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가상연재

제1회 국립극장 공연예술 평론가상 당선작 요약문
장려상 수상작 : 조순자
평론 활동이 활발하지 않은 국내 공연 분야의 현실 개선을 위해 국립극장은 지난 2021년 제1회 국립극장 공연예술 평론가상 공모사업을 실시했다. 그 결실인 변영미·조순자·장기영 수상자 3인의 당선작 모음집이 최근 공개되었다. 당선작 모음집에서 발췌한 요약문 시리즈를 통해 신인 평론가에 의해 기록된 지난 공연의 추억을 되살려보자.

국립창극단의 도전, 현대적 변주의 융합창극
<흥보展(전)>의 성과와 과제

국립창극단(예술감독 유수정)이 전통의 기반 위에 현대적이고 동시대 감각을 반영한 실험적인 창극을 선보였다. 바로 지난 9월 15일부터 21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올린 창극 <흥보展(전)>이다. 이 작품은 판소리 명창 안숙선이 작창을 맡고, 김명곤 연출, 최정화 시노그래퍼, 박승원 음악감독 등 다양한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만들어낸 현대적 융합창극이다. 국립창극단은 1962년에 창단한 이후 다양한 창극 무대를 선보여 왔다. 특히 창극 <흥보展(전)>은 1998년 허규 연출의 ‘흥보전’ 이후 레퍼토리 공연으로 자리 잡았다.
창극 <흥보展(전)>의 소리는 전통 판소리의 성음과 이면의 조화가 잘 어우러진 무대였다. 주인공인 흥보와 놀보에 주목하여 보면, 창극계의 스타 흥보 김준수는 엄동설한에 맨몸으로 길거리에 내쫓겨 통곡하는 대목에서 전통 판소리의 진계면 성음으로 격한 설움을 토해냈다. 또한 놀보로 분한 윤석안이 흥보에게 선물받은 화초장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중중모리 대목에 얹어 부르는 화초장타령은 놀보의 아니리와 너름새가 어우러져 해학적으로 그려졌다. 제비마녀와 초란이가 부르는 ‘액맥이타령’, ‘까투리타령’ 등 민요의 가창은 삶과 죽음 혹은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표현하는 데 효과적이었다. 수성가락으로 따르는 반주음악이나 국악기와 서양악기가 서로 어울려 만들어내는 선율은 서사의 섬세한 표현을 도왔다. 특히 장면 전환이나 평화로운 장면에서는 화음을 동반한 서양악기의 조력이 효과적이었다. 시각적으로는 시노그래퍼 최정화가 연출한 원기둥과 다양한 영상을 송출하는 거대한 LED 패널이 설치된 무대가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무대미술 감독을 맡은 시노그래퍼 최정화는 두 개의 거대한 LED 패널을 활용하여 그의 작품 ‘세기의 선물’을 비롯한 다양한 작품을 송출함으로써 극적 상황의 직관적인 이해를 견인했다. 최정화의 미술작품과 다양한 소품을 활용한 이번 무대는 고전적인 창극의 전형적인 무대의 틀을 깬 참신한 도전이 돋보였다. LED 패널의 시각적 이미지는 다양한 상황과 서사를 담아냈다.
다음으로, 판소리 ‘흥보가’에 내재된 현실 풍자와 해학을 창극 <흥보展(전)>에 고스란히 담았으며, 재미있는 상상을 무대로 현실화한 펀타지(fun+fantasy)가 돋보였다. 대체로 이번 공연은 다양한 볼거리가 제공된 전시와 공연예술의 조합으로 대단히 화려했다. 첨단과학과 다양한 소도구를 활용하여 창극의 재미를 더하였다.
그러나 이번 공연이 전시를 통한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함으로써 화려한 무대와 시시각각 시각적으로 제시되는 작품들과 넘쳐나는 시각적 정보들이 소리를 감상하는 데 방해 요소로 작용한 지점이 있다. 더불어 미래의 창극을 이끌어 갈 인재를 양성하는 인큐베이팅 사업의 지속과 시스템의 효과적인 운용이 필요하다. 재능 있는 인재를 발굴하여 전문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하고 인재풀의 확보에 힘써야 할 것이다.

