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
여덟

유영애의 동편제 ‘흥보가’
단단하고 옹골찬 소리
2023년 하반기 <완창판소리>는 유영애 명창의 ‘흥보가’로 연다.
지난해 공연이 취소되면서 많은 아쉬움을 남겼기에 이번 공연이 더욱 반갑게 느껴진다.

한농선 명창의 소리를 충실히 잇다

유영애는 다시 하기로 한 완창 공연에도 고민 없이 ‘흥보가’를 택했다. 그녀는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심청가’ 예능보유자이지만, ‘심청가’ 못지않게 ‘흥보가’를 아낀다. 그리고 이 배경에는 5년간 ‘흥보가’ 한바탕을 오롯이 전수해 준 스승 한농선(1934~2002)에 대한 깊은 존경과 그리움이 있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여류 명창 가운데 한 명인 한농선은 가야금 명인 한성기(1899~1950)의 무남독녀로 14세 때 소리에 입문해 강장원·박동진·박초월·김연수 등 당대 내로라하는 명창을 사사하며 판소리를 연마했다. 그녀의 소리 인생에 전환을 준 이는 박록주(1906~1979)로, 한농선은 1961년 그녀의 나이 스물여덟에 박록주를 만나 ‘흥보가’를 배웠다. 그녀가 배운 ‘흥보가’는 송흥록을 시조로 하여 송광록-송우룡-송만갑-김정문의 동편제 계보를 이으면서 박록주의 개성과 독자성이 가미된 박록주제다. 박록주를 만난 이후 그녀가 타계할 때까지 한농선은 오로지 ‘흥보가’ 수련에만 전념했다. 그래서 그런지 박록주와 한농선의 소리는 사설과 음악의 흐름에서 매우 흡사하다는 평을 받는다. 특히 한농선의 ‘흥보가’는 시김새·내두름·소리꼬리·성음놀음·장단놀음·선율운용 등의 면에서 박록주의 분위기를 많이 담고 있다.

유영애가 박록주의 집에서 한농선을 만난 것은 20대 때였다. 장흥 출신의 유영애는 처음 김상용 명창에게 소리를 배운 후, 목포에서 활동하다 조상현 명창과의 인연으로 서울로 왔다. 그리고 30대가 돼서 한농선·성우향·조상현 등을 사사하며 본격적으로 소리 학습에 박차를 가하였다. 유영애는 한농선에게 ‘흥보가’를 5년간 학습했다. 엄격한 스승은 하루에 몇 장단뿐이 가르쳐주지 않았다. 맘에 드는 소리가 나올 때까지 반복시켰고, 허투루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어떤 때는 한 장단을 3일 동안 연습한 적도 있었다. 스승은 제자의 소리가 본인 맘에 들지 않으면 아무 소리도 하지 않았다. 그저 다시 한번 불러주며 따라 하라고 할 뿐이었다. 그리고 이내 마음에 드는 소리가 나오면 비로소 빙그레 웃으셨다고 한다.
한농선은 박록주와 백일 공부를 간 이야기도 유영애에게 자주 들려주었다. 박록주는 제자들과 더불어 안양 삼막사로 백일 공부를 하러 가곤 했는데, 한농선 역시 스승과 더불어 몇 차례 백일 공부를 하며 소리 기량을 끌어올렸다. 어떤 때는 성창순(1934~2017)과 함께 박록주를 지게에 지고 삼막사를 오르기도 했다. 한농선은 지게에 진 스승을 모시고 개울을 건너며 ‘흥보가’를 배운 이야기를 유영애에게 자주 했는데, 유영애는 이 이야기를 들으며 대명창 박록주에게 스승이 배웠을 ‘흥보가’를 떠올렸다고 한다.

유영애는 한농선에게 오랜 시간 ‘흥보가’를 배웠고, 이후 더 오랜 시간 동안 ‘흥보가’를 닦았다. 스승이 꼼꼼히 가르쳐준 덕에 독공 과정에서 하나하나 되짚으며 다질 수 있었다. 유영애는 한농선의 담백하면서도 호방한, 그리고 우조와 계면을 명확하게 구사하는 성음이 좋았다. 어떻게 하면 그 소리를 따라 할 수 있을까, 흉내 낼 수 있을까 늘 생각했다. 그리고 스승의 그림자만큼이라도 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공부에 매진했다.
스승 한농선은 2002년 2월 국가무형문화재 판소리 예능보유자가 되었다. 그녀가 갈고닦은 ‘흥보가’를 제자들에게 전수하며 동편제 ‘흥보가’의 맥을 더 단단하게 이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농선은 보유자 지정 2개월 후, 즉 2002년 4월에 타계했다. 유영애는 이 사실을 너무나도 애달파했다. 스승이 타계하기 몇 년 전인 1999년, 유영애는 남원국립민속국악원의 창극 <수궁가> 정기공연으로 서울 국립국악원에 왔다. 서울 공연 기간 내내 무대를 찾은 스승은 “자네가 보고 싶어서 왔어”라며 유영애를 향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생각할수록 그립고 고마운 스승이 아닐 수 없다.

