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짓언어

몸짓언어의 탄생, 훈련장 장현수와의 대화
오늘에 가닿은 몸짓의 여정
국립무용단 무용수들은 매일 아침을 ‘국립기본’으로 시작한다. 발레에 바가노바 혹은 체케티 메소드가 있다면, 한국춤에는 ‘기본’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신무용을 주창한 송범 선생이 다듬은 국립기본은 전통춤의 아성을 간직하는 동시에, 판이 아니라 극장 무대에 서야 하는 무용수들에게 꼭 맞는 ‘기본’으로 자리 잡았다.
굿거리장단으로 시작되는 기본은 무용수에게 규율이자 그 위에 새로운 것들을 쌓기 위한 기반이 돼왔다.
그리하여 한국춤의 몸짓에 깃든 이야기를 되새겨 보고자 국립기본에서 그 흔적을 찾았다.
팔다리부터 손과 발, 허리, 어깨,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호흡에 이르기까지 차근차근 짚어본다.
국립무용단 훈련장 장현수 ⓒ황필주

저마다 몸짓언어의 색깔 찾기

춤은 배우고 따라 하는 것이 아니다. 특정 작품 속 춤이 아니라, 작품이 어떤 것이든 불구하는 나의 춤에 관해 이야기하는 까닭이다. 나의 몸짓으로 하여금 완성되는 춤언어를 알기 위해서는 춤을 어떻게 배우느냐에 대해 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몸짓언어를 만들고, 만들어나가는 일. ‘몸짓언어’ 시리즈의 막바지, 국립무용단 훈련장 장현수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제가 어릴 적에는 춤을 다소 기계적으로 배웠던 것 같아요. 정해진 규칙과 패턴을 답습하지 않으면 잘한다는 소리를 듣기 힘든 환경이었죠. 중고등학교 땐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보여주는 순서를 외우는 데 집중하거나 외형으로 아름답게 보이는 선을 살리는 데 많이 노력했어요. 동작을 할 때면 호흡을 생각하기보다는 어떻게 해야 내 춤이 예쁘게 보이는지를 먼저 포착하던 시기였죠. 물론 요즘 학생들은 조금 다른 것 같아요. 보이는 아름다움을 당연히 추구하지만, 자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발견하고 개발하며, 동작 자체를 넘어서 호흡에도 집중하고, 또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언어를 몸의 언어로 발현하는 방법을 배우죠.”

국립무용단 <홀춤 II>(2021) 무대에서 선보인 윤성철의 <산산수수>는 한량무를 토대로 새롭게 창작한 춤이다.

세월이 지나고 많은 것이 변화하면서 춤을 익히고 몸짓언어를 만들어가는 무용수들이 처한 환경 또한 좀 더 좋은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그러나 무대에 오르는 예술가의 특성상 겉으로 보이는 몸의 선과 체격은 쉽사리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저는 기본적으로 신체 조건에 대해선 좀 부정적으로 바라봐요. 뛰어난 체격이라면 당연히 좋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서 나쁠 것도 없지요. 체격, 신체 조건이라는 건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장점을 부분적으로 부각하거나, 단점을 숨길 수도 있어요. 그게 춤의 언어고, 그 자체로 춤의 성격인 거죠. 다시 말해 춤이 가진 고유의 색깔을 다채롭게 보여주기 위해서는 체격에 국한해 추는 춤을 지양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에요. 어떤 동작에서 규격화된 아름다운 선을 보여주기도 해야 하지만, 그 이면에는 흥·멋 등 다양한 감정과 이미지를 담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나의 몸짓언어’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그는 호흡과 동작이라는 기본적인 토대가 먼저 마련될 때, 비로소 나의 춤을 완성해 나가는 여정이 시작된다고 설명한다. 전통춤의 전승을 고수하며 그러한 연습을 지속하는 무용수는 그 춤에서 비롯하는 깊은 호흡을 갖게 될 것이고, 창작춤을 계승하며 새로운 양식으로 나아가는 무용수는 전통과 기본을 바탕으로 삼아 이를 확장하고 극대화하는 발전을 이룰 것이다. 하지만 두 경우가 완전히 다른 것이 아니다. 가는 길은 다르겠지만서도 결국은 다시 만나게 된다. 기본에서 출발해 확장하고 뻗어나가는 일. 그래서 전통과 창작은 완전히 다른 길이 아니라 시대 흐름에 따라 어느 쪽에 좀 더 조명이 비치느냐의 차이일지 모른다. 중요한 것은 작품의 색깔이 아니라 무용수의 몸짓으로 전달되는 언어이므로.

