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보기하나

국립극장 음악극 <합★체>
모두가 함께하는 성장
비장애중심주의를 벗어난다는 것은 생각처럼 쉽지 않다. 우리 사회가, 우리 문화가, 우리 생각과 습관이, 이미 뿌리 깊은 곳에서부터 비장애중심적이기 때문이다. 중심이 되었다는 것은 그것 외의 것이 보이지 않는다는 의미다. 다시 말하면, 장애를 만드는 차별과 배제가 ‘자연스럽고 당연하고 중립적’인 것으로 여겨진다는 뜻이다. 무대예술과 극장 문화도 예외는 아니다. 무대는 몸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념적 이상을 배우를 통해 투영하고 강화했으며, 비장애중심주의적 관극 문화를 표준으로 확립해 왔다. 그렇기 때문에 최근 국립극장이 이러한 우리의 극장 문화를 반성하면서 일련의 기획 작품 공연을 시도하는 것이 무척 반갑다.
극 중 수련을 위해 떠나는 합과 체(앞 줄), 그리고 각 배역의 그림자 수어 통역(윗줄)

모두에게 접근 가능한 공연을 꿈꾼다

<합★체>는 비장애인을 위한 공연물에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어 통역과 자막, 시각장애인을 위한 음성해설을 추가하던 기존의 수동적인 배리어프리 공연에서 한발 더 나아가고자 한다. 장애 유무와 관계없이, 즉 접근성에 대한 위계나 차이 없이, 모든 관객이 하나의 공연을 다 함께 즐길 수 있기를 꿈꾸며 기획되었다. 국립극장의 ‘모두에게 접근 가능한 공연’에 대한 기대는 크고 폭신한 프로그램북을 받아 들면서 시작된다. 하나의 프로그램북에 문자와 점자 정보를 함께 담아냈을 뿐만 아니라, 처음부터 큰 글씨 책으로 인쇄해 저시력자 관객도 편안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극 전체를 조망하기도 하며 라디오 DJ 역할을 맡고 있는 디제이 지니. 무대 가장 위, 왼쪽에 자리하고 있다.(왼쪽)
수업 시간에 농구 시합을 벌이고 있는 아이들 그 중심에 합과 체가 있다.(오른쪽)

원작과 달리 각색을 통해 극에 새로 등장한 인물 ‘디제이 지니’는 소설과 극의 완충지라 할 ‘서술자’ 역인 동시에 시각장애인을 위한 ‘음성해설’ 역이기도 하다. 무대 상단부에 고정된 디제이석을 두어 공간적으로 가시성을 확보하는 동시에, 이 역할이 서사적 거리를 지닌 채 극 전체를 조망하는 역할임을 시각적으로도 의미화했다. 이 작품의 가장 큰 도전이자 실험은 작품의 모든 인물을 뮤지컬 배우와 그의 그림자 수어 통역 배우가 짝을 이루어 진행한 점일 것이다. 이때 수어 배우는 단순한 ‘통역’의 역할에 머무르지 않는다. 때로는 자신과 짝을 이룬 배우의 정서를 강조하고 때로는 그를 돕거나 역으로 논평하기도 한다. 따라서 수어 통역이 필요하지 않은 관객에게도 하나의 역할을 나누어 가진 두 배우 간의 정서적 관계와 소통이 또 다른 연극적 재미를 준다.
작품에서 가장 인상적이고 가장 성공적인 장면은 두 번의 농구 장면이다. 첫 번째 농구 장면은 합과 체의 작은 키에 대한 고민과 갈등을 보여주는 장면이며, 두 번째 농구 장면은 그들의 정신적 성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수어 통역이 앙상블의 위치로 물러나도록 하여 격렬하게 농구 경기를 해야 하는 배우의 동선과 장면의 역동성을 확보하면서도, 배우들 간 관계성을 잃지 않도록 시각적으로 고민한 점이 인상적이다.