묵직한 중하성의 매력

유영애 명창의 소리는 특별하다. 그녀는 여성이 감당하기 어렵다는 중하성, 특히 하성을 아주 자연스럽고 멋지게 낸다. 필자는 지난 5월 21일 국립국악원에서 열린 ‘제100차 판소리학회 정기학술대회’ 기념공연에서 명창의 소리를 1열에서 감상하며 깊은 감동을 받았다. 영상과 음반으로 듣는 것과는 또 다른 놀라움이었다. 어째서 그간 이 소리를 직접 들으러 다니지 못했을까가 후회되는 순간이었다. 풍성하고 장대한 성량에서 나오는 정확한 성음과 아주 낮은 소리에서도 매끄럽게 들리는 사설, 구성지면서도 다채로운 악조의 운용에서 어째서 유영애 명창을 ‘판소리의 교과서’라 부르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기실 동편제 ‘흥보가’는 통성으로 힘 있게 소리를 내지르며 끝을 분명히 맺어 거뜬거뜬 나아가는 특색을 가진다. 유영애 명창은 처음 한농선 명창에게 동편제 ‘흥보가’를 배울 때, 사설이 장단과 어긋나지 않게 붙어서 딱딱 강세를 맞추며 진행되는, 이른바 ‘대마디 대장단’을 실현하기가 어려웠다고 한다. 뭔가 뻣뻣하다는 느낌도 들었고, 호흡을 잘 맞추기도 힘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스승이 보여주는 명확한 성음과 더불어 잘 들어맞는 장단이 후에는 무척이나 매력적이었고, 동편제의 멋과 맛을 독공하면서 더더욱 잘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동편제 ‘흥보가’는 사설이 간명하고 군더더기가 없다. 또한 ‘흥보가 비는 대목’ ‘흥보 마누라 설움 대목’ ‘제비 노정기’ ‘박타는 대목’ 등 주요 소리 대목에서도 잔가락이 없고 강한 악센트의 단조로운 시김새를 특징으로 한다. 유영애는 풍부한 성량을 가지고 힘 있게 소리하는 명창이다. 그리고 묵직한 성음을 무기로 삼고 있기에 씩씩하고 강단 있게 뻗어가는 동편제 소리와 잘 어울린다. 또한, 유영애 명창은 판소리에 등장하는 다양한 캐릭터를 실감 나게 표현하기 위해, 무엇보다 판소리의 사설이 가진 풍부한 이면을 충실히 그려내기 위해 누구보다 혹독하게 자신의 목을 단련했다. 낮은 소리에서 높은 소리, 높은 소리에서 낮은 소리로, 소리의 높고 낮음을 수없이 반복하며 상중하성 자연스러운 성음을 모두 이뤄냈다. 이에 그녀는 누구보다 흥미롭게 ‘흥보가’의 모든 캐릭터를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유영애는 ‘흥보가’가 좋다고 한다. 오랜 시간 열심히 배웠기에 소중하고, 인정 많은 흥보가 결국 복을 받는 이야기도 좋단다. 그간 수많은 완창을 했지만 ‘심청가’ 못지않게 ‘흥보가’를 많이 한 것도 스승의 소리를 계속해서 알리고, ‘흥보가’의 매력을 전하고 싶어서다. 5년간 제자를 지극정성으로 가르친 한농선의 소리를 하나하나 새겨 넣어 완성하고자 했던 유영애의 ‘흥보가’. 한농선이 이은 박록주의 소리를 매력 가득한 유영애의 성음을 통해 들을 소중한 기회가 아닐 수 없다.

글. 송소라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연구교수. 「20세기 창극의 음반, 방송화 양상과 창극사적 의미」(2017)로 박사 논문을 제출하고 판소리와 창극 관련한 연구를 꾸준히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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