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보기하나

로미오와 줄리엣 그리고 춘향
금지된 사랑
세상에서 가장 순수하고/가장 조용하게 오는 것이/사랑이라면/나는 너를 사랑한 것이 아니다
나는 너와 전쟁을 했었다/내 사랑은 언제나
조용하고 순수한 호흡으로 오지 않고/태풍이거나 악마를 데리고 왔으므로
- 문정희, 「내 사랑은」

인류 역사상 가장 큰 화두는 사랑이었고, 사랑이며, 그리고 사랑일 것이다. 인간 존재와 궤적을 같이하는 사랑은 그들의 삶만큼 다양하고 색깔도 다르다. 위의 시에서 보듯 누군가에게 사랑은 말없이 다가와 평온함을 주는가 하면, 또 누군가에게 사랑은 태풍으로 다가와 전쟁이 되기도 한다. 격렬한 태풍이 몰려와 금지된 사랑에 빠진 두 쌍, 로미오와 줄리엣 그리고 이몽룡과 춘향의 사랑에 취해 본다.

영국 국립극장 <로미오와 줄리엣> ⓒRob Youngson

고통의 해방 그리고 질서의 회복

‘불멸의 사랑 이야기’를 언급하는 순간, 아마도 많은 사람은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떠올릴 것이다. 단지 젊은 남녀의 애달픈 사랑만을 다루었다면, 대중의 마음을 이렇게까지 훔칠 수 있었을까? 불가능했을 것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죽음은 사랑으로 인한 고통의 해방이며 결국 두 가문에 ‘구슬픈 평화’를 가져왔기에 대중과 함께 호흡하지 않을까? 따라서 로미오와 줄리엣의 이와 같은 사랑의 과정을 살펴보기로 한다.
로미오는 줄리엣을 보자마자 “지금까지 내 심장이 사랑을 했었던가?”라고 되뇔 정도로 첫눈에 반한다. 그러나 이들의 사랑은 ‘금지된 사랑’이다. 로미오의 몬터규 가문과 줄리엣의 캐풀렛 가문은 베로나의 유명한 원수 집안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운명적 사랑은 걷잡을 수 없이 불타올라 비밀 결혼식까지 치르게 한다. 하지만 운명의 장난처럼 이들은 이별하게 된다. 로미오가 싸움을 말리는 과정에서 줄리엣의 사촌오빠인 티볼트를 죽이고 추방당하기 때문이다.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에서 “진정한 사랑은 항상 장애물이 있다고 하잖아”라는 라이샌더의 대사처럼, 로미오와 줄리엣의 또 하나의 장애물은 패리스의 구애다. 줄리엣은 “목이나 매달아 버려라, 이 막돼먹은 것, 제멋대로 구는 못된 년!” 같은 아버지의 폭언을 견디며 결혼을 거부했으나 소용없었다. 그러자 줄리엣은 금방 자결이라도 할 기세로 로렌스 신부에게 결혼식을 늦추어달라고 애원한다.
로렌스 신부는 한동안 잠에서 깨어날 수 없는 액체를 줄리엣으로 하여금 마시게 한다. 이로 인해 장례가 치러지면, 로미오가 무덤에 와서 줄리엣과 함께 탈출한다는 각본이었다. 그러나 줄리엣의 사망 소식을 들은 로미오는 계획을 전달받지 못한 채 무덤에 도착한다. 격정을 이기지 못한 로미오는 무덤을 지키고 있던 패리스를 죽이고 줄리엣의 무덤을 연다. “왜 아직도 그대는 그리도 아름다운 거요?”라고 울부짖으며 준비해 온 독약으로 로미오는 생을 마감한다. 잠에서 깨어난 줄리엣은 텅 빈 독약 병을 발견한다. 이별의 아픔 후 줄리엣은 사랑하는 사람의 시신과 재회하는 것이다. 로미오가 없는 세상은 줄리엣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줄리엣은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로미오의 곁을 따른다. 베로나에서 이루지 못한 사랑을 이루기 위해.

