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선율

국립국악관현악단 아쟁 수석 박기영과의 대화
꽃상여를 보내는 마음으로,
황호준의 ‘바르도’
생과 사의 경계, 다른 세계로 향하는 그 길의 이야기를 담은 황호준 작곡가의 ‘바르도’. 아쟁 수석 박기영은 이 곡에서 기쁨을 머금고 있는 슬픔을, 그리고 소중한 이가 무사히 좋은 곳에 도착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찾는다. 이 음악에 각별히 공감해 온 박기영이 ‘바르도’에 관해 들려주는 이야기를 만나보자.

황호준 작곡가의 ‘바르도’는 어떤 곡인지, 선곡의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신과 함께>라는 영화에도 나오듯이, 우리나라 장례 의식에는 49재가 있습니다. 망자가 49일 동안 이승에서 보낸 삶을 되돌아보고 천도되기 전까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머무르는 시간을 말하는 거죠. 티베트에서는 이 시간을 바르도라고 하고요. 황호준 작곡가의 ‘바르도’는 바로 이런 이야기를 담은 음악으로, 고인의 영혼이 좋은 곳으로 향하는 여정을 음악으로 풀어낸 곡입니다. 저는 황호준 작곡가의 음악을 원래 좀 선호하는 편이에요. ‘바르도’와 더불어 ‘공간이동’ ‘이슬의 시간’ 등 국립국악관현악단이 위촉한 여러 작품이 있는데 이 중에서도 ‘바르도’가 여러모로 표현이 잘된 곡이라고 생각해서 소개하게 됐습니다. 또 관객분들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곡이라는 생각도 있었고요.

2016년 초연 이후 국립국악관현악단에서도 꽤 자주 연주한 곡입니다. 최근에 지휘자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이 작품을 연습하고 있다고 말씀해 주셨는데요, 첫인상은 어떠셨나요?

이 곡에는 ‘새야 새야 파랑새야’라는 민요가 들어가 있습니다. 많이들 알고 계신 민요예요. 국악관현악을 접하다 보면 전통민요를 테마로 삼은 곡을 꽤 자주 만날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을 처음 접했을 때도 마찬가지로 그런 곡을 썼구나 싶었는데, 연주하면 할수록 그런 테마를 넘어서는 매력이 정말 많더라고요. 연주가 끝난 뒤에도 선율이 귀에서 빙글빙글 맴돌고, 또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곡 자체가 고급스럽고, 우아하고, 섬세하다고 할까요. 특히 악기 각각의 음색을 살리려는 노력을 많이 했다고 느꼈는데, 악기별로 솔로 파트를 왜 그 부분에 줬는지, 그 섬세한 세팅에 점점 더 공감하게 됐죠. 그러다 보니 점점 빠져들어서, 이 작품에 묘하게 홀려들어 가게 되더라고요. 숲을 이루려면 나무 한 그루, 한 그루가 모여야 하잖아요. 이 곡을 연주할 때면 나무 한 그루 같은 솔로 파트를 지나다가 어느새 거대한 숲에 도착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바르도’는 말씀하신 것처럼 생과 사의 경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담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셨나요?

각자의 종교와 세계관에 따라 다 달라지겠지만, 많은 종교에서 사후세계에 관해 이야기하잖아요.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도 있고, 기독교에서 말하는 천국도 있고요. 저는 개인적으로 우리의 삶이 이곳에서 끝나버리는 게 아니고, 저승이 분명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얼마 전에 제 가족 중에 좋은 곳으로 가신 분이 계시기도 하고, 또 이 곡을 많이 연주하고 이 곡에 대해 생각하면 갈수록 더 그렇게 느끼게 됩니다. 전혀 없는 이야기를 음악으로 만들진 않았을 것 같은 거죠. ‘바르도’는 여러모로 이곳에서의 시간이 다한 뒤에, 죽은 뒤에 하늘로 가기 위한 천도의 과정을 곡으로 잘 담아낸 것 같아요.

그런 포인트를 특히 잘 느끼신 부분이 있을까요?

