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

국립국악관현악단 관현악시리즈Ⅱ <역동과 동력>
새로운 힘의 원천들
봄에 피었어야 할 꽃이 겨울을 맞았다. 긴 기다림만큼이나
무대를 화려하게 수놓을 작품에 벌써부터 이목이 모인다.

국립국악관현악단은 다가오는 11월 18일(금)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관현악시리즈Ⅱ <역동과 동력>을 선보인다. <역동과 동력>은 지난 3월 공연할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의 급격한 확산으로 인해 순연된 바 있다. 오랜 기간 준비한 만큼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새로운 관현악시리즈를 고대하는 관객도 적지 않다. 국립국악관현악단은 2021년 관현악시리즈Ⅰ <천년의 노래, REBIRTH>와 관현악시리즈Ⅱ <2021 리컴포즈>와 관현악시리즈Ⅳ <황홀경>을 선보이며 힘든 코로나 시대를 관통해 왔다.
이번 시리즈의 기획 의도를 면밀히 살펴보기 위해서는 역동과 동력의 사전적 의미를 곱씹어 볼 필요가 있겠다. ‘역동(力動)’의 사전적 의미는 ‘힘차고 활발한 움직임’이다. ‘동력(動力)’은 ‘어떤 일을 발전시키고 밀고 나가는 힘’을 의미한다. 두 단어의 핵심에는 어떤 상태로 나아가고자 하는 ‘힘’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 힘은 자체적인 생명성과 무한한 잠재성을 내포하고 있다. 사실 새로운 힘의 원천을 찾겠다는 저돌적이고 진취적인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선언은 새삼스럽지 않다. 국립국악관현악단은 한국 창작음악의 다양한 길을 모색한다는 비전 아래 끊임없이 흐르고 이동하려 했기 때문이다.

<역동과 동력>의 주요 관전 포인트는 4명의 ‘비르투오소(Virtuoso)’다. 비르투오소는 이탈리아어로 ‘덕이 있는’ ‘고결한’이라는 뜻을 지닌 단어다. 일반적으로 예술적 기교와 표현력이 탁월한 연주자를 일컫는다. 이번 공연에서는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구축하기 위해 정진해 온 클래식 기타리스트 박규희, 가야금 명인 지순자, 하피스트 황세희, 거문고 명인 정대석 이렇게 네 명의 음악가를 조명한다. 다양한 음악적 배경을 지닌 비르투오소의 에너지와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역동성을 결합해 관객에게 강렬한 경험을 선사함으로써 한국 창작음악의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보겠다는 의도다.
첫 무대는 도널드 워맥(Donald Womack)의 ‘서광(Emerging Light)’이 장식한다. 도널드 워맥은 한국·일본·중국 악기를 위한 50여 곡을 포함해 100여 곡을 작곡했으며, 관현악곡·실내악곡·독주곡 등 다양한 작품을 두루 선보여 온 작곡가다. 그의 작품은 아시아 국가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활발하게 연주되고 있다. 국립국악관현악단과는 2016년 가야금 협주곡 ‘흩어진 리듬’으로 연을 맺은 후 꾸준히 음악적 교류를 이어오고 있다. 이 밖에도 25개국의 여러 최정상 악단과 협업하며 관객과 만나왔다. 이번 공연에서 선보일 ‘서광’은 2021년 국립국악관현악단 이음 음악제 - 관현악시리즈Ⅳ <상생의 숲>에서 위촉 초연한 작품이다. ‘새벽에 동이 틀 무렵의 빛’을 뜻하는 제목 그대로 어둠을 헤치고 돋아나는 희망의 빛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클래식 기타리스트 박규희 ⓒHo Chang

이어서 클래식 기타리스트 박규희가 협연자로 나서 호아킨 로드리고(Joaquin Rodrigo)의 ‘아란후에스 협주곡(Concierto de Aranjuez)’을 선보인다. 아란후에스는 스페인 마드리드에 위치한 도시다. 이곳의 자연 풍광과 집시들의 모습이 호아킨 로드리고에게 많은 영감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란후에스 협주곡’은 총 3악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중 2악장이 KBS TV 프로그램 <토요명화>의 시그널 음악으로 사용되어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기도 했다. 또한 이 곡은 음량이 작은 클래식 기타의 협주 가능성을 확장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으며, 섬세하고 아름다운 선율이 일품이지만 고도의 기교가 요구되기 때문에 연주하기 까다로운 작품으로 손꼽힌다.
협연자 박규희는 국제 콩쿠르에서 수차례 우승한 세계적인 클래식 기타리스트다. 2008년에는 벨기에 프렝탕 콩쿠르에서 아시아 여성 최초로 우승을 거머쥐었고, 리히텐슈타인 콩쿠르, 어거스틴 바리오스 콩쿠르, 스페인 알람브라 콩쿠르 등 유수의 국제 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했다. 기본기를 쌓기 위해 하루 종일 바나나를 먹으며 13시간씩 연습했을 정도로 치열하게 정진하는 음악가이기도 하다. 비르투오소를 조명하는 기획답게 박규희의 화려한 기교를 가감 없이 즐길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더불어 이번 무대를 위해 국악계에서 다양한 음악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작곡가 이고운이 편곡을 맡았다.