행복 그리고 질서의 회복

‘인고의 사랑 이야기’에 관한 한국의 고전문학을 손꼽으라면, 단연코 『춘향전』에 표를 던지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양반집 아들인 이몽룡과 기생 월매의 딸인 춘향의 신분을 뛰어넘은 사랑, 인고의 세월을 참아낸 이후의 행복, 그리고 한 지역의 질서를 바로잡는 등의 서사가 대중에게 해학과 희망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몽룡과 춘향의 만남·이별·고통 그리고 재회의 과정을 통해 이들의 사랑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본다.
이몽룡은 춘향을 보자마자 첫눈에 불꽃이 튄다. 오월 단오에 광한루에 나간 이몽룡이 그네 뛰는 춘향을 보고 “선녀가 내려왔나 보다”라며 감탄하는 부분이다. 이몽룡은 온통 춘향 생각에 글을 제대로 읽을 수도 없다. “이 건(乾)은 원(元)코 형(亨)코 이(利)코 정(貞)코 춘향이 코 내 코 한 대 대니 좋고”라는 식으로 글자마다 자작시로 각색된다. 이몽룡은 참지 못하고 밤길을 걸어 그녀의 집으로 향한다.
이몽룡의 사랑 타령에 춘향은 거문고로 화답하며 밤새 부어라 마셔라 흥에 취한다. 태어난 시(時)가 조금 다르지만 같은 나이임을 알자 이들은 천생연분이나 되는 것처럼 기뻐하며 결국 백년가약을 맺는다. 그러나 이몽룡의 아버지가 내직 승품하여 남원을 떠나야 하기 때문에 이별을 고하고 만다.
이몽룡은 비 오듯 눈물을 쏟으며 “명년 삼월 꽃필 적에 꽃을 따라 온다”는 약속을 남기고 떠난다. 생이별을 한 춘향은 시름시름 앓고, 신관 사또의 기생점고에 불참해 동헌으로 끌려간다. 수청을 들라는 변학도에게 춘향은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아니하고 열녀는 두 남편을 섬기지 않습니다”라며 거절한다. 이로 인해 춘향은 형틀에 매여 곤장을 맞기도 하고 옥에 갇혀 모진 고문을 당하지만 끝까지 절개를 굽히지 않는다.
인고의 세월을 보답하듯 이몽룡은 암행어사가 되어 남원으로 내려온다. 그는 농부들과의 대화를 통해 변사또의 폭정으로 인한 애환과 춘향을 버린 자를 향한 그들의 분노를 알게 된다. 그러나 애써 신분을 숨긴 채, 그는 월매 집에 찾아가 밥을 얻어먹은 후 춘향에게로 향한다. 춘향은 비렁뱅이 차림을 한 이몽룡을 보고 잘 대접해 줄 것을 월매에게 당부한다.
다음 날 변학도의 생일잔치가 한창일 때, 이몽룡은 암행어사 신분으로 동헌에 춘향을 데려오도록 한다. 이몽룡은 장난삼아 춘향에게 수청을 들라 요구한다. 춘향이는 “애고애고 내 팔자야, 조약돌을 면하니 바윗돌을 만났구나”라며 탄식한다. 이몽룡은 더는 참지 못하고 사랑의 징표였던 옥가락지를 춘향에게 전한다. 옥가락지를 본 춘향은 몸을 날리듯 일어나, 덩실덩실 춤추며 이몽룡에게 다가가 그의 목을 얼싸안고 데굴데굴 구른다. 이들의 재회는 인고 끝에 얻은 행복한 만남이며 동시에 민중의 고통을 덜어줄 희망의 축제로서 질서의 회복을 의미한다.

국립창극단 <춘향>

‘카타르시스’ 혹은 ‘한 풀어내기’

