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

국립무용단 <홀춤Ⅲ: 홀춤과 겹춤>
교감으로 확장되는 전통춤의 세계
국립무용단은 지난 2년간 전통을 오늘의 무대에 재해석하는 작업을 진행해 왔다. 기존 전통춤을 토대로 새로운 콘셉트와 춤꾼들의 사연을 담은 작품이 독무(獨舞) 형식으로 관객과 만났다. 홀로서기의 체험으로 미개척된 전통춤의 영역을 확인한 춤꾼들은 이제 또 한 번 새로운 실험에 나선다. 독백의 무대에서 두 사람이 함께 쓰는 이야기로 확장된 무대는 더 흥미로운 전통춤의 발견을 예감케 한다.
2021년 <홀춤II> 중 <다시살춤>

홀로서기에서 함께 서기로 진일보

<홀춤> 프로젝트가 세 번째 시즌으로 돌아온다. 여기서 ‘세 번째’라는 횟수보다 ‘돌아온다’라는 표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번 공연은 때가 되면 돌아오는 관성적인 컴백이 아니기 때문이다. <홀춤Ⅲ: 홀춤과 겹춤>은 지난 두 번의 무대로 이끌어낸 무용계의 호평을 양분으로 삼고, 동시에 새롭게 직면한 과제를 극복하려 한 노력의 결과물이다. 그 치열한 내적 고민과 결정, 실행의 여정이 ‘홀춤과 겹춤’이라는 이항대립의 부제에 담겨 있다.
사실 지난 시즌에 대한 호평은 <홀춤>이 전통춤의 새 지평을 보여줬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전통춤의 토대가 급변하는 상황에서, 전통에 동시대 감수성과 미적 감각을 반영하려는 의지에 보내는 공감과 응원에 가까웠다. 그런 성원에 부응하듯 두 차례의 공연은 흥미로운 창작 아이디어로 새로운 전통춤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아울러 기존 안무가 대신 춤꾼이 직접 안무 역량을 발휘해 색다른 감상의 즐거움을 선사하기도 했다.
하지만 순조로운 출발에 대한 박수가 잦아들면 그다음에는 성과에 대한 냉정한 평가가 기다리기 마련이다. 그 평가의 대상은 새로운 전통춤 찾기의 대의와 ‘홀춤’이라는 브랜드의 운영 방식 모두가 된다. 애초에 ‘홀춤’이 이 프로젝트의 주요한 콘셉트가 된 것은 춤꾼의 자기 성찰과 창의적인 해석이 ‘새로운 전통 쓰기’를 위한 해법이라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취지와 별개로, 언젠가 독무의 참신함이 소진된다면 다양하게 확장할 수 있는 전통춤의 가능성도 제한될 수 있는 것이다. 지금의 장점이 독이 되는 딜레마다. 이러한 ‘홀춤’ 브랜드의 정체성과 방향성에 관한 문제는 사실 무용단에서도 프로젝트 개발 단계부터 갖고 있던 고민이었다.
이 딜레마는 의외로 간단히 해소됐다. 이번 시즌의 키워드인 ‘겹춤’이 그 증거다. 더 정확히는 ‘홀춤과 겹춤’이다. 이는 ‘새로운 전통춤의 발견’이라는 원래의 대목표를 환기한 결과다. 전통의 영역 확장을 도모하는 과정에서 굳이 형식에 얽매일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지난해에는 공모에서 독무만 선정돼 기존의 콘셉트가 이어졌지만, 올해는 전체적으로 이인무가 공연작의 다수를 차지하면서 이처럼 차별화된 모습을 선보이게 됐다.
홀춤은 춤꾼의 손끝과 발놀림, 시선 하나하나가 관객을 주목시키지만, 겹춤은 춤꾼 사이의 균형과 조화, 또는 교감에서 감상의 묘미를 느낄 수 있다. 그래서 두 형식을 번갈아 보는 동안 시야는 확장되고, 춤이 건네는 이야기는 좀 더 풍성하게 다가온다. 이처럼 형식의 대비가 빚어내는 변화에서 전통춤의 또 다른 재미를 느끼게 된다.

