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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2023 국립극장 레퍼토리시즌_국립무용단
국립의 이름으로 걸어갈
앞으로의 60년을 내다보며
올해로 창단 60주년을 맞은 국립무용단이 새 레퍼토리시즌(2022-2023) 프로그램을 발표했다. 국립극장이 2012년 처음 레퍼토리시즌제를 도입했으니 올해로 열한 번째를 맞는다. 국립무용단이 내놓은 프로그램을 살펴보며 시즌제 도입 이후의 성과는 무엇인지와 환갑을 맞은 단체로서의 면모에 걸맞은 구성인지, 앞으로의 비전 등을 전망해 봤다.

국립극장은 제작극장을 표방하며 레퍼토리시즌제를 도입했다. ‘국립’의 이름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공연 콘텐츠를 개발하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삼았다. ‘레퍼토리’란 반복적으로 공연할 수 있는 작품 목록을 말하는데, 단체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관객의 입장에서 지속적으로 보고 싶어 하는 콘텐츠로 구성돼야 진정한 레퍼토리라 할 수 있다. 그런 관점에서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는 세 전속단체(국립창극단·국립무용단·국립관현악단)가 동시대 관객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만한 레퍼토리가 없다는 점을 되돌아보게 되었고, 전통을 어떻게 현대적으로 해석할지에 대한 고민을 해결하는 것이 절실한 과제로 떠올랐다. 이렇게 시작한 시즌제가 짧지도 그렇다고 길지도 않은 10년의 시간을 지나면서 각 단체마다 관객이 믿고 찾는, 괄목할 만한 다수의 ‘레퍼토리’를 개발했다는 점은 큰 성과다. 최우선의 목표를 훌륭하게 달성한 셈이다.

한 시즌 레퍼토리의 구성은 곧 단체의 성격과 역량을 대변한다. 국립무용단은 이번 시즌에서 신작과 재연작을 섞어 총 여섯 개의 프로그램을 내놓았다. 50명에 가까운 상임 단원을 둔 단체답게 대작은 물론 명절 분위기에 맞는 옴니버스 작품과 안무가 양성 프로젝트까지 다채로운 구성으로 꾸몄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무엇보다 신작 <2022 무용극 호동>이다. 1962년 국립무용단 창단 당시 부단장으로 시작해 이후 30년간 단장을 맡았던 고(故) 송범(1926~2007) 선생이 발표한 무용극 중 대표작이 <호동>인데 그 후 <그 하늘 그 북소리>로도 올렸으니 창단 60주년을 맞는 이 시점에서 재해석할 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무용극은 엄밀하게 말하면 춤과 희곡이 만난, 줄거리가 있는 모든 무용 작품을 말한다. 한국 탈춤이 좋은 예이다. 대사가 없어 추상적일 수밖에 없는 무용 장르에서 무용극은 등장인물이 명확하고 극의 전개가 뚜렷해서 기승전결에 따라 극의 흐름을 파악하기가 수월한 장점이 있다.
송범식(式)의 무용극에는 독창적 구성이 있다. <백조의 호수>나 <잠자는 숲속의 미녀>와 같은 고전발레의 형식을 한국춤에 도입한 것인데 대형 무대의 웅장함은 기본이고 극적 완성도가 높은 2인무, 이를 뒷받침하는 화려한 군무, 주제와 상관없이 볼거리를 제공하는 디베르티스망(divertissement)1)을 포함한다. 국립무용단의 역사는 무용극의 역사와 맥을 같이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시즌제 도입 이전의 레퍼토리는 대부분 무용극이 차지했다. 이번 신작에서는 뮤지컬 연출가 이지나가 극본·연출을 맡고, 정소연·송지영·송설 등 국립무용단원이 안무에 참여하는 시도가 눈길을 끈다. ‘고전적이면서 미래적인, 전통적이면서 감각적인’이라는 캐치프레이즈가 무색할 만한 훌륭한 무대가 펼쳐지지 않을까.

1) 고전발레에서 이야기의 줄거리와 관계없이 하나의 구경거리로 삽입하는 춤. 개인이나 집단의 재능과 기술이 부각된다는 특징이 있다.
국립무용단 <더 룸>

