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은 5월이 강한 생기를 분출하는 데에 큰 몫을 한다. 아이들의 웃음, 즐거워하는 모습은 어른들에게도 에너지를 준다. 이러한 이유로 이가현 작가는 5월에 특히 중대한 역할을 한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극작과를 나온 이가현 작가는 <엔통이의 동요나라> 1편과 2편 <안녕, 지구>, <자라는 자라>, <거인 앙갈로>, <벨벳 토끼> 등의 어린이 음악극, 동화 콘서트로 아이들과 소통해 왔다. 작품을 본 많은 아이가 기뻐하고 상상력도 키웠을 듯하다.
극본과 더불어 극에 들어가는 노래도 작사하는 이가현 작가는 플레이리스트에 동요를 빼놓지 않았다.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해서 동요는 생활의 일부분으로 정착했을 것이다. 이가현 작가의 몇몇 선곡과 답변에는 동요 작사가로서의 고민, 부모의 삶이 깃들어 있었다.
저 자신에게 작업 시작을 알리는 음악이에요. 작업 직전에 꼭 듣는 음악이거든요. 일상을 보내다 작품 안으로 들어가는 건 늘 어려워요. 일상을 떠나 작품 안으로 나를 끌고 들어갈 연결고리가 필요한데, 이 음악이 그런 역할을 해줘요. 노트북을 켜서 한글 파일을 열고 이 음악을 들으면서 하얀 화면을 봐요. 그렇게 연주를 따라가다 보면 일상을 내려놓고 작품 속으로 들어갈 준비가 되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도입부에 가장 집중하죠. 건반을 묵직하게 내려치는 그때, 저한테 붙어 있는 일상을 떼어놓고 나면 연주가 저를 겨울 숲 같은 환상적 공간으로 이끌고 가는 느낌이 들어요. 그 이후로는 귀는 곡을 듣고 있지만, 머릿속으로는 작품을 생각하기 때문에 연주에는 집중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저는 이 곡의 도입부에 훈련된 걸지도 모르겠어요. (웃음)
예전에는 피아니스트를 가리지 않고 들었는데, 최근에는 손열음 님과 조성진 님 연주를 찾아 들어요. 조성진 님 연주의 경우, 강렬한데 마냥 강렬하지 않고 뜨거운데 마냥 뜨겁지 않은, 가슴에 뜨거운 불을 질렀는데 그 불이 싫지 않은 그런 느낌이에요. (웃음) 그 감정이 마음을 조몰락조몰락 만져주는 것 같아요. 그러다 보면 심각한 작품 고민도 마음을 설레게 하는 착각이 들 때가 있어요. (웃음)
이 곡을 처음 들은 게 벌써 20년 전이네요. 고3 때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친구가 <이집트 왕자> OST CD를 들려줬어요, 선생님 몰래요. (웃음) 첫 곡부터 마지막 곡까지 너무너무 좋은 거예요. “네가 믿는다면 기적은 일어날 수 있다”는 가사가 씨앗처럼 제 안에 자리 잡은 날이었죠. 그 뒤로 힘들거나 위로가 필요할 때면 듣는데요, 특히 아이들을 재우고 작업하면서 잠과 사투를 벌일 때 꼭 필요한 곡이 됐어요. ‘그래, 내가 믿는다면 긴긴밤 동안 졸지 않는 기적이 일어날 거야!’ 하는 바람을 더하면서요. (웃음)
곡을 이루는 모든 요소가 따뜻해요. 가수들의 음색, 가창력, 연주, 어느 하나 따뜻하지 않은 게 없어요. 그리고 가사가 주는 위로도요. 듣는 사람을 포근하게 안아주는 곡이라고 생각해요.
여러 이유로 <코코>가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웃음) 아이들이랑 극장에서 봤는데, 저승 사람들이 등장하면서부터 두 아이가 우는 거예요. 해골 모습이 무서웠나 봐요. 그런데 저승 사람들이 점점 많이 나오니까 더 심하게 울더라고요. 결국 끝까지 보지 못하고 극장을 나왔죠. 너무 아쉬워서 나중에 집에서 다시 봤는데, 주인공 미구엘이 할머니 코코에게 ‘Remember Me’를 불러주는 장면에서 엉엉 울었어요. 죽음 이후의 세계가 살아남은 자들의 기억에 의존해 존재한다는 상상이 많은 생각을 들게 했어요.
가야금에 대한 글을 써야 할 일이 있어서 가야금 연주곡들을 찾아 듣다가 알게 됐어요. ‘가야금은 자연의 소리를 담은 악기다’라는 주제로 글을 쓰던 중이었는데, 이 곡을 들으면서 ‘가야금이라는 악기의 서사는 이렇게 표현되는구나’ 이런 걸 느끼게 됐어요.
곡이 지루하지 않게 전개되는데도 듣고 있으면 고요함이 느껴져요. 울창한 푸른 숲 한가운데 있는 맑고 깨끗한 호수의 깊은 곳에 들어간 듯한 느낌이라고 할까요? 그래서 마음이 심란할 때면 이 연주를 찾아 들어요.
많이 들었다고 하기엔 부끄러운 수준인데요, 가야금 앙상블 사계(四界)의 ‘별:숲 (Constellation)’도 좋았어요. 눈부시게 펼쳐진 은하수 위를 가슴 벅차게 뛰는 듯한 느낌을 들게 하다가 이내 사랑에 빠질 것 같은 기분을 들게 하는 곡이에요. 그래서 듣다 보면 마음이 몰랑몰랑해지면서 미소가 지어져요.
