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다섯

국립창극단 <절창Ⅱ>
진정 소리에 취하고픈 이들을 위해
각기 다른 소리 내력을 지닌 두 배우가 국립창극단에서 10년 가까이 자기만의 필모그래피를 쌓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같은 무게로 무대를 책임지며 온전히 자신의 소리를 들려주는 자리에 함께 선다. 이 둘의 소리가 어떤 시너지로 우리를 사로잡을지 벌써부터 기대가 앞서는 순간이다.
국립창극단 <명색이 아프레걸>에서 박남옥 역을 맡은 이소연

2013년 같은 해에 입단했다. 햇수로 10년 차를 맞는다. 그동안 여러 작품에 동반 출연했다. 때론 민은경에게 초점이 맞춰졌고, 때론 이소연에게 초점이 맞춰졌다. 둘 다 잘 해내서, 대개 칭찬을 받았다.

이소연의 ‘여성 서사’ vs. 민은경의 ‘소년 서사’

그럼 두 사람은 어떤 역할에 어울렸고, 어떻게 주목받았을까? 이소연은 ‘여성 서사’의 주인공에 특화돼 있다. 이소연의 여성 서사는 스펙트럼이 넓다. <변강쇠 점찍고 옹녀>의 옹녀, <명색이 아프레걸>의 박남옥이 모두 이소연에 의해서 리얼리티가 살아 있는 존재로 부각됐다.
민은경은 어떤가? 젊은 창극 배우 중에서 배역의 스펙트럼이 가장 넓은 배우라면 단연 민은경이다. 그가 ‘소년 서사’가 가능한 보기 드문 배우이기 때문이다. <화선 김홍도>에서 소년 역할을 잊을 수가 없다. 남녀를 초월하고, 시대를 초월한 모습이었다. 마치 예전 그림 속에 등장하는 신선이나 고사(高士)를 따르는 선동(仙童)과 같은 이미지였다. 아마 장르를 초월해 이런 퍼스낼러티를 만들어낼 수 있는 배우는 민은경이 유일하지 않을까? <나무, 물고기, 달>에서의 ‘소년’ 역할도 인상적이었다. 그녀가 출연한 작품은 왠지 모르게 성장드라마 같은 느낌이 든다.
이런 두 사람이 <절창Ⅱ>에서 맞붙는다. 2021년 <절창>이 대단했다. 김준수와 유태평양이 ‘수궁가’라는 작품에서 만났다. 참 잘했으나, 대결의 느낌은 좀 적었다. 이번엔 각각의 장기를 들고 와서, 상대의 눈치 볼 것도 없이 제 개성을 거침없이 발휘한다.

수리성의 ‘만첩청산’ vs. 철성의 ‘불 지르는 대목’

민은경은 ‘춘향가’요, 이소연은 ‘적벽가’다. 사랑의 서두를 알리는 민은경의 ‘만첩청산’과 이소연의 ‘적벽강, 불 지르는 대목’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두 사람의 소리 대결에서 극치는 바로 이 대목에 있을지 모른다. 민은경의 소리는 미려하면서 옹골차고, 이소연의 소리는 담백하면서 속 깊다. 둘 다 판소리 성음의 여러 특성을 두루 포용하고 있으나, 민은경은 ‘수리성’이요, 이소연은 ‘철성’이다. 민은경의 소리는 걸걸하고, 이소연의 소리는 단단하다.

