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보기
하나

팬데믹 이후의 연극
무대 위 인간을 재정의하다
코로나19와 함께한 3년의 시간이 지났다. 그동안 일상이 멈추고 극장이 폐쇄되었다.
전 세계 사람들이 동시에 경험한 일이다. 팬데믹이라는 이름의 지독한 전쟁이었다.
그리고 이제 일상 회복을 이야기하고 있다.

멈추었던 축제가 다시 열리고 있다. 국내뿐만이 아니다. 세계 최대 예술축제인 영국 에든버러 축제Edinburgh International Festival는 2020년 축제를 전면 취소한 바 있다. 그리고 올해 비로소 대면 축제를 재개했다. 에든버러 축제 개막과 함께 ‘한국 특집주간Focus on Korea’ 작품으로 국립창극단 <트로이의 여인들>이 무대에 올랐다.
팬데믹이 끝났다고 말한다. 다시 일상이 회복되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더는 이전과 같은 일상이 아니다. 팬데믹 기간에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우리는 재택근무로, 혹은 화상회의로 만나며 각자의 집에 머물러 있었지만 세계는 멈춰 있지 않았다. 엔데믹 선언과 같은 시기에 등장한 ‘챗지피티ChatGPT’ 인공지능 언어 모델 서비스는 이전에 겪어보지 못했던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음을 말해주었다.

팬데믹 이후 연극, 극장은 어떤 곳인가?
팬데믹 이후 연극은 어떤 모습일까? 지난 3년 동안 우리가 극장 혹은 온라인 극장에서 경험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새삼 그동안의 공연을 되짚어 봤다. 해외 리뷰도 살펴보았다. 팬데믹 동안 세계 연극인들의 반응은 비슷하다. 가장 발 빠른 대처는 공연을 온라인 영상으로 흘려보내는 일이었다.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초기 뮤지컬 <캣츠>와 <오페라의 유령>, 영국 국립극단 <프랑켄슈타인>도 무료 온라인 스트리밍되었다. 작업 또한 온라인으로 대체되었다. 갑작스러운 봉쇄와 격리 속에서 처음엔 온라인에서나마 만날 수 있다는 사실에 감격했다.
그러나 비록 거리 두기라는 제한된 상황이지만 극장이 다시 열렸을 때, 관객들은 더 이상 온라인 극장을 찾지 않았다. 역설적이게도 다매체 시대에 연극은 여전히 물리적 극장 공간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다. 넷플릭스에 익숙해진 영화 관객이 다시 극장으로 돌아가지 않은 것과도 대조적 현상이다.

팬데믹 이후 극장에 부재하는 혹은 생성된 것들
팬데믹 이후 극장에는 익숙한 것들이 지워져 있거나, 낯선 것들이 들어와 있다. 지난해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 초청작이던 독일 극단 리미니 프로토콜의 <부재자들의 회의>는 배우가 등장하지 않는다. 코로나 시대, 기후위기 시대에 탄소발자국을 줄이기 위해 사람과 무대 대신 아이디어만 이동시켰다는 설명이다.
대신 그동안 지리적·신체적·사상적 이유 등으로 무대에 함께할 수 없었던 ‘부재자들의 회의’를 개최한다는 것이다. 배우는 현지 관객 중에서 신청한 사람들로 대신했다. 관객-대리자는, 공연팀이 미리 준비한 메시지를 읽거나 인이어 이어폰으로 전달되는 내용을 다른 관객에게 말하는 역할을 맡았다. 배우는 없어도 공연은 계속됐다. 이 작품은 2021년 독일에서 초연된 이후, 서울을 포함해 15개국 이상의 도시에서 공연됐다.
배우가 없는 공연은 올해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초청작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올해 10월 공연 예정인 아일랜드 실험극단 데드센터의 <베케트의 방>은 배우 없이 무대세트와 인형, 배우의 목소리만으로 진행된다. 배우가 부재하는 무대를 본다. 관객은 헤드폰을 쓰고 공연을 본다/듣는다. 데드센터는 올해 3월 홍콩예술제HKAF에서 트랜스휴먼의 문제를 다룬 온라인 공연 <To Be A Machine(Version 1.0)>을 올렸다. 트랜스휴먼의 인체 냉동 보존 기술에 대한 은유로 온라인 라이브 공연에 참여하는 관객들의 이미지를 미리 받아 얼굴 부분만 이미지 편집한 장면을 투사해서 마치 머리만 잘라 보관하는 것과 같은 신체 이미지를 보여주었다. 온라인 공연에 대한 새로운 상상력이다. 인간에 대한 새로운 상상력과 질문을 보여주는 무대다.
최근 공연작인 성수연의 <비 비 비B Be Bee>는 인간 중심적 사고가 만들어낸 위기의 시대를 반성하며 인간 중심적 사고를 벗어나기 위해 ‘꿀벌-되기’를 연습한다. 인간 중심적 사고로 생각한다면, 이 공연은 배우 성수연의 일인극이다. 그런데 무대 위에는 배우뿐만 아니라 인공지능 스피커 6대가 코러스 역할을 맡고 있고, 모니터에는 가상인간이 등장한다. 인간 배우 성수연은 ‘꿀벌-되기’ 연습을 위해 플라잉 요가 줄에도 매달리고, 와이어를 타고 공중에도 올라간다. 그럼에도 인간 배우는 끝내 날지 못하지만, 모니터 속 가상인상은 가뿐히 날아서 퇴장한다. 기술과 미래, 새로운 비전을 실험하는 공연이다. 이 공연에는 유머와 해학이 가득하다. 암울한 기술 디스토피아를 넘어서 극장과 배우의 몸을 통해서 새로운 미래에 대한 생각하기를 권하는 유쾌한 공연이다.
부재자, 타자들이 초대되는 무대, 모두 팬데믹의 경험으로부터 인간의 고민과 성찰을 놓치지 않으려는 공연들이다.

글. 김옥란 연극평론가, 드라마투르그. 연극을 만들고, 비평하고, 연구하고, 멋진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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