문화권이 다른 두 작품을 비교하기는 녹록지 않다. 그러나 글로벌 시대에 문화의 다양성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자세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경쟁을 넘어 협치”로, 그리고 “성장을 넘어 성숙”으로 향하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두 작품을 간단히 비교해 보자.
첫째, 『로미오와 줄리엣』은 신 중심의 중세 사회에서 인간 중심으로 넘어가는 사회적·문화적 그리고 종교적 과도기의 16세기 영국을, 『춘향전』은 경제적·정치적 혼란과 함께 계급 간의 갈등이 고조된 17세기의 한국을 배경으로 한다. 두 작품은 이와 같은 당대의 현실을 청춘 남녀, 즉 17세와 14세인 로미오와 줄리엣, 16세의 동갑내기인 이몽룡과 춘향의 불같은 사랑 이야기에 담아낸다.
둘째, 『로미오와 줄리엣』은 이탈리아 설화에, 『춘향전』은 성이성과 기생 춘향의 일화에 암행어사 설화가 합쳐져 판소리 ‘춘향가’로 구연되다가 19세기에 소설로 각색되었다는 측면에서 두 작품은 한 작가가 완벽하게 만들어낸 창작물이 아니다.
셋째, 두 작품의 서사 구조는 주인공들의 만남, 불같은 사랑, 집안 간의 다툼과 신분의 차이로 인한 이별의 고통, 그리고 재회의 여정인 주요 플롯과 이들을 돕는 역할, 방해하는 역할, 그리고 조정자 역할을 하는 주변 인물들의 설정이다. 이와 같은 서브플롯의 인물들이 꿈, 음담패설, 그리고 말장난 등의 문학적 기교를 통해 전체 이야기의 리듬을 전개한다.
넷째, 두 작품의 결말은 각각 주인공들의 죽음과 행복한 재회라는 다른 형식을 취하지만 같은 의미를 지닌다. 독일의 극작가인 고트홀트 에프라임 레싱(Gotthold Ephraim Lessing)이 “카타르시스는 지나친 감정을 고결한 기질로 바꾸어준다”고 주장하듯, 로미오와 줄리엣의 죽음은 영원한 사랑이며 두 가문에 제공한 평화의 질서, 즉 화해를 내포한다는 점에서다. 이러한 측면은 몽룡과 춘향의 행복한 재결합, 그리고 농민들의 애환을 달래주는 『춘향전』의 결말과 같은 의미인 것이다. 다만 서양문학의 비극적 관습인 카타르시스와 한국문학의 해학적 관습인 한 풀어내기라는 문화의 표현 방식이 다를 뿐.

위에서 언급한 두 작품의 형식과 내용 측면 외에도, ‘로미오와 줄리엣 효과’가 『유쾌한 심리학 용어 사전』(2007)에, ‘억지 춘향’이라는 용어가 고려대학교에서 발간한 『한국어대사전』에(2009) 등재되었고, 줄리엣 동상이 있는 베로나와 춘향 테마파크가 조성된 남원이 사랑의 도시로 비교되기도 한다. 더불어 두 작품이 다양한 예술 장르로 각색 변형되며 끊임없이 재창조된다는 점 또한 견줄 수 있는데, 그 일면을 바로 이달의 국립극장 공연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지난 2월 NT <로미오와 줄리엣>에 이어 돌아오는 5월, 국립창극단 <춘향>까지 금기된 사랑으로 이어지는 두 작품 속으로 빠져보자.

참고 자료 참고 자료 박성창 역, 『비교문학, 어떻게 할 것인가』, 민음사, 2002.
최종철 역, 『로미오와 줄리엣』, 민음사, 2008.
성현경 역, 『이고본 춘향전』, 보고사, 2011.
박부순, 「『로미오와 줄리엣』과 『춘향전』 비교」, 영어영문학 연구, 2016.
글. 박부순 전북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 저서로는 『오거스트 윌슨의 화해와 통합을 위한 무대』(2008), 역서로는 『한여름 밤의 꿈·열두 번째 밤』(2018)이 있으며 「괴물 만들기: 브레히트의 서사극 이론으로 읽어 본 『퍼킹 에이』」와 「에코페미니즘으로 읽어본 <옥자>」 등 연구 논문을 썼다.
<월간 국립극장> 구독신청 <월간 국립극장> 과월호 보기
닫기

월간지 '월간 국립극장' 뉴스레터 구독 신청

뉴스레터 구독은 홈페이지 회원 가입 시 신청 가능하며, 다양한 국립극장 소식을 함께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또는 카카오톡 채널을 통해 편리하게 '월간 국립극장' 뉴스레터를 받아보세요.
※회원가입 시 이메일 수신 동의 필요 (기존회원인 경우 회원정보수정 > 고객서비스 > 메일링 수신 동의 선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