‘달고 가는’ 민은경 vs. ‘맺고 푸는’ 이소연

이소연은 ‘맺는’ 소리가 좋고, 민은경은 ‘다는’ 소리가 좋다. 국악에서 기경결해(起經結解)라는 말이 있다. 내고(起) 달고(經) 맺고(結) 푸는(解) 것은 장단의 질서이기도 하지만, 소리꾼의 소리를 들어보면 각각 위의 네 질서 중에서 특히 잘하는 대목이 돋보인다. 민은경은 내면서 달고 가는 소리가 좋다. 소리를 가지고 가는 품새가 구성지다는 뜻이고, 그런 소리를 통해서 이야기를 계속 궁금하게 만드는 능력자란 말이다.
반면, 이소연은 분명하게 맺으면서 후련하게 풀어낸다. 이건 두 사람이 각각 걸걸한 수리성과 단단한 철성의 소유자라는 것과도 연관이 있다. 요즘 말로 한다면, 민은경은 핫(hot)하고, 이소연은 쿨(cool)하다고도 할 수 있다.
민은경은 목포 출신이요, 이소연은 광주 출신이다. 두 소리꾼은 어린 시절부터 여러 선생님의 가르침을 두루 수용하면서 점차 자신의 소리를 만들어가는 과정에 있다. 그런데 그들의 소리를 들었을 때, 선연하게 떠오르는 두 명창이 있다.
목포의 안애란 명창이 민은경에게 대물림되고 있고, 광주의 송순섭 명창이 이소연에게 대물림되고 있다. 민은경은 이에 더해서, 성우향 명창 문하에서 소리를 갈고닦았고, 이소연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에서 안숙선 명창에게 소리를 배우고 익혔다. 예전 판소리 귀명창이라면, 두 사람의 소리를 들으면서 대번 그 특징을 통해서 출신을 구별할 수도 있으리.

민은경의 ‘끓인’ 소리 vs. 이소연의 ‘익힌’ 소리

예전 어르신들은 소리와 음식을 종종 비교했다. 나 또한 그런 흐름에 따라 두 소리꾼의 소리를 비교해 봤다. 이 둘의 특징을 아는 이라면 이런 비유에 공감할 것 같다. 민은경의 소리가 갈치조림의 양념처럼 ‘풍성한 느낌’이 살아 있는 소리라면, 이소연의 소리는 소고기육전을 둘러싼 달걀과 기름의 조화처럼 ‘고급진 느낌’이 전달된다. 상대적으로 광주보다 목포가 음식도 간이 센 것처럼 민은경의 소리 또한 그런 느낌이다. 물론 모두 원재료의 맛이 살아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도 있다.
또 민은경의 소리에는 여러 식재료가 풍성하게 담긴 냄비가 ‘보글보글 끊는’ 느낌이 있다. 다채로운 맛이 함께 융합돼 어우러진 소리를 구사한다. 이소연의 소리는 ‘자글자글 익힌’ 느낌이 있다. 마치 기름진 번철과도 같다. 분명 한데 어우러져 같이 있음에도, 각각의 맛이 쏠쏠하게 살아 있는 소리다.
두 사람 모두 이렇게 음식에 비유하면서 소리의 가치를 설명하는 것이 가능할 만큼, 두 사람의 ‘소리의 맛’이 독특하다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어 보인다.

국립창극단 <나무, 물고기, 달>에서 소년 역을 맡은 민은경

절창: 판소리도 아닌 것이, 창극도 아닌 것이

<절창>이 성공한 이유는 무엇일까? 고산 윤선도 선생이 ‘오우가’에서 대나무를 가리켜 말하길,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라고 했다. 2021년 <절창>이야말로 그랬다. 창극 공연과도 달랐고, 일인의 판소리 공연과도 달랐다. ‘판소리’와 ‘창극’ 공연의 ‘교집합’을 만들어냈고, 그 장점을 두루 살려냈다.
이건 판소리도 알고, 창극도 아는 남인우 연출만이 해낼 수 있는 특장(特長)이다. 특히 <절창>에선 미장센을 잘 살려냈다. 매우 모던한 느낌의 구조물이 유연하게 움직이게 하고 그런 흐름이 판소리를 방해하지 않을뿐더러 이야기의 흐름과 같이 이어지는 느낌이었다. 과연 <절창Ⅱ>의 미장센은 어떨지 기대된다.
남인우 연출의 특징을 한 가지 더 말한다면, 배우를 살리는 연출이라는 점이다. 필자는 우리나라 전통예술(창극)은 연출이 없는 것이 아니라, 연출이 안 보일 때 더 가치를 증명한다는 점을 누누이 강조해 왔다. 연출이 안 보여야만 배우가 더 살 수 있다! 현재 활동하는 연출가 중에서, 이에 가장 근접한 이는 남인우라고 본다. 연출적 테크닉을 숨길 줄 아는 지혜로움이 있는 연출가이다.