초등학생 때 MBC <강변가요제>에서 탬버린을 치면서 ‘담다디’를 부르는 모습을 보고 이상은 님에게 홀딱 반했어요. 저한테 이상은 님은 목소리만으로 위로가 돼요. 특히 1997년에 낸 ‘어기여 디어라’에서의 목소리를 좋아해요. 그런데 작업할 때에는 이상은 님의 노래를 듣지 않아요. 이상은 님 노래를 들으면 글을 쓸 수가 없거든요. (웃음)
5월이라 아이들이랑 차를 타고 어딘가로 놀러 가는 분이 많을 것 같아서 골라봤어요. 많은 분이 공감하실 텐데요,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은 차를 타고 이동할 때 음악 선택권이 없어요. 무조건 아이들이 선곡하는 대로 들어야 하죠. (웃음) 올해 여덟 살, 열한 살이 되는 아이들이랑 차에서 많이 들은 노래를 생각해 봤더니 ‘내가 바라는 세상’이었어요.
왜 좋아하는지보다는 “이 노래는 어디서 들어봤어?”라고 물어봐요. 그러면 대답은 항상 “유치원에서!”예요. 이 노래도 유치원에서 들었다고 해요. 좋은 음악 많이 알려주시는 유치원 선생님들께 감사드려요.
차에서 노래를 들을 때면, 모두가 노래를 따라 부르잖아요. (웃음) 두 아이가 ‘내가 바라는 세상’에 있는 랩을 경쟁하듯이 따라 부르는 모습을 볼 때마다 웃게 돼요. 랩이라기보다는 씩씩하게 외치는 웅변 같은데,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가 너무 귀여워요. (웃음)
유영석 님(화이트)의 ‘네모의 꿈’을 아이들이랑 함께 부르곤 해요. 제가 어릴 때는 가요로 알고 있었는데, 요즘 아이들은 이 노래를 동요로 알고 있더라고요. 차에서 아이들과 이 노래를 들을 때면 바깥 풍경에서 네모를 찾는 놀이를 하게 돼요. 그럴 때마다 세상에 정말 많은 네모가 있다는 걸 새삼스럽게 깨닫게 되죠. (웃음) 이 노래로 아이들이랑 나눌 이야깃거리가 많이 생겨서 좋아요.
<엔통이의 동요나라> 1, 2편에 나오는 주인공 이름을 두 아이의 이름으로 썼어요. 동생이 생기면서 부모의 사랑을 빼앗겼다고 생각하는 <엔통이의 동요나라>의 ‘구교은’, 자신의 감정을 말로 표현하지 못해 여러 오해를 사는 <엔통이의 동요나라2>의 ‘구교진’. 두 아이 모두 극장에서 자기 이름이 크게 불리는 공연을 봤죠. 그게 아이들한테 정말 신기한 경험이었던 것 같아요. 내가 주인공은 아니지만 주인공 이름은 나인, 조금은 혼란스러운 경험이요. (웃음) 그래서인지 ‘엔통이의 노래’를 자기들 노래인 것처럼 소중하게 생각해요. 곡도 좋고, 엔통이들의 신나는 목소리도 좋은데, 여러 의미가 더해져서 더 아끼는 곡이 됐어요.
되도록 쉬운 말을 쓰려고 해요. 이해하기 쉽고, 발음하기 쉬운 단어들을 사용하려고 하죠. 관객들이 공연을 다 보고 극장을 나설 때, 입속에 남는 가사가 한 마디라도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고요.
가사 쓰는 게 더 어려워요. 물론 대사를 쓰는 것도 어렵지만 제약이 크지는 않아요. 하지만 가사는 작곡할 걸 염두에 둬야 하고, 배우가 움직이면서 노래할 것도 생각해야 하죠. 이런저런 조건 때문에 제한적일 수밖에 없어요. 대사 쓰는 일보다 까다롭고 어렵긴 한데요, 관객 입에서 음악과 함께 맴도는 가사를 생각하면 즐거움이 더 크게 느껴져요.
<엔통이의 동요나라>에서 선보인 ‘미워 미워’를 소개해 드리고 싶어요. 부모님에게 서운한 아이가 마음속으로 “미워, 미워”라고 외치는 노래예요. 하지만 미움이라는 감정이 부모님을 사랑하는 데서 나온 걸 알기 때문에 ‘지금만, 잠깐만’ 미워하겠다고 하는 귀여운 내용이에요. 작곡가 함현상 님이 중독성 강한 리듬을 입혀주셔서 즐겁게 들을 수 있어요. 다른 하나는 동요는 아니지만 정말 아끼는 노래라서 소개해 봐요. 제목은 ‘바라니마’라고 하는데요, 2010년에 제주 사람 장한철의 표류기를 소재로 국악창작집단 타루와 함께 제주MBC의 라디오 드라마를 만들면서 주제가로 쓴 노래예요. 바다 위를 표류한 인물 장한철을 막연하게 생각하면서 가사를 썼는데, 작곡가 손다혜 님이 험한 바다 위에 있는 듯한 느낌을 명확하게 표현해 주셔서 곡을 처음 들었을 때 놀랐던 기억이 있어요. 그리고 소리꾼 김용화 님의 힘차면서도 애절한 목소리가 더해져서 너무 좋았어요. 종종 찾아 듣는데요, 들을 때마다 바다에서 험한 파도를 만난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 작업할 때의 기억도 나서 저한테는 각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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