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고전여행

판소리 열두바탕을 찾아서
전쟁이라는 단어에 가려진 ‘삶’의 면면들
씩씩하고 웅장한 기상을 담은 것으로 유명한 판소리 ‘적벽가’. 이 소리가 담아내는 치열한 전투 장면과 각 진영 장수들의 지략 싸움은 다른 판소리 작품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긴장감을 자아낸다. 이러한 긴장감은 마치 호령을 하듯 내지르는 소리꾼의 소리와 섬세한 붙임새에 실려 독특한 미감을 전달한다.

판소리 ‘적벽가’는 조선 후기 상층 사대부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끈 소설 『삼국지연의』의 하이라이트 대목에 우리 선율을 붙여 만들어진 노래다. 판소리 ‘적벽가’는 태어나기 전부터 이미 두터운 ‘팬덤’을 확보하고 있었던 셈이다. 『삼국지연의』의 내용 중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대목, 즉 유비가 삼고초려해 공명을 얻고, 그 후 공명이 남동풍을 활용해 불(火)로 조조군을 격파하고, 화용도로 도망친 조조를 관운장이 놓아주기까지의 이야기를 다룬다.
일반적인 판소리 작품이 주로 서민층의 목소리와 삶을 반영한다고 평가되는 데 비해 ‘적벽가’는 주 향유층인 양반과 부호층의 관심사나 취향을 풍부하게 담아내는 측면이 있다. 상층 남성들의 취향에 맞는 한시나 전고들이 적극적으로 인용되어 있으며, 점잖고 순화된 표현을 내세우기도 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 ‘적벽가’의 등장은 이전까지 판소리 향유에 배제되어 있던 집단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는 계기가 되었다. ‘적벽가’를 애호하던 사람들은 소리꾼을 직접 불러들여 공연 즐길 수 있을 정도의 재력과 사회적 위상을 갖춘 이들이었다. 이들이 판소리 관객으로 새롭게 유입되면서 판소리의 연행 공간에도 변화가 생기게 된다. 탁 트인 야외 공간뿐만이 아니라 양반들이 기거하는 실내 공간도 무대로 삼게 된 것이다.
왕실에서도 판소리 애호가가 등장하게 되니, 흥선대원군이 후원하는 판소리 공연을 보고자 좌상객들이 운현궁으로 삼삼오오 모여들었다고 한다. 대원군의 후원을 받은 명창 박유전도 ‘적벽가’로 이름을 날린 인물이다. 박유전의 강산제 ‘적벽가’는 그가 운현궁 생활 중에 새롭게 다듬은 것인데, 조조를 비하하는 아니리를 축소하거나 삭제해 그의 영웅적 면모를 유지하려는 경향이 드러난다. 이는 필시 운현궁에 오는 좌상객들의 계층적 취향을 의식한 개작일 것이다.

전쟁을 겪고 권위를 내려놓은 지도자, 조조

『삼국지연의』가 언제 정확히 우리나라에 유입되었는지를 알기는 어렵지만, 실록에는 1569년에 선조가 역사서 『삼국지』가 아닌 소설 『삼국지연의』를 읽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 파병된 명나라 장수들이 관우의 영을 모시는 관제묘를 곳곳에 세웠고,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사회적으로는 대명의리론과 대청복수론이 대두되었다. 이런 가운데 촉한정통론을 주제로 하는 『삼국지연의』가 조선에서 더욱 널리 읽힌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소설 『삼국지연의』와 판소리 ‘적벽가’는 내용상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이 바로 조조를 보는 시선이다. 대개 ‘적벽가’는 소설 『삼국지연의』보다 조조를 ‘덜 영웅적으로’ 묘사하는 경향이 짙다. 예를 들어 조조가 일으킨 전쟁이 강동의 두 미녀 대교와 소교를 차지해 말년의 위락으로 삼고자 했다는 ‘적벽가’의 설정은 소설 『삼국지연의』에는 없는 내용이다. 조조의 인물 됨됨이를 부정적으로 묘사하기 위해 바뀐 부분이다.
조조의 단호함과 포악함은 적벽대전 직전 단지 불길한 말을 내뱉었다는 이유만으로 술김에 유복을 살해하던 모습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삼국지연의』에서는 다음 날 술에서 깬 조조가 자신의 행동을 뉘우치는 장면이 들어가 있으나 ‘적벽가’에서는 대체로 이 장면이 생략된 경우가 많다. 그런데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삼국지연의』에서는 조조의 포악성이 적벽대전 패전 이후에도 계속 유지되지만 ‘적벽가’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패전 이후 조조는 서슬 퍼런 위엄은 온데간데없이 경박한 언행을 일삼아 조롱의 대상이 된다.
‘메추리 사설’은 메추리 한 쌍이 푸르르 날아오르자 혼비백산한 조조가 정신을 차리고 메추리가 술안주로 좋다며 실없는 말을 하는 장면을 담는데, 이때 정욱이 “장졸을 다 죽여놓고 입맛이 있냐”며 대놓고 핀잔을 준다. 화용도로 가는 내내 조조는 낙엽만 굴러가도 혹시 자신을 치러 온 복병인가 하여 벌렁벌렁 떤다. 그 때문에 일개 졸병들, 하다못해 길가에 서 있는 장승에게까지 비웃음을 산다.
이러한 조조의 인물 변화는 전쟁의 참상을 겪은 이후 권위를 내려놓고 군사들과 거리를 좁히고 자신을 낮추며 그들과 공감하게 된 지도자의 변화로 읽히기도 한다. 화용도에서 관우가 “네 이놈 조조야!” 하고 호령하자 말 아래 굴러떨어진 그는 가장 낮은 자세로 목숨을 구걸한다. 비굴한 지도자 옆에서 패군 장졸들이 다 함께 통곡하자, 이들의 모습을 본 조조가 ‘참 설움’이 터져 나와 너희들은 죄가 없다며 울먹이기도 한다. 부정적 지도자였던 조조가 권위를 내려놓고 명분 없는 전쟁을 일으켜 패배한 책임을 인정하게 되는 것이다.

