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선율

해금 수석 김영미가 말하는 박범훈의 ‘오케스트라 아시아를 위한 뱃노래’
뱃노래 부르며 노니는 즐거움
1994년에 작곡되어 오늘날까지 꾸준히 사랑받는 박범훈의 ‘오케스트라 아시아를 위한 뱃노래’.
국립국악관현악단, 그리고 이 ‘뱃노래’와 함께 긴 시간을 보내온 해금 수석 김영미가
그 순항의 역사에 관해 들려준다.

1994년에 작곡되어 오늘날까지 꾸준히 사랑받는 박범훈의 ‘오케스트라 아시아를 위한 뱃노래’. 국립국악관현악단, 그리고 이 ‘뱃노래’와 함께 긴 시간을 보내온 해금 수석 김영미가 그 순항의 역사에 관해 들려준다.

먼저 ‘오케스트라 아시아’는 1994년에 한국·중국·일본의 연주가들이 모여 창단한 오케스트라예요. 이때 창단 연주를 위해 각 나라의 작곡가가 민요를 주제로 곡을 썼는데, 박범훈 작곡가가 쓴 곡이 ‘뱃노래’죠. 올해로 작곡된 지 28년째네요. 이 곡을 오늘 소개하는 이유는 이 곡이 미래지향적인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연주하기 참 힘들고 좋은 곡이라서예요. 요즘에도 이 곡을 연습하는데 연주도 해석도 쉽지 않지만 연주가들 사이에서 ‘이 곡이 이렇게 좋았어?’라는 말이 오가요. 그래서 이번 기회에 소중하고 좋았던 곡을 짚어보면 어떨까 싶었어요.

곡을 들으며 뱃노래답게 전반적으론 물 흐르듯 자연스레 흘러간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어떤 이유로 ‘힘들고 좋은 곡’이라 생각하시는 걸까요?

자연스럽게 들리게 만들기까지가 힘든 거죠. 곡 안에서 박자가 굉장히 자주 변하는데 거기서 박자도 잘 세워야 하고, 연주가끼리 시선 맞추면서 호흡도 맞추고, 작아졌다 커졌다 하면서 역동적인 바다를 그리기도 하고, 뱃놀이의 클라이맥스로 가기 위해 멜로디를 수없이 반복해야 해요. 듣기에는 참 좋지만 연주하는 사람은 정말 팔이 다 떨어져 나갈 정도로 힘들어요. 큰 그림과 메시지가 보이니까 그걸 쭉 따라가긴 하지만 마치 축구선수가 풀타임으로 경기를 뛰고 난 다음에 완전히 소진되는 느낌이에요. (웃음)

그 힘듦을 견디면서 몰입하게 만드는 ‘큰 그림’을 설명한다면요.

박범훈 작곡가는 한국·중국·일본 세 나라의 음악이 세계적으로 순항하길 희망하며 이 곡을 썼어요. 처음에는 소라 소리로 배의 출항을 알리고, 파도와 만나기도 하지만 순항할 때는 굿거리장단이 물 위를 노니는 듯 즐거움을 줘요. 소금·가야금·피리 등 파트마다 솔로를 다 한 번씩 연주하면, 서로의 연주에 취해서 어느 순간부터 흥청흥청 함께 노는 것 같죠. 그러다 풍랑이 오면 다시 바닷길을 헤치고 나아가고요. 정말 그림 그리듯이 만들어진 작품이에요.

청중 입장에서도 공감이 돼요. 듣다 보면 어느새 ‘어기야 디어차…’로 시작되는 뱃노래가 입가를 맴돌더라고요. 자연스럽게 몸의 반응을 끌어내는 힘이 있는 것 같아요. 영상을 봤을 때 가끔 연주가들이 미소를 띠고, 지휘자가 어깨춤을 추기도 했고요.

그렇죠. 그래서 이 곡이 대곡인 거예요. 좋으니까 웃고, 또 같이 흐름을 따라가기에 편하니까 그런 움직임이 나오는 거죠.

대대적인 선언에 가까운 도입부 이후, 해금 솔로를 들을 수 있습니다. 이 부분을 연주하실 땐 어떠셨나요?