연주하다가 꼭 어느 순간 제가 가만히 듣게 되는 부분이 있어요. 아쟁 솔로 부분이고 분명히 슬픈 선율인데, 거기에 묘하게도 기쁨이 섞여 있어요. 이 비유가 적절할지 모르겠지만 예전에 상엿소리라고, 꽃상여가 나갈 때 하는 것들이 있잖아요. 고인을 좋은 곳으로 모셔다 드리면서 이제는 슬픔 없는 좋은 곳으로 웃으면서 가시라고 노래도 하고, 가끔은 흥도 띄우고 꽃도 뿌려드리죠. ‘바르도’의 아쟁 선율이 딱 그런 것 같아요. 그 선율을 들으면 영혼이 좋은 곳으로 갈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정말 좋아요. 떠나시는 분도 ‘나 좋은 곳으로 가니까 너무 슬퍼하지 말고 걱정하지 말아라’ 이렇게 말하는 듯한 마음도 느껴지고요.

337~342 마디, 대아쟁과 소아쟁 솔로 부분

또 아쟁은 주로 손으로 현을 뜯는 피치카토 주법과 활로 현을 긋는 아르코 주법으로 연주하지만 또 활등으로 현을 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나무로 현을 치는 거니까 ‘텅텅텅’ 튀는 소리가 나요. 그런데 ‘바르도’에서는 활등이 아니라 말총 부분으로 치는 부분이 있어요. 더 부드럽고 따뜻한 음색이 나오고, 활등으로 칠 때랑 느낌이 매우 달라요. 꼭 그 영혼의 여정을 보살피는 느낌이랄까요. 그런 특정 부분의 주법을 자세히 들여다봐도, 이야기에 맞게 잘 어우러진다는 인상을 받았죠.

슬픔이 기쁨을 머금고 있는, 그런 복합적인 감정을 잘 담고 있는 부분이군요. 또 인상 깊게 남아 있는 부분이 있을까요?

곡 초반에 해금 솔로 부분이 있는데, 그 선율과 아쟁을 비롯한 현악 베이스 파트가 어우러지면서 분위기를 잡아가요. 악기들이 그렇게 만나는 부분이 저는 참 아름답더라고요. 또 그 부분은 해금 솔로가 연주되기 전에도, 아쟁 파트와 만난 후에도 리듬적으로 흥미로운 흐름이 이어집니다. 3/4박자와 4/4박자가 교대로 이어지다가 잠시 느릿한 템포로 3/4박에 머물고, 그다음에 12/8 박자로 또 바뀌어요. 그런 식으로 변화 기점을 만드는데, 황호준 작곡가가 이런 시간감을 굉장히 잘 조절하는 것 같아요.

흥미로운 리듬 변화를 보여주는 68~99마디 해금·아쟁 파트보

또 리듬적으로도 흥미로운 흐름을 만드는 와중에 음색을 어우러지게 하는 이 부분이, 영혼을 좋은 곳으로 인도하기 위한 이야기의 한 단계인 것 같기도 합니다. 저희가 저승 세계에 가보지는 않아서 모르지만 오래된 이야기에 따르면 저승으로 가는 길에서 온갖 다리를 건너며 많은 곳을 거쳐 간다고 하잖아요. 그 길목에서 또 다른 영혼을 만나기도 하고요. 저는 이 부분을 들으면서 한 영혼이 여러 길을 거쳐 가고, 또 다른 영혼을 만나고, 즐겁게 가다가 때론 또 힘든 시간을 보내고, 그런 변화무쌍한 여정이 음악적으로 표현된 것 같다고 느꼈어요. 물론 이게 맞는지는 모르겠지만(웃음)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이야기와 음악적 구조가 잘 맞아떨어지는 만큼 연주가에게도, 관객에게도 이 곡이 정말 힘 있게 다가올 것 같습니다.

