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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에 어린 세상, 최우람
최우람은 기계 생명체 작품을 창조한다. 꿈틀대는 기계 생명체 작품에 세상의 온갖 욕망을 투영하고는 희망을 생각해 보자 제안한다. 결국, 더불어 사는 세상이기에. 우리는 함께 나아가는 존재이기에.
최우람 작가 ⓒ김도원

최우람은 욕망과 희망을 이야기했다. 인간에서 발원한 두 마음이 세상에 드러났다가 사라지고 확산하는 양상을 묘사했다. 그리고 그뿐이었다. 이건 버려야 한다거나 저건 지켜나가자는 말은 하지 않았다. 잣대를 휘두르며 상대를 다그치는 일이 예사로운 시대, 판단을 걷어낸 욕망과 희망은 낯설었다. 어떤 순간에는 자기주장을 내세우겠거니 했다. 하지만 최우람은 그뿐이었다. “얽히고설킨 세상의 단면을 그저 보여주고 싶어요. 제 작품을 통해 각자 생각하고 고민하게 되는 거죠. 결론이 서로 다르더라도 좋습니다. 다름을 존중하면서 같이 미래를 바라보는 계기가 되길 희망해요.” 인터뷰가 끝날 때까지 옳고 그르다는 말은 들을 수 없었다. 다만 최우람은 보여주었고 우리는 생각했다. 욕망과 희망이 혼재한 세상을 헤아려보기도 했다. 생각을 촉발하는 이야기들, 마음을 건드리는 말들. 그렇게 최우람이 내보이는 언어, 그의 예술은 우리가 함께 가야 하는 그곳으로 안내하고 있다.

URC-1, Motor Headlights, Steel, COB LED, Aluminium radiator, DMX Controller, PC, 296(h)×312(w)×332(d)cm, 2014 ⓒ최우람

답을 규정하지 않은 질문

그는 움직이는 기계 생명체 작품을 만든다. 2006년, 일본 도쿄 모리 미술관(Mori Art Museum)에서 ‘어바누스(Urbanus)’를 전시하면서 대중과 평단의 찬사를 받은 이래 기계 생명체 작품을 선보여 왔다. 중앙대학교 조소과를 다니던 시절, 서울 청계천에서 구한 중고 모터로 움직이는 조각 작품을 제작한 것이 시초였다. 당시엔 기계공학을 전혀 몰랐기에 5분 만에 망가졌지만, 최우람은 지금도 그날을 기억한다. “생명을 명확하게 정의하긴 힘들어요. 그 대신에 움직임을 통해 자기 삶을 살아간다는 건 분명히 알죠. 기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탄생한 뒤 작동하다 고장이 나고, 부품이 닳아 마침내 쓰임을 잃어요. 재활용돼 살아나기도 하고요. 기계의 삶 또한 인간의 그것과 다름없이 순환하는 것이지요.”
2014년 작 ‘URC-1’과 2016년 작 ‘URC-2’는 기계가 태어나서 살고 죽고 부활하는 순환을 은유한다. 어느 날 최우람은 폐차장에 나뒹구는 자동차 부품들을 봤다. 한 시절 치열하게 산 자동차는 이제 잔재가 되어 종말을 기다렸다. 그는 들여다봤다. 엔진에서 줄줄 흐르는 기름이 꼭 피 같다고 느꼈다. 몇몇 부품은 멀쩡했고, 단지 버려진 것이었다. 욕망을 더는 투영하지 않는 사물들이 퇴장을 앞둔 장면에서 욕망이 빚은 숱한 현상이 아른거렸다. 최우람은 헤드라이트(Headlight)를 모아 이어 붙였다. 그러곤 빛을 내도록 장치를 연결했다. 별처럼 둥근 헤드라이트 무더기가 별처럼 반짝였다. 한때 가치를 상실한 생명이 재차 박동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작품을 감상하는 이는 스스로 질문한다. 욕망은 무엇인가, 생명은 무슨 의미인가, 욕망과 결부한 생명을 오롯이 생명이라 부르는 일이 정말 온당한가. 최우람은 답을 규정하지 않는다. 넌지시 작품을 내놓고는, 이후 일은 관객에게 맡기고 뒤편으로 물러난다. 주장을 배제한 기계 생명체 작품은 도처에서 불거지는 욕망과 그에게서 벌어지는 생사의 양태를 또렷하게 보여준다. 최우람이 희망한 대로, 생각을 촉발하고 마음을 건드리면서.

Ouroboros, metallic material, resin, 24K gold leaf, motor, machinery, custom CPU board, 12(h)×130(Ø)cm, 2012 ⓒ최우람