이재화 단원이 젊은 창작 프로젝트 ‘넥스트 스텝’에서 선보인 <가무악칠채>는 재공연을 거듭하며 완성도를 높였고, 현재 국립무용단 레퍼토리로 자리매김했다.
프랑스 안무가 조세 몽탈보와 제작한 <시간의 나이>(2016)는 이방인의 시선으로 한국 문화를 새롭게 해석했다. 장현수 훈련장이 라벨의 ‘볼레로’에 맞춰 춤추는 모습이다.

시대와 소통하는 한국춤이란

우리나라 바깥의 시선으로 볼 때 한국춤, 한국무용의 장르 성격은 컨템퍼러리 댄스일까, 민족무용일까. 2022년 현재,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 그 경계를 아슬아슬 오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핏줄과 국가를 떠나서도 한국춤은 동시대에 유효할까? 살아남기 위해서는 여타 외국 무용과 마찬가지로 메소드 정립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이에 대해 장현수 훈련장은 조금 색다른 해법을 제시한다.
“이전에 우리는 우리의 춤을 보여주는 데만 집중했어요. 한국춤은 이렇게나 화려해, 하고요. 재고의 여지가 없는 ‘K팝의 시대’예요. 춤만 아니라 여러 한국 문화에 대해 외국인이 더 잘 알고, 더 잘할 수 있는 상황도 있다고 봐요. 그렇다고 한다면 우리 춤을 위해서 어떤 레퍼토리가 필요할까요? 저는 한국적 색깔이 진한, ‘찐(진짜)’ 전통춤을 새롭게 해석한 레퍼토리라든지, 한국 문화에서 유래하면서도 동시대 사람들이 친근하게 느끼는 소재를 다루는 춤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해요. 단순하게 무형문화재라는 이름으로 전통을 보존하는 것 말고, 어떤 것이 정말로 우리가 계승해야 할 전통인지, 현시대의 예술가들이 함께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요?”
몇 년 뒤면 국립무용단에 재직한 지 30년이 된다는 장현수 훈련장. 근래 준비하고 있는 <2022 무용극 호동>을 계기로도, 송범 선생님으로부터 시작된 국립무용단이 어떠한 창작을 해나가야 하는지 생각이 깊다고 했다. 다른 장르가 아닌 한국춤이기에 가능한, 극적인 요소를 갖춰 현시대의 콘텐츠로서 완성도를 지닌 작품. 우리의 역사, 한국적 소재와 내용을 다루는 컨템퍼러리 작업. 안무 능력을 갖춘 후배들이 발돋움할 수 있도록 끌어줄 수 있는 시도들. 그는 우리의 창작 작업보다도 관객은 더 빨리 앞서나가고 있다며, 무엇보다 모든 작품은 동시대적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몸짓언어’ 시리즈를 하면서 내가 추는 춤, 국립무용단이 하는 창작에 관해 정말 많은 생각을 한 것 같아요. 매일 아무렇지 않게 신체 일부처럼 아침마다 국립기본을 하지만, 그것을 독자에게 소개한다는 것이 설레면서도 굉장히 조심스럽고 어려운 작업이잖아요. 무용수로서 춤을 추며 미처 언어로 표현하지 못한 부분을 담아보는 계기가 된 것 같고요. ‘몸짓언어’가 관객에게, 나아가 보통의 사람들에게 춤의 언어를 전하는 통로가 됐기를 바랍니다.”

자문. 국립무용단 훈련장 장현수
무용. 국립무용단 송설·송지영
사진. 전강인
글. 김태희 춤으로 시작해 전통예술·연극·시각예술까지 범위를 넓혀가며 예술을 글과 책으로 엮어내고 있다.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발레를 전공하고 동 대학원에서 무용이론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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