네 그렇죠. 곡을 보면 은근히 부딪히는 화성이 많아요. 곡의 첫머리부터 불협화음으로 시작하죠. 하지만 가면 갈수록 관객들이 익숙한 ‘새야 새야 파랑새야’ 민요 선율을 발견할 수 있고, 내가 같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그렇게 음악을 통해서 무언가를 함께 경험하고 공감할 수 있게 곡이 잘 설계된 것 같아요. 또 이 곡을 듣다 보면 아무래도 조금은 차분해지죠. 가까웠던 사람의 부고를 떠올리게 되기도 하고, 먼저 좋은 곳으로 떠난 가족 생각도 나고요. 또 이 곡 말고도 황호준 작곡가가 민요를 사용한 다른 곡도 많습니다. 서도민요 중에서도 ‘금다래타령’ ‘느리개타령’ ‘씨름타령’ ‘풍구타령’ 이런 것들로 곡을 썼어요. 그런데 그 민요를 가져다 쓰더라도 그 선율을 그대로 얹혀서 쓰는 게 아니라 이걸 다양하게 변주시키고 발전시켜서 음악을 만드는데, 제가 봤을 땐 그게 정말 고급스러워요. 제가 꼭 이렇게 이야기하지 않아도 워낙 훌륭한 작곡가이시지만, 저는 특별히 그런 표현이 참 좋더라고요.

국립국악관현악단에서 다뤄온 여러 음악 중에서 주로 어떤 곡을 선호하셨나요?

황호준 작곡가를 좋아하는 이유와도 연결될 텐데요, 저는 이 곡 말고도 또 추천하고 싶은 곡이 박범훈 작곡가의 ‘뱃노래’였어요. 경기뱃노래를 테마로 한 곡인데, 뱃노래도 우리 관객분들이 많이 알고 계시죠. 이 곡도 뱃노래를 그냥 가져온 게 아니라 그 안에서 다양한 박자와 템포 변화를 보여줍니다. 사람들이 많이 아는 선율에 기반하지만 그걸 똑같이 하지 않고, 다채롭게 변형해서 다르게 듣게 하는 곡들을 좋아하는 편이에요. 굿거리로 하던 민요를 자진모리로 바꿔서 하면 또 다르고, ‘아리랑’도 계속 빨라지며 전조하면 한층 다른 분위기로 즐길 수 있는 것처럼요. 저 개인적 취향으로는, 음악적으로 다양성을 확보하면서도 대중에게 다가갈 수 있는 곡들을 선호해요. ‘이렇게 들으니까 참 색다르다’ 이런 느낌을 주는 곡들이요.
물론 실험적이면서 현대적 면모가 집중적으로 드러나는 곡들도 있죠. 국립국악관현악단의 <리컴포즈>와 <마스터피스> 시리즈가 딱 그런 편인데, 간혹 어떤 곡들은 저희도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꽤 걸리는 경우가 있어요. 그럴 땐 듣는 관객분도 힘들 수 있겠다는 마음이 생기곤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런 실험을 멈출 순 없어요. 반대로 너무 재밌고 흥겹기만 한 곡에 치중하는 것도 문제죠. 그 사이에서 익숙한 것과 새로운 것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곡이 좋은 것 같아요.

국악관현악이라는 장르에 대한 생각을 들려주세요.

예전엔 ‘국악’ 하면 지겹고 재미없다는 인상이 대부분이었잖아요. 레퍼토리도 비슷비슷했고요. 하지만 요즘은 정말 없는 편성이 없어요. 전통민요부터 정가, 판소리까지 다 각자의 방식으로 동시대적 흐름을 받아들이고 있고, 퓨전 팀도 많아서 장르적으로도 풍성해졌죠. <풍류대장>이나 <조선판스타>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만 봐도 엄청나고요. 저희 국립국악관현악단에서도 꽤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어떨 땐 왜 이렇게 해야 하나, 꼭 이걸 해야만 할까, 이해하기 힘든 것도 많지만, 레퍼토리 개발을 멈출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 함께 각자의 자리에서 연구하고 고민하는 과정이 이어지고 있으니까요. 국립국악관현악단이 들려줘야 할 음악이 많은 것 같아요. 전통적인 색깔도 진하게 보여주지만, 또 국악으로 이런 연주가 가능하구나, 이런 현대적인 음악을 매력적으로 들려줄 수 있구나, 앞으로 이런 것들을 보여줘야겠죠.

모더레이터. 신예슬 음악비평가, 헤테로포니 동인. 동시대 음악에 관한 의문으로 비평적 글쓰기를 시작했다. 음악학을 공부했고, 『음악의 사물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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