2021년 <홀춤II> 중 <바라거리>

홀춤과 겹춤의 격돌로 확장되는 무대

<홀춤Ⅲ: 홀춤과 겹춤>은 앞으로의 프로젝트 방향성을 증명하는 무대답게 지난 시즌과 달라진 면모를 보여준다. 가장 큰 차이는 역시 전면에 나선 겹춤의 존재감이다. 총 여섯 작품이 무대에 오르는 이번 공연에서 홀춤은 <홀춤II>에서 선보인 두 작품뿐이다. 세 편의 신작과 기존 작품 중 한 편까지 겹춤으로 구성한 프로그램에서 전통춤 창작 방식에 분명한 변화를 주겠다는 국립무용단의 의지를 읽을 수 있다.
1년간의 재정비를 거쳐 더 깊어진 무대로 돌아온 두 편의 홀춤은 정소연의 <다시살춤>과 김은이의 <바라거리>다. 살풀이에 소고(小鼓)를 결합한 <다시살춤>은 세상살이의 고달픔을 천과 소고로 표현한 이색적인 무대로 눈길을 끈 바 있다. 특히 개인의 고통을 풀어내는 과정은 홀춤이라는 형식에서 더 잘 표현될 수 있기에 이번 무대도 기대를 모은다. 바라를 타악의 용도가 아닌 울림의 측면에서 고찰한 <바라거리> 역시 인간 내면의 의식을 내밀하게 건드리는 몸짓을 또 한 번 홀로 선보일 예정이다.
한편 <홀춤II>에서 검무를 이상적으로 재해석했던 김회정의 <단심(丹心)>은 이번에 겹춤으로 새롭게 태어난다. 진주검무를 구음검무로 변형한 이 작품은 예인의 마음을 아름다운 사계절의 감각으로 풀어내며 지난 시즌에서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낸 바 있다.
정세영이 합류해 김회정과 선보일 겹춤 <단심>에서는 기존 무대의 미적 감각이 어떻게 바뀔지 기대하게 한다. 이번 공연에서 초연되는 세 편의 신작은 혼성과 남성 겹춤으로 다양하게 구성돼 있다. 정관영이 안무하고 엄은진과 함께 무대에 서는 <너설풀이>는 휘모리장단에서 두 사람이 연주를 주고받는 농악의 짝쇠 기법에서 착안한 혼성 이인무다. 꽹과리채에 오색 천인 너설을 부착해 화려한 색감을 보여주는 한편, 역동적인 몸짓과 흥겨운 가락으로 객석과 교감하는 무대를 꾸밀 예정이다. 반면 박기환과 박지은이 함께 안무하고 출연하는 <월하정인>은 다른 정서로 관객을 공략한다. 초승달 아래 남녀의 밀회를 다룬, 조선 후기 풍속화가 신윤복의 동명 그림에서 모티프를 얻은 작품은 그 애틋한 분위기를 환상적인 사랑의 이인무로 그려내 눈길을 끈다.
황태인 안무의 <산수놀음(山水音)>은 원래 독무로 추는 한량무를 남성 이인무로 바꾼 작품이다. 나무가 우거진 남산의 자연에서 영감을 받은 이 무대는 이도윤과 함께 자연 속을 노니는 두 선비의 모습을 표현한다. 대개는 깊은 호흡과 유려한 몸짓으로 채우던 홀춤의 무대가 겹춤으로 재해석될 때 어떤 참신함이 도출될지 호기심을 자극하는 작품이다.

<홀춤Ⅲ: 홀춤과 겹춤> 중 (왼쪽부터)<너설풀이> <산수놀음> <단심> <바라거리> <월하정인> 의상 스케치

‘홀’과 ‘겹’의 이중주가 가리키는 것

이번 공연에서 홀춤과 겹춤을 나란히 배치한 구성은 단순히 포맷의 다양성을 꾀한 것은 아니다. 여섯 편의 작품이 진행되는 동안, 관객은 지난 시즌의 독무가 업그레이드되고, 이인무로 확장되며, 처음부터 이인무로 해석됐을 때 도출되는 미의식의 차이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전통춤 창작의 발전 단계를 홀춤과 겹춤이라는 구조 안에 압축한 것이다. ‘홀춤과 겹춤’은 독립된 두 형식의 나열처럼 읽히지만, 사실은 긴밀하게 연결된 창작의 서사를 은유하는 표현이기도 하다. 이런 과정에서 ‘홀춤’이라는 브랜드는 세 번째 시즌에 이르러 단순한 ‘독무’의 협의(狹義)를 넘어 모든 전통춤 창작을 위한 기본이자 근본이라는 광의(廣義)로 확장된다.
이 모든 변화는 결국 겹춤의 등장으로 이루어진다. 정서부터 확연한 대비를 보여주는 홀춤과 겹춤은 서로의 존재감을 부각하며 전통의 인식을 넓힌다. 홀춤만이 표현할 수 있는 깊이와 겹춤이기에 가능한 스토리텔링에서 그런 각자의 존재감을 더 느낄 수 있다. 특히 <월하정인> 같은 작품은 기존 전통춤이 아닌 창작 안무와 서사로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전통춤의 세계를 보여준다. 이런 점에서 <홀춤Ⅲ: 홀춤과 겹춤>은 전체 시즌의 중요한 변곡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홀춤’ 프로젝트의 궁극적 목표는 전통이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현재까지 닿아 있는 시간의 산물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제까지는 몸을 매개로 자신의 내면에 말을 거는 독백의 춤이 이를 증명했다면, 앞으로는 두 사람 사이에서 파생되는 무형의 이야기가 그 역할을 나눠 맡게 된다. 이런 홀춤과 겹춤의 인상적인 이중주를 통해 관객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전통춤의 영토에 즐겁게 접속할 수 있을 것이다.

글. 송준호 공연 저널리스트. 대학원에서 무용미학과 비평을 전공하고 『주간한국』과 『한국일보』 『더뮤지컬』을 거쳤다. 공연예술의 다양한 변화를 주시하며 대학에서 춤 글쓰기를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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