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하나

국립극장 연극 <틴에이지 딕>
문제적 장애인이 온다
셰익스피어가 그리는 ‘불구’는 지금껏 내면의 일그러짐으로 표현돼 왔다. 반면 이 작품은 전적으로 드러나는 배우의 장애를 통해 장애가 더 이상 무엇을 수사하는 것이 아니라 당연하게 존재하는 것으로 인식되게 만든다. 이제, 무대 위에서 잠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연극이 끝나도 사라지지 않을 존재와 마주할 시간이다.
<틴에이지 딕>에 출연하는 배우 여섯이 풀밭 위에 서서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다. 왼쪽부터 앤 마가렛 역의 김가린, 클라리사 듀크 역의 강해리,
바바라 벅 역의 조우리, 리처드 글로스터 역의 하지성, 에디 아이비 역의 김연수, 엘리자베스 요크 역의 김소정이다.

연극이 끝나도 사라지지 않는 것

간교한. 흉물스러운. 기형적이고 뒤틀린 몸과 마음으로 잔악한 범죄와 속임수를 서슴지 않았던 끔찍한 압제자. 잉글랜드 요크 가문의 마지막 왕인 리처드 3세를 수식하기 위해 곧잘 동원되는 표현이다. 사실 그의 악행은 역사책을 집어 든 독자 사이에서보다, 연극이 끝나고 극장을 나서는 관객 사이에서 더 많이, 그리고 더 오래 회자돼 왔다. 셰익스피어의 역사비극 <리처드 3세>는 실제 청소년기에 특발성 척추측만증을 경험한 것으로 알려진 리처드 3세를 ‘사지의 균형이 일그러진 미완의 육신’으로 호명하면서, 연극사상 최악의 흉한(兇漢)으로 기억되는 구부러진 등과 저는 다리가 곧 교활함의 씨앗이자 열등감의 근원이었으리라고 단언하는 일을 해왔다. 그로 인해 서구의 재현 전통을 따르는 극장에서는 신체장애를 가진 악역 빌런(villain)을 그릴 때, 장애라는 현상 자체가 배역의 성격적 흠결을 근본적으로 설명해 줄 수 있다고 믿어왔다.
그럼에도 지금껏 ‘리처드 3세’를, 그리고 그가 가진 장애를 연기해 온 배우들이 대개 비장애인이었다는 점은 주목해볼 만한 사실이다. 데이비드 개릭, 로런스 올리비에, 베네딕트 컴버배치, 황정민에 이르기까지 이름만 들어도 놀라울 만큼 쟁쟁한 배우가 ‘자연으로부터 사기를 당한 몸’이 되기 위해 부단히 애쓰면서 다리를 절고, 등 뒤로 척추가 솟아올라 보이도록 기꺼이 분장을 받았다. 그러자 리처드 3세의 장애는 빼어난 연기력을 가진 배우라면 충분히 복제해 낼 수 있는 것, 장애 당사자만이 주장할 수 있을지 모를 경험의 진위를 뛰어넘어 배우의 재능과 역량을 통해 무대 위에 마음껏 현시할 수 있는 것이 되었다. 그리고 ‘위대한’ 배우들은 막이 내리면 열화와 같은 환호 속에서 굽은 등을 도로 펼쳤다. 등에 부착했던 모형은 떼어냈다. 연극이 끝나면 그 몸과 영영 작별했다. 작별‘할 수’ 있었기 때문에.
무대 위에서만 있었다가 곧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처지에 놓여야 할 때, 장애는 언제나 비유로서만 기능하고 만다. 실제로 셰익스피어가 그리는 ‘불구’의 왕은 지금과 같은 의미의 ‘장애인’으로 인식되지는 않았고, 욕심에 사로잡혀 아귀다툼을 하느라 한 시대를 파멸에 이르게 했던 왕으로서 그의 ‘불구성’만이 오래도록 기억돼 왔다. 반면 리처드 3세 역에 장애 당사자 배우를 캐스팅하는 근래의 프로덕션들은 배우에게서 “전적으로 드러나는” 장애, 그의 “숨길 수 없는” 장애를 볼 때, “배우가 입을 떼기도 전부터 곧장” 발견되는 “진실”의 실체를 신뢰하고 또 환영한다1). 이는 더는 장애가 수사의 도구로 쓰이는 데 그치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려는 시도, 편의를 위해 지우거나 감춰버릴 수 없는 장애인의 당연한 ‘있음’을 말하기 위한 실천이기도 하다.