창극 = 창(唱)×창(倡)

창극은 궁극적으로 ‘소리의 예술’이고, ‘배우의 예술’임에도, 이런 사실이 어느 순간 ‘연극만 아는 연출’에 의해서 무참하게 훼손된다. 지난 세기의 창극은 ‘唱劇’이라는 한자로 표기되는 경우가 더 많았지만, 때로는 ‘倡劇’이라고도 표기했다. 이걸 보면 창극이 정말 어떤 극이어야 하는지를 정확히 알 수 있다. 두 글자의 기본이 되는 昌은 ‘창성할 창’이다. 日(날 일)과 曰(가로 왈)이 위아래로 합쳐져서 매우 안정적인 느낌을 준다.
여기에 口(입 구)가 붙거나, 사람 인(人, ?)이 붙는다. 창극은 분명 극(劇)이지만, 이에 앞서서 입을 통해서 그려내는 소리(唱)이고, 광대라고 불린 배우(倡)라는 사람을 통해서 전달되는 예술이라는 점을 확인하게 되는 지점이다. 창극(唱劇)이자 창극(倡劇)이기에, 소리를 하는 배우가 살아 있어야 함은 매우 분명한 사실이다.
<절창>은 창극에서 배우가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를 확실하게 알리는 공연이 될 것이다. 또한 이렇게 ‘창극의 특징을 수용하고, 판소리의 특징을 수용하면서’ 만들어지는 공연 형태를 통해서, 지난 세기 판소리와 창극의 중간 형태였던 ‘입체창’의 또 다른 모습으로 성장, 발전할 가능성도 보여준다.

제2의 김성녀, 제2의 안숙선

국립창극단의 민은경과 이소연은, 국립창극단의 계보를 잘 이어가고 있다. 누구는 민은경을 ‘제2의 안숙선’이라고 하고, 누구는 이소연을 ‘제2의 김성녀’라고 한다. 작고 다부진 체구에서 서슬이 살아 있는 ‘통성’이 나온다는 면에서, 안숙선과 민은경을 같이 보는 것이리라. 또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뛰어난 연기력의 소유자라는 점에서, 장르를 불문하고 어떤 무대에서든 제 역할을 확실히 하면서 존재감을 살려낸다는 점에서, 김성녀와 이소연을 같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주 다르게 연결해야 할 것 같기도 하다. 가사의 전달력이 분명하고, 담백하면서도 품격 있게 소리를 이끈다는 점에선, 이소연이 안숙선의 대물림으로 보인다. 또 무대에선 한 명의 연기자이지만, 무대를 넓게 보면서 해당 작품에서 자신의 역할을 정확히 안다는 측면에서 본다면, 김성녀의 역량을 이어받은 소리꾼은 단연 민은경이다. ‘대배우’ 김성녀가 그랬듯이, 민은경도 언젠가 모노드라마의 주인공이 되고, 연기에서 연출로 영역을 넓혀주길 기대해 본다.

곡풍(谷風)은 소연이요, 해풍(海風)은 은경이라

민은경의 ‘춘향가’와 이소연의 ‘적벽가’는 <절창Ⅱ>을 통해서, 또 다른 모습으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 작품을 통해서 소리꾼이 만들어내는 ‘소리의 이면’을 보고 소리꾼을 더욱더 깊게 응시하면서, 두 소리를 비교하면서 듣는 기쁨에 빠져들 것이다.
그런 것은 무궁무진할 텐데, 한 마디만 귀띔하면 이렇다. 민은경이 유달산이요, 이소연은 무등산이다. 두 산을 좀 안다면, 두 사람의 소리가 얼마나 다른지도 들으면서 한결 빠르게 짐작할 수 있으리. 유달산이 있기에 목포가 있고, 무등산이 있기에 광주가 있다!
두 사람의 소리도, 지금 이렇게 서도 다른 독특한 ‘산’으로 만들어져 가고 있다. 언제가 당신이 무등산 서석대에 오른다면, 이소연의 곡풍(谷風) 같은 소리에 더욱 취할 것이요, 유달산 노적봉이 보이는 지점에 다다라선, 민은경의 해풍(海風) 같은 소리에 매우 반할 것이다.

글. 윤중강 1985년 제1회 객석예술평론상으로 등단한 38년 차 현업 평론가다. 연출가이자 축제 예술감독으로 영역을 확장하며 언제나 현재진행형의 삶을 산다. 누구보다 사람 냄새나는 솔직한 글쓰기를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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