‘이름을 갖게 된’ 군사들의 허무한 죽음

‘적벽가’가 『삼국지연의』와 달라진 지점은 지도자 조조의 묘사만이 아니다. 조조 휘하의 위나라 군사들을 그리는 방법에도 차이가 있다. ‘군사설움타령’은 『삼국지연의』에는 없는 위나라 군사들의 통곡 장면이 확대되어 그려진 대목이다. 머리가 하얗게 센 부친, 병든 부모, 치성을 드려 어렵게 얻은 아들, 고아로 자란 외로운 삶에 유일한 기쁨이 되어준 아내를 두고 하루아침에 전쟁터로 끌려온 사연과 그 서러움을 토로한다. 제각각 다른 사연을 가진 ‘군사들’은 더는 익명의 집단이 아니다. 부모·자식·아내·친구 등 소중한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존재들이다. 이는 보통의 영웅소설에서 군사들이 아무런 사연이나 감정이 없는 전장의 물자와 다름없이 취급되는 것과는 분명 다르다.
이들의 삶은 오촉연합군의 대승으로 기록되는 적벽대전에서 너무나 허무하게 끝이 난다. 그리고 그 광경은 『삼국지연의』에서 “조조의 군사가 창에 찔리고, 화살에 맞고, 불에 타고, 물에 빠진 자가 수를 헤아릴 수 없었다.”라는 짧은 한 줄로 기록되었으나, ‘적벽가’에서는 ‘죽고타령’으로 확대되어 드러난다. 휘모리장단에 맞추어 불화살이 사방에서 날아드는 가운데 사실상 손쓸 새 없이 학살당하는 군사들의 모습은 허무함을 넘어 우습기까지 하다.
“살도 맞고, 창에도 찔려, 앉아 죽고, 서서 죽고, 웃다 죽고, 울다 죽고, 밟혀 죽고, 맞어 죽고, 애타 죽고, 성내 죽고, 덜렁거리다 죽고 복장 덜컥 살에 맞아 물에 풍! 빠져 죽고 (…) 꿈꾸다가 죽고, 떡 큰 놈 입에다가 물고 죽고, (…) 대해수중 깊은 물에 모두 국수 풀 듯 더럭더럭 풀며 (…)”(박봉술 바디 <적벽가>) 이 어처구니없는 광경은 이유도 모른 채 죽어야만 하는 현실에 대한 저항의 의미를 극대화한다.
그 후 전쟁에서 패한 조조는 ‘군사점고’를 통해 살아남은 군사들을 확인한다. 이때 군사들은 한명 한명 그들의 ‘이름’으로 불린다. ‘일대장 안우병이’ ‘좌사천총 허무적이’ ‘좌기병 골내종이’ ‘우기병 둥덩바리’ ‘마병 덜렁쇠’ ‘화병에 복통쇠’…. 군사들에게 부여된 이름들 또한 개인을 전쟁의 도구로만 다루는 폭력성에 대한 저항이다.
오늘날에도 매일 뉴스를 통해 전쟁으로 인한 누군가의 죽음을 접한다. 개인의 죽음이 전쟁이라는 집단적 단어로 표현될 때, 우리는 그것이 가진 비극에 무감각해지게 마련이다. ‘적벽가’는 나름의 방식으로 기존의 군담 서사가 은폐하고 있던 전쟁의 폭력성과 참혹함을 폭로하고 있다. 5월 국립극장에서 마련된 성준숙의 동초제 ‘적벽가’ <완창판소리> 공연을 통해 그 진가를 확인하기를 바란다.

글. 이채은 판소리 연행의 의미화를 몸의 관점에서 살핀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고전을 통해 현재의 삶을 바꿀 수 있기를 희망하며 글을 읽고 쓰고 있다.
그림. 윤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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