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고전여행

판소리 열두바탕을 찾아서
봄 향기와 함께 떠오른 새로운 기억
코끝이 시릴 정도로 찬바람 부는 겨울이 지나가고 봄비에 흙냄새가 뽀얗게 올라오면 그저 앙상하기만 했던 나무에 꽃눈이 맺히고 매화가 하나둘 피기 시작한다. 그러면 눈 깜짝할 사이 노란 산수유꽃과 하얀 이팝나무꽃이 피고, 눈 닿는 곳마다 분홍색 벚꽃으로 물든다. 그리고 그 광경을 보고 설렘 가득한 사람들의 얼굴이 꽃보다 더 아름다울 때, 봄이 정말로 우리 곁에 와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In Search of Lost Time)』에 나오는 마들렌 냄새처럼, 우리의 오감은 몸에 서려 있는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우리가 봄을 촉촉한 흙내음과 꽃향기로 기억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말 그대로 ‘봄 향기’를 뜻하는 ‘춘향(春香)’이라는 존재도 마찬가지다. 그것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봄바람에 마음 한구석이 간질간질해지는 느낌이 들지 않는가. 매년 오뉴월 장미가 필 때쯤이면 곳곳에 춘향 이야기도 활짝 피어난다. 올 5월 국립창극단에서도 창극 <춘향>을 올렸고, 같은 시기 남원에서도 춘향제가 진행됐다. 5월이 지나고 6월이 되면 단오가 있다. 춘향이 그네를 뛰다 몽룡과 만난 바로 그날 말이다.

화려한 봄꽃처럼 풍성한 ‘춘향가’의 묘사

‘춘향가’에는 우리 오감을 만족시키는 묘사가 풍성하게 들어가 있다. 이는 마치 한 폭의 그림을 감상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방자가 몽룡에게 남원 경치를 자랑할 때 “동문 밖 나가면 금수청풍에 백구는 유양하고, 녹림간 꾀꼬리 환우성 겨워 울어 춘몽을 깨우는 듯, 벽파상 오리는 완완이 진퇴하여 은린옥척을 입에 물고 오락가락 노는 거동은 평사낙안이 분명하고”라고 말하는 대목은 마치 김홍도의 ‘마상청앵도’나 민화 ‘화조도’를 생각나게 한다. 또 이몽룡의 눈에 비친 춘향은 “백석청탄 새 비 뒤에 목욕하고 앉은 제비 사람보고 날으려는 듯, 주순을 반개하니 모란화 한 송이가 아침 이슬 머금었다 피고자 벌리려는 듯, 별로 단장한 일 없이 천자방용 국색”으로 묘사되는데, 이는 마치 신윤복의 ‘미인도’에서나 볼 법한 인물이다.
한편, 춘향의 방 안 광경은 “화류문갑 대모책상 내칠편 일권이며, 시전 주지 서전 주지 금색지로 같이 말아 시부편에 올려놓고, 담배서랍 재떨이며 문왕정 타기 등물 단정하게” 벌여놓은 광경이 ‘책거리’ 그림 한 폭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하다. 그런가 하면 신관 사또 행차는 또 어떤가. “구름 같은 벌련 독교 좌우청장 번뜻 들고, 모란 새김의 완자창 네 활개 쩍 벌리고, 걸음 좋은 유량달마 덩덩그렇게 실었는데 일산우산은 일광을 가리(이상 인용은 장자백 창본 『춘향가』)”고, 신연하인들과 좌우급창들을 대동하고 오는 규모가 마치 정조대왕의 ‘화성능행도’에서 보는 것만큼이나 호화롭다.
춘향과 몽룡이 사랑을 나누며 서로 업고 노는 ‘사랑가’ 대목은 그 자체만으로 남녀 간의 연정을 은근하게 드러낸 신윤복의 풍속화나 더 과감하게는 춘화까지도 연상시킨다. 그런데 여기서 춘향과 몽룡은 “둥글둥글 수박 웃봉지 떼뜨리고 강릉 백청을 따르르 딸아 씰랑 발라버리고 붉은 점만 가려 그것을 네가 먹으랴느냐?(동초제 김연수 ‘춘향가’)”처럼 달콤한 과일의 맛을 끌어들여 사랑을 노래한다. 두 사람이 환희에 찬 애정을 오감을 동원해 몸에 각인하는 과정이 곧 ‘사랑가’인 것이다.

