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

<완창판소리>
한 대목도 놓칠 수 없는 성준숙의 동초제
‘적벽가’
알면 알수록, 곱씹으면 씹을수록 진미가 느껴지는 것들이 있다. 동초제 ‘적벽가’가 그러하다. 오탈자가 없다는 점에서 정확하고, 상황과 맥락에 맞게 표현한다는 점에서 정합한 소리. 쉬이 듣기 어려운 소릿길이 오랜만에 국립극장에 열렸다.

임방울 국악단에 매료되다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동에서 태어난 성준숙 명창은 16세에 전주에 찾아온 임방울 국악단의 공연을 보고 완전히 매료되었다. 그리고 그 길로 무작정 단체를 따라갔다. 그녀는 단체에서 국창 임방울에게 ‘수궁가’의 일부를 배우며 판소리를 시작했지만, 단체 생활은 어린 소녀에게 생각보다 고되고 힘든 것이었다. 1년 만에 아버지 손에 이끌려 집으로 돌아왔고 그 길로 집안의 완고한 반대 속에서 판소리는 잊고 지내야 했다.
다시 판소리에 대한 열망이 일어나게 된 계기는 1975년 전주에서 열린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였다. 조선 후기부터 있어온 명창들의 등용문이자 최고의 기량을 갖춘 예인들의 잔치. 구한말 중단되었던 전주대사습놀이가 70여 년 만에 부활된 때가 바로 1975년이었다. 전주에 기거하던 성준숙은 제1회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를 보며 다시 판소리를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마침 이일주 명창이 전주에 있었고, 그녀의 방울목에 반해 그 자리에서 소리 배우기를 청했다. 이후 동초제의 대모 오정숙(1935~2008) 명창에게 본격적으로 동초제의 전 바탕을 전수받았다.
성준숙은 1985년 4월 국립극장에서 ‘심청가’ 완창 발표회를 했다. 그녀의 첫 완창이었다. 이듬해인 1986년 전주대사습놀이에서 명창부 장원을 한 후 명창의 반열에 올랐지만, 이때부터 공부에 더욱 집중했다고 한다. 실제로 1985년부터 1996년까지 거의 매년 완창 발표회를 했고, 다시 판소리를 하겠다고 결심한 후 제자 양성에 힘쓰기까지 다른 어떤 것에도 한눈팔지 않고 오로지 소리 공부에 매진했다. 당시 그녀에게 완창 발표회야말로 공부와 수련의 기본 과정이고 판소리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전승 오가를 두루 완창할 수 있어야 한다는 믿음이 있었다고 한다.
2000년대 이후 제자 양성과 국악의 보급에 힘써 온 그녀에게 국립극장은 실로 오랜만에 서는 무대다. 성준숙 명창은 꽤 오랫동안 완창 발표회를 하지 못했고, 젊은 시절에 비해 힘이 약해진 탓에 완창 무대를 충분히 잘 해낼 수 있을지 걱정이 많다고 한다. 하지만 60년 소리의 길, 그 안에서 다져진 내공이 완숙하게 발현될 것이라 믿는다.

성준숙 명창

사설의 정합성과 극적 짜임을 중시한 동초제 ‘적벽가’

