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뒤의사람들

홍보팀 사진 담당
화려한 조명 뒤 바쁘게 움직이는 발걸음.
수면 아래 빠르게 움직이는 백조의 물갈퀴처럼
관객과 가장 가까이서 소통하며 극장 곳곳을 채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나본다.
실제와 환상 사이

아름다운 미감을 발산하는 공연 사진. 공연이나 장면에 대한 어떤 정보도 주어지지 않았지만 오로지 사진 한 장에 매료돼, 홀린 듯 예매하고 있는 나를 발견할 때가 있다. 공연예술만큼이나 때론 그 이상의 예술적 감각을 우리에게 전하는 사람. 국립극장의 사진가를 만나봤다.

사진을 촬영하고 편집해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하는 사람. 한국직업사전에 기록된 사진작가에 대한 정의다. 그 대상이나 목적에 따라 인상사진가·생태사진가·광고사진가·순수사진가·보도사진가(사진기자) 등으로 나뉜다고 설명하고 있다. 반면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사진작가를 예술 활동으로 사진 찍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두 정의에서 사뭇 다름을 느낀다. 한국직업사전의 사진작가가 일반적인 직무를 설명하는 포괄적 의미를 갖는다면 표준국어대사전은 사진작가와 사진가의 정의를 구분하고 사진작가는 순수 예술 활동을 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그렇다면 극장의 사진가는 어떤 영역에 속한다고 할 수 있을까.

전강인: 극장의 사진 담당자는 예술의 과정과 결과물을 관객에게 사진으로 보여주는 역할이죠. 보통 예술사진을 찍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사진으로 자신만의 메시지를 전달한다면 저는 제가 직접 예술을 실행하는 것이 아니라 극장에서 행해지는 일련의 예술 행위를 사진으로 기록해 보여주는 조력자 역할을 하는 거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감탄을 자아내는 그의 결과물을 보고 있노라면,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말이 절로 떠오른다. 누구보다 예술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그가 자신을 예술인이 아닌 조력자라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강인: 순수 예술 사진작가처럼 스스로 찍고 싶은 오브제를 고르거나 주제를 정하는 것이 아니고, 국립극장의 일원으로 극장에서 필요한 사진을 찍을 뿐이니까요. 물론 빛을 더 과장하거나 구도를 달리한 제 사진이 창조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제가 찍는 사진의 궁극적인 목표는 오브제를 보이는 그대로 꾸밈없이 보여주는 데 있어요.

국립극장 홍보·마케팅에 사용하는 사진 이미지 대부분은 그의 손에 의해서 탄생한다. 각 부서에서 제작하는 이벤트 물품이나 아카이브를 위한 자료 이미지는 물론이고, 세 전속단체가 만드는 작품의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그 과정을 모두 사진으로 남기기 때문이다.

전강인: 매년 적게는 350건에서 많게는 500건에 달하는 촬영을 해요. 이후 인쇄가 가능할 정도의 고화질로 보관하는 사진이 평균 2만 장에 달하죠. 물론 코로나19로 인해 공연이 연이어 취소됐을 때는 5천 5백~7천 장 정도로 촬영이 줄기도 했어요. 그때는 좀 이례적이었죠.

국립극장에는 국립창극단·국립무용단·국립국악관현악단, 세 전속단체가 있다. 각 단체의 공연 사진과 콘셉트 사진 그리고 홍보팀과 예술교육팀, 공연예술박물관에서 필요로 하는 사진 자료는 각각의 사용 목표와 사업 취지에 따라 달라진다. 예술교육팀의 교육 현장은 강의 내용이나 참여하는 사람마다 각각의 상황과 표정을 만들어내고, 공연예술박물관의 자료도 때마다 다른 정보와 배경이 필요하다. 언뜻 재공연으로 보이는 세 전속단체의 레퍼토리 역시 때마다 새로운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

전강인: 홍보물이나 인터뷰 촬영 때, 그때마다 적합한 레퍼런스를 찾아보고 촬영 준비를 해요. 공연 촬영도 각 단체의 특징에 따라 다르게 접근합니다. 국립창극단의 공연은 움직임이 많기 때문에 장면마다 컷을 확보하는 게 중요해요. 장면이 전환될 때마다 배우와 무대세트 그리고 조명 등이 변하면서 희로애락을 표현하는데,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아야 하거든요. 국립무용단의 공연은 무엇보다 ‘빠르게 많이’ 찍는 게 중요해요. 모든 움직임을 다 예상하기 어렵기 때문이죠. 또 무대가 어둡고 순간포착이 어려운 경우가 많아서 촬영이 힘들 때가 있는데, 그런 순간에는 오히려 셔터를 느리게 해서 흐르듯 촬영하는 기법을 가끔 사용하기도 해요. 국립국악관현악단의 공연은 동적이기보단 정적인 공연이기 때문에 인물과 악기는 일체감 있게, 그리고 연주하는 모습을 생동감 있게 포착하는 게 중요하죠. 또 관현악단 규모에 걸맞은 무게감을 보여주는 것도 필요해요.

