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보기하나

2022-2023 레퍼토리시즌
프랑스 사례로 본 시즌의 의미
8월 31일부터 시작되는 2022-2023 국립극장 레퍼토리시즌 프로그램 발표, 이와 더불어 재개된 다양한 패키지 티켓 판매 소식을 듣고 무척 반가웠다. 공연 프로그램이 극장의 꽃인 까닭도 있지만 2012년부터 출발한 국립극장의 레퍼토리시즌이 팬데믹이라는 긴 터널을 지나 다시 출발하는 것이 기뻐서다. 이 기회에 같은 터널을 지나온 프랑스 극장들의 시즌 프로그램을 살펴보며 새로운 시즌에 대한 기대를 키워보자.

시즌 프로그램 운영의 순기능

프로그램 제작 방식에 따라서 보통 극장을 프로듀싱 시어터(제작극장)와 프리젠팅 시어터(배급극장)로 구분한다.1) 이 분류에 따르면 국립극장은 우리나라에서는 드문 프로듀싱 시어터에 속한다. 극장에 소속된 예술단체와 각 부서가 협력해 직접 제작하는 공연을 주프로그램으로 한다. 신작과 기존 완성작을 레퍼토리화하고 있기에 명칭도 레퍼토리 시즌제 프로그램이라고 한다. 소속 예술단체의 지속적인 성장을 도모하기 쉽고, 우수하고 안정적인 프로그램을 공급하기에 용이하지만, 인건비 등 고정비용과 제작 예산이 많이 든다. 2022년 현재 국립창극단·국립무용단·국립국악관현악단이 소속돼 있는 국립극장 역시 부족한 재정과 인력을 비롯한 수많은 이유로 이 전속단체의 자체 제작 레퍼토리 공연만으로 연간 프로그램을 모두 구성할 수는 없다. 따라서 시즌 프로그램은 전속단체의 공연 프로그램과 극장의 기획(공동 주최 포함) 프로그램으로 나뉘어 구성된다. 여러 날, 다수의 타 공연장을 대관하는 것도 불가한 국립극장은 프로듀싱과 기획을 통한 프리젠팅을 겸한다.
필자가 14년간 체류한 프랑스에서는 매년 5월 말만 되면 모든 공연계 종사자와 공연 애호가는 극장이 발표하는 다음 시즌 프로그램으로 인해 설렘과 기대감에 들뜨곤 한다. 그러고는 6월이 되면 한 해 동안 볼 공연 예매를 서둘러 시작한다. 극장 대부분이 한 해 동안의 공연 프로그램을 조기에 결정하고, 관중은 꼭 보고 싶은 공연을 여름 동안에 한결 저렴한 가격으로 선구매한다. 극장이 야심만만하게 준비한 예술 프로그램은 시즌이 시작되기 전에 관객을 미리 만나고, 막상 시즌 프로그램을 열면 기대되는 공연은 이미 선예매로 좌석 확보가 어려워지기도 한다. 이른바 티켓 마케팅의 가장 핵심적 기간이기도 하다. 아울러 극장 프로그램을 신뢰하는 관객과 잠재 관객을 위한 가장 중요한 서비스도 연간 프로그램을 발표하면서 시작된다.

1) 이승엽, 『극장에 대하여』, 마인드빌딩, 187~195쪽
파리 국립 오페라 극장 ⓒChristian Leiber

프랑스 극장의 2022-2023 시즌 프로그램

발레단·교향악단·합창단이 있고, 가르니에(Palais Garnier, 1875년 오픈, 2156석)와 바스티유 오페라(Opera Bastille, 1989년, 2700석) 극장 등 두 개의 오페라극장과 스튜디오 바스티유, 올리비에 메시앙(O. Messiaen) 극장 등을 사용하는 프랑스 파리 국립 오페라(Opera National de Paris)는 2022-2023년 시즌에 대부분이 자체 제작 공연으로 총 97개의 프로그램을 소개하고 있다. 1669년 6월에 창립돼 여러 극장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고, 무대기술 인력 821명을 비롯해 총 1,881명이 일하고 있는 극장이니(2019년 기준), 우리와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수많은 오페라·발레·음악회와 아동·청소년을 위한 공연 및 체험 프로그램이 이번 시즌에 포진하고 있다. 바스티유 오페라 극장에서 공연될 오페라 공연으로는, 9월 3일에 시작되는 <토스카>가 11월 26일까지 거의 석 달간 상연된다. 실상은 총 17회 상연되는데, 비슷한 기간에 같은 극장에서 다른 오페라들이 상연되기 때문이다. <마술피리>는 9월 17일~11월 19일까지 총 15회, <캐플릿가와 몬터규가>는 9월 21일~10월 14일까지 9회, <살로메>는 10월 12일~11월 5일까지 총 9회 상연된다. 3편의 오페라가 3~5일 간격으로 교대로 공연되는 것이다. 수많은 오페라 작품이 같은 방식으로 연중 공연된다. 반면, 가르니에 극장에서는 다양한 발레 공연이 중심이 되고 오페라 공연이 섞여서 각각 약 한 달간 교대로 공연되며 관객을 맞이할 계획이다.2)
대부분의 콘서트와 리사이틀은 메시앙 극장, 작은 콘서트와 아틀리에들은 스튜디오 바스티유에서 열리며, 4개 극장의 성격도 프로그램을 통해 분명히 드러난다. 약 800명의 예술가가 정규직, 시즌 계약직으로 고용되어 이 모두를 만든다.

