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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악관현악단 <이음 음악제>
국악관현악과 무엇이 이어졌을까?
2021년 4월, 첫선을 보인 <이음 음악제>(이하 이음제)는 ‘회복과 상생’을 주제로 했다. 코로나가 한창이던 당시 공연과 축제들이 잠정 연기와 취소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을 때였다. 이러한 시기에 관현악이라는, 군(群) 중심의 음악과 작품을 한데 모음으로써, 힘겨운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과 작품의 ‘모음’이야말로 관현악의 음악적 어법과 미학을 이루는 ‘모음(母音)’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음악가들 간의 연결고리가 끊어진 상태에서 탄생한 축제인 만큼 ‘이음’이라는 축제명이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온다. 위기를 넘어 점차 일상을 회복하며 맞이한 두 번째 이음제의 주제는 ‘비비드’였다. 발랄하고·밝고·눈부시고·생생하게 살아보자는, 즉 ‘비비드’적인 생(生)의 철학을 이음제의 간판으로 내세웠다. 올해는 9월 22일 개막 공연 <Vivid: 음악의 채도>를 비롯해, 젊은 음악가들이 참여한 25일 <2022 오케스트라 이음>, 28일 <부산시립국악관현악단>, 그리고 작곡가 10인의 작품이 오른 30일 <2022 3분 관현악>이 이어졌다.

<Vivid: 음악의 채도>에서 지휘를 맡은 장윤성(왼쪽)과 국립국악관현악단 해금 단원들의 연주 모습(오른쪽)

<Vivid: 음악의 채도> 지휘자의 채도와 작품의 명도가 이어지다

개막 공연 <Vivid: 음악의 채도>는 장윤성의 지휘가 빛났다. 현재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이자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지휘 전공 교수인 그는 서양음악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다. “지금까지 몇몇 국악기가 포함된 작품은 지휘해 보았어도 국악관현악단은 처음 지휘해 본다.”라고 말한 그는 공연 전부터 단원들과 호흡하며 느낀 국악관현악의 매력에 푹 빠져 있었다.
공연 전, 이러한 지휘자를 바라보는 시선은 걱정 반 기대 반이었다. 아무리 뛰어난 (서양음악) 지휘자라고 할지라도 국악관현악의 메커니즘은 그간의 경험으로만 연출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휘자가 단원(악단)에게, 또 단원이 지휘자에게 빠르게 적응했음을 체감할 수 있는 무대였다. 그러면서 같은 작품이라 할지라도 지휘자에 의해 작품이 지닌 태초의 내구성과 분위기가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을 장윤성은 보여주었다.
나는 지휘자의 존재가 부각되는 것은 초연곡보다는 재연곡이라 생각하는데, 이날 ‘바르도’는 전과 다른 옷을 입고 있었다. 황호준의 새야새야 주제에 의한 ‘바르도’는 2016년 초연 이후 꾸준히 재연되고 있다. 2017년 재연 시에도 서양음악 지휘자로 활동 중인 임헌정이 지휘를 맡았는데, 장윤성의 지휘가 곡의 완성도와 특장을 정점에 올려놓았다. 위촉 초연곡인 이정호의 ‘Imagination’도 그러했다. 국악관현악에서 수많은 곡을 쓴 이정호의 작품은 대부분 상기된 분위기로 일관되는 방식이다. 대소(大小)의 대비보다 큰 음량과 음표들의 역동성이 이끌어나가는 대(大)의 지속성이 부각되는 방식이다. 그래서 때로는 단일한 흐름으로 느껴지기도 하는데, 장윤성은 이정호의 작품에 분명한 기승전결의 단락을 넣어 표정을 다양하게 했다. 더 정확하게는, 기승전결보다 치고·달고·맺고 푸는 기경결해의 진행 방식이었다. 정리. 그것이 장윤성의 지휘적 특장이라면 이것이 빛을 발한 또 다른 작품은 이신우의 ‘대지의 시’였다. 이화윤의 비올라 협연이 함께한 곡이었다. 이 곡에 자연의 모습과 치유·정화의 힘을 담았다는 작곡가의 감성적 고백과 달리, 치밀하고 꼼꼼한 분석으로 쌓아 올린 작품이었다. 정악풍의 장중함을 스타일리시하게 입혔고, 고요한 전개 속에서도 지루하지 않은 다이내믹을 만들었다. 그런 그의 작품을 국악관현악 작곡의 역사 속 좌표에 찍어보면 어디쯤 놓일까. 전통음악을 토대로 행한 세련된 연금술로 한국음악의 전통을 지킨 작곡가들의 축이 있다면, 해외 유학을 통해 오히려 ‘이국(異國)에서 우리 것 찾기’ 실험을 거친 후 양악식 현대음악과 국악관현악을 실험 도구로 돌렸던 이들이 또 다른 축이라 할 수 있겠다. 전자(연금술)가 내실을 보살핀다면 후자(야금술)는 외연을 넓힌다. 이신우의 작품은 그 중간에 위치한 것 같았다. 앞으로 그의 작품을 국악관현악 공연에서 자주 만나보길 기대했다.
김성진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은 이번 이음제를 통해 다시금 악기 배치에 변화를 주었다. 지휘자를 중심으로 왼쪽부터 가야금-해금-아쟁-거문고 순이던 예전과 달리, 해금-가야금-거문고-아쟁 순으로 바뀌었다. 작은 변화지만, 해금 단원들의 오른손 활질이 무대에 보이면서 악단의 풍경에 뭔지 모를 역동성이 더해진 듯했다.