‘현대무용가 출신 연기자’로 알려진 김설진이 안무한 <더 룸>이 5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오른다. <더 룸>은 사람을 기억하는 방의 이야기다. 누군가는 살았고, 누군가는 살고 있으며, 또 누군가는 살게 될 공간을 이야기한다. 김설진은 벨기에 피핑톰 무용단원으로 활약할 당시에도 등장인물의 성격을 묘사하는 데 능통했고, 몸으로 담아내는 ‘표정’에 관심이 많았던 만큼 초연 당시에도 여덟 명의 무용수가 각자의 이야기를 끄집어내고 춤이 아닌 인생(삶)을 쏟아내는 표정을 연출하는 데 주력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김설진은 자신만의 안무법을 ‘레시피’라고 칭한다. 그의 요리법은 정신분석학에서 다루는 심리극과 흡사해서 마음의 소리에 따라 흔들리는 몸짓을 지켜보는 관객은 각자의 무의식 속에 잠겨 있는 상처를 치유받는 신비한 경험을 하게 된다. 초현실적 무대 세트와 이를 기묘하게 활용하는 연출이 돋보였던 만큼 더욱 세심하게 다듬어질 이번 무대가 몹시 기대된다. 단원들이 자신의 이야기로 극적 스토리를 만든 작품은 국립무용단 60년 역사를 통틀어 유일하다.

국립무용단 <가무악칠채>

2018년부터 이어온 ‘넥스트 스텝’은 프로젝트 제목으로,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걸음 즉 ‘무용수에서 안무가로 단계 전환’을 의미한다. 작곡을 잘하기 위해 꼭 노래를 잘 부르거나 악기 연주에 능할 이유가 없는 것처럼 안무를 잘하기 위해서 꼭 춤을 잘 출 필요는 없다. 안무와 무용 능력은 분명 다른 것이니까. 그럼에도 신체 구조와 움직임의 원리를 직감적으로 이해하고 머릿속의 이미지를 거침없이 몸으로 표현할 수 있는 무용수라면 안무하는 데 엄청난 무기를 가지고 있는 셈이니 단원을 대상으로 안무가를 양성하는 것은 당연한 과제다.
국립무용단은 이러한 목표로 맞춤형 제작 과정을 도입했다. 단원 전원을 대상으로 워크숍을 진행해 단체의 정체성과 ‘전통의 현대화’를 위한 접근 방식에 대해 함께 고민했고, 선발된 단원들은 음악·무대미술·조명·의상 등을 담당하는 외부 스태프나 평론가 등과 접촉하면서 안무가로서 각각의 지향점을 찾아갔다. 눈빛만 봐도 서로를 이해하는 동료 단원들은 결코 가볍지 않은 안무가로서의 첫걸음에 빛이 되어주었고, 그 결과 첫 시즌부터 기대 이상의 결과물들이 나왔다. 그중 이재화 안무 <가무악칠채>는 확장판까지 공연하면서 국립무용단 레퍼토리로 선정됐다. 이번 시즌에서는 단원 외에 외부 안무가에게도 참여 기회를 준다고 하니 색다른 결과물도 보게 될 것이다.

국립무용단 <새날>

‘홀춤’은 소규모의 창작춤을 개발하기 위한 프로젝트로 ‘넥스트 스텝’처럼 단원이 직접 안무가로 참여한다. 이번 시즌에서는 ‘홀춤과 겹춤’ 즉 독무와 이인무로 구성했는데 혼자 추는 1인무가 어떻게 발전하는지, 그 단계까지 관찰할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묵향> <향연> 등으로 한국춤의 새로운 돌풍을 일으킨 패션디자이너 정구호가 연출한 <산조>가 돌아온다. 절제와 불균형이라는 키워드를 절묘하게 풀어 호평을 받은 최진욱의 안무를 다시 볼 수 있어 반갑다.
명절 기획 시리즈 <새날>은 이번에도 새해맞이 전통춤 한마당을 펼칠 계획이다. 이젠 대표적인 설 연휴 문화 나들이를 위한 공연으로 자리 잡은 만큼 2023년 계묘년에도 새해 기원 축제의 장이 될 것이다.

사실 한국의 회계 연도상, 시즌 기간을 1월부터 12월까지로 정하는 것이 맞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외처럼, 9월부터 이듬해 6월까지를 한 시즌으로 나눈 것은 시즌제 도입 초기부터 세계시장을 염두에 두고 기획했음을 말한다. 한 해의 프로그램을 한 번에 내놓음으로써 제작자도 관람자도 시간을 두고 준비할 수 있었고, 10년이라는 기간에 이러한 과정이 쌓여 긴 호흡의 생명력을 얻은 작품들이 탄생했다. 그중 테로 사리넨이 안무한 <회오리>는 오는 9월 핀란드 헬싱키 댄스하우스로 날아간다. 초연 이후 8년 동안 이어진 생명력이 가져온 쾌거다. 이제 더 많은 작품을 세계의 관객과 만나게 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2022-2023 레퍼토리시즌은 ‘국립’이라는 이름으로 걸어온 지난 60년을 되돌아보고 앞으로의 60년을 계획할 단초가 될 것이다.

글. 장인주 무용평론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7기 위원. 무용을 전공하고 무용미학을 공부했다. 『서울신문』에 칼럼 「장인주의 춤추는 세상」을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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