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

국립무용단 <회오리>
경계를 넘어선 예술의 힘
처음부터 끝까지 군더더기 없는 춤과 음악, 미장센이 조화를 이루는 <회오리>. 핀란드와 한국 최고의 창작진이 완성한 이 작품은 국립무용단의 레퍼토리 중 가장 감각적이고 섹시한 작품이다. 초연 이후 8년이 지난 지금, 국립무용단은 <회오리>의 홈그라운드인 해오름극장으로 돌아와 다시 한번 무대에 오를 준비를 하고 있다.

이유 있는 스테디셀링

2014년 초연한 <회오리>는 국립무용단이 1962년 창단 이래 52년 만에 처음으로 해외 안무가와 협업한 작품으로 기획 단계부터 주목을 받았다. 특히 안무가가 국내 무용 팬들에게도 잘 알려진 핀란드 출신의 테로 사리넨(Tero Saarinen)이어서 상당한 기대를 모았다. 프랑스 현대무용의 대모로 꼽히는 카롤린 칼송(Carolyn Calson)이 인정한 무용수로 독보적 스타일을 가진 그는 네덜란드 댄스 시어터, 이스라엘 바체바 댄스 컴퍼니 등 세계 최정상급 무용단과 활동해 온 안무가로 더 알려져 있다.
제작 초기, 한국 전통춤에 기반을 둔 국립무용단과 해외 현대무용 안무가의 만남에 우려의 시선이 모인 것도 사실이지만 <회오리>는 보란 듯 이 같은 걱정을 불식하는 데 성공했다. 한국춤의 원형에서 파생된 이국적이면서도 깊이 있는 움직임으로 평단과 관객에게 호평받은 것이다. ‘자연스러운 움직임’에 누구보다 진심인 테로 사리넨은 국립무용단과의 첫 만남에서 깊은 호흡과 우아한 선, 낮은 무게중심이 주는 매력에 놀라움을 표현했다. 결국 본질적인 자연스러움이라는 자신의 춤 철학을 바탕에 둔 채, 한국춤의 뿌리를 잃지 않는 섬세한 표현을 더했고, 땅의 기운에 순응하는 깊은 호흡으로 발디딤 하는 국립무용단원과 공감을 이끌어냈다.
한국춤의 원형과 이국적 움직임의 조화를 보여준 <회오리>의 성공적인 초연은 국경을 넘어선 예술적 교감이 가능하게 했다. 유럽 무용계의 거장이자 칸 댄스 페스티벌 전 예술감독을 맡았던 브리지트 르페브르(Brigitte Lefevre)가 2015년 페스티벌 개막작으로 <회오리>를 선택한 것이다. 관객에게 새로운 예술과 만남의 기회를 제공하고 싶었던 그는 “한국 전통춤이지만 현대성을 바라보는 ‘움직이는 전통’을 담은 작품”이라며 작품을 높이 평가했다. 물론 그 안에 우여곡절도 있었다. 개막 일주일 전, 파리 테러로 인해 일부 극장이 잠정 폐쇄되고 문화계의 각종 행사가 취소된 것. 하지만 페스티벌은 예정대로 진행됐고 국립무용단은 예술혼으로 프랑스 국민을 위로했다. 또한 노재팬 운동까지 번지며 한일 관계가 극단적인 대립 양상을 보였던 2019년, 일본 가나가와예술극장은 일본과 핀란드의 우호를 다지는 기획 초청 공연으로 한국과 핀란드의 합작품인 <회오리>를 선정하며 3국의 우호를 다지는 자리로 그 의미를 확장했다. 국내에서도 세 차례의 재연 무대를 통해 어느 무대에서나 빛나는 국립무용단의 대표 레퍼토리로 자리매김했다.
‘과거로부터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다’는 공통분모를 가진 사리넨과 국립무용단의 협업은 한 번의 시도로 끝나지 않고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다. 이를 눈여겨본 해외 유수 극장은 초연 이후 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회오리>를 초청하기 위해 끊임없는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세계 어느 무대에 올려도 손색없음을 검증받은 <회오리>는 국내 공연 이후 9월, 작품의 또 다른 홈그라운드라고 불리는 핀란드로 해외 공연을 떠난다. 핀란드 최초 무용 공연장인 헬싱키 댄스 하우스(Dance House Helsinki)가 올해 2월 개관한 이후 첫 해외 초청작으로 <회오리>를 선정한 것이다. 테로 사리넨은 핀란드에서의 공연이 “전쟁으로 상처받은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해 주는 작품이 될 것”이라 전하며 경계를 넘어서 예술로 소통하며 완성된 <회오리>에 내재된 위로의 힘을 상기시켰다.
이는 단순한 국가 교류 행사가 아닌 한국과 핀란드 간 예술적 협업의 진정한 결실을 완성한다는 점에서 더 큰 의미를 지닌다. 또한 공연 전, 국립무용단의 전통 레퍼토리를 핀란드 시민에게 선보이는 사전 공연도 기획하고 있어 다시 한 번 세계 무대에 한국 무용의 매력을 알리는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음악·조명 그리고 의상이 이끄는 ‘원초적 움직임’

