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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을 바라보는 예술
예술을 통한 세계인의 연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러시아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가 강해지면서 전쟁 종식을 촉구하는 세계인의 연대가 이루어지고 있다. 예술계도 마찬가지다.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공연진은 러시아 지휘자와 피아니스트를 무대에서 내렸고, 칸영화제는 러시아 대표단을 초청하지 않았다. 오랜 역사 속 예술이 전쟁을 바라보는 시선을 미술사 곳곳에서 찾아봤다.

예술가가 던진 평화의 메시지

전쟁의 참상과 비극을 기록한 예술 작품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스페인 궁정화가였던 프란시스코 고야(Francisco Jose de Goya y Lucientes)의 판화 시리즈 ‘전쟁의 참상(Los desastres de la guerra)’이다. 그는 1808년부터 1814년까지 나폴레옹의 프랑스군이 스페인을 침략해 벌인 전쟁에서 목격한 참상을 82점의 판화로 제작했고, 그가 목격한 인간 본성에 내재한 광기와 잔인함을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사지가 잘려 나무에 매달린 군인들과 적군에 의해 처참하게 희생당하는 민간인들의 비극을 기록한 이 판화들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다. 이 이미지들은 전쟁이 가져온 인간성의 말살과 비극에 대해 천 마디의 말보다도 더 강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프란시스코 고야의 ‘전쟁의 참상’ 판화 시리즈 중 39번 ⓒ위키피디아커먼즈

파블로 피카소(Pablo Ruiz Picasso)는 1937년 스페인 내전 당시 독일 나치군이 스페인 게르니카 지역 일대를 비행기로 폭격하는 참상을 보고 이를 넓이 약 8미터, 높이 3미터 50센티미터에 달하는 대형 회화 작품 ‘게르니카(Guernica)’로 남겼다. 그는 폭격으로 상처 입고 절망으로 절규하는 사람들을 흑백 톤의 제한된 어두운 색과 특유의 큐비즘 기법으로 표현했다. 피카소의 유명한 작품 중 하나인 ‘게르니카’는 전쟁의 비극과 종식에 대한 인류의 염원을 강한 시각적 언어로 전달한다. 피카소는 또한 6·25전쟁의 참상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그가 1951년에 그린 ‘한국에서의 학살(Massacre in Korea)’은 알몸의 여자들과 아이들에게 총을 겨누고 있는 군대를 표현한 것으로 게르니카와 마찬가지로 전쟁의 비극을 예술로 기록하고 폭력에 저항하고자 했던 피카소의 의지를 담고 있다.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와 화합으로 휴머니즘이 나아갈 길을 이야기하는 현대미술 작가로 뱅크시(Banksy)를 먼저 떠올리게 된다. 그는 대포에서 포탄 대신에 꽃이 쏟아져 나오거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가로막은 장벽이 허물어지고 아이가 모래 장난하는 그라피티를 그려서 두 나라의 화해를 염원하기도 했다. 또한 시리아 내전으로 인해 목숨을 걸고 해양로를 통해 탈출하는 난민들을 구하기 위해 직접 선박을 구매해 이들의 목숨을 구하기도 했다. 현대 예술가들이 전하는 메시지는 통역이 필요 없는 만국 공용어가 되어 널리 퍼져나가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호리아트스페이스 갤러리에서 우크라이나 난민 구호 기금 마련을 위해 개최한 전시회 <Art In Faith>의 전시 전경 ⓒ호리아트스페이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대하는 현재 예술계의 움직임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같은 SNS는 단순히 시각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에서 한층 확장돼 더욱 적극적으로 전 세계인의 참여를 끌어낸다. 전쟁으로 인해 파손 위험에 놓인 우크라이나 유물들에 대한 자료를 디지털화해 저장하는 작업이 컴퓨터 스크린 앞에 모여든 여러 나라 박물관 관계자들의 참여로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베네치아 비엔날레 우크라이나 파빌리온을 지원하는 움직임에 세계의 예술인들이 동참하고 우크라이나 출신 예술가들을 초청하는 레지던시 프로그램으로 미술 기관들의 연대가 이루어지고 있다.
한국의 많은 예술인도 다양한 움직임으로 전쟁의 종식을 호소하고 삶의 터전을 잃고 피난을 떠나야 하는 우크라이나 난민을 돕기 위해 마음을 모았다. 여러 상업 갤러리는 주목받는 작가들의 전시 작품 판매 수익금을 우크라이나 난민 캠프에 보냈고, 제주아트센터에서는 어린이날 100주년 기념 전시에 맞춰 전쟁으로 신음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어린이를 생각하며 한국카툰협회 회원들과 함께한 <NO WAR 평화카툰전>과 <우크라이나 평화기원 예술체험> 행사를 개최했다.

