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보기

예술 소비자에 대한 변화와 전망
아트 마케팅의 어제와 오늘
콘텐츠와 공간을 넘나드는 아트 마케팅의 시대가 열렸다. 처음 ‘아트 마케팅’이란 용어를
세상에 내놓은 키스 디글의 시대에서 대체불가토큰(NFT) 시장을 논하는 지금까지 우리는 예술 옹호 세력을 구축하기 위해 어떤 고민을 해왔을까. 그리고 어떤 노력을 더해야 할까.

초기 아트 마케팅의 성과

아트 마케팅은 영국의 예술 경영인 키스 디글(Keith Diggle, 1937~)이 1970년에 만든 용어로 알려져 있다. 고등학교 수학교사 출신이던 디글이 예술 경영에 발을 디디게 된 계기는 재즈에 대한 관심과 열정에서 비롯됐다. 그의 재즈 사랑이 얼마나 컸던지, 당시 교장은 “디글이 재즈를 주로 가르쳤고, 가끔 수학을 가르쳤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러다가 같은 학교 음악감독이던 네빌 딜크스(Neville Dilkes, 1930~)가 ‘미들랜드 신포니아(the Midland Sinfonia)’라는 이름의 체임버 오케스트라를 1961년 창단하면서 디글에게 전적인 매니지먼트를 맡기게 되었는데, 이를 계기로 교사직을 내려놓고 전업 예술 경영인이 되었다. 결코 쉽지 않은 오케스트라 경영이었지만, 그는 1968년 잉글리시 신포니아(the English Sinfonia)로 개명한 이 단체를 이끌고 런던을 비롯한 영국 전역을 순회하는 연주회를 기획하면서 오케스트라의 존재감을 널리 알렸다.
그러고는 1969년 리버풀에 있는 머지사이드예술협회(Merseyside Arts Association) 예술감독으로 자리를 옮겨 공연예술과 시각예술을 대상으로 마케팅 업무를 열정적으로 해냈다. 그러한 경험을 토대로 그는 아트 마케팅이라는 용어를 사용했고, 더불어 런던 시티 대학원 등 여러 대학에서 강의도 병행했다. 그 결과로 1976년 『예술을 마케팅하기(Marketing the Art)』라는 저서를 출간했고, 1984년에는 『아트 마케팅 가이드(Guide to Arts Marketing)』를, 1994년에는 『아트 마케팅(ARTS MARKETING)』을 출간하였다. 그에게 아트 마케팅은 곧 ‘관객 개발’이었고, 이를 위해 홍보 및 공공관계(public relations), 광고, 시즌제 및 사전 예매제도 도입, 가격 정책, 재원 조성 등의 노하우를 제공하고 있다.
특별히 시즌제는 공연예술단체의 특화된 프로그램을 기획해 포지셔닝 전략을 시도하고, 궁극적으로는 공연의 수월성을 증진해 대외 경쟁력을 끌어올리며, 동시에 다양한 패키지 티켓을 통해 정규 회원을 확보하면서 충성 관객을 개발하고 관리할 수 있는 방식이었다. 그는 정기구독 개념을 박물관·미술관에도 도입해, 관객이 공연예술 티켓과 같이 예매하지 않으면 구할 수 없을 것 같은 마음이 들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러한 관점은 미국의 데니 뉴먼(Danny Newman, 1919~2007)의 저서 『지금 신청하세요!(Subscribe Now!)』 (1977)에서도 확인된다. 그는 시카고 리릭 오페라(the Lyric Opera)에서 오페라단이 창단되던 1954년부터 2002년 은퇴할 때까지 홍보 업무를 담당했고, 관객 개발을 위한 구독 프로그램에 대한 변함 없는 지지를 보여왔다.

  • 1976년 출간한 키스 디글의 저서 『예술을 마케팅하기』
  • 1984년에 출간한 키스 디글의 저서 『아트 마케팅 가이드』

아트 마케팅은 어떻게 다른가?

