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

2022-2023 국립극장 레퍼토리시즌_국립창극단
동시대와 호흡하는 젊은 전통
세 편의 신작과 다섯 편의 레퍼토리까지 총 여덟 편의 작품으로
여전히 새로울 수 있는 창극의 가능성을 확인하는 시간.

이제는 ‘실험’이나 ‘파격’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것 자체가 새삼스러울 만큼, 그간 국립창극단의 행보는 다채롭게 이어져 왔다. 그리스비극과 셰익스피어극, 중국 고전과 우리 근대 연극, 창작극과 청소년극 등 동서양 고전과 현대극을 넘나드는 이야기를 통해 창극의 소재와 서사를 확장하는 한편, 송-스루 창작 소리극, 창극과 오페라의 접목, 전자음악을 활용한 노래 등 다양한 형식적 가능성을 실험하면서, 창극단은 내용과 형식 모든 면에서 매 시즌 새로움을 추구하는 하나의 전통을 세우고 있다. 또 싱가포르·미국·대만 등 해외 연출가와 협업하거나 영화 음악가·피아니스트·오페라 연출가·현대무용가·월드뮤직 뮤지션 등 다른 장르의 예술가들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면서 국가와 장르의 경계를 넘어서고 있는 것도 주목할 만한 변화라 할 수 있다.
전통이 어떻게, 얼마나, 혹은 어디까지 새로워질 수 있는지를 꾸준하게 증명하고 있는 국립창극단의 행보는 2022-2023 레퍼토리시즌에도 계속 이어진다. 올 시즌 레퍼토리는 크게 네 가지 트랙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먼저 지난 시즌 첫선을 보인 뒤 매력과 가능성을 확인받은 따끈한 창극 두 편을 다시 다듬어 공연하는 무대와 그간 한 번도 다루지 않았던 신작에 새롭게 도전하고, 이와 함께 형식 면에서 소리의 동시대적 감각에 초점을 맞춘 젊은 소리꾼들의 ‘절창’ 프로젝트가 연달아 진행된다. 한편 언제나 단단하고 뚝심 있게 전통과 뿌리를 지키며 창극의 변화와 도전을 든든하게 받쳐주는 <완창판소리>는 이번 시즌에도 변함없는 모습으로 하늘극장 무대를 책임진다.

국립창극단 <귀토>

한층 더 유쾌하고 한층 더 섬세하게

이번 시즌의 첫 무대는 지난해 관객들을 시원한 웃음바다에 빠뜨렸던 고선웅-한승석 콤비의 창극 <귀토>로 시작한다(2022년 8월 31~9월 4일, 해오름극장). <수궁가>의 두 주인공 자라와 토끼를 뜻하는 동시에 ‘살던 땅으로 돌아온다’는 중의적 의미를 지닌 제목에서부터 느껴지듯, 원작을 유쾌하면서도 새로운 시선으로 비틀어내는 고선웅 작가의 재치 넘치는 대사와 통통 튀는 언어유희가 허를 찌르는 신선함과 묘미를 선사하는 작품이다. 여기에 한승석의 풍성한 음악과 흥겨운 합창이 더해져 신명과 에너지 넘치는 한바탕 놀이를 펼쳐 보인 바 있다. 올해는 대본과 음악을 꼼꼼하게 다듬어 한층 더 유쾌하면서도 따뜻한 이야기로 관객을 찾아갈 예정이다.
역시 지난해 첫선을 보인 뒤 ‘창작 창극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인 작품’이라 평가받은 <나무, 물고기, 달>도 다시 한번 무대에 오른다(2022년 10월 4~12일, 하늘극장). 고선웅과 한승석 콤비가 진득하고 노련한 중견 예술가의 맛과 멋을 보여준다면, 배요섭 연출가와 소리꾼 이자람은 젊음과 성숙함 사이에 선 예술가가 함께 나눈 고민과 공감을 아름답게 펼쳐낸다. 동양의 오랜 이야기로부터 모티프를 얻어 완성한 고요하고 꿈결 같은 이야기가 깊고 맑은 소리와 어우러지며 관객을 성찰과 사유의 순간으로 이끄는 작품이다.

