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스밍

아티스트의 플레이리스트
춤을 부르는 국악, 국악과 만난 춤
최근 춤의 위상이 세계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브레이크댄싱이 2024년 ‘파리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으며, 국내에서는 Mnet <스트릿 우먼 파이터(Street Woman Fighter)>와 <비 엠비셔스(Be Mbitious)>, JTBC <쇼다운(SHOWDOWN)> 등 스트리트댄스(Street Dance)를 소재로 한 예능 프로그램이 속속 생겨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춤이 활황을 맞은 이때, 춤과 우리음악이 함께하는 비전을 그리며 지난 사례를 꼽아봤다.

많은 댄서가 음악을 듣고 춤에 맞는 음악을 발굴하는 데 상당한 노력을 기울인다. 그들은 춤추기 좋은 음악, 대중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음악을 찾는 데 오랜 시간을 들인다. 음악을 많이 알아둬야 댄스배틀을 할 때 유리하며, 좋은 음악이 퍼포먼스를 더 돋보이게 해주기 때문이다. 얼마 전부터 댄서들이 국악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정확히 말해 대중음악과 결합한 국악에 리듬을 탄다. 몸을 들썩이게 하는 우리 음악을 영상으로 만나보자.

프랭크(FRNK) ‘춤’

디제이 겸 프로듀서 프랭크는 정식 데뷔 전인 2015년 에프엑스(f(x))의 ‘포 월즈(4 Walls)’ 공식 리믹스 버전으로 이름을 알렸다. 이후 엑스엑스엑스(XXX)로 활동하면서 전자음악에 바탕을 둔 차가운 톤, 변칙적인 비트의 음악으로 힙합 애호가들을 사로잡았다. 요즘 가장 인기가 높은 힙합 프로듀서 중 하나이기에 국립국악원의 초청이 수긍될 수밖에 없다.
음반 소개에 따르면 ‘춤’은 옛날 광대들의 춤 놀이를 현대적으로 해석해 보겠다는 취지로 만들었다고 한다. 대금이 루프(Loop)로, 장구가 비트로 흐르다가 차츰 리듬이 추가되고, 약 37초부터는 강한 신시사이저(Synthesizer)가 등장해 곡은 전면적으로 댄스음악의 태를 낸다. 이후 사람의 노랫소리 같은, 실제로는 해금의 소리를 가공했다는 짤막한 연주가 반복적으로 깔려서 곡은 묘한 기운을 분출한다. 중반에서 후반으로 넘어갈 무렵에 나오는 온화한 사운드의 신시사이저는 팽팽함을 잠시 풀어주는 동시에 곡에 다시 추진력을 주입하는 임무를 담당하고 있다.
국악과 프랭크의 조합은 생경하지 않다. 그는 동료 음악가들과 함께 2018년 우리 전통악기를 현대적으로 풀이하는 레드불 뮤직(Red Bull Music)의 서울 소리 송캠프(Seoul Sori Song Camp)에 참여한 바 있다. 같은 해, 서울 소리 송캠프를 통해 완성한 작품들로 구성한 컴필레이션 앨범(Compilation Album) 「레드불 뮤직 서울 소리(Red Bull Music Seoul Sori)」가 출시됐고, 프랭크는 한 소녀가 무당이 되는 얘기를 그린 2014년 영화 <만신>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같은 제목의 곡을 담았다. ‘만신’ 역시 기괴했고, 탄탄했으며, 댄서블했다.