초기 아트 마케팅의 역사는 관객 개발이라는 지당한(?) 목표에서 시작됐고, 또 이를 실천한 두 명의 선구자가 실제 예술 현장에서 쌓은 경험을 토대로 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들 스스로 예술 애호가이자 옹호자였다는 점에서 지극히 소중한 자산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우리가 조금 더 들여다봐야 할 지점은 관객 개발에 대한 관점이라고 본다. 디글과 뉴먼이 천착한 지점은 단순히 시즌제가 아니라 예술을 통한 관객과의 ‘관계’ 형성이었다고 보는 것이다. 실제로 관객 개발은 단순한 수적 증대이거나, 티켓 수입만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평범한 관객에서 강한 결속감을 갖는 충성 관객으로 전환, 그리고 후원자로 진화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질적 심화와 연관되며, 궁극적으로는 강한 예술 옹호 세력(Arts Advocacy)을 키우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리고 예술 옹호 세력이 갖는 사회적 영향력을 기대하고, 예술의 가치를 확산하려는 미학적·정치적 욕망(?)의 발로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들이 아트 마케팅을 실천하던 시절, 특히 1960년대 후반은 경영학계에서도 비영리단체 마케팅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던 시기였다. 병원이나 사회복지, 교육기관과 예술, 종교단체 등과 같은 기관의 마케팅 연구가 진행되면서 이로써 마케팅 개념 자체도 확장되는 계기가 되었다. 마케팅 행위라는 것이 사실상 수익 창출에만 있지 않으며, 가치 추구 과정에 대한 합의와 신뢰 관계에 기반한 것임을 제시한 것이다.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의 샤피로(Benson Shapiro) 교수는 재원 조성의 경우, 기존 판매자와 구매자의 관계와 전적으로 다른 후원자와 예술가의 관계를 그 사례로 들기도 했다. 예술 후원이란 단순한 투자 개념이 아니라, 예술가에 대한 전적인 지지에서 비롯하는 동반자적 관계라는 점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아트 마케팅은 예술을 지속하게 만드는 동력이라 할 수 있겠다. 당장에 필요한 재원을 조성하는 데 그치지 않고, 높은 결속감으로 형성된 관계를 통해 예술이 이 사회에서 지속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가는 행위라는 것이다. 마케팅의 아버지라 불리는 필립 코틀러(Philip Kotler)는 마케팅을 단순한 영업이나 광고 활동이 아니라 가치 창출 활동이라고 규정하고, 강력한 고객 관계를 구축해 고객에게 가치를 얻게 하는 과정이라고 보았다. 그런 점에서 사실상 마케팅은 인간 행동에 관한 연구이고, 모든 관계는 마케팅식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도 했다. 따라서 아트 마케팅 역시 관객의 행동을 연구하고, 관객을 이해하는 일을 시작으로 진정한 예술 옹호 세력으로 커가는 관계 형성에 집중하는 일이며, 궁극적으로 예술의 가치와 의미를 극대화함으로써 예술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하는 활동이라 할 것이다.

2021년 4월 2~3일 <리그 오브 레전드 라이브:디 오케스트라> ⓒ세종문화회관

온·오프라인 병행의 아트 마케팅

새삼스럽지만 필자는 초기 아트 마케팅을 소환했다. 어쩌면 지금처럼 엄청난 환경 변화를 겪는 시대에 초기의 의미를 다시 떠올릴 필요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아트 마케팅의 기본이 되는 관객 개발이라는 목표는 여전한 과제다. 하지만 관객이 존재하는 방식, 관객이 예술을 접하는 방식이나 경로가 완전히 바뀌었다는 사실이 엄중하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의 격리와 봉쇄, 그리고 4차 산업혁명에 의한 디지털 전환을 생각한다면, 관객이 더는 극장이나 오페라하우스·콘서트홀·미술관과 같은 ‘현장’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온라인을 통해 관객 형성이 가능해진 상황이라는 점에서 우리가 이전에는 염두에 두지 않던 잠재 관객 개발이 훨씬 용이해졌다는 사실에 귀가 솔깃해진다. 조금 단순한 사례라 하겠지만, 코로나19 초반에 있었던 조성진의 온라인 연주가 글로벌 대중의 접근성을 높였음은 자명하고, 그 결과로 클래식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될 잠재 관객 형성 효과 역시 부인할 수 없지 않을까.
다른 한편 이미 SNS 마케팅이나 바이럴 마케팅과 같은 소셜 네트워크를 활용한 마케팅에서는 관객 스스로 마케터 역할을 하거나 예술 관련 퍼실리테이터와 같은 영향력 높은 매개자의 역할도 고려해야 할 사항이다. 또한 요즘처럼 세대별 접근이 강조되는 시기에 관객 세분화 전략도 중요한 지점이다. 특히 MZ세대가 갖는 디지털 문화에 대한 인식, 언어와 가치, 취향을 감안한다면 승산이 있다는 것이다. 일례로 2021년 4월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게임 음악회의 경우, KBS 교향악단 연주를 듣기 위해 클래식 음악을 접한 적이 없던 게임 유저들이 새로운 관객으로 변신한 사례다. 물론 이 행사는 게임사가 주관한 것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클래식 음악은, 아트 마케터가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하나의 콘텐츠였을 것이라 판단한다.
그런 점에서 아트 마케터에게 주어진 도전은 온라인을 새로운 아트 마케팅 공간으로 바라본다는 사실일 것이다. 실제로 온라인 공간은 예술 체험이 없는 비관객(non-audience)을 잠재 관객으로 유도하는 데 큰 효과를 발휘한다. 하지만 직접적인 예술 체험에 따른 경험재로서가 아니라, 정보와 지식을 제공하는 정보재로서 그들을 유도할 것이라고 본다. 따라서 온라인에서의 예술은 콘텐츠로 전환될 것이고, 그런 점에서 다각적인 시도와 기획, 제작에 대한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게다가 시각 및 공연예술 분야의 NFT 시장이나 메타버스 체험 등의 지형이 부각되는 상황에서, 문화 소비자를 대상으로 콘텐츠로서의 예술에 접근하게 하는 전략을 실행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곧 초기 아트 마케팅에서 하지 못한 부분이고, 그러나 예술 옹호 세력을 만드는 데 훌륭한 도구가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글. 박신의 경희대학교 경영대학원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 2000년부터 문화예술경영학을 가르치고 연구하며 컨설팅을 하고 있다. 주요 관심 분야는 예술의 사회적 영향·소셜아트·예술기업가정신과 리더십·문화정책 등이며, 4차산업혁명을 계기로 예술의 산업적 구조가 훨씬 광범하게 작동될 것을 믿으며 문화예술경영의 새로운 차원을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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