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뒤의사람들

홍보팀 공연영상화 담당
화려한 조명 뒤 바쁘게 움직이는 발걸음.
수면 아래 빠르게 움직이는 백조의 물갈퀴처럼
관객과 가장 가까이서 소통하며 극장 곳곳을 채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나본다.
가장 가까운 국립극장

입체적이던 국립극장 무대가 평면의 스크린에 담겼다. 덕분에 극장으로 발걸음하지 못했던 이들이 집에서, 혹은 영화관에 앉아 편안하게 공연을 즐겼고, 미처 한눈에 담지 못했던 배우들의 미세한 표정 변화와 동작은 하나의 커다란 이미지로 관객의 뇌리에 남았다.

국립극장은 코로나19 팬데믹을 기점으로 본격적인 공연영상화 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공연 실황 영상을 유통하는 ‘가장 가까운 국립극장’을 비롯해 짧고 긴 공연 홍보영상을 제작하고 관객에 제공하는 것이다. 공연예술에서 영상의 중요성과 필요성이 끊임없이 회자되고 제고되고 있다. 이 시점에서 점차 확대되는 사업 규모만큼이나 너른 안목과 수완으로 국립극장 공연영상화 사업을 이끄는 공연영상화 담당 정선영 PD를 만나봤다.

정선영: 국립극장은 2021년 1월부터 공연영상화 사업을 시행하고 있어요. 같은 해 하반기부터 4편의 작품을 영화관에서, 10편을 OTT에서 상영하는 것으로 시작했죠. 2022년에는 전국 롯데시네마에서 9편의 작품이 상영됐고, 웨이브와 같은 OTT 채널에서는 13편의 콘텐츠가 서비스됐어요. 또 SBS나 KTV 같은 방송사뿐만 아니라 국제교류 행사 및 재외 한국문화원 주관 행사에서도 공연영상을 유통 및 상영하고 있습니다.

2021년 팬데믹은 수많은 공연장과 공연예술단체가 명맥을 잇기 어렵도록 만들었다. 일부 이름을 유지한 곳도 띄어 앉기를 시행하거나, 감염병 확산으로 인해 공연 직전 순연 혹은 취소하는 일이 빈번했다. 온전히 관객과 마주하며 예술세계를 펼칠 수가 없게 된 것이다. 국립극장 역시 팬데믹과 맞물려 급격하게 일어난 문화예술계의 변화에 발맞춰 새로운 콘텐츠 제작과 서비스 방식을 찾아야만 했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바로 공연영상화 사업이다.

정선영: 2021년 하반기가 공연영상화 사업의 시범 단계였다면 2022년부터 본격화하고 있어요. 공연 실황 영상은 소비 패턴이 일반 영화나 영상과 달라 2023년에는 연구용역 결과를 바탕으로 전략적으로 유통할 계획입니다. 또 학교 및 해외로 유통 채널을 확대하려는 목표도 가지고 있어요.

2021-2022 국립극장 레퍼토리시즌에서 영상화 한 레퍼토리 작품이 10편이었다는 것, 2021년 하반기에 사업이 시작됐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비교적 상당한 수의 작품이 영상 콘텐츠로 제작·유통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정해진 예산과 시간 안에서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의 순간이 필요할 터. 전체 60여 편의 레퍼토리시즌 작품 중 어떤 작품이 스크린에 담기는 것일까.

정선영: 작품 선택은 공연을 기획하고 제작하는 부서에서 결정합니다. 공연의 태생이 그곳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공연에 대한 공연 제작자·영상 제작사·유통사 그리고 플랫폼이 원하는 방향이 각기 다를 수 있어 그 간극을 좁히는 과정이 필요해요. 또, 전통을 기반으로 한 현대적 작품을 제작해 국민의 문화 향유권을 증진한다는 극장의 대의를 생각할 때 국립극장의 작품 중에서도 일반 관객의 진입장벽이 낮고, 장르에 대한 선입견 없이 국립극장의 작품에 궁금증을 유발할 수 있는 작품을 영상화 사업의 대상으로 삼으려고 노력합니다. 국립극장도, 전통이라는 소재도 낯선 관객의 눈높이를 맞추려면 좀 더 전략적이어야 하죠.

