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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 달 특집
드라마·영화 속 가족의 변화
흔히 부모와 자녀가 같이 살아야 정상 가정이라 여겼는데 요즘엔 생각이 달라지고 있다. 혈연이 아니라도 가정을 이뤄 살고, 아이를 입양하거나 자기 핏줄이 아닌 아내의 아이를 잘 양육할 수도 있다. 사람만이 가족 구성원이 되는 것이 아니라 동·식물도 가족이 될 수 있다. 가족이라고 하면 반드시 밀착된 관계를 생각하지만 느슨한 관계에서 가족 이상의 정서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혈연을 넘어 진정한 가족을 이루다

힘든 사람끼리 의지하는 것이 가족이다. 영화 <싸나희 순정>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고단한 도시 생활에 염증을 느낀 주인공은 훌쩍 기차를 타고 떠난다. 무작정 떠났듯이 그는 도라지 꽃밭을 발견하고 그곳에 무작정 내려가 나뒹군다. 도라지밭에 나뒹구는 주인공을 불러낸 원보의 집에서 주인공이 기거하게 될 줄은 두 사람도 미처 몰랐다. 인연은 그렇게 온다. 주인공은 동거 아닌 동거를 하면서 시인 유씨라고 불렸고, 동심의 동화작가 지망생 원보와 브로맨스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간다.

영화 <싸나희 순정> 스틸컷 ⓒ(주)마노엔터테인먼트

“금붕어의 세계를 알아유.” 사실 원보는 카페 사장보다 금붕어를 사랑한다. 결혼하지 않은 원보는 가정과 거리가 멀어 보인다. 하지만 축구코치를 사랑하는 원보의 모습은 이성에게 아예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런 원보에게 새로운 가정을 만들어준 이가 바로 시인 유씨다. 유씨의 징검다리 역할로 원보는 노동분쟁으로 분신해 세상을 떠난 친구의 아들을 키우게 되고, 친구 아버님을 모시고 가족을 이루게 된다.
우주슈퍼 주인 영숙과 택시기사 칠교는 ‘돌싱’인데, 돌싱끼리 재혼을 하지 않았지만 서로 의지하며 한 마을에서 살아간다. 반드시 돌싱끼리 재혼해야 한다는 통념적 스토리에서 벗어난다. 칠교가 영숙에게 같이 잘살아 보자고 하지만 결혼식 장면은 나오지 않고 한 마을에서 돈독하게 지낼 뿐이다.
한편, 마을 송년 잔치에서 외국인 노동자와 카페 사장은 탱고 춤을 같이 선보이기도 한다. 마을 전체가 하나의 공동체적 가족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이는 실제로 농촌 지역에서 확인할 수 있다.

드라마 <파친코> 스틸컷 ⓒApple TV+

자신이 아이가 아닐지라도

연극이나 독립영화는 변화된 사회상을 가장 빨리 반영한다. 반면, 통속극은 가장 느리게 사회 세태를 반영하거나 드러낸다고 알려져 있다. 이런 통속극에서도 달라진 가족 구성원의 변화상을 알 수가 있다.
주말드라마 <신사와 아가씨>에서 이영국은 세 자녀를 둔 아빠다. 그런데 막내 세종이는 입양아다. 조 실장이 세종이의 친모인데 미혼모인 그녀가 자신의 아이를 집 앞에 놓은 것을 이영국 회장의 부인이 키운 것이다. 조 실장은 자신이 직접 세종이를 키우기 위해 이영국 회장과 결혼하려 갖은 노력을 하지만, 수포가 된다. 세종이는 친모인 조 실장보다 입주 가정교사인 박 선생을 더 좋아한다. 박 선생은 자신이 낳은 자식이 아닌데도 세종이를 포함해 세 자녀를 끔찍이도 좋아하고 아이들도 박 선생을 따른다.
이민진 작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 <파친코>에서 요셉은 선자가 임신한 유부남 고한수의 아이를 자신이 키우겠다며 선자와 결혼한다. 요셉은 애초에 선자를 위해 아이를 입양 보내자고 했지만 선자는 그 아이는 다른 누구의 아이도 아닌 자신의 아이라고 하면서 입양 보내기를 거부한다. 요셉은 자신이 낳은 아이인 것처럼 아들을 키운다. 자기 핏줄을 중시하는 가부장제의 특징과 거리가 멀다. 이러한 이야기는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하지만 받아들여질 수 있는 수용력이 현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생겼기 때문에 소설과 드라마에 등장한 것이다.
만약 선자가 자신의 아이를 입양 보냈으면 어떠했을까. 영화 <푸른 호수(Blue Bayou)>에서는 한국에서 입양아로 미국에 보내진 아이가 가족을 새롭게 만들어가는 이야기다. 안토니오는 폭력적인 아버지에게서 벗어나 새로운 가정을 꾸려나가려 노력한다. 아내 캐시와 딸 제시가 그의 새로운 가족이다. 제시는 안토니오의 피가 하나도 섞이지 않은 딸이지만 안토니오는 제시를 매우 사랑한다. 제시도 유전적 친아빠 이상으로 안토니오를 사랑한다. 그들의 사랑은 안토니오가 입양 제도의 모순 때문에 강제 추방을 당해야 하는 시점에서 더욱 드러난다. 입양한 부모가 이를 신고하지 않았기 때문에 뒤늦게 불법체류자가 된 안토니오를 떠나보내기 싫어하는 제시의 울음은 큰 공감을 자아냈다. 혈연 가족이 아니어도 중요한 가족 구성원을 이룰 수 있다. 물론 그 가족 구성원은 반드시 사람이 아니어도 된다.

