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보기하나

국립창극단 <절창Ⅱ>
노련미로 빛난 새로운 소리‘판’
‘절창(絶唱)’은 국립창극단이 지난해 처음으로 선보인 새로운 형식의 공연이다. 지난해 4월 김준수와 유태평양이 이 공연으로 호평을 받은 데 이어 올해 6월 민은경과 이소연이 두 번째 무대로 나섰다. 국립창극단 스타 단원들의 향연이다. 달오름극장의 객석은 만석이었다.

‘눈물’로 연결된 적벽과 남원

공연의 요소를 살펴보면 의외로 간단하다. 국립창극단이 주로 선보이는 창극은 화려한 캐스팅과 동시대적 감각으로 무장한 무대·의상·조명 디자이너와 작곡가·작창가·연출가 등이 주를 이룬다. 작품도 판소리를 바탕으로 연극·뮤지컬·무용 등을 버무려 새로운 작품을 낳는 방식이다. 반면 ‘절창’에는 두 명의 소리꾼이 주를 이루고, 악사와 연출가가 함께하는 비교적 간단한 방식이다. 소리꾼의 레퍼토리도 작곡가나 작창가에 의해 새 옷을 입은 것이 아니라, 기존 눈대목을 엮어서 부른다.

이번 공연 1부에서 이소연은 유비·관우·장비가 의기투합하는 ‘도원결의’부터 시작해 조조의 군사들이 전쟁터에 끌려오며 겪게 된 이별 사연을 늘어놓는 ‘군사설움’을 부르고 이어서 민은경이 ‘춘향가’ 중 춘향과 몽룡의 ‘이별가’를 불렀다. 전쟁으로 고통받는 군사들과 원치 않는 이별을 해야 하는 청춘남녀의 슬픔은 각기 다르다. 하지만 <절창Ⅱ>에서 이소연과 민은경의 만남을 통해, ‘눈물’과 ‘비극’이라는 다리 위에서 적벽가와 춘향가가 만난다.
뜨겁게 타오르는 ‘불’이 두 판소리와 두 소리꾼을 녹이는 소리의 용광로가 되기도 했다. 이소연이 부르는 ‘적벽대전’은 공명의 전략으로 조조의 군사 장비가 불타고 군사들이 죽어가는 와중에 조조가 달아나는 모습을 표현했다. 그의 노래가 끝나자 민은경은 이어 ‘사랑가’를 부른다. 전쟁터의 불이나, 연인을 달구는 불이나 사람과 상황을 뜨겁게 하기는 마찬가지라는 것. 하여 ‘절창’은 외형적으로는 두 소리꾼을 내세워, 그로 인한 대비와 차이를 드러내는 공연이지만, 한편으로는 우리가 사유하지 못했던 주제로 얽히고설키는 판소리의 새로운 양상이 펼쳐지는 시리즈다. <절창Ⅰ>에 이어 <절창Ⅱ>까지 연출과 구성을 맡은 남인우 연출가 특유의 ‘절’대 ‘창’조력이 빛났다.

음악 사이를 수놓는 소리꾼의 담력(談力)과 화력(話力)

앞서 살펴본 대로 ‘절창’에는 특정 주제나 분위기로 엮인 노래가 있다. 그리고 두 사람이 한 무대에 오르지만, 교차창이 아닌 단독창 중심의 공연이기에 무대디자인은 1인을 돋보이게끔 ‘깔끔한 비움’으로 채워졌다. 정민선의 디자인이다. 김종락의 조명은 눈대목의 느낌을 시각적으로, 간단하게 표현한다. 예를 들어 ‘적벽대전’에서 무대를 붉게 물들여 불을 상징화했다. 악사는 조용수(고수), 최영훈(거문고), 전계열(타악), 천성대(피리·생황), 손희남(기타)이 함께했다. 때로는 생황 독주가, 때로는 거문고 독주가 잔잔히 퍼지면서 눈대목 사이를 자연스레 연결하기도 했다.
이처럼 기존 노래(눈대목)들을 새로 엮는 것이 남인우(연출·구성)의 몫이었다면, 민은경과 이소연이 엮는 것은 관객과의 공감대이다. 그것은 노래와 노래 사이로 피어나는 그들의 이야기(재담)로 나타났다.
진지하게 노래한 그들은 노래와 노래 사이를 여러 이야기로 메웠다. 이 눈대목에 어떤 눈대목을 엮은 이유가 앞서 어떤 주제와 공통점에 의해서였다는 점, 노래하거나 하고 난 뒤의 느낌은 물론 두 소리꾼이 주고받는 농 섞인 대화를 통해 관객들은 노래와 노래꾼의 삶을 들여다보게 된다. 지금 보는 공연을 위한 민은경과 이소연의 ‘공연 사용 설명서’이자, 지금 듣고 있는 소리에 대한 일종의 ‘판소리 사용 설명서’ 같았다. 이런 그들의 모습을 보며 ‘담력’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사전적 의미로 담력이란, 겁이 없고 용감한 기운을 뜻한다. 하지만 여기에서 담력이란 판소리 속의 재담(才談)을 살짝 비틀어 쓰고픈 ‘담력(談力)’이다. 이야기의 힘. 거칠게 말하면 판소리에 없어서는 안 될 ‘말발’이다.
이유와 내용을 알고 듣는 소리와 그렇지 않은 소리는 다르다. 물론 구성과 각색에 의해 가사에 내재한 고어(古語)가 지금의 언어로 순치되기도 했지만, 이들이 안내하는 설명과 이유에 의해 관객은 새로운 만남으로 이접된 소리의 정당성을 납득하게 된다. “이렇게 붙여서 들으니 괜찮네”라면서. 특히 두 사람이 주고받는 이야기는 담력(談力)을 넘어, 음악과 흥에 불을 붙이는 화력(火力), 아니 말(話)이 만든 화력(話力)과도 같았다.
공연 내내 옆 사람은 끊임없이 추임새를 보냈다. 살짝 보니 마스크가 들쑥날쑥할 정도로 목청도 좋았다. 적재적소의 추임새도 아니었다. 판소리를 즐기는 초심 관객이 분명했다. 나가면서 동행한 지인과 하는 말이 “창극 공연과는 전혀 딴판이다”였다. 민은경과 이소연, 둘 중 누구의 팬인지는 모르겠다.