21명의 무용수와 함께 <회오리>를 빛내는 또 다른 주인공, 바로 작품을 완성하는 음악·무대·조명·의상이다. 테로 사리넨은 작품의 모든 요소를 조화롭게 표현하기 위해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온 핀란드 최고의 제작진을 투입시켰다. 조명과 무대 디자인을 맡은 미키 쿤투(Mikki Kunttu)는 북유럽 특유의 간결하지만 감각적인 미장센을 보여준다. 무대 자체는 단순하지만 흑과 백의 대비가 강렬한 조명을 통해 입체적이고 꽉 찬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노란색 댄스 플로어 위엔 무용수와 뮤지션들이 대칭을 이뤄 서로 마주 보게 해 관객의 시선을 무대로 집중시켰다. 직선적이고 강렬한 동작, 정적인 호흡이 조명에 의해 뒷받침되는 것이다.
흑과 백의 그러데이션이 아름다운 의상은 에리카 투루넨(Erika Turunen)이 디자인했다. 한복을 떠올리게 하면서도 모던한 의상은 때로는 바람처럼, 때로는 물처럼 흐르는 듯한 느낌을 살려 제작됐다. 특히 이번 공연엔 새롭게 제작한 의상을 입고 무대에 오를 예정이라 더욱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음악은 전통을 소재로 독특한 구조 쌓기를 통해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구축해 온 장영규가 맡았고, 박순아(가야금)·나원일(피리)·이승희(소리)·천지윤(해금)이 라이브 음악을 펼쳐 제의적 춤사위에 생동감을 더한다. 핀란드 특유의 감성이 묻어나는 간결한 미장센이 상상력을 자극하는 장영규의 음악과 만나 유연한 흐름(flow)을 극대화한다. 춤은 무게중심을 땅에 두고 외연을 확장하는 다양한 표현 속에서 정중동이 수없이 교차하는데, 음악도 미니멀한 사운드로 태고의 원시적인 힘을 느끼게 한다.

21명 무용수가 일으키는 새로운 회오리

이번 <회오리> 공연에서는 보다 밀도감 높은 춤 에너지를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조안무 헨드리키 헤이킬라(Henrikki Heikkila)가 5월 초 한국을 방한, 조안무 국립무용단 김미애와 함께 안무에 한 번 더 손길을 더하고 무용수에게 섬세한 디렉션을 제시했다. 지난 8년 동안 국립무용단원의 몸에 축적된 표현력은 관객에게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다.
3년 만에 국내 무대에 다시 오르는 만큼 캐스팅의 변화도 줬다. 작품을 이끄는 ‘샤먼’ 역할로 조세 몽탈보(Jose Montalvo)의 <시간의 나이>에도 참여했던 박기환이 새롭게 캐스팅됐고, 젊은 무용수 이태웅과 이도윤까지 합세해 무용수 21명이 구슬땀을 흘리며 연습에 임하고 있다. 이번 6월 공연은 해외 투어를 앞두고 있는 만큼, 한껏 기량을 뽐낼 준비를 마친 국립무용단원의 <회오리>를 국내에서 먼저 만나볼 수 있다는 데 더욱 기대가 크다.

글. 김영숙 공연기획팀 국립무용단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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