한때는 사랑받았던 ‘열녀’ 춘향

그렇다면 춘향이라는 존재는 우리에게 어떻게 기억되고 있을까. 아마도 오랜 기간 우리는 그녀를 ‘열녀’라는 존재로만 기억해 온 듯하다. 부당하게 수청을 요구하는 변 사또 앞에서 끝까지 저항해 자신의 의지를 관철한 인물이라는 점에서 그녀는 숭고한, 그리고 신화 같은 존재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춘향이 죽음을 불사해 몽룡과의 의리를 지켜냈다는 사실은 나라를 잃은 민족의 눈에는 더욱 의미 있게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춘향제가 처음 열린 시기는 일제 식민 통치기였다. 사람들이 허구의 인물인 춘향의 사당을 건립하고 춘향의 제사를 지내게 된 배경에는 고통을 감내한 끝에 충분한 보상을 받은 그녀의 이야기를 통해 심리적 보상을 얻기 위한 이유가 있는 셈이다.
춘향 사당에 걸린 초상화는 김은호가 맡아 그렸는데 ‘명랑하고 총명하며 의지가 강하여 절개 있는 처녀’로 그리는 것이 조건이었다. 김은호가 그린 춘향 초상은 당대 유통되던 딱지본 『춘향가』의 표지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녹의홍상의 삼회장저고리를 입은 모습으로 제작됐다. 이 춘향 초상은 자신의 욕망에 솔직하고 봉건사회의 한계에 도전하는 한 여성의 서사가 ‘조신한 색시·처녀·열녀’의 신화로 굳어지는 과정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 뒤로 우리가 춘향을 열녀로, ‘춘향가’를 춘향이 정절을 지킨 이야기라고만 기억하게 되면서 오늘날 이 작품은 그것이 가진 역동적 에너지를 상당 부분 잃어버리게 됐다.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서

‘몽룡은 영웅이며 춘향은 열녀’라는 정도의 기억에서 ‘춘향가’에 대한 이해는 한 걸음 더 나아가야만 한다. ‘춘향가’에 대해 잊힌 기억을 새롭게 끄집어내는 일도 필요하다.
춘향은 양반인 성 참판과 기생인 월매 사이에서 태어난 인물로 현숙한 여염집 처자 같은 모습 한편으로 생기발랄한 평민적 면모도 가지고 있다. 작품 초반 방자가 몽룡의 명을 받고 그네 뛰고 놀던 춘향을 일방적으로 데리고 가려 할 때, 춘향은 왈칵 성을 낸다. 그런데 그 광경이 꽤 흥미롭다. 춘향은 “그 자식 미친 자식일세. 도련님이 나를 어찌 알아 부른단 말이냐?” 하고 톡 쏘며, 방자의 면전에 대고 “개씹으로 나서 소젖 먹고 돼지 등에 업히어 자라난 두더지 잡년의 자식아”(장자백 창본 『춘향가』)라고 욕을 한다. 허허 웃으며 “글공부한다더니 욕 공부만 했구나”라는 방자의 말 그대로다.
그런가 하면 신관 사또가 춘향을 옥살이시킨 이유도 자세히 살필 필요도 있다. 사또는 단순히 춘향이 자신의 수청을 거부했다는 사실만으로 그녀를 잡아 가둔 것이 아니다. 춘향이 수절을 선언하면서 “사또도 국운이 불행허여 도적이 강성허면 (…) 두 인군을 섬기려오?”라고 대들며 사또의 추태를 역모에 비유한 것이 화근이었다. 따라서 사또와 춘향 간 이와 관련한 법리 싸움이 한바탕 펼쳐지기도 한다. 사또가 “대전통편에 모반대역하는 죄는 능지처참하라 하고 거역관장하는 죄는 엄치정배 의당이니 네 죽노라 한을 마라”라고 엄하게 고하자 춘향이 “대전통편에 유부녀 강간하는 죄는 어찌하라 하였소?”(정광수 창본 『춘향가』)라고 당차게 대응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러한 춘향의 항거가 모든 이에게 공감받는 것만은 아니다. 몽룡과의 의리를 고집스럽게 지키는 춘향을 아니꼽게 보는 시선도 ‘춘향가’에서는 분명 존재한다. 춘향을 잡아 오라는 사또의 명을 받고 출동한 사령들이 “그동안 기생 딸 주제에 양반집 처자처럼 도도하게 굴더니 꼴좋다”라며 고소해한다. 또 매를 맞고 반죽음이 된 춘향 옆에서 “드디어 우리 고을에 열녀 났으니 경사 났다”라며 어깨춤을 추는 사람도 있다. 춘향이 옥중에서 꾼 꿈을 풀이해 주러 찾아온 한 봉사는 춘향이 미색이라는 소문을 익히 듣고서 흑심을 품고 은근슬쩍 춘향의 다리를 더듬기도 한다. 춘향을 대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태도와 시선은 사실 그동안 ‘춘향가’에 대해 우리가 망각하고 지낸 장면들에 담겨 있다.
‘춘향가’는 우리가 기억하는 것만큼 납작하지 않다. 오히려 그 속에는 당대 회화 작품 속에서 볼 법한 다채로운 볼거리와 오감을 자극하는 묘사들, 그리고 춘향을 바라보는 제각각의 시선과 욕망이 한데 어우러져 있다. 하나의 인물과 하나의 사건에 대한 살아 숨 쉬는 반응이 생생하게 기록됐다. 우리가 기억하는 만큼 ‘춘향가’는 새로운 생명을 얻을 것이다.

글. 이채은 이채은 판소리 연행의 의미화를 몸의 관점에서 살핀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고전을 통해 현재의 삶을 바꿀 수 있기를 희망하며 글을 읽고 쓰고 있다.
그림. 김지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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