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

국립국악관현악단 소년소녀를 위한 <소소 음악회>
별빛 가득한 이슬의 시간
긴 고민과 천 갈래의 마음을 다듬고 담아 만드는 것엔 무엇이 있을까. 그건 아마도 내 아이가 먹을 음식, 마주할 세상, 그리고 그 아이의 세상을 넓혀줄 무언가일 거다. 그 마음을 알기에 공연에 참여하는 모든 이들이 한마음 한뜻을 모아 정성껏 공연을 준비했다. 소년소녀를 위한 수만 가지 마음을 대변한 연출의 말을 들어보자.

고민했다. 청소년, 그들은 누구일까? 답을 얻지 않고서는 이 음악회를 만들 수 없지 않겠는가? 공부했다. 유튜브 보고, 칼럼을 읽고, 전문가도 만났다. 청소년 소설 몇 편 읽어보고, 청소년의 언어를 공부한다고 인터넷도 들여다봤다. 살필수록 미궁이었고, 전문가들의 조언은 쉽게 내 것이 되지 않았다. 헤매다 포기할 때 즈음, 이런 말들이 떠올랐고 그간의 시간이 정리되었다.

- 웃겨야 하고, 재밌어야 하고, 흥미와 주목을 끌 소재를 찾아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날 것
- 웃고, 크게 박수 치고, 졸지 않고 환호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날 것
- 소년소녀들의 지적 호기심과 예술적 감성을 믿을 것


그래서 얻은 결론은 ‘정면 승부, 음악의 힘, 관현악의 힘을 믿자’라는 것이었다. 객석의 온갖 소리가 일순간에 정적으로 바뀌는 순간. 예복을 갖춰 입은 연주자들이 입장하고 악장의 지휘에 따라 악기 조율을 마친다. 지휘자 입장 그리고 관객의 박수. 첫 음을 내기까지의 긴장 그리고 이어지는 열정과 몰입의 순간들. 70인조 관현악단이 들려주는 음악을 대하는 태도에서 오는 아름다움. 그 아름다움이 공연을 이끌어갈 핵심임을 분명히 하기로 한다.

‘이슬의 시간’을 보내는 이들의 ‘소우주’

황호준이 작곡한 ‘이슬의 시간’을 들었다. 어둠과 빛이 습합하는 찰나의 순간에 잠시 영롱했다가 사라지는 이슬을 노래한다. 한음 한음이 조심스럽고 정성이 가득하다. 강요하지 않고 강조하지 않는다. 빛의 편을 들지 않고, 순간을 찬양하느라 애쓰지도 않는다. 시종 ‘순간’과 ‘정성’만 가득하다. 순간을 반복하며 정착하지 못함이 정체성이 되는 청소년의 시기를 ‘이슬의 시간’이라 부를 수 있을 것 같았다. 관현악단이 연주에서 보여줬듯 이슬을 대하는 소중한 마음이 공연에 드러나길 바랐다.
공연장에는 여러 마음이 모인다.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의 마음, 객석에 앉은 소년소녀들의 마음, 함께 오신 선생님 그리고 ‘어디냐, 잘 도착했느냐’ 걱정 가득한 부모의 마음이 공연장 곳곳에 있다. 이뿐 아니라 콘솔·매표소·안내소·화장실까지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공연장 곳곳에 오늘 이 공연을 위해 애쓰는 마음들이 있다. 빛을 만들고, 소리를 만들고, 환호를 만들고, 편안을 만든다. 각자의 역할이 공명할 때 비로소 감동을 만든다. 이런 곳이 공연장이고, 그것이 예술이다. 어느 하나 빠질 수 없는 마음들이 모여 질서 정연하게 돌아가는 곳이 공연장이다. 이 공연은 소년소녀를 위한 공연이다. 소년소녀를 바라보는 공연장 가득한 마음들, 그 마음 모두를 하나, 하나의 별로 호출하고 싶었다. 공연장이 아름다운 마음으로 수놓은 별로 가득한 우주가 되면 좋겠다. 방탄소년단의 소우주를 또 다른 주제로 가져오기로 한다.

곡에 담긴 마음들

공연에서는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지만, 연출의 내적인 흐름은 이러하다.
첫 곡 최지혜 작곡의 ‘감정의 집’은 #이슬을 만나는 마음이라는 작은 제목을 붙였다. 이 공연을 마련한 국악관현악단의 마음을 담았다. 징과 북의 안내로 악기들이 하나하나 제 이야기를 건네며 인사한다. 저것은 대금이고, 대금 소리가 어떻단 설명보다 음악으로 건네는 인사가 효과적일 것이다.
두 번째 곡은 장석진 작곡가에게 게임 ‘쿠키런:킹덤’을 소재로 한 멋있는 음악을 요청했다. 공연을 보는 관객이 모두 이 게임을 즐기지는 않겠지만, 이슬이 만들고 싶은 각자의 #이슬의 성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 마음을 이해해 보고 싶었다. 물론 어른도 각자의 성을 짓고 침공자를 물리치기는 매한가지다. 이 두 곡은 오늘 공연을 준비한 국립국악관현악단의 마음이라 설정했다.
세 번째 곡은 엄마의 마음 혹은 아빠의 마음, 선생님의 마음, 아무튼 어른의 마음으로 #이슬을 위한 말들을 담았다.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작곡가 노선락에게 위촉했다. 소년소녀를 대하는 어른들의 말과 마음을 담았다. 제목을 ‘잔소리’라 일렀고, 어떤 연주보다 따뜻하게 연주되도록 요청하였다. 이런 잔소리엔 폭 안기고 싶게 말이다.
네 번째 곡은 창작음악그룹 아마씨의 대표곡인 ‘설움타령’을 청소년 버전으로 개작한 것이다. ‘설움타령을 하여보세’로 시작하는 노래는 지금 청소년의 언어로 청소년의 마음에 있는 말들을 ‘알잘딱깔센’1)하게 만들었다. 내내 공부하다가 잠깐 켠 유튜브를 보다 들켜 등짝 스매싱당한 그야말로 ‘킹받는’ 상황을 담았다. 이 장면의 제목은 #이슬의 말이라고 정했다. ‘잔소리’는 어른의 마음을, ‘설움타령’은 청소년의 마음을 노래한다.
여기까지 연주하고 나서 오늘의 주제인 #이슬의 시간#별이 된 이슬을 연주한다. 그리고 마지막 곡 #이슬을 위한 선물로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시그너처 레퍼토리인 ‘신뱃놀이’를 준비했다.

2021년 6월 11일. 연주자와 제작진의 마음을 모아 준비한 공연을 올렸다. 소년소녀의 지적 호기심과 예술적 감성을 믿자고 다짐했지만, 의지만큼 의심이 모두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한 페이지씩 공연의 장면이 넘어갈 때마다 객석에서 울리는 소년소녀들의 밝은 환호를 만날 수 있었다. 공명했다. 고마웠다.
2022년 5월 27일 조금 더 숙성된 음악과 무대 연출로 소년소녀들을 다시 만나고자 한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이슬의 시간에 들고자 한다. 함께 노래하며 별이 될 마음들이 공연장에 가득 쌓이길 기대한다. 그 자리에 당신의 마음도 별이 되어 함께할 수 있기를 바란다.

1) ‘알아서 잘하고 딱 깔끔하고 센스 있다’의 줄임말.
글. 천재현 정가악회 대표이사. 국립국악관현악단, 소년소녀를 위한 <소소 음악회>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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