초반부 해금 솔로는 굉장히 아름답게 들리지만 사실 난도가 있는 부분이에요. 해금 파트가 셋으로 나뉘고, 첫 파트가 멜로디를 멋있게 들려줘야 하는데, 해금은 음량이 좀 작잖아요. 중국의 얼후처럼 쇠줄을 쓰면 큰 소리가 나겠지만 해금은 명주실을 쓰니까요. 근데 그걸 파트를 나눠서 연주하다 보니 아무래도 음량이 조금 아쉽죠. 아픈 손가락 같은 거예요. 파트별로 한 스무 명씩 같이 하면 잘할 수 있을 텐데(웃음) 하는 생각도 들고요. 그래도 아름답게 해금 솔로를 뽐낼 수 있는 부분이죠.

아름답게 들리지만 연주하기 어려운 해금 파트 솔로 부분 악보

전반적으로 뱃노래 가락을 여러 차례 주고받으면서 곡이 진행됩니다. 곡 전체를 둘러봤을 때 특히 매력적인 부분이 있을까요?

곡 중간에 소금-양금-가야금-대금-해금 솔로로 이어지는 서정적 부분이 있어요. 악기 하나하나 귀 기울여 들을 수 있는 부분이에요. 아마 지금 공개된 영상은 대부분 국악관현악 편성으로 연주한 것일 텐데, 오케스트라 아시아가 초연할 때는 이 부분을 각국의 악기로 함께 연주했었어요. 소금은 중국의 디즈로, 양금은 비파, 가야금은 일본의 고토로. 물론 중국·일본 음악가들의 연주는 아무래도 조금 어색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들이 최대한 국악의 멋을 살리려 하고, 지휘자의 호흡을 읽어내려고 하면서 나오는 그 아름다운 소리가 정말 눈물 날 정도로 감동적이었어요. 그렇게 세 나라의 악기가 연결되는 경험을 했기 때문에 이걸 국악관현악으로 할 때도 여전히 큰 감동이 밀려와요. 막내 단원이었을 때부터 수석이 된 지금까지의 여정도 떠오르고요. 저는 이 부분이 뱃노래의 ‘꽃’이라고 생각해요.

소금(당적)에서 해금까지 이어지는 솔로 부분 총보

중국·일본 연주가가 뱃노래 장단을 어려워해서 박범훈 작곡가가 술 한잔 권하며 노래를 먼저 가르쳐줬다는 일화가 있던데요.

네, 맞아요. 말로 해서 이해시키기 어려우니 술 한잔 권하면서 노래로 불러주고, 박수도 치면서 같이 흥을 느낄 수 있게 했죠. 박범훈 작곡가는 내면에 있는 무언가를 끌어내려고 시도했어요. 박자가 왜 안 맞느냐고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인간적으로 접근한달까요. 지금 연습을 30분 더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일단 사람 대 사람으로 소통하자는 것이 박범훈이라는 작곡가의 철학인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니까 연주가끼리 통역도 필요 없어지는 순간이 오더라고요. 연주를 들려주면 되고, 무슨 이야기하는지 알겠다 싶고요. 정말 음악 하나로 소통이 된다는 걸 느꼈어요.

‘뱃노래’를 포함해서, 해금 악보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포인트가 있을까요.

있죠. 너무 힘든 부분. (웃음) 사실 해금 연주에서 가장 힘든 게 트레몰로인데 ‘뱃노래’ 처음부터 딱 등장해요. 여기선 모래를 촥 뿌리듯 소리를 내야지 하나하나 다 들리게 연주하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트레몰로가 많은 곡을 할 땐 밥 많이 먹고, 영양제라도 하나 먹고 에너지를 많이 비축해서 해야 해요. 테크닉이 많고, 악보가 복잡하고, 이런 건 오히려 더 쉬워요. ‘악보가 너무 한가한 거 아니야?’ 싶은 곡들이 오히려 더 어려워요. 큰 그림을 보면서도 감정을 표현하고, 와중에 연주가의 호흡이 전부 다 느껴지니까 섬세하게 접근해야 하죠. 그런 부분 중에서도 앞부분이 가장 압도적이긴 해요.