비단 ‘성웅의 아침’

2014년 데뷔한 여성 퓨전 국악 그룹 비단은 이름처럼 참 예쁜 팀이다. 이들의 이름 아래에는 ‘한국의 보물을 노래하다’라는 모토가 적혀 있다. 우리나라의 문화유산을 선전하겠다는 뜻이다. 상업성, 대중성을 우선에 두거나 본인만의 음악 세계를 자유롭게 표현하는 국악인은 많다. 하지만 전통 유산을 모티프로 삼아서 청중에게 우리 고유의 것을 곱씹게 하는 음악으로만 활동을 이어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 기획을 여전히 유지한다는 점도 훌륭하다.
첫 미니 앨범의 첫 번째 트랙 ‘성웅의 아침’은 댄싱 퍼포먼스(Dancing Performance) 배경음악으로 쓰기 좋다. 비단의 제작사는 이순신 장군을 소재로 한 이 곡에 대해 “전장의 아침, 지휘선의 뱃머리에 서서 부하들을 이끌고 적진으로 향하는 이순신 장군의 결연한 각오와 충정이 담겨 있다.”라고 소개한다. 짧은 설명만 봐도 굳건함을 내비칠 것이 예상된다.
크게 울리는 북소리와 해금 연주로 문을 여는 ‘성웅의 아침’은 전자음악의 하위 장르인 브레이크비트(Breakbeat)를 뼈대로 둔다. 곡에 사용된 타악기들은 서양 드럼보다 울림의 폭이 커서 곡이 내내 강건한 기운을 퍼뜨릴 수 있게끔 한다. 또한 타악기 없이 혹은 타악기를 최소화한 상태에서 가야금이나 해금 솔로 연주를 들이는 슬기로운 편곡이 완급을 뚜렷하게 나타낸다. 퍼포먼스 용도로 딱이다.

양양 ‘매화’

브레이킹 서바이벌 프로그램 <쇼다운>에서 우승을 거머쥐며 큰 인기를 얻은 진조 크루(Jinjo Crew)는 이미 세계적으로 알아주는 팀이다. ‘UK 비보이 챔피언십(UK B-boy Championship)’ ‘R16 코리아(R16 Korea)’ ‘배틀 오브 더 이어(Battle of the Year)’ ‘레드불 BC 원(Red Bull BC One)’ ‘프리스타일 세션(Freestyle Session)’ 등 세계 5대 메이저 브레이크댄싱 대회를 모두 석권한 팀은 진조 크루가 유일하다. 멤버 개개인의 실력도 뛰어나지만, 재킷이나 모자를 이용한 안무 등 창의적인 퍼포먼스로 수많은 비보이(B-boy)와 비걸(B-girl)을 매료했다.
진조 크루는 한국의 멋을 알리는 일등 공신이기도 하다. 우리 음악에 맞춰서 한복을 입고 춤을 추곤 하기 때문이다. 이때 사용하는 음악 중 하나가 「레드불 뮤직 서울 소리」에 수록된 양양의 ‘매화’다. 브레이크댄서들이 퍼포먼스 음악으로 흔히 택하는 일렉트로닉(Electronic) 댄스음악이지만 국악기와 우리 소리가 들어가 있어서 무척 이채롭다. 이 덕에 진조 크루의 춤도 관중에게 한층 인상적으로 다가갈 수 있었다.
싱어송라이터(Singer-Songwriter) 겸 프로듀서 양양은 정식으로 데뷔하기 전 ‘매화’로 존재를 알렸다. 곡은 장구와 꽹과리로 구성한 비트, 베이스기타 역할을 하는 거문고 루프가 다이내믹함과 묵직함을 연출하는 가운데, 가야금 연주를 추가해 고전적인 선율을 들려준다. 여기에 경기민요 ‘매화타령’의 일부분을 추출하고 이어 붙여서 무속의 분위기도 풍긴다. 한국적인 색채, 경쾌함과 야릇함을 한자리에서 나타냈다.