2) 9 ~ 12월에 발레 4편과 오페라 2편(총 85회 공연), 콘서트 2회가 열릴 예정이다.
코메디 프랑세즈 ⓒcoll. Comedie-Francaise.

프랑스에서 유일하게 소속 극단을 가지고 있는 국립극장인 코메디 프랑세즈(Comedie Francaise)는 1680년 단체 창설 후, 1799년부터 지금까지 리슐리외(Richelieu, 862석) 극장을 쓰고 있다. 2022-2023년에는 총 84명의 배우가 레퍼토리 초연작 12편, 기완성작 13편을 리슐리외와 비외-콜롱비에(Vieux-Colombier, 300석) 극장, 스튜디오극장(136석)에서 공연하며, 또 다른 8편의 작품이 투어 공연을 한다. 파리 국립 오페라와 마찬가지로 소속 극단은, 리슐리외 극장의 예를 들면, 10월에 시즌을 시작하며 <갈릴레이의 생애>(브레히트 작, 10월 3일~12월 4일), <장-바티스트…>(몰리에르 작, 10월 12일~2023년 1월 15일), <벚꽃동산>(체호프 작, 10월 31일~2023년 1월 30일) 등 세 편의 연극을 각각 두 달간, 주중에 교대로 상연할 계획이다. 물론 연이어 다른 작품의 공연이 맞물려 계속된다. 매주 평균 세 편의 레퍼토리 연극 공연을 이 한 극장에서 볼 수 있다고 생각하면 되겠다. 시즌에 상연될 27명 작가의 레퍼토리 작품들은 26명의 연출가에 의해 만들어지며, 400명이 넘는 극장 스태프가 제작하고 운영한다. 외부 배우의 참여는 거의 없고, 초청 공연도 없다. 레퍼토리시즌 프로그램 제작과 운영은 이렇게 많은 재정 투자, 기술적 기반과 기획을 전제로 한다.

국립극장과 교류한 바 있는 샤요 국립무용극장(Theatre National de la Danse de Chaillot)에는 소속 단체는 없고 극장장과 함께하는 협력 예술가들만 있는데, 이번 시즌에 총 54편의 공연이 제작 또는 초청된다.3) 1878년에 건립된 1200석의 장 빌라르(J. Villar) 극장과 피르멩 제미에(F. Gemier) 극장(블랙박스, 390석) 등 두 극장에서 주로 공연되고, 모리스 베자르(M. Bejart) 소극장은 연습·실험·만남 등을 위한 공간으로 쓰인다. 참으로 다양한 정상급 공연이 기대감을 키운다. 파리 시립 극장(Theatre de la Ville de Paris)도 유사한 구조로, 연극·무용·음악 등을 제작과 초청으로 소화하고, 어린이·청소년을 비롯한 시민들을 대상으로 예술 사회활동도 함께 하는데, 올해에는 100개의 프로그램이 예고된다. 이런 두 가지 형태의 제작·기획 극장이 프랑스 공공극장 대부분의 모델로서, 수많은 공연예술이 활성화되는 데 핵심적인 기여를 한다. 그리고 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시즌 프로그램’이다.

3) 극장이 협력 예술가들과 창작하기도 하지만, 절반 이상의 공연은 예술단체와 극장이 공동 제작한다. 나머지는 초청 공연이다. 총 123명의 상근 직원 중 무대운영·기술직이 57명인 것에 주목해야 하겠다.

시즌 프로그램을 토대로 극장마다 아본느망(abonnement, 일정 숫자 공연 선구매 시 할인) 제도와 다양한 각종 회원 카드를 이용해, 관객들이 시즌 공연 티켓을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도록 제안한다. 즉, 단골 고객에게는 큰 혜택을 주고, 26세 미만의 청년층·실업자·장애인·저소득층·아동/노년 등에게도 최고의 할인율을 제공한다. 학교와 기업, 다른 문화예술기관 등이 극장과 함께할 수 있는 할인 제도와 각종 메세나를 위한 티켓 마케팅 등도 시작된다. 극장이 정한 공연 패키지가 아니라, 관객 각자가 할인 제도를 이용해서 그 나름대로 관람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게 배려하고 있다. 이렇게 관객에 대한 극장의 책임, 또 키워야 할 관객에 대한 서비스와 정책이 시즌 프로그램 발표에 매우 세세하게 녹아 있다. 국립극장의 레퍼토리시즌 프로그램과 패키지 판매 재개 발표가 더욱 반가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제 국내 극장들도 시즌제 프로그램을 통해 다시 왕성하게 공연예술의 제작·배급 활성화에 앞장서고, 유기적인 관객 개발을 실현하기를 기대한다.

글. 최준호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교수이자 연극평론가다. 예술의전당 공연예술감독과 주프랑스 한국문화원장을 역임하고 문화예술 기획자이자 연출가로 프랑스에서 레지옹 도뇌르(Legion d'honneur) 기사장을 받았다. 지난 6월, 『문화예술의 시대, 세계 무대를 열다』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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