1) Harriet Sherwood, “‘There’s a truth to it’: RSC casts disabled actor as Richard III,” The Guardian, 8 Feb 2022. (https://www.theguardian.com/stage/2022/feb/08/theres-a-truth-to-it-rsc-casts-disabled-actor-as-richard-iii)
(위) 전동 휠체어를 탄 하지성, 조우리 배우가 검은 옷을 입고 나란히 서서 카메라를 보며 활짝 웃고 있다.
(아래) 어두운 갈색의 긴 테이블 앞에 김가린, 하지성 배우가 검은 옷을 입고 나란히 있다. 두 사람은 얼굴을 맞대듯 가까이 붙어서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다.

고전을 건너, 고전에, 고전으로 말 걸기

2022년 11월 달오름극장에서 국내에 첫선을 보일 <틴에이지 딕>은 분명한 장애인이었던 리처드 3세의 장애를 분명한 실재로 이해해 보려는 새롭고도 반가운 목소리 중 하나다. 잉글랜드 권세가들이 벌인 15세기 중엽의 장미전쟁을 동시대 미국의 ‘로즈랜드’ 고등학교로 옮겨온 이 작품은, 뇌성마비를 가진 자신에 대한 사람들의 동정 어린 시선을 이용해서라도 학생회장이 되기 위해 모략과 술수로 분투하는 고등학생 ‘리처드 글로스터’를 주인공으로 세운다.
작가인 마이크 루(Mike Lew)는 희곡의 서두에서 “리처드와 벅 역에는 장애인 배우를 캐스팅해야 한다. 장애인들은 존재하며, 함께 살아가고 있다.”고 밝혀두었다. “전통적이지 않은 캐스팅”을 향한 그의 각별한 요청은 고등학교에, 특히나 학생회장 자리에, 또 댄스파티에, 혹은 연극 무대 위에, 어쩌면 극장 안에 ‘있을’ 거라고 예상되지 않았던 이들의 현존을 조명해 “불평등한 재현의 균형”을 맞추기 위함이다2). 국립극장 기획공연 <틴에이지 딕>의 한국 초연에도 지체장애인 배우 두 명이 함께한다. 달오름극장 무대에 휠체어를 이용하는 창작자가 서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나 극단 애인에서 10년 넘게 연기를 이어오며 능란하게 변신을 거듭해 온 배우 하지성이 그려내려는 리처드 3세의 새로운 초상을 기대해도 좋다. 선량하고 무구한 듯 보이면서도 선뜻 속을 보여주길 허락하지 않는 하지성의 얼굴은 학교에서(혹은 무대 위에서) 양껏 활보하는 장애인을 보는 일에 익숙지 않은 관객에게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건넨다. 리처드가 경험해 온 장애는 정말로 그의 악한 행동을 설명해 줄 수 있을까. 우리는 여전히 장애인이 오로지 악하다고 믿고 있을까. 어쩌면 반대로 성인일 수도 있음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을까. 무엇으로 인해 장애는 장애가 될까. ‘일그러진 미완의 육신’이 장애의 전부일까. 하지성의 리처드는 장애를 통해, 그리고 ‘낙인’과 ‘자부심’이라는 상반된 듯 서로 깊이 맞닿은 두 세계의 기이한 동행을 몸소 겪어온 당사자의 목소리를 통해 고전 <리처드 3세>가 걸어온 길에 도전한다.
그럼에도 <틴에이지 딕>은 셰익스피어로 되돌아가, 그의 희곡에 담긴 지극한 연극성을 유쾌하게 되살려 낸다. 치열한 입시 전쟁과 소셜 미디어 속 지저분한 가십 싸움의 전장(戰場)인 로즈랜드 고등학교에는 살벌한 욕설과 비방이 매일처럼 오가지만, 리처드는 셰익스피어의 오래된 사극 말씨를 쓰길 주저하지 않는다. 리처드의 연극적 말하기는 그를 좀 이상하고 우스운 괴짜(nerd)로 만든다. 우스꽝스럽게 나타났다 사라지는 원작의 그림자는 이 작품이 이제 본질적으로 코미디가 될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동시에 리처드가 숨겨왔던 속내를 들려주거나 제4의 벽을 넘어 독백과 방백이라는 형태로 객석에 직접 말을 붙이는 장면들은 고전 속 화술을 빌려 와 장애인의 목소리를 관객 앞에 전면으로 드러내는, 매력적이고도 영리한 장애 가시화의 전략이 된다.
그뿐만 아니라 셰익스피어가 17세기 원작에 그려둔 캐릭터의 모습과 조건이 오늘날의 하이스쿨 멜로드라마라는 장르 속에서 어떻게 각색되었는지 살펴보는 것 역시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다. 오래도록 학생회장 자리를 유지해 온 럭비부 쿼터백 ‘에디’, 호시탐탐 학생회장 자리를 노리는 신실한 기독교도 ‘클라리사’, 리처드의 절친한 벗이자 동지인 ‘벅’, 하루빨리 로즈랜드를 떠나 무용수로서 새로운 삶을 펼쳐나가고 싶은 ‘앤’, 리처드가 학생회장이 되길 응원하는 영어 선생님 ‘엘리자베스’에 이르기까지 새로 태어난 인물들이 빚어낼 하이틴 앙상블은 아직까지 장애 연극의 매력과 재치를 만나본 적 없는 관객의 세계를 두드릴 근사한 노크가 돼줄 것이다.