프리지본(FREEZYBONE) ‘원스텝(Onestep)’

힙합 마니아라면 낯익을 얼굴이 보인다. 2015년 Mnet <언프리티 랩스타(Unpretty Rapstar)> 첫 번째 시즌에 출전해 인지도를 높인 래퍼 타이미(Tymee)가 프리지본에 속해 있다. 더불어 래퍼 겸 프로듀서 사포(SAPO), 보컬리스트황아영과 치비(ChiVee), 비트박서(Beatboxer) 겸 래퍼 투탁 핀셔(2TAK Pinscher), 비트박서이자 프로듀서 루팡(LUPANG)이 함께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여느 힙합 그룹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프리지본은 브레이크댄싱 팀 플로우 엑셀(FLOWXL)의 에프이(F.E), 가야금 연주자 박선주도 동반해 특색을 띤다.
래퍼와 비트박서가 다수이기에 힙합이 주력 장르가 될 수밖에 없다. 지난해 발표한 첫 번째 미니 앨범 「더 프리지본(THE FREEZYBONE)」의 몇몇 곡은 요즘 트렌드를 따라 전자음을 장착했다. 이것으로 그치면 평범했겠으나 프리지본은 가야금 연주를 루프로 내세워 한국의 빛깔을 간직한 힙합을 선보인다. 미니 앨범의 타이틀 곡 ‘원스텝’은 전주에서 우선 전기기타로 루프를 들려준 후, 가야금 루프를 배치해 대비되는 톤으로 가야금의 매력을 전달한다. 또한 간주는 가야금 솔로로 채워 우리 전통악기가 래핑(Rapping) 사이에서 도드라지는 자리를 만들었다.
강한 비트의 곡은 아니더라도 ‘원스텝’은 귀에 빠르게 익는 훅과 악기들의 말랑말랑한 사운드 덕에 흥겹게 느껴진다. 뮤직비디오 중 가야금 솔로 부분에서 계속해서 다른 동작의 프리즈(Freeze)를 잇는 에프이의 춤은 부드러움으로 음악과 어우러진다. 자신들을 소개하는 ‘융복합 퍼포먼스 팀’이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다.

숙명 가야금 연주단 ‘캐논변주곡 - All for One’

2006년 한 아파트 광고가 강한 인상을 남겼다. 가야금으로 연주하는 요한 파헬벨(Johann Pachelbel)의 ‘카논(Canon in D Major)’과 힙합 비트가 만난 음악이 흐르고, 이에 맞춰 두 명의 비보이가 현란하게 춤을 추는 영상이었다. 국악과 힙합의 신선한 조합에 많은 이의 시선이 자동으로 고정됐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광고가 어떤 회사, 어떤 상품을 선전하는지 정확하게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오직 음악과 브레이크댄싱만 각인됐다.
어쩌면 곡의 주연인 숙명 가야금 연주단의 연주만으로는 눈길을 끌기 어려웠을지 모른다. 국악기로 서양의 고전음악을 연주하는 행위는 이전에도 많았기 때문이다. 이들의 연주에 힙합 비트가 붙어서 곡은 색다르게 느껴질 수 있었다. 여기에 디제이 택틱스(DJ Tactics)의 날카로운 턴테이블 스크래칭(Turntable Scratching), 은준의 노련한 비트박싱(Beatboxing)이 곡의 사운드를 풍성하게 해줬으며, 이로써 힙합의 느낌도 뚜렷하게 냈다.
전주 출신의 브레이크댄싱 팀 라스트 포 원(Last for One)도 대중을 사로잡은 주역 중 하나다. 출연 인원은 적었음에도 다양한 자세의 프리즈, 크리켓(Cricket), 스와이프(Swipe), 체어트랙(Chair Track), 헤드스핀(Headspin) 등 여러 브레이킹 기술을 능란하게 구사함으로써 광고를 근사하게 꾸몄다. 광고를 통해서 우리나라 브레이크댄서들의 우수한 기량을 많은 이에게 알릴 수 있었다. 국악과 춤의 만남이 본격화한 것이 이때부터였으며, 그 시너지는 지금까지도 강고하게 쭉 이어지고 있다.

글. 한동윤 대중음악평론가. 세태에 대한 비판적 시각과 예술가를 향한 애정이 깃든 글을 쓰고 있다. 저서로는 『힙합은 어떻게 힙하게 됐을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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