여전히 무궁무진한 창극의 가능성

전혀 예상치 못한 소재들로 관객들을 놀라게 해온 창극단의 새로운 시도는 이번 시즌에도 계속된다. 드라마·영화·고전비극과 창작극 등 다채로운 소재를 아우르며 창극이 다루는 이야기에 한계는 없다는 걸 증명해 온 국립창극단이 올해 야심만만하게 준비한 신작은 바로 화제의 웹툰을 기반으로 한 신작 <정년이>(글 서이레, 그림 나몬, 2023년 3월 17~26일, 달오름극장)다. 1950년대 서울의 여성국극단을 배경으로 창극 배우를 꿈꾸는 목포 소녀 정년이와 소리꾼들의 성장담을 다룬 원작 웹툰은 생생한 시대 풍경과 입체적인 캐릭터들, 정갈한 그림체로 많은 인기를 모은 바 있다. 웹툰을 창극 무대로 옮기는 것은 흔치 않은 작업이고 쉽지 않은 도전이지만, 원작 자체가 소리와 연기가 어우러지는 국극 장르를 소재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딱 맞는 만남이라고도 볼 수 있다. 또 1950년대 선풍적인 인기를 누렸지만 역사 속으로 사라진 여성국극의 흔적과 유산을 새로이 되짚어 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 있는 시도가 아닐 수 없다. 창작진으로는 전통예술 속 연극적 원형을 꾸준히 연구해 온 연출가 남인우와 창극 음악의 다양성을 보여준 이자람이 함께한다. 국립창극단에 의해 생생하게 살아난 창극 <정년이>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한편 지난해 창극 <리어>를 통해 셰익스피어가 그린 장대한 비극의 세계를 ‘물’의 철학으로 구현해 호평과 찬사를 이끌어낸 국립창극단이 올해는 셰익스피어의 희극 『베니스의 상인』을 창극으로 제작한다(2023년 6월 8~11일, 해오름극장). 2023년 한국-영국 수교 140주년을 기념하는 이번 공연은 그간 <과부들> <화전가> <벚꽃동산> 등 단단하고 묵직한 작품으로 대극장 무대를 이끌어온 이성열이 연출을 맡았고, 우리말에 대한 관심과 감각이 남다른 작가 김은성이 대본을, <변강쇠 점 찍고 옹녀> <귀토> <리어> 등에서 탄탄한 소리의 짜임새를 보여준 한승석이 작창을 맡았다. 얼핏 보면 권선징악적인 단순한 이야기 같지만, 사실 <베니스의 상인들>은 공정과 차별, 혐오 등 동시대 우리 사회와도 연결되는 뜨겁고 핵심적인 이슈들을 다루고 있으며, 어떤 시선으로 읽느냐에 따라 여러 해석이 나올 수 있는 흥미롭고 다이내믹한 작품이다. 역사와 시대를 관통하는 날카로운 글을 써온 김은성과 인간과 사회에 대한 꾸준하고도 통찰력 있는 관점으로 여운이 긴 무대를 선사해 온 이성열이 어떤 선택을 할지 호기심과 기대를 불러 모으는 프로젝트다.

국립창극단 <절창Ⅰ>
국립창극단 <절창Ⅱ>
국립창극단 <절창Ⅲ> ⓒ황필주

소리, 그 본연의 뿌리와 확장

이렇듯 소재와 연출 면에서 새롭고 다채로운 시도를 이어가는 중에도 창극단은 자신들을 이루는 가장 근원적인 요소인 ‘소리’의 전통과 뿌리를 지키고, 형식 면에서 이를 확장해 가는 노력을 멈추지 않고자 한다. 이는 이번 시즌에서도 매달 하늘극장 무대를 굳건하게 지키는 <완창판소리>와 소리 중심의 프로젝트 공연 ‘절창 시리즈’에서 확인할 수 있다. 짧게는 세 시간, 길게는 여덟에서 아홉 시간까지 계속되는 판소리 완창은 그 자체로 한 편의 공연이라기보다는 소리꾼과 고수, 그리고 관객이 함께 겪고 완성해 가는 극적 체험이다. 1984년부터 꾸준히 우리 소리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온 <완창판소리>의 올 하반기 무대는 장문희·김경호·유영애·안숙선이 올라 오롯이 소리의, 소리에 의한, 소리를 위한 시간을 선사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지난해 첫선을 보인 ‘절창 시리즈’는 젊은 소리꾼들이 펼치는 새로운 감각의 판소리 프로젝트다. 특히 이 시리즈는 서로 다른 음색과 개성을 지닌 두 소리꾼이 모여 “따로 또 같이” 각자의 매력과 찰떡 호흡을 자랑하는 것으로 시선을 모았는데, 올해는 <절창Ⅰ> <절창Ⅱ> <절창Ⅲ>로 소리꾼 세 쌍이 차례로 무대에 오른다(2023년 4월 27~28일, 5월 2~3일, 5월 6~7일, 달오름극장). 국립창극단의 명실상부한 간판스타로 떠오른 김준수와 유태평양, 남다른 존재감으로 무대를 장악해 온 민은경과 이소연, 팔색조 재능꾼인 이광복과 ‘이날치’ 밴드보컬 안이호가 매번 신선하고 참신한 콘셉트 속에서, 탄탄한 내공과 쉼 없는 노력이 느껴지는 젊은 소리의 참맛을 선보인다.
이렇듯 2022-2023 레퍼토리시즌 국립창극단은 여전히 새로울 수 있는 창극의 무한한 가능성과 전통을 통해 동시대와 호흡할 수 있는 창극의 힘, 그리고 변함없이 깊고 그윽한 우리 소리에 대한 자긍심을 확인시키는 다채로운 무대를 준비하고 있다. 재기발랄한 놀이판에 한바탕 웃음을 쏟아내도 좋고, ‘지금, 이곳’의 우리 모습을 날카롭게 비추는 이야기에 공감과 성찰의 시간을 가져도 좋고, 오롯이 우리 소리가 지닌 멋과 매력에 흠뻑 빠져보는 것도 좋다. 오늘을 살아가는 관객 개개인과 어떤 식으로든 연결될 수 있다는 점에서, 동시대와 호흡하는 창극의 젊은 전통은 올해도 계속된다.

글. 김주연 월간 『객석』 기자로 출발해 공연 현장과 이론을 잇는 글쓰기를 이어가고 있다. 여러 매체에 공연 및 예술에 관한 칼럼을 쓰면서 강의와 드라마투르기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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