 가지고 있는 하나의 커다란 집으로 상상하며 ‘감정의 집’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악장 곳곳에 동부 지역 음악에서 주로 발견되는 메나리토리를 중심으로 한 주선율이 등장, 거친 피리와 익살맞은 해금의 색채가 부각된다. 1악장은 역동적인 강, 2악장은 강이 품은 이야기, 3악장은 조용히 흐르는 강 아래 사는 많은 생명체와 물줄기의 강인함을 그렸다. 생동감이 그대로 전해지는 이 곡을 들으며 힘찬 새해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 협연 양방언
  • 협연 하림

이어서 ‘정오의 협연’은 피아니스트 양방언과 함께한다. 피아니스트·작곡가·프로듀서로 활동하는 그는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개·폐회식 음악감독을 맡으며 다시금 주목을 받았다. 방송·영화·게임·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작업에 참여하며 한계 없는 음악 세계를 펼쳐 보이고 있다. 이번 공연에서는 한국에서 피어나는 아름다운 꽃과 강인하면서도 우아한 한국 여성을 모티프로 한 ‘Flowers of K’를 선보인 후,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공식 음악으로 선정된 ‘Frontier’의 신명 나는 선율로 무대를 채운다.
‘정오의 시네마’는 영화 OST를 국악관현악으로 만나는 시간이다. 이달에는 찰리 채플린이 1931년 선보인 무성영화 <시티 라이트>에 삽입된 두 곡 ‘Afternoon’과 ‘The Flower Girl’이 연주된다. 냉혹한 자본주의를 풍자한 이 영화의 마지막에는 절망 속 희망을 그려내 또 다른 평화의 형태를 이야기한다.
이어서 ‘정오의 스타’ 하림의 ‘위로’ ‘여기보다 어딘가에’ ‘사랑이 다른 사랑으로 잊혀지네’를 듣는다. 2001년 데뷔한 하림은 대중음악·월드뮤직·국악 등 여러 장르에서 연주와 작곡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월드뮤직 퍼포먼스 ‘집시의 테이블’과 음악 인형극 ‘해지는 아프리카’ 등 독특한 공연을 이어온 그는 아프리카·중앙아시아 등 제3세계 음악에도 관심이 많다. 다양한 뮤지션으로 기억되는 그가 이번 무대에서는 어떠한 공연을 선보일지 기대가 모인다.
마지막은 ‘정오의 초이스’로 마무리된다. 이달의 지휘자가 직접 선곡한 작품을 연주하는 ‘정오의 초이스’에서는 작곡가 김대성의 통일을 위한 ‘반달 환상곡’이 선택됐다. 2018년 국립국악관현악단 ‘다시 만난 아리랑’ 위촉 초연작으로, 동요 ‘반달’(작사·작곡 윤극영)을 주제로 곡이 전개된다. 김대성은 작곡가 김순남이 북한에서 채보한 향토민요를 접목해 ‘반달 환상곡’을 완성했다. 함경도 민요인 ‘밭 풍구소리’ ‘베틀 노래’ ‘물방아 타령’ 등 접하기 어려운 북한 민요를 엿볼 수 있다. 김대성 작곡가가 직접 채보한 황해북도 곡산 지방의 ‘자장가’도 곡 중반에 삽입됐다. 김대성은 민요를 통해 분단 이전 한민족이 공유했던 정서를 되새기고, 평화통일을 향한 염원을 담았다.
지구 반대편에서는 오늘도 가슴 아픈 전쟁이 일어나고, 코로나로 지친 일상은 장기간 지속되고 있다. 평화라는 단어가 참 낯선 시대이지 않나. 얼어붙은 겨울, 남산 국립극장에서 울려 퍼질 평화의 선율은 잠시나마 지친 삶을 녹여줄 것이다.

글. 장혜선 『객석』 수석기자, 바른 시선으로 무대를 영원히 기록하는 사람이 되고자 부단히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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