영화 <고양이 집사> 스틸컷 ⓒ인디스토리

반려동·식물의 공동체 가족

애완동물이 아니라 이제 반려동물이라는 말은 익숙하다. 그런데 이조차 사실은 변화하는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반려동물은 여전히 집 안에서 키우는 동물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영화 <고양이 집사>는 자신들의 고양이가 아님에도 길고양이들을 보살피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른바 고양이 집사들이다. 가공의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 사례를 다룬 다큐멘터리이기 때문에 더욱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그들은 대부분 고양이를 소유하지 않으면서 가족처럼 대한다. 모든 이들에게 공유되는 고양이들은 집사인 사람들에게 치유와 행복감을 준다. 그 관점은 사람들의 시선이나 심리가 아니라 고양이에게 맞춰져 있다. 길거리를 배회하는 고양이들을 보듬는 사람들은 고양이들을 통해 하나의 가족을 이룬다. 특히 길냥이를 보호하는 행위에 대해서 못마땅해하는 사람들과 대항해 하나의 끈끈한 관계를 형성한다.
영화 식물 <카페, 온정>에서는 반려식물이 주인공을 포함해 여러 사람을 치유해 주기도 한다. 식물을 치유의 수단을 넘어 반려 식구로 생각하는 사람은 언제쯤 다수가 될지 의구심도 든다. 하지만 곧 그렇게 될 것이다. 시대정신이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의 가족이란

영화 <비열한 거리>에서 조폭 병두는 여관에서 함께 생활하는 조직원들에게 밥을 먹으면서 가족에 관한 중요한 말을 한다. “아야, 형이 하나 묻자. 식구가 머여? 식구가 먼 뜻이여? 식구란 건 말이여. 같이 밥 먹는 입구녁이여. 입구녁 하나 둘 서이 너이 다써 여써 나까지 일곱. 이것이 다 한 입구녁이여. 알겄냐? 그면 저 혼자 따로 밥 먹겠다는 놈은 머여. 그건 식구가 아니고 호로새끼여. 그냐, 안 그냐?” 좀 거칠게 느껴지지만, 같이 밥을 먹는 사람이 가족이라는 대사가 눈길을 끈다. 현대사회에서 이러한 전통을 잇는다면 혈연이 아니어도 같이 밥을 먹으면 가족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 <싸나희 순정>에서 동화작가 지망생 원보는 시인 유씨에게 자신이 짝사랑하는 축구코치에 관한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털어놓는다. 더구나 친구들에게도 안 한 말이라고 하면서 이야기하니 유씨가 되묻는다. “아니 그럼 왜 저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시는 거예요?” 잠시 머뭇거리던 원보는 곧 웃으며 말했다. “한집에서 살아서 그런가, 털어놓게 되네.” 한집에서 사는 것만으로도 가족 같다. 둘은 같이 밥도 먹는다. 친한 친구에게도 말하지 않는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은 더욱 친밀한 관계이니 가족 이상이다. 한집에서 살면서 같이 밥을 먹으며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터놓는 사이라면 혈연과 관계없이 우리 시대의 가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글. 김헌식 사회의 사소한 문화 속 우리를 되돌아보고 더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는 혜안을 20년째 찾고 있다. 지은 책으로 『대중문화 심리 읽기』 『대중문화로 읽는 한국사회』 등 40여 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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