지금까지 국립극장 공연영상화 사업의 하나로 롯데시네마에서 상영된 작품은 2021년 9월, 롯데시네마 18개 관에서 상영한 국립무용단 <묵향>을 시작으로 국립창극단 <패왕별희>, 양방언과 국립국악관현악단 <인 투 더 라이트>, 국립창극단 <귀토>까지 총 13에 달한다. OTT 플랫폼 웨이브에서도 국립무용단 <가무악칠채>, 국립국악관현악단 <소소 음악회>, 국립극장 기획공연 <명색이 아프레걸>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총 23편의 작품이 소개됐다. 국립창극단 <귀토>나 국립무용단 <가무악칠채>, 국립국악관현악단 <천년의 노래, REBIRTH> 등 내용도 음악도 재미있고 신선한 시도가 있었던 작품이 대체로 관객의 호응이 좋았다. 또 타 장르의 스타가 나오는 경우 새로운 관객층이 유입되며 조회 수가 크게 늘었다는 후문.

정선영: ‘춘향’과 같이 잘 알려진 소재가 식상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익숙해서 더 궁금해지는 예도 있는 것 같아요. 쉽고 재밌는 소재와 공연은 일부 팬들 사이에서 입문용으로 추천되기도 하고 타 장르와 융합된 공연은 해당 분야의 관객이 유입되는 기회가 되기도 하거든요.

극장에서 공연영상 유통 업무를 하기 위해서 꼭 카메라를 다루거나 영상편집기를 다뤄야 할 필요는 없다. 직접 찍고 편집하는 직군이 아니라면 말이다. 물론 국립극장의 공연영상화 담당 PD는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방송국과 공연계에서 10여 년의 경력을 쌓은 후 국립극장에 들어왔다. 따라서 카메라도 편집기도 다룰 줄 알지만, 중요한 것은 프로그램을 다루는 능력보다 영상 제작과 공연에 대한 이해다. 온갖 뮤직비디오와 매체가 자신을 키웠다고 말하는 그는 빠르게 변화하는 공연영상화 사업에서 실무자는 시대와 관람자의 다양한 요구를 빠르게 파악하고 가공해 나가는 감각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정선영: 공연영상화사업은 장르마다 명확한 특징을 지니고 있어요. 뮤지컬 공연의 실황 영상을 제작하는 것과 국립극장의 전통 기반 공연을 실황 영상으로 제작하는 건 천지 차이죠. 그래서 고유의 영역을 잘 이해하고 각 분야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에 대해 함께 고민할 수 있어야 해요. 물론 내가 속한 집단의 이해도 필요하죠. 그런 의미에서 영국 국립극장의 NT Live는 제 롤모델이에요. 사업의 공익적인 목적, 고전 작품을 현대 일반 관객에게 재해석해 보이는 콘셉트, 양질의 작품을 일정하게 생산할 수 있는 안정적인 제작 시스템, 스타 배우를 활용한 상업성까지 갖췄다는 점에서 그렇죠. 영국 국립극장처럼 양질의 영상으로 국민의 접근성을 높이고자 한다면 당장 영화관에 몇 명의 관객이 왔는지에 대한 수치보다 문턱을 낮추고 대의에 집중하는 자세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팬데믹이 가져온 공연예술계 주요한 변화를 꼽자면 공연영상화 사업의 중요성과 규모의 확장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언제 어디서나 공연예술과 함께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정선영: 영상 플랫폼은 기존 장르만으로도 포화상태라 모두 칼을 갈고 콘텐츠를 제작하고 유통하는 시대예요. 한 가지 아쉬운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국내에선 단순 기록을 위한 부수적 용도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는 거예요. 공연영상화를 보조사업으로 여기던 시기는 끝났어요. 그럴 때일수록 더욱 뚜렷한 목표 의식이 기본 전제가 돼야 하죠. 그러다 보면 공연제작자와 무대에 선 배우들 그리고 영상 제작사나 유통사의 바람 모두가 조화롭게 맞아떨어지는 순간이 올 거라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는 국립창극단의 <나무, 물고기, 달>이 제게 그런 작품이 되리라 기대하고 있어요. 2023년 유통을 앞두고 얼마 전에 촬영이 진행됐는데, 현장 분위기가 굉장히 의욕적이었다고 전해 들었거든요. 그 점에서 결과물을 기대해 봐도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본 기사는 국립극장 홍보팀 공연영상화 담당 정선영 님과 진행한 인터뷰를 토대로 작성했습니다.
글. 김보나 국립극장 홍보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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