20세기의 완창, 21세기의 절창

공연을 보는 동안 국립극장의 <완창판소리>가 떠올랐다. 국립극장과 국립창극단이 1984년부터 선보이고 있는 대표 상설공연이다.
판소리를 둘러싼 새로운 공연 양식의 등장을 20세기와 21세기로 굵게 나눠본다면 <완창판소리>는 지난 20세기의 산물이다. 파편화되고 키트(kit)화되어 불리던 판소리 눈대목이 아닌, 판소리 전체를 3~6시간 동안 선보인다. 반면 ‘절창’은 국립창극단이 고안한 21세기의 새로운 공연 형식이라 할 수 있겠다. ‘완창’과 달리, 판소리의 눈대목을 중심으로 여러 악기와 연출적 요소를 조립해 선보인다. 완창과 절창을 비유하면 ‘완창’은 전막 공연이고, ‘절창’은 주옥같은 아리아들을 선별·구성한 ‘갈라’라 할 수 있겠다. 20세기였던 1980년대와 1990년대에는 서양음악에서도 전곡 연주가 대유행했다. 작품과 작곡가의 깊은 뿌리를 좇는 작업이었다. 한편 지금, 즉 21세기를 살아가는 서양음악의 젊은 음악가들은 새로운 레퍼토리와 독특한 구성으로 무장하고 있다. 작품의 역사와 무게에 종속되기보다 오히려 작품 선곡과 연주를 통해 자신만의 개성을 드러내며, 이를 통해 재연과 창작의 경계를 풀고 있다. 이러한 모습을 볼 때마다 새로운 공연 양식의 등장은 시대와 세대와 맞물려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처럼 시대는 늘 변하며, 그런 시대 흐름을 빠르게 읽어내어 빚은 기획물이 동시대 예술가들과 새로운 감각을 부상시킨다. 그런 점에서 ‘절창’은 국립창극단의 기획물로 태어났지만, 오늘날의 젊은 소리꾼들이 참조하고 응용할 새로운 공연 양식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야기와 내용, 음악의 조성을 관통하는 가시적인 공통분모로 판소리를 극화(劇化)했던 과거와 달리, ‘절창’은 작품에 내재한 감정과 느낌(적인 느낌)을 통해 전혀 만날 수 없던 눈대목과 노래들이 만나는 방식이다. 전자가 직유적 구성이라면, 후자인 ‘절창’은 은유적 구성인 셈이다. 이번에는 적벽가와 춘향가가 불·이별·설움 등의 감정적 주제로 만났다.

끝으로 ‘절창’이란 새로운 공연 형식은 ‘예술가’에 의해 태어난다는 것도 보여주었다. 그들이 보유한 절대적인 ‘기교’, 관객들과 웃음과 울음의 공감대를 연결하는 ‘가교’의 능력이 있기에 국립창극단이 이러한 기교와 가교를 바탕으로 ‘절창’이라는 그릇을 만들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좋은 공연은 ‘기억’만큼이나 ‘기대’를 심는 공연이다. 김준수와 유태평양, 민은경과 이소연은 ‘절창’을 ‘기억’하게 한 소리꾼이자, 공연이 끝나고 나오면서 다음의 주인공이 누가 될지 ‘기대’하게 했다. 공연 보는 동안 나의 오른쪽에서 내 귀를 터뜨릴 듯 추임새를 던지던 관객이 일어나면서 하는 말도 인상적이었다. “나 원래 ○○○이 좋았는데, 이제 갈아타야 할까 봐.”

글. 송현민 음악평론가. 월간 ‘객석’ 편집장. 급변하는 음악 생태계에 대한 충실한 ‘기록’이 미래를 ‘기획’하는 자료가 된다는 믿음으로 활동하고 있다.
<월간 국립극장> 구독신청 <월간 국립극장> 과월호 보기
닫기

월간지 '월간 국립극장' 뉴스레터 구독 신청

뉴스레터 구독은 홈페이지 회원 가입 시 신청 가능하며, 다양한 국립극장 소식을 함께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또는 카카오톡 채널을 통해 편리하게 '월간 국립극장' 뉴스레터를 받아보세요.
※회원가입 시 이메일 수신 동의 필요 (기존회원인 경우 회원정보수정 > 고객서비스 > 메일링 수신 동의 선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