  • 가야금 명인 지순자
  • 하피스트 황세희

가야금 명인 지순자가 협연자로 참여하는 무대도 눈에 띈다. 국악에서 음악가의 예술적 기량이 집약된 음악은 단연 기악 독주곡인 산조일 것이다. 다채로운 장단의 전개 속에서 음악가의 음악적 역량이 즉흥적으로 발휘되는 산조는 섬세한 농현과 다채로운 조의 변화, 폭발적인 감정 표현이 특징이다. 무대에 오르는 지순자는 국악계의 두 거장인 가야금 명인 성금연과 피리·해금 명인 지영희의 제자이자 딸로, 이들의 음악 세계를 고스란히 이어받은 가야금 명인이다. 성금연류 가야금산조 협주곡 ‘삶’은 성금연 명인의 음악 철학을 토대로 이정호 작곡가가 국악관현악 편성을 시도한 작품이다. 성금연류 가야금산조는 오늘날 보편적으로 연주되는 대표적인 가야금산조 중 하나로 화사한 가락과 짜임새가 돋보이는 음악이다. 비르투오소의 정수를 담아내기에 적합한 성금연류 가야금산조를 국악관현악의 관점에서 어떻게 풀어낼지 살펴보는 것도 즐거운 감상을 위한 팁이다.
눈 내리는 이른 봄 풍경을 섬세하게 표현한 ‘춘설’ 주제에 의한 하프 협주곡은 손다혜가 편곡을 맡고 하피스트 황세희가 협연해 기대를 모은다. 원곡은 가야금 명인이자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을 지낸 황병기가 1991년 작곡한 ‘춘설’이다. 이 곡은 본래 가야금 독주곡이었으나 이후 작곡가 김희조가 국악관현악 편성으로 편곡해 발표한 바 있다. 두 곡 모두 지금까지 많은 연주자가 연주해 오고 있다. 협연자로 참여하는 하피스트 황세희는 2014년 라이언 앤드 힐리 어워드(LYON & HEALY Award) 수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으며 하피데이 앙상블, 듀오 피다 등으로 활동하며 독자적인 음악 세계를 구축했다. <운현궁 로맨스> 등을 통해 국악계에 이름을 각인시킨 손다혜의 하프 카덴차(Cadenza)에 황세희의 독자적인 해석이 더해져 하프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거문고 명인 정대석

마지막 무대는 정대석의 거문고 협주곡 ‘고구려의 여운’으로 꾸린다. 정대석은 거문고의 특성을 효과적으로 반영한 다수의 창작음악을 발표하며 다양한 레퍼토리를 확충한 거문고 명인이다. ‘고구려의 여운’은 고구려의 꼿꼿한 기상과 용맹함을 담아낸 작품으로, 독특한 화성적 경험을 의도하고 현대적인 기법과 다양한 장단의 변용을 시도해 거문고의 확장 가능성을 실험한 곡이기도 하다. 정대석은 이번 공연을 위해 생황과 타악기 등 악기 구성과 악장별 빠르기를 바꾸는 등 작품을 전면적으로 수정해 완성도를 기했다. 또한 국립국악관현악단원 오경자를 비롯해 정누리·주윤정·유연정·이선화와 같은 걸출한 거문고 연주자와 함께 무대에 올라 거문고 연주자들의 비르투오소적 면모를 극대화할 예정이다. 깊어가는 가을, 새로운 힘의 원천을 찾아 떠나는 국립국악관현악단과 비르투오소 네 명의 여정을 <역동과 동력>에서 함께 확인해 보자.

글. 성혜인 비평가. 전통예술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답을 찾는다. 음악비평동인 ‘헤테로포니’ 필진, 비평지 『오늘의 작곡가 오늘의 작품』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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