달의 표면을 담을 만큼 우수한 성능의 카메라를 가진 것만으로 전문 사진가가 될 수 없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터.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사진에는 그만큼의 연구와 고민이 뒤따르는 법이다. 그가 비범한 한 컷의 사진을 위해 공들인 시간을 되짚어 보자. 국립극장의 사진가는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했고, 3년 정도 월간 『사진 예술』의 취재기자이자 에디터로 프리랜서의 길을 걷다가 우연히 2011년 <조지 윈스턴 내한공연> 사진을 찍으면서 공연 사진에 발을 내딛게 됐다. 그리고 2014년에 국립극장에 입사해 어느덧 12년 차 직업인 사진가가 됐다. 하지만 사진 기능사나 촬영 기능사 같은 자격증을 소지하진 않았다. 다만 매 순간 끝없이 이어지는 연구와 성찰이 그가 늘 새로운 시각으로 순간을 사진에 담아내는 비결이다.

전강인: 독립적으로 예술사진을 찍는 게 아니라는 전제하에, 사진을 전문으로 하는 프로가 갖춰야 할 건 자격증이나 경력보단 다각도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각과 극장의 여러 부서의 요구에 협력할 수 있는 협동심 그리고 주어진 상황을 적절하게 활용하고 센스 있게 촬영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생각해요. 처음엔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공연 연습실이나 드레스 리허설에서 누구보다 가까이 접근하며 촬영할 수 있다는 게 특별하게 느껴졌지만, 사실 그 순간에 능력을 잘 발휘하려면 그전에 다각도로 촬영을 준비하는 연구의 시간을 가져야 하고, 각 단체나 공연 관계자와 잘 협업해야 하고, 센스 있게 촬영한 것을 다시 한번 센스 있게 보정해야 하기 때문에, 그 특별함을 마냥 즐기고 있긴 어렵죠.

마지막으로 극장 사진가를 꿈꾸는 미래의 사진가들에게 한 마디 부탁해 보았다.

전강인: 어떤 사진가가 될 것인지 생각해 볼 것. 예술사진가인지 극장의 사진가인지 어디에서 어떤 사진을 찍고 싶은지를 잘 선택하는 것이 첫 번째예요. 그리고 늘 새로운 관점을 갖기 위해 노력할 것. 저 역시 10년 뒤에 도태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여러 사진 자료를 보며 참고하고 있어요. SNS에서 유행하는 사진뿐 아니라 매그넘 포토스(Magnum Photos)1), 『내셔널 지오그래픽』, 월드 프레스 포토(World Press Photo)2), 그리고 이외에 다큐멘터리 영상, 패션 사진도 많이 참고하죠.

1) 세계적으로 유명한 보도 사진가들로 구성된 자유 보도사진 작가 그룹, 지난 2021년 부산문화회관에서 ‘매그넘 인 파리’라는 주제로 기획 전시가 열리면서 국내에서도 많은 팬의 관심을 받았다.
2) 1955년 네덜란드의 사진작가들이 국제 콘테스트를 조직하면서 시작된 단체로 아직까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본사를 두고 있으며 세계 포토 저널리스트계에서 권위와 역사를 지닌 콘테스트를 매년 개최하고 있다.

그의 시선이 머무르고 셔터가 눌리는 순간 관객은 이미 그가 포착한 오브제에 마음을 뺏기고 만다. 범인(凡人)의 눈길을 사로잡는 비범한 사진에 대단한 능력이나 사설을 부여하지 않는다. 다만 성실히 찍을 뿐이다. 때론 수만 장의 사진을 쳇바퀴 돌 듯 찍어야 하는 운명이 버겁게 느껴지기도 한다는 그이지만 국립극장 공연예술을 아끼는 한 사람이자, 조력자로 무대의 전방위를 비추는 그의 사진은 언제나 우리를 설레게 한다.

※ 참고 자료 한국직업사전 www.work.go.kr
표준국어대사전 http://stictkorean.go.kr
※ 본 기사는 국립극장 홍보팀 사진가 전강인 님과 진행한 인터뷰를 토대로 진행했습니다.
글. 김보나 국립극장 홍보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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