2) Rachel Finkelstein, “Interview with a playwright: Mike Lew,” Playwrights Foundation, 3 Feb 2015. (https://playwrightsfoundation.org/2015/02/03/interview-with-a-playwright-mike-lew/)
연두색 블라우스를 입을 앤 역의 김가린 배우가 흰 셔츠를 입은 리처드 역의 하지성 배우와 마주보며 웃고 있다.
휠체어를 탄 리처드의 다리 위에 앤이 다정하게 앉아 있는 모습이다.

당신이 찬성하지 않더라도

이따금 서울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관객이라면, 기획재정부의 이동권 침해를 규탄하기 위해 지하철에 오르는 장애인 활동가들을 기억할 것이다. 그들은 문제를 만든다. 문제를 만들 때에야 세상이 듣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오해받기를3), ‘나쁜’ 장애인이 되기를 기꺼이 감행한다. 어쩌면 연극도 묻고 있다. 당신은 ‘어떤’ 장애인을 용인할 수 있는지. ‘어디까지’ 환영할 수 있는지. ‘어디서부터’ 그 지지를 철회하고 싶어지는지. 선하고 바른 이웃으로서의 장애인을 기대하는 세상에 <틴에이지 딕>은 화해를 청하거나 인정을 구하지 않는 장애인, 자신이 오르기 힘든 곳에 선 이를 무참히 끌어내리길 다짐하는 문제적 장애인을 들이민다. 당신은 ‘설득될’ 준비마저 할 수 없을 것이다. 설득의 필요 바깥에 선 ‘악인’의 말을 듣기 위해 때론 당신이 더 애써야 할지도 모른다. 연극이 끝나도, 당신이 극장을 떠나도 사라지지 않을 분명한 ‘있음’과 마주할 것이다.

“당신들은 내가 선택하기도 전에 내가 어떤 사람인지 벌써 판단을 내렸지.
내가 영웅은 아니란 걸 벌써 알고 있었잖아, 내가 다리를 절면서 들어올 때부터.”
-<틴에이지 딕> 중에서

3) 정다민, 「장애인 지하철 시위가 끝나지 않는 이유… ‘불법’ 비판에 참가자들 ‘무관심보다 오해 받겠다’」, 『BBC 코리아』, 2022년 9월 28일. (https://www.bbc.com/korean/news-63057030)
글. 김현지 연극학을 공부하면서 어젯밤 본 연극에 대해, 그리고 극장을 찾는 이들의 마음에 관해 쓴다. 이따금 연극을 만들기도 한다. 연극 <틴에이지 딕>에서 접근성 매니저로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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