‘뱃노래’ 첫 부분, 해금 파트보

이전에 『미르』(구 ‘월간 국립극장’)와 인터뷰하면서 해금은 인간의 목소리와 가장 닮은 악기라 표현해 주셨습니다. 저는 종종 악기를 신체에 빗대어 생각해 보곤 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해금은 성대와 목소리처럼 넓은 가동 범위와 표현력을 지닌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몸의 근육처럼 상당히 빠르게 반응하는 악기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맞아요. 악기를 양손으로 계속 쥐고 있으니까 어디 하나 힘을 풀 수가 없어요. 한편 너무 많이 쥐면 소리에 울림이 안 생기니까 적당한 밀고 당기기, 힘을 빼주고 다시 잡고를 잘 조율해야죠. 정말 노래, 목소리라는 게 내가 성대를 얼마나 열고 닫느냐에 따라 ‘호흡’을 달리하게 되는 거잖아요. 해금도 그런 호흡에 무척 예민하고, 또 소리나 외부 자극에도 반응이 매우 즉각적으로 나타나요. 내가 무언가를 제대로 인식하기 전에 이미 음정이 변해 있는 거죠. 그래서 연주가가 스스로 중무장하지 않으면 외부 요소 때문에 집중이 흐트러질 수도 있어요. 해금은 예민한 만큼 섬세하게 다뤄야 하는 악기예요.

목소리에 대한 이야기에 이어서, 가장 아름답게 노래해야 할 때 해금이 활약하는 것 같더라고요. 보통 국악관현악에서 해금은 어떤 역할을 맡아왔나요?

예전에는 거의 대부분 주선율을 연주했어요. 10년 전까지만 해도 거의 그랬죠. 하지만 최근에 만나는 곡들에서는 해금의 역할이 좀 더 넓어졌어요. 우선 해금은 지속음을 낼 수 있는 악기니까 다른 관현악 악기들의 잔향이 사라지기 전에 연결해 주는 역할을 할 수 있어요. 또 조율이 따로 필요하지도 않고, 음정 변화도 자유로워요. 그런 장점을 살려서 국악관현악의 음향을 매끄럽게 잇는 역할을 하기도 하죠. 또 어떤 분들은 해금이 갖고 있는 다양한 표현력에 집중해요. 갈매기나 개, 닭 같은 동물 소리로 시작해서 연주가의 기량만 가능하다면 뭐든 표현해 볼 수 있으니까 그런 독특한 표현이 필요할 때 유독 많은 역할을 주시더라고요. 해금의 활용도는 무궁무진한 것 같아요.

오늘 ‘뱃노래’와 더불어 추천하고 싶은 곡이 있을까요?

2019년 <3분 관현악>에서 연주했던 이고운 작곡가의 ‘마지막 3분, 무당의 춤’이라는 곡이요. 이 곡은 정말 그냥 국악이에요. 저희 모두 신나게 연주했는데 그게 객석에서도 다 보였다고 하더라고요. (웃음)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첫 시작부터 지금까지 쭉 함께해 오셨습니다. 마지막으로 국악관현악의 현재에 관한 생각을 들려주세요.

이제까지 쉼 없이 달려온 것 같아요. 거침없이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연주력도 많이 성장했고요. 지금 어떤 느낌이냐면,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들이 성인이 되고, 대학을 막 졸업해서 이제 프로의 길을 가기 시작하는 것 같아요. 사실 이제까지는 외부의 도움도 많이 받아왔어요. 예를 들자면, 저음역을 보완하기 위해 더블베이스를 들여오는 게 어느 순간 너무 자연스러워졌죠. 하지만 이제는 국악기만으로도 그런 소리를 만들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어떤 음역이든 충분히 할 수 있는 여력을 갖췄다고 생각하거든요. 또 국악이 중심이 되는, 좀 더 다양한 작업에 도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미래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을 수 있을 만한 거요.

글. 신예슬 비평가, 헤테로포니 동인. 음악학을 공부했고, 『음악의 사물들』을 썼다. 종종 기획자, 드라마투르기, 편집자로 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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