<2022 오케스트라 이음> 국악관현악과 젊음이 접속하고 이어지다

개막 공연이 열린 주의 주말. 국립극장 해오름의 로비에는 젊은 관객이 눈에 띌 정도로 많았다. 25일 공연 <2022 오케스트라 이음> 무대에 오르는 친구들을 보러 온 관객임이 틀림없었다.
‘오케스트라 이음’은 이음제에서만 만날 수 있는 프로젝트 악단이다. 단원들은 공모를 거친 청년 음악가들. 1992년생부터 2001년생까지 한데 모였다. 최근 서양음악계에는 젊은 솔리스트들이 임시로 모여 만든 프로젝트 오케스트라가 대유행이다. 뛰어난 개체들이 임시로 모여 교향곡을 통해 새로운 시너지와 에너지를 만들며, 한국 교향악의 역사를 바꾸고 있다. 이와 더불어 이렇게 모임으로써만 가능한 음악(그것이 바로 관현악·교향곡일 텐데)을 선보이며 자신들의 성장과 음악 생태계도 새로 가꿔나가고 있다.
국악관현악이란 예나 지금이나 젊은 음악가들에게는 거대하고 부담되는 음향체다. 따라서 그들은 자연스레 독주나, 마음 맞는 지음(知音)들과 실내악·앙상블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오케스트라 이음’은 젊은 음악가들을 한데 모아, 그들에게 국악관현악의 문법과 어법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하는 일종의 아카데미 오케스트라로 자리 잡았다. 이를 위해 국립국악관현악단은 그들의 유산을 다음 세대, 즉 미래를 위한 세대에게 전하고 공유했다.
지난해에도 그러했고, 올해도 역시 인기가 많았다. 김성진이 직접 지휘봉을 잡은 올해는 김택수의 ‘Moto Perpetuo(무궁동)’, 도널드 워맥의 가야금 협주곡 ‘흩어진 리듬’(협연 이지영), 토마스 오스본의 ‘HARU(하루)’로 악곡의 강도를 높였다. 기성 악단이어도 단회 공연에서 소화하기 힘든 곡들이다. 하지만 한데 모인 젊음의 시너지와 에너지가 불가능을 뛰어넘었다. 아쉬운 점은 임시 프로젝트 관현악단이 지닌 영구적인 문제, 노련미였다. 이를 위해 오래전부터 국립국악관현악단원들이 멘토가 되어 노하우를 전수하고, 부족한 부분을 보충했다.
‘오케스트라 이음’은 외형상 청년 음악가를 위한 공연이지만, 생각해 보면 국립국악관현악단의 내면을 살피는 시간이기도 하다. 국악관현악에도 산조처럼 유파(流派)라는 게 있다. 이러한 유파는 창시자가 다음 세대나 후예에게 물려줄 때, ‘흐르다’라는 뜻을 지닌 ‘류(流)’자의 의미가 더욱 살아나곤 한다. 1995년에 창단된 국립국악관현악단도 그들만의 고유한 색상으로 관현악 레퍼토리 유파를 형성해 왔고, 이를 다음 세대에게 넘겨줄 수 있을 정도로 이를 자산화하고 유산화하고 있다. 이러한 시간을 통해 다음 세대와 공유할 수 있는 음악적 자산이 무엇인지 점검해 보는 시간이었다.

