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가상연재

제1회 국립극장 공연예술 평론가상 당선작 요약문
장려상 수상작 : 장기영
평론 활동이 활발하지 않은 국내 공연 분야의 현실 개선을 위해 국립극장은 지난 2021년 제1회 국립극장 공연예술 평론가상 공모사업을 실시했다. 그 결실인 변영미·조순자·장기영 수상자 3인의 당선작 모음집이 최근 공개되었다. 당선작 모음집에서 발췌한 요약문 시리즈를 통해 신인 평론가에 의해 기록된 지난 공연의 추억을 되살려보자.

환상으로써 실재하기: 현실을 환기시키는 무대
- 국립창극단 <흥보展전> 리뷰

팬데믹은 무대예술의 새로운 방향성을 재고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최근의 무대예술들은 무대와 객석의 각각에 수행성의 결핍을 가져왔다. 이 글이 다루는 <흥보展전>은 새로운 무대 미학의 방향성을 고민하는 동시에, 무대예술의 본질에 다가간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공연이다. 특히 <흥보展전>의 무대는, 평면성의 세계를 뚫고 나온 이미지가, 어떻게 관객들의 인식 영역에서 입체화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또한 이들이 활용하는 ‘스크린’은 기존의 무대 미학을 극복함과 동시에, 무대에서만 수행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오브제였다. 글의 본문은 ‘전시’와 ‘스크린’이라는 키워드로써 공연을 분석한다.
우선, 이 공연이 모티프로 삼는 ‘전시’를 살펴본다. 이 공연은 기존의 흥보 서사를 변주하는 전략으로써 ‘이해할 수 있는 놀보’와 함께 ‘자신의 부를 전시하는 흥보’를 묘사한다. 특히 후자는 ‘복’을 ‘선행으로써 정당하게 얻어낼 수 있는’ 것처럼 그린다는 점에서 주요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흥보展전>은 화려한 이미지들로 기존의 사물 오브제를 대체하고, 동시에 ‘제비나라’라는 서사적 설정으로써, 이 서사의 배경을 환상적 시공간으로 구현한다. 공연이 중점을 두고 있는 이 환상성은, 관객들을 능동적으로 만든다. ‘이러한 일이 있었음’을 고지하는 공연이 아니라, 관객이 현실에서 감각했던 문제들을 ‘환기시키는’ 공연이 되기 때문이다. 관객의 현실과는 동떨어진 놀보와 흥보의 전형성, 그리고 이들이 욕망하는 ‘부’의 세계가 결국에는 허구에 이른다는 결론은, 결국 우리 현실에서 경합하는 이 욕망들을 멀리서 바라보며 우리의 모습을 자각하게 만든다.
또한 <흥보展전>이 주요하게 사용하는 ‘스크린’이라는 오브제는 앞서 ‘실재를 환기시키는 공연’으로서의 방향성과 맞물리는 무대 미학적 요소이다. 이 글에서는 스크린이 구현하는 화려한 이미지들과 퍼포머들의 의상, 동선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분석한다. 이 과잉된 이미지들의 합이 어떻게 공연의 주제의식과 긴밀히 연결되는지를 살핀다. 또한 제비의 앵글을 비추는 스크린과, 창가 가사의 자막을 입력하는 스크린을 주요하게 바라본다. 이는 평면적이었던 무대의 관점을 입체화하는 방식이자, 현재의 관객들과의 소통을 중요시하는 창작진의 인식 반영물이다.

내가 그를 바라볼 때, 그 또한 나를 바라보고 있다
- 연극 <로드킬 인 더 씨어터>, <보더라인> 리뷰

이 글은 재현의 관습에 대한 문제의식에서부터 비롯되었다. 재현이 실재하는 것들을 왜곡한 채로 고정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의식한다. 올해 개막한 연극 중 국립극단의 <로드킬 인 더 씨어터>(이하 로드킬)와 크리에이티브 바키와 프로듀서그룹 도트, 레지덴츠테아터가 공동 제작한 <보더라인(Boderline)>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재현적 관습들을 해체하고, 재현의 의미를 재고한다. 두 작품을 함께 읽음으로써, 재현의 관습은 어떻게 극복될 수 있는지, 그리고 재현의 윤리는 어떻게 다시 새로 쓰여야 할지 그 힌트들을 얻고자 한다.
우선, <로드킬>은 ‘재현’에 얽힌 과잉된 가치 부여들을 의식하며, 재현 자체를 ‘행위’로 분절화한다. 재현에 부여된 과도한 의미들을 폐기하며, 그간 재현이 간과해 왔던 것이 무엇인지를 되짚는 것이다. 이를 증명하기 위하여, 배우들의 행동과 발화를 위주로 살펴본다. 이들이 구현하는 파편화되고 패턴화된 언어와 부조화되는 몸짓은, 내러티브를 구현하기 위하여 무대 위의 언어-몸짓을 연결해 오던 관습들을 답습하지 않는 방식이다. 또한 이들의 ‘자막’은 주요한 상연 요소이다. 휘발되기 쉬운 배우들의 언어를 이미지로 받아들이게 하기 때문이다. 이미지가 된 텍스트(자막)는, 관객들이 대사를 따라갈 수 있게는 하지만, 과도한 의미를 찾아낼 수는 없게 한다. 또한 <로드킬>은 비인간동물들을 주요하게 다루는데, 이때 주목할 점은 배우들이 이 비인간동물들을 ‘흉내 내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상화의 표상이 되는 ‘흉내’는 과장된 행위로써 대상의 실재 행위를 오도한다. 이들은 ‘뭉뚱그려져온’ 비인간동물의 재현을 회복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 회복은 관객들에겐 도리어 ‘불쾌함 혹은 불편함’이다. 비인간동물들이 피사체로 재현되지 않으며, 그들이 하나의 비유로 우리의 인식 영역 안에 아늑하게 안착되지 않기 때문이다. <로드킬>은 이렇듯 기존의 ‘극적인(dramatic)’것에 침윤된 우리의 관극 경험을 자각하게 만든다.
한편, <보더라인>은 무대가 ‘나’와 ‘타인’을 어떻게 다루는 공간이 되어야 하는지를 고민하고 있다. 베를린과 서울을 오가며 제작, 공연된 이 연극은 탈북민들과 동독 출신 배우를 인터뷰함으로써 ‘경계’의 개념을 분석한다. 이들은 여전히 ‘단절된 감각’이 그들 내면에도, 그들이 속한 사회에도 자리 잡고 있음을 지적한다. 그러나 이 완고해 보이는 단절과 경계는, 명료한 실선이 존재한다는 믿음에서 파생된다. <보더라인>은 이 신화를 부순다. 서울과 베를린 사이라는 시공간의 격차, 스크린과 무대의 단차, 이들은 이 사이를 ‘잡음’으로 연결한다. 특히 이들의 선긋기 에피소드는 매끄럽고 균질적인 실선의 존재를 믿는 우리의 인식에 균열을 냄과 동시에, 실재와 재현이 어떻게 서로를 의식하며 연결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여기서 ‘무대’는 실재하는 이들의 언어를 ‘대신’ 전할 수 있지만, 그들의 ‘구체적인’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공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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