저항과 자유의 놀이터, 국봉관에 펼쳐진
뮤지컬 < 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 >에 거는 새로운 기대

2019년에 첫선을 보인 조선시대 신분제도의 모순에 대한 비판의식을 담은 뮤지컬 <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이 다시 ‘한국적인 뮤지컬’로 주목을 받고 있다. 극 중 신분제 타파를 위해 뭉친 비밀 시조단 ‘골빈당’은 소위 ‘양반놀음’을 통해 양반들의 허세와 특권의식을 비판한다. 입만 남기고 얼굴을 모두 가린 탈을 쓴 골빈당원들, 그들의 노래와 춤사위는 한국의 전통 탈놀이를 떠올리게 한다. 탈놀이의 핵심은 탈이다. 탈을 쓴다는 것은 현실에 실존하는 내가 누군지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가리는 것이다. 이때 배우는 탈에 형상화된 제3의 인물로 재탄생하게 된다.
<스웨그에이지 : 외쳐, 조선!>에서 골빈당원들이 입을 가리지 않은 탈을 착용한 것은, 이제 드러내놓고 할 말을 하겠다는 선언으로 읽혀진다. ‘스웨그에이지’가 겨냥한 가상의 조선은 그들이 고발하고자 하는 현실의 세계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풍자와 해학의 조선시대 탈놀이를 요즘 젊은 세대의 언어로 직접 소통하기 위해서 무거운 입을 떼어낸 것은 아닐까. <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은 가상의 조선시대를 살고 있는 소수의 권력층인 양반을 조롱하며 비판하는 이야기다. 양반의 위선, 무능, 부패를 폭로하는 ‘양반마당’은 한국의 전통 탈놀이에서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과장이다. 양반은 항상 하인을 거느리고 긴 곰방대를 물고 팔자걸음으로 거들먹거리며 등장한다. 사회의 지배층으로서 유식한 척, 잘난 척 온갖 허세를 떤다. 하지만 그들은 존경은커녕 항상 말뚝이에게 놀림당하고 비웃음의 대상이 되고 만다.
극 중 국봉관의 명칭은 이 작품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기게 한다. 국봉관이라는 장소성은 역사적으로 전해진 모든 옛것들, 즉 악습까지도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여 무조건적인 수용을 강요하는 지배층과 기성세대에 대한 저항을 표상한다. 시조 + 힙합 + 랩의 컬래버레이션을 조선의 스웨그라고 외치는 젊은 도전 <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의 뮤지컬 넘버는 국악기가 주된 연주를 맡은 점에서 매우 이색적이다. 그러나 뮤지컬의 구성요소인 드라마, 음악, 춤, 스펙터클 중 드라마적 요소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본질적으로 ‘한국적인 것’과 차이가 있다. 음악적 관점에서 볼 때 적어도 한국적인 뮤지컬 넘버로 수용하기 위해서는 음계, 선율, 그리고 장단 등 한국음악 어법의 반영이 일정 정도 배치되어야 하지 않을까? 또, 과감히 입을 튼 탈을 쓴 현대판 탈놀이에 동시대성을 나타내는 사회고발과 현실비판의 이슈나 리얼리티가 부족하다. 저항과 자유를 상징하는 힙합정신에서 발현된 스웨그는 충분하지만, 동서양 문화의 융합의 결과로 산출된 창작뮤지컬에 사회를 향한 절박한 외침이 묻어나지 않아 아쉽다. 향후에 본 작품의 미흡한 요소들을 보완하고 더욱 발전시켜 뮤지컬 <캣츠>, <레미제라블>에 견줄 수 있는 세계적인 뮤지컬로 성장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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