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한 정신과 의사가 1845년에 낸 동화 『더벅머리 페터(Der Struwwelpeter, 데어 스트루벨페터)』를 1998년에 영국에서 뮤지컬로 만들었어요. 뮤지컬을 보지는 못했는데요, 그 사운드트랙 앨범을 좋아합니다. 원시미술 같다고나 할까요? 아니면 우리나라 민화 같았다고 할까요? 제 기준에서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서양 뽕짝’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시각적으로 말한다면 그림자에서 반사되는 빛이 연상되기도 했어요. 사운드트랙을 담당한 타이거 릴리스의 멤버들이 오페라를 전공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전공과는 다르게 이들의 음악을 들으면 각종 신선한 재료에 묵은지와 젓갈을 넣어서 만든 비빔밥 같은 느낌이 들어요.
이 앨범은 국악을 비롯해 레게·펑크·덥 같은 마이너 장르를 특색 있게 융합해서 좋아합니다. 앨범을 들으면서 저한테는 울림·떨림·끌림·스밈·섬김 이런 느낌이 전해졌는데요, 이것들이 한데 모이니까 거룩하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왜, 백년가게들 있잖아요? 그런 오래된 식당에서 파는 설렁탕이나 곰탕을 먹는 기분도 들었습니다.
타이거 릴리스의 앨범도 그렇고, 이 앨범도 마찬가지인데요, 저는 주로 길거리 좌판이나 중고 시장에서 앨범을 사곤 합니다. 어떤 앨범을 먼저 듣고 사본 적이 거의 없어요. 이런 곳에서 앨범을 살 때면 보물찾기하는 기분도 들어요. 낯선 익숙함, 낡았지만 새로운 느낌도 받을 수 있고요. 아무튼 이 앨범은 ‘생산과 생성의 차이’ ‘접속에서 접촉’ ‘검색이 아닌 여행’ ‘여행은 곧 노이즈’ 이런 생각을 하게 했어요. 음악 스타일이 오묘하고, 가사가 없어서 ‘이 아티스트는 뭘 생각하면서 이 음악을 만들었을까?’ 이런 생각도 하게 되고요. 요즘 말로 멍을 때리고 싶을 때 듣기 좋은 앨범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앨범 역시 중고 시장에서 구했는데요, 이 앨범을 들으면서 ‘짓다’라는 단어가 떠올랐어요. 많은 사람이 식당 음식보다 집에서 먹는 밥을 좋아하잖아요? 어머니의 애정이 듬뿍 담겨 있어서 그렇겠죠? 보통 밥은 짓는다고 하죠. 만드는 게 아니라. 이 ‘짓다’라는 단어에는 마음이 깃들어 있는 것 같아요. 집짓기·글짓기·농사짓기 등 마음이 들어간 것을 ‘짓기’라고 하는 듯합니다. 이 앨범 역시 그런 느낌을 줬어요.
클래식은 시대를 초월한 형형색색의 음악, 오랫동안 계속될 음악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이유로 클래식을 즐겨 듣고, 모든 작곡가를 좋아해요. 이 앨범은 제목에 나와 있듯이 비발디의 작품을 아이리시 음악으로 표현하고 있어요. 이 독특함이 저한테는 밥으로 다가왔어요. 된장찌개 맛, 김치찌개 맛, 밥 짓는 냄새가 느껴졌다고나 할까요? 한 그릇의 밥은 자연의 젖줄이고, 우주의 열매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퓨전을 이룬 앨범을 들으면서 ‘전생명체(Holobiont)’라는 용어가 떠올랐어요. 하나의 생명체를 규정할 때, 그 개체에는 미생물 같은 다른 생명체가 함께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개념이에요. 이런 퓨전 작품을 접할 때면 ‘너 없는 나도 없고, 나 없는 너도 없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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