우크라이나 지하 벙커에서 열린 바이올리니스트 일리아 본다렌코의 연주에 응답한 세계 바이올리니스트들 ⓒ유튜브 채널 ‘ViolinistsSupportUkraine’ 영상 캡처

예술가가 전면에서 우크라이나를 돕기도 한다. 예술가들은 우크라이나를 돕기 위해 전시에 작품을 기부하고, 작품의 판매 수익을 우크라이나로 보낸다. 우크라이나의 지하 벙커에서 연주하는 바이올리니스트 일리아 본다렌코(Illia Bondarenko)에 응답하며 전 세계 94인의 바이올리니스트가 줌(Zoom)으로 참여한 1분 30초의 영상은 열흘 만에 32만 명이 시청했다. 이는 러시아의 무차별한 침공을 비판하고 우크라이나를 돕기 위한 모금 운동에 세계인들의 참여를 끌어냈다.
예술계는 우크라이나 모금 활동에 대체불가능토큰(NFT)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우크라이나 국민에 대한 지지를 상징하는 예술가의 그림을 NFT로 판매한 수익금이 피난민에게 보내졌으며, 글로벌 메타버스 플랫폼 스페이셜(Spatial)은 NFT 거래소 오픈시(OpenSea)와 손잡고 인도주의적 예술 전시회 <평화와 통일의 전시>를 열기도 했다. NFT 분야에서 매우 빠른 확장을 경험 중인 한국 미술계의 젊은 작가들은 더욱 적극적인 태도로 모금에 동참하고, 평화를 기원하는 연대를 젊은 세대에게 호소한다. 지금 일어나는 전쟁에 대해 무심하면 안 된다고, 억울한 죽음과 허망한 상실을 인지하고 이를 멈추기 위해 함께 노력하자고 이야기한다. 이들이 창조한 시각 이미지들은 SNS를 통해 정치가들의 호소보다도 더 멀리, 더 강하게 전달되고 있다.

갈등과 분쟁을 끝내기 위한 가치관과 담론을 공유하는 이 시대에 반(反)인류적인 전쟁이 일어나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이 매우 안타깝다. 독일의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Immanuel Kant)는 1795년 그가 집필한 『영구 평화론』을 통해 전쟁은 악이며 영구 평화야말로 인류가 도달해야 할 궁극적 목표이고, 이는 세계인의 ‘연대’ 방식을 통해서만 지켜낼 수 있다고 말했다. 소리치지 않지만, 그 어떤 외침보다 강하고 인류의 마음에 경각심을 심어주는, 그 어떤 무기보다도 강력한 힘을 지닌 언어로 호소하는 예술가들의 연대에 동참하며 하루빨리 전쟁이 끝나고 다시 평화가 찾아오길 기원해 본다.

글. 최선희 20년 이상 미술계에서 일하고 있으며 10년 전부터 독일과 서울에서 초이앤초이 갤러리를 운영하고 있다. 유럽에는 한국 작가들을, 한국에는 전도유망한 해외 작가들을 소개하고 있으며 『중앙일보』를 비롯한 한국 매체에 미술 관련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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