극 중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는 합과 체의 모습, 아버지 뒤로 그의 일터가 자리하고 있다.
극 중 백설공주를 읽어주는 엄마와 이를 흥미롭게 듣고 있는 합과 체

판타지와 현실의 균형에 대하여

공연의 원작이 된 소설 『합★체』는 사계절 출판사가 발굴한 작가 박지리의 데뷔작으로, 모험을 중심에 둔 전형적인 ‘청소년 성장 서사’다. 작가는 자신의 소설 주인공들에 대해 “현실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판타지로도 도망가지 않는 아이들”이라 말한다. 작가의 이 말처럼 작품을 잘 설명하는 말도, 또 작품의 미덕과 힘을 잘 요약하는 말도 없을 것 같다. 힘든 현실 속에서 판타지가 우리에게 주는 위안과 위로를 잘 알지만, 그렇다고 그 뒤에 숨지 않으며, 오히려 이를 다시 현실과 맞설 힘으로 사용할 줄 아는 당찬 아이들. 작가는 합과 체의 또래일 청소년 독자에게 삶 속에서 그 균형을 찾아가는 것이 갖는 의미를 알려준다.
소설을, 그것도 장편소설을 극으로 각색하는 것은 생각보다 덫이 많다. 문자예술의 아름다움과 쾌감을 전달하려는 강박이 종종 극적인 것을 위축시키기 때문이다. 음악극 <합★체>는 이 점에서 각색과 무대 구현이 빼어나다. 굳이 문학과 경쟁하지 않으면서도 원작의 의도를 극의 문법으로 유연하게 구현한다. 에필로그를 제외하고 총 26장으로 이루어진 이 소설은, 꽤 많은 장을 조세희의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에서 가져온 문장, “아버지는 난쟁이였다.”로 시작한다. 조세희에게 ‘난쟁이’는 힘없는 노동자,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은유의 성격이 강하다. 그러나 박지리의 ‘난쟁이’는 은유가 아닌 실재고 실존이다. 장애가 이른바 ‘정상 사회’의 대척점에 놓여서는 안 된다는, ‘정상 사회의 은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시선이 그 안에 녹아 있다. 극은 문학과 은유로 존재하던 ‘난쟁이 아버지’를 현실의 인물, 합과 체의 아버지, 평범한 생활인인 아버지로 구현한다. 그의 일터인 연희 공간을 확보하고, 성실하게 일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가시화한다. 또 어머니에게는 백설공주를 연상시키는 배색의 의상을 입혀, 원작에서 아들들에게 읽어주고 논평했던 동화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의 새로운 의미를 현실 속에서 재해석한다. 음악극의 흥겨움은 이 극이 갖는 판타지를 강조한다. 그러나 인물들이 살아 있는 우리 이웃이며 친구라는 사실 또한 강조한다.

극 중 마지막 장면에서 함께 ‘합체’를 노래하는 모습

배리어프리, 무장애 공연이라는 명칭

공연을 즐기던 중 객석을 둘러본다. 청소년 관객들과 그들을 인솔해 온 교사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드문드문 장애를 지닌 관객도 보인다. 사실 극장이 접근성을 아무리 열심히 고민해도 장애가 있는 관객들이 자유롭게 공연을 보러 올 수 있는 사회적 여건, 예컨대 활동지원사나 이동권 보장 등이 우리 사회에 제대로 마련되지 않는다면, 결국 이 모든 노력이 무의미해진다는 예술가들의 토로를 들은 적이 있다. 극장의 노력과 함께 정책적·사회적 노력이 필수로 요구되는 이유다.
배리어프리를 고려해 제작된 공연을 보는 것 못지않게 객석에 다양한 몸의 조건을 지닌 관객이 모여 다양한 방식으로 관극하는 것을 경험하는 일은 중요하다. 어느 공연에선가 다수의 관객이 관극을 위해 자신의 휴대폰과 이어폰을 이용하거나 막간과 무대 인사에 ‘반짝이는 박수’를 보냈던 것을 보면서, 우리의 극장 관습이 얼마나 비장애중심적이었는지를 새삼 깨달았던 경험이 있다. 비장애중심주의를 벗어난 객석 문화를 더 많은 관객이 경험하기를 바라본다.
‘배리어프리’ ‘무장애’라는 용어도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최근 장애학과 장애예술계는 이 용어가 오히려 진짜 현실을 가리는 면죄부가 되고 있다며 비판하기도 한다. 즉 실제로는 ‘베리어’가 여전히 ‘프리’하지 않으며, 접근성을 방해하는 다양한 극장의 관습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상이 이미 실현된 듯한 환상을 이들 용어가 만들고 있다는 비판이다. 국공립 극장에서 먼저 이 같은 비판을 고민하고 용어에 대한 섬세한 접근을 시도해 보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글. 이진아 연극평론가. 숙명여자대학교 한국어문학부 교수. 연극 비평이 필요 없는 시대의 비평에 대해 고민하면서 연극에 대한 글을 쓰고 연구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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