<부산시립국악관현악단> 이음제의 끈이 서울 너머로 이어지다

이음제는 올해 부산시립국악관현악단과 이음의 끈을 맞잡았다. 1984년에 창단된 악단이다. 부산을 제집처럼 드나드는 윤중강 평론가는 부산표 국악에 대해 “참으로 부산스럽다”라고 표현하곤 한다. 서울에 견주어 뭔가 강렬하고, 들쑥날쑥하며, 정리되지 않은 맛과 멋을 함의한 중의적 표현이다. 경상도 사투리를 떠올려보면 훨씬 쉽게 이해되는 표현이다. 이렇듯 국악에는 지역 특색이 담겨 있으며, 국악관현악단들은 자신들이 위치한 지역의 음악 문화로 악단마다 나름의 레퍼토리와 정체성을 구축해 나가고 있다. 과거에는 (1994년에 시작된 국악관현악 축제처럼) 전국구 국악관현악단이 한자리에 모여 이러한 성향을 보여주기도 했다.
부산시립국악관현악단 수석지휘자로 재직했던 김종욱이 28일 원정의 지휘봉을 잡았다. 신주연의 거문고 협주곡 ‘비상’(이대하 협연), 박상우의 판소리 협주곡 ‘자룡, 만경창파를 가르다’(정선희 협연), 김성국의 남도시나위에 의한 3중 협주곡 ‘내일’(대금 한영길, 아쟁 최영훈, 거문고 오상훈)에서 단원들의 협연이 빛났다. 이정호의 국악관현악 ‘바다’에서는 시원한 부산 바다가 떠오르기도 했다.
이러한 느낌의 구조를 만든 김종욱은 이날 지휘봉 없이 맨손과 손가락으로 악단의 표정을 섬세하게 닦아나갔다. 이러한 그의 지휘를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폭의 지휘라 할 수 있겠다. 소리의 ‘증폭’이 어떤 지휘자보다 ‘대폭’적이고, 각 악기군(群)의 보폭도 성큼성큼 이끌어가 시원하게 내뻗는 편이다. 이러한 그의 지휘가 악단이 지닌 ‘부산스러움’과 잘 맞아떨어진 시간이었다.

<2022 3분 관현악> 작곡가 10인의 소리 씨앗과 이어지다

2019년 처음 선보인 ‘3분 관현악’은 올해 이음제의 <2022 3분 관현악>으로 돌아왔다. 작곡가들은 3분 안에 모든 것을 담아야 한다. 단원과 관객도 3분대의 시간으로 작곡가와 작품을 판단한다. 10곡이 한 무대에 오르면, 공연은 20~30대 작곡가들의 관현악곡이 한데 모인 카탈로그가 된다. 이번 공연에는 국악 분야의 작곡가로 강한뫼·백유미·이재준·채지혜·홍민웅이, 양악 분야는 공혜린·손일훈·엄기환·지성민·최한별이 함께했다. 잘게 나눠진 곡들이지만, 구상과 기획 단계에는 이들이 그려낼 전반적인 큰 그림이 있다. 이를 위해 적합한 작곡가들의 포트폴리오와 현장 발표를 살핀 후 ‘3분 관현악’의 라인업은 구성되었다.
곡마다 성향이 달랐다. 강한뫼(폭포)·채지혜(감정의 바다)·홍민웅(화류동풍)·백유미(빗소리)·엄기환(구름정원)이 국악관현악의 기본기에 충실했다면, 공혜린의 ‘서울의 밤’에는 국악과 양악 반반의 구도가 섞였고, 지성민(나무의 결)·최한별(유니뻐스)은 양악 작곡을 통해 체득한 전위적 감각으로 관현악을 움직였다. 윷놀이를 소재로 한 손일훈의 ‘모 아니면 도’는 놀이라는 모티프가, 이재준의 ‘라면’은 라면 끓이는 행위를 소재로 한 기발함이 돋보였다. 곡마다 일일이 거론할 수 없으나 이들의 공통점은 주관성이 매우 강하고, 관현악의 전통에 구애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쩌면 이러한 자유, 관현악이 뻗는 자기장으로부터의 방종이 향후 국악관현악의 주소를 다시 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2022 3분 관현악>의 프로그램 디렉터로 참여하는 동안 보이지 않던 것이 이날 공연에 보였으니, 그것은 지휘를 맡은 박천지의 존재감이었다. 이음제의 마지막이었던 이날, 국립국악관현악단원들은 상당히 지쳐 보였다. 국립극장 2022-2023 레퍼토리시즌이 문을 연 9월에 이음제를 위해 쉼 없이 달려온 시간이었다. 공연마다 지휘자가 달랐고, 위촉곡 초연의 피로도도 높았을 것이다. 그런 상황이었음에도 박천지는 곡마다 작곡가들의 개성이 도드라지도록 만들었다.
지휘자 이야기로 마무리해야겠다. 국립국악관현악단은 우수한 기획력과 위촉을 통해 ‘작품’ 발굴에 힘쓰고 있다. 그러면서 작품에 윤을 낼 지휘자 찾기에도 열심이다. 장윤성이 ‘중견의 신진’으로 오른 시간이었고, 김성진은 젊은 세대에게 관현악의 문법을 제대로 맛보게 했다. 김종욱은 진폭과 증폭의 지휘로 부산의 감각을 보여주었고, 박천지는 꼼꼼함과 분석력으로 저마다의 스타일을 10곡에 드러냈다. 작곡가와 작품, 단원과 관객을 연결하며 이음의 존재로 활약한 그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글. 송현민 음악평론가이자 월간 『객석』편집장. 급변하는 음악 생태계에 대한 충실한 ‘기록’이 미래를 ‘기획’하는 자료가 된다는 믿음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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