인간 군상이 펼치는 세상

생명의 범주를 기계까지 확장할 만큼 시야가 너른 그에게도 인간은 유별난 존재다. 강탈하고, 지배하고, 죽이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반복한다. 오직 인간만이 수백만 생명을 앗고도 거듭 앗으려 불화와 다툼을 되풀이한다. 최우람은 그런 현실이 중첩된 세월 속 바로 오늘에 주목한다. 과거부터 쌓여온 욕망이 현실화한 현상과 사물을 세심하게 살핀다. 이를테면 농기구는 적은 인력으로 수확량을 극대화하려는 욕망이 수천 년간 진화한 결정체다. 무기도 그렇다. 과연 일어날까 싶었던 전쟁이 지구 한편을 피와 눈물로 물들인다. “사회는 시스템(System)을 구축해 문명을 발전시켰어요. 정치·종교·경제를 다 문명을 세운 시스템으로 볼 수 있죠. 긍정적인 면이 세상을 오늘에 이르게 했지만, 단점이 나날이 커진다는 사실도 외면할 순 없어요. 평화로워지고자 발명한 시스템이 평화를 짓누르는 사회가 되지 않았나, 고민해 보곤 합니다.”
2012년 작 ‘우로보로스(Ouroboros)’는 그리스신화 속 뱀을 모티프로 만든 작품이다. 허공에 매달린 뱀이 먹이를 몸속으로 집어넣는다. 입을 크게 벌렸다 닫을 때마다 먹이는 몸속으로 한 움큼씩 빨려 들어간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일까. 뱀과 먹이가 둘이 아니다. 뱀이 몸을 동그랗게 말고 자신을 먹어치우는 모습이 섬뜩하리만치 생생하다. 인간은 그러지 않았다고 누가 당당히 말할 수 있겠는지. 2018년엔 ‘핑크 히스테리아(Pink Hysteria)’로 개인들의 맹목적인 집단화를 나타냈다. 바람결에 하릴없이 나부끼는 듯 분홍 꽃송이들이 덩어리가 되어 움직인다. 개체가 모여 무리를 이루었건만, 개체는 소외되고 무리만 남았다. 저 수많은 꽃송이 가운데, 어쩌면 하나가 나일지 모른다. ‘우로보로스’와 ‘핑크 히스테리아’는 자유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시스템에 종속되길 선택하는 인간 군상을 현시한다. 인간 내면 깊숙이 숨어 인간을 이율배반의 늪으로 끌어당기는 욕망의 전모가 최우람의 작품을 통해 드러나는 것이다.

Pink Hysteria, metallic material, glass, vinyl, electronic device (CPU board, motor), 271(w)×271(d)×211(h)cm, 2018 ⓒ최우람

그러나 최우람은 희망한다. 개인의 힘이 사회를 달라지게 할 수 있느냐는 명제는 중요하지 않다. 희망하는 자체로 우리는 살아 있음을 증명하기 때문이다. 절망적으로 보자면 한없이 어두울 테지만, 희망하는 순간 절망의 바다는 희미하게나마 불빛을 보낸다. 저 등대의 빛을 향해 나아가려 할 때, 기계 생명체 작품이 그렇듯이 생명은 꿈틀댄다. “가다가 막혔대도 나쁜 일은 아니에요. 다른 길을 찾는 과정이 또 다른 희망이 되어주니까요. 제 작품에서 그런 맥락을 읽어주시기를 희망합니다.” 현재 최우람은 올 9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MMCA 현대차 시리즈 2022> 전시 준비로 바쁜 나날을 보낸다. 그는 열심히 구상했으며 최선을 다해 만든다는 말로 전시에 관한 대화를 마무리했다. 궁금했다. 어떤 작품인지, 담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작업 중이기에 자세히 설명하긴 힘들다 대답한 그가 언뜻 이런 이야기를 했다. “아무도 나를 구원하지 못하잖아요. 내가 나를 구원하는 것이죠.” 절망하는 이도, 희망하는 이도 오로지 자신임을 우리는 안다. 알면서도 다른 이가 붙잡아 주길 바라며 나를 방치하기도 한다. 알기만 하는 것과 뛰어들어 헤쳐나가는 것 사이 어디쯤에서 최우람은 가리켜 보인다. 모두가 함께 가야 하는 그곳을 안내하고 있다.

절망에서 결국 희망으로

서울 연희동 작업실에서 인터뷰하는 동안 최우람은 신중했고 종종 유쾌했다. 예술과 작품을 소개하는 그의 표정은 듣는 누구라도 몰입하게 할 정도로 진지했다. 기계 생명체 작품의 가능성을 엿본 후 청계천 공구 거리를 제집처럼 들락날락한 옛일, 스승이 되어준 공구 점포 주인들에게 기술을 전수받은 사연을 즐겁게 이야기했다. 그와 함께 고민하고 웃던 중에 깨달았다. 미국 뉴욕 아시아소사이어티(Asia Society) 미술관, 호주 퍼스 존 커틴 갤러리(John Curtin Gallery), 타이완 타이중 국립대만미술관(National Taiwan Museum of Fine Arts) 등에서 개인전을 열어 발군의 예술성을 인정받은 대가임에도 최우람은 자기를 내세우는 일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너무나 겸손하게 상대에게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말을 하기에 앞서서는 입을 다문 채 가만히 있곤 했다. 오래 묵힌 생각을 건져 올리는 과정인 것 같았다. 어느덧 작업실에는 최우람의 말과 침묵이 번갈아 어리어 갔다. 그가 잠시 자리를 비운 틈에 작업 중인 기계 생명체 작품을 둘러보았다. 저 작품들은 곧 생명을 얻는다. 최우람을 닮아 사려 깊이 생각하고 무겁게 침묵할 기계 생명체는 또 한 번 보여줄 것이다. 이렇다 저렇다 강요하지 않고, 다만 넌지시 내어놓는 세상의 단면에서 우리는 다시 우리 자신과 조우하게 된다.
“꽉 채운다면 채운 그것과 다른 생각은 떠밀려 버리겠죠. 제가 작품에 둔 여백을 같이 채워 나아가길 바라요. 그래서 함께 작품을 완성하길 바라고요. 이 지점에서 무한한 가능성이 출발하는 게 아닐까요.” 옳고 그르다는 주장은 끝내 들을 수 없었다. 그래도 좋다. 결론이 서로 다르더라도 다름을 존중하면서 같이 미래를 바라보자는 말이 소중하기에. 결국 더불어 사는 세상이기에. 그런 희망을 신중하게 말하는 최우람을 만났다. 사려 깊게 생각하고 무겁게 침묵하며 희망을 건져 올리는 최우람을, 우리는 지금 만나고 있다.

글. 김규보 『KTX매거진』 에디터. 순간과 사람에 대해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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