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배움

2022 국립극장 ‘외국인 국악 아카데미’ 프리뷰
수궁가와 함께하니 ‘흥 내려온다’
이날치의 ‘범 내려온다’를 넘어서는 재치와 가락, 그리고 판소리 특유의 녹진한 매력.
‘수궁가’와 함께한 올해의 외국인 국악 아카데미는 그야말로 ‘흥 내려오는’ 시간이었다.
‘수궁가’ 속 토끼가 겪은 위기에 대해 설명하는 강사 최동현(좌)과 패널 구잘(우)

판소리 입문 교육에 깊이를 더하다

돌이켜 보면 2020년은 ‘수궁가의 해’였다. 얼터너티브 팝 밴드 이날치의 ‘범 내려온다’가 전 세계적으로 큰 사랑을 받았으니 말이다. 다만 아쉬운 점은 이 곡이 판소리 ‘수궁가’의 한 대목이라는 사실을 아는 외국인이 그리 많지 않았다는 것. 모두의 안전을 위해 올해 외국인 국악 아카데미도 비대면 교육으로 진행하기로 한 국립극장은 지난 2년간의 국악 기본 교육 영상을 바탕으로 더욱 생동감 넘치는 3년 차 수업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수궁가’를 주제로 잡았다. ‘범 내려온다’의 원형이 되는 판소리인 만큼, 외국인 수강생들이 한결 친근한 마음으로 판소리를 받아들일 수 있으리라는 판단이다.
이번 외국인 국악 아카데미는 단순히 판소리의 지식과 기술을 익히는 것을 넘어, 그 안에 담긴 이야기와 전통문화를 한층 자세하게 들여다볼 수 있도록 구성됐다. ‘수궁가’의 전반적인 스토리를 훑으며 충효 사상 등 우리 특유의 정서를 느낄 수 있는 시간과 사설·아니리·소리·발림 등 판소리의 구성 요소에 대한 소개와 시연이 충실하게 마련됐다. 2012년 우리나라로 귀화한 방송인 구잘 투르수노바가 그 여정의 중심에서 외국인들이 궁금해할 만한 요소들을 질문하며 강의의 눈높이를 적절하게 조절하는 데 힘을 보탰다.
판소리에는 대상의 모자람과 엉뚱함을 온화한 마음으로 감싸 안는 해학과, 대상의 결점과 악행을 비판적으로 꼬집어내 웃음거리로 만드는 풍자가 면면이 녹아 있다. 이 지점을 놓치면 판소리의 절반을 잃는 셈이나 다름없다. 올해 외국인 국악 아카데미에서는 ‘수궁가’의 이야기 이면의 조선 사회까지 짚고 넘어감으로써 한층 웅숭깊은 판소리 입문 교육을 완성해 냈다. 한국의 전통문화에 관심이 많은 주변의 외국인들에게 이번 강의를 ‘강추’하고 싶은 결정적인 이유다.

강사 유태평양(좌)과 패널 구잘(우)

명창과 귀명창의 유쾌한 ‘케미’

올해 외국인 국악 아카데미의 하이라이트는 구잘이 국립창극단 유태평양 단원에게 판소리의 하이라이트인 눈대목을 배우는 수업이었다. ‘수궁가’에는 별주부가 호랑이에게 목이 늘어난 내력을 전하는 내용, 수궁의 나졸들이 토끼를 잡아들이는 부분, 토끼가 독수리에게 잡혔다가 풀려나는 대목 등 조용히 지나가면 섭섭한 눈대목이 여럿 존재한다. 처음 배우는 판소리에 당황한 것도 잠시, 구잘은 유태평양 단원과 유쾌하게 합을 맞추며 아니리와 소리·발림을 곧잘 따라 했다.
흥미로운 점은 구잘이 토끼·별주부·호랑이·독수리 등 등장인물들의 상황과 감정을 추측하며 기뻐하고 안타까워하는 등 ‘수궁가’의 이야기에 흠뻑 빠져들었다는 사실이다. 우리 판소리가 다른 나라 사람들의 공감을 끌어낼 만큼 흡인력이 강하다는 점을 알 수 있는 지점.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유태평양 단원이 구잘에게 판소리를 잘 듣는 사람을 이르는 ‘귀명창’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국립창극단원의 ‘특급 칭찬’이 10년 차 한국인의 판소리 열정에 불을 지폈음은 물론이다.
강의가 말미에 다다르자, 유태평양 단원이 판소리의 맺음말 “그만허고, 더질더질”을 소개했다. 소리꾼의 목과 고수의 팔이 아프니 이제 공연을 끝내겠다는 의미라는 설명에 구잘이 함박웃음을 터트렸다. 판소리는 마지막까지 매력적이라며 쉬는 시간에도 연습을 멈추지 않는 구잘. 5강에 걸친 배움을 그녀 나름의 판소리로 멋지게 마무리 지었다.
2022년 외국인 국악 아카데미는 5월 19일부터 매주 목요일 한 편씩, 총 6주간 국립극장 유튜브 채널을 통해 공개된다. 수강을 인증한 외국인을 대상으로 선물을 증정하는 이벤트가 함께 진행되는 등 안팎으로 알차게 마련된 이번 강의의 첫 업로드가 벌써 기대된다. 이제 그만허고, 더질더질!

글. 강진우 객관적인 정보와 색다른 시선을 바탕으로 다양한 기사와 문화 칼럼을 쓴다. 우리 삶과 밀접한 연관성을 지닌 현안과 분야에 몰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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