이번 성준숙 명창이 들려줄 ‘적벽가’는 동초 김연수(1907~1974)가 정립해 오정숙에게 이어진 동초제 소리이다. 김연수는 20세기에 활동한 대표적인 명창으로, 1930년대 유성준 문하에서 ‘수궁가’로 소리를 시작해 송만갑에게 ‘흥보가’와 ‘심청가’를 학습하고, 이후 정정렬에게 ‘춘향가’와 ‘적벽가’를 배웠다. 김연수는 창극 중흥에도 앞장선 인물로, 1945년 ‘김연수창극단’, 1950년 ‘우리국악단’을 만들어 활동하기도 했다. 그는 당대 뛰어난 명창으로부터 판소리 다섯 바탕을 모두 섭렵하고 창극 활동을 하면서 자신만의 판소리, 즉 지금의 동초제를 정립했다.
동초제 판소리는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그 특징이 이야기된다. 첫째는 사설의 합리성과 정확성이다. 김연수는 한학을 공부한 사람으로 판소리 사설을 정확하게 정리하고자 했다. 전승 과정에서 생긴 오탈자와 부정확함을 바로잡았고, 이를 명확한 발음으로 구현할 것을 강조했다. 두 번째는 판소리의 극적인 면을 강조한 것이다. 연극적 소질이 다분하고 극에 대한 이해가 깊었던 김연수는 판소리의 창극화를 이끈 주요 인물이었다. 김연수의 이와 같은 면모는 판소리를 대중에게 좀 더 명확하고, 흥미롭게 전달하고자 한 철학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김연수가 추구한 판소리는 그의 ‘적벽가’에서도 엿볼 수 있다. 일례로 초입의 아니리 부분에서 “천하대세가 분열된 지 오래면 반드시 합해지고 합한 지 오래면 반드시 분열되느니”라는 한글 사설이다. 이는 “천하대세가 분구필합이요 합구필분이라” 등의 한문으로 나열된 대개의 ‘적벽가’와 대비된다. 한글로 풀어줌으로써 대중에게 사설의 의미를 잘 전달하려 한 것이다. 또한 동초제 ‘적벽가’가 다른 바디와 차이를 보이는 부분으로 꼽히는 ‘새타령’의 경우, 보통 ‘새타령’은 ‘불 지르는 대목’ 바로 뒤에 나온다. 그런데 동초제는 ‘군사점고 대목’ 뒤, ‘관우가 조조를 잡으러 나오는 대목’ 앞에 ‘새타령’이 나온다. ‘새타령’은 적벽강에서 죽은 군사들의 원혼이 새가 되어 운다는 내용이기 때문에 ‘불 지르는 대목’ 바로 뒤에 넣기보다는 원조가 되기까지 시간을 더 둔 부분에 넣어 구성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동초제 ‘적벽가’는 완창을 들을 기회가 많지 않다. 최근 몇 년 국립창극단 <완창판소리>에서도 ‘적벽가’ 무대는 여럿 있었지만, 동초제는 듣기 어려웠다. 김연수가 판소리에 대한 자신의 철학과 창작성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적벽가’의 전 바탕을 만날 소중한 기회가 아닐 수 없다.

“모든 소리가 명대목. 부를수록 새길수록 좋아.”

판소리 ‘적벽가’는 중국의 고전 『삼국지』의 일부를 소리로 짜서 부른 것이다. 『삼국지』의 주인공 유비·관우·장비가 도원결의를 하고 제갈공명을 찾아가 그의 지혜로 조조의 군사와 전쟁을 벌이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천하의 영웅호걸들이 패권 다툼을 하는 것이 이야기의 핵심인 만큼 예로부터 남성 양반들이 즐겨 듣는 소리로 일컬어졌고, 남성 인물들로 전체 이야기가 구성된 만큼 씩씩한 호령조와 우조가 많아 여성이 부르기에는 고된 소리라는 인식이 강했다.
성준숙 역시 ‘적벽가’는 힘든 소리라고 하며 전체를 익히는 데 꼬박 2년이 걸렸다고 한다. 하지만 부를수록 소리의 참맛과 사설의 깊은 뜻이 새겨져 모든 대목이 다 명대목이라는 생각이 강해진다고 한다. 사람들 대부분은 ‘적벽가’에서 공명이 동남풍을 불게 하는 대목, 조자룡이 활 쏘는 대목, 적벽강 불 지르는 대목, 새타령, 화용도 대목 등을 주요하게 떠올리지만, 성준숙은 초입의 삼고초려와 고당상, 중후반부의 장승타령 등도 빼놓을 수 없는 대목이라고 한다. 하여 이번 기회에 되도록 3시간 남짓으로 모든 부분을 빠짐없이 부른다고 한다.
‘적벽가’는 식자들이 사용하는 사자성어와 한문 표현, 명문구 등이 다른 바탕에 비해 많이 사용되어 사설을 온전히 이해하기가 쉽지는 않다. 그래서 소리깨나 들을 줄 아는 귀명창이 즐기는 소리라고까지 했다. 그러나 혼란기 정국 속에서 영웅들이 내세우는 대의명분, 전쟁에 참여할 수밖에 없는 민중의 애환, 전쟁의 참상, 그리고 극한의 상황을 해학적으로 풀어내는 묘미 등은 대중에게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내용을 알고 들으면 더 재미있을 ‘적벽가’. 대목 대목이 주옥같은 ‘적벽가’의 소리를 온전히 느끼기 위해선 공연을 감상하러 가기 전에 『삼국지』의 전체 줄거리를 한번 살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참고 자료 박지영, 「동초제 적벽가 연구」, 동국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4.
전라북도립국악원, 『전북의 전통예인 구술사 15-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2호 판소리 (적벽가) 보유자 성준숙』, 전라북도립국악원, 2015.
최동현 주해, 『동초 김연수 바디 오정숙 창 오가전집』, 민속원, 2001.
글. 송소라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연구교수. 박사학위 논문 「20세기 창극의 음반, 방송화 양상과 창극사적 의미」(2017)를 비롯해 판소리와 창극 관련한 연구를 지속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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