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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2023 <여우락 페스티벌>
자유로운 음악 실험실
인간은 감각의 동물이다. 덧붙이자면 현재를 감각하는 동물이다. 과거에 대한 미련, 미래에 대한 불안 따위는
다른 동물에 비해 지나치게 발달한 대뇌가 만들어내는 이성적 환상 감각일 뿐이다.

크리스토퍼 놀런의 초기작 <메멘토>를 떠올려본다. 주인공 레너드(가이 피어스 분)는 10분밖에 기억하지 못하는 남자다. 아내를 살해한 범인을 추적하기 위해 레너드는 기억 보조장치로 클라우드 서버가 아닌 자신의 몸뚱이, 그것도 살갗을 사용한다. 사진, 메모, 문신이 그가 의지하는 드라이브다.
무대예술은 감각의 문화다. 우리가 아는 한 오감을 초월한 무대예술은 아직 없다. 보고 듣는 시청각이 관객이 체험하는 거의 전부다. 현재와 이 순간의 자극은 관객에게 수용되는 과정에서 그 시간의 공연장을 둘러싼 건축물, 언중의 대화, 모든 문화와 당대 개인과 사회가 가진 미련과 불안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그런 면에서 보면, <여우락 페스티벌>은 태생부터 이상한 축제다. 우리 전통예술은 20세기 서구문화 대침공 이후, 문신 가득한 레너드의 몸뚱이처럼 됐다. 과거에 대한 기록을 피부에 칠갑한 채 낯설고 새로운, 이식된 현재의 웅덩이 속으로 깊이깊이 들어가 버렸다. 새로운 시대에 탄생한 새로운 한국인은 전통예술에 대해 ‘넬’처럼 낯선 시선을 던지기 시작했다. 영화 <넬>의 주인공, 문명과 단절돼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자신만의 언어로 웅얼대는 소녀 말이다.
메멘토 쿨투라Memento Cultura. 문화를 기억하라. <여우락 페스티벌>은 기막힌 사명을 안았다. 기억할 뿐 아니라 ‘문화 문신’ 속 키워드를 반드시 사용하되 현재에 유효하며 미래에 유의미한 뭔가를 뚝딱 만들어 보여줘야 한다. 그것도 매년, 몇 달 만에 후딱 말이다. 이것은 고민과 고심의 멍에에 가까우나 한편으로 그것을 신명 나는 축제의 형식으로 해마다 보란 듯이 펼쳐내는 것만으로도 갈채를 받아 마땅하다.

올해 <여우락 페스티벌>(이하 <여우락>)은 23일간 12편의 신작을 쏟아냈다. 지난해 축제에 아쉬움을 갖고 있었으므로 6월 30일 개막작을 보기 위해 서울 남산을 오르는 걸음은 한편 무겁고 한편 설렘으로 가볍기도 했다.
순서를 어기고 마치 스포일러를 하듯이 개막작과 폐막작 이야기를 먼저 해야겠다. 윤진철과 김동언이 만나 올린 개막작 <불문율>, 손열음과 이아람이 마주한 폐막작 <백야Polarnacht> 말이다. 개·폐막작은 각각 판소리와 별신굿, 클래식 피아노와 대금의 만남이란 대진표만으로도 ‘올해는 더 발칙하게 가겠다’는 선언이었던 것이다. 그 발칙함은 다행히 발칙함 자체로 그치지 않았다. 서로를 깨부순 뒤 장외홈런처럼 호쾌하게 외부로 껍데기를 깨고 나왔다.
<불문율>은 말 그대로 판소리와 굿이 섞일 수 없었던 고래古來의 불문율을 깨고 판소리 ‘심청가’와 동해안별신굿의 ‘심청굿’을 정면충돌시킨 문제작이다. 부산기장오구굿 예능보유자이자 별신굿 명인 김석출의 셋째 딸로 태어나 아홉 살 때부터 굿판에 선, 60년 경력의 무녀 김동언. 11세부터 김흥남 명창을 사사하고 정권진 명창의 마지막 제자로 보성소리를 이어왔으며 판소리 ‘적벽가’ 예능보유자인 윤진철. 전라와 경상, 무속과 예능, 기복과 서사가 부딪쳐 내는 소리는 죽비 소리가 될까, 파열음에 그칠까. 아마존강과 금강산 계곡의 물줄기를 교차 편집해 보여주되 기승전결의 흐름은 통합해야 하는 자연 다큐멘터리 편집자의 고뇌가 기획자의 고뇌와 같았을까.
이 괴이한 조합이 뿜어낸 에너지는 감히 묻지도 따지지도 못할 것이었다. 심산유곡을 노닐다 폭포를 만나 쏟아지듯 명쾌한 소리를 굽이굽이 펴내는 윤진철 명창의 소리, 해학과 정한의 밭을 잘근잘근 밟고 나아가는 듯한 김동언 명인의 굿은 심청 서사를 한층 입체적으로 만들었고, 일찍이 모친을 여읜 김 명인의 실시간 눈물이 합쳐지면서 이 무대의 장르는 예능· 판타지·다큐멘터리를 다층적으로 오갔다. 또 다른 공연, 유순자X손영만의 <추갱지르당> 역시 이런 ‘절대 콜라보’를 장단의 영역에서 수행한 수작이었다.

클래식과 국악 양쪽에서 초미의 관심을 받은 손열음X이아림의 폐막작 <백야>는 초반에 조금 불안했다. 에스토니아 작곡가 아르보 페르트의 미니멀리즘 명작이자 <어바웃 타임>을 비롯한 수많은 영화와 영상에 삽입돼 익숙한 ‘Spiegel im Spiegel’은 얼마간의 감동을 보장할 수밖에 없는 안전한 선택으로 여겨졌다. 대금의 한계를 뚫고 동서양의 경계를 무색게 하는 이아람의 연주는 늘 그렇듯 놀라웠고, 손열음의 변주도 흠 없었지만 ‘결국 이런 식인가’ 하는 불안감마저 엄습하게 했다.
그러나 ‘Our Imperfection’ ‘Lullaby’ ‘흘림’ 등 초연곡과 즉흥곡의 매혹이 일말의 불안을 잊게 해주었다. 손열음은 그랜드피아노·하프시코드·토이피아노로 둘러친 건반의 성에서 그간 들려주지 않은 파릇파릇하고 신선한 변주를 오징어잡이처럼 펄떡펄떡 건져 올렸다. 앙코르로 들려준 마스네의 ‘타이스 명상곡’까지, 두 젊은 명장은 각자의 분야 안팎에서 그간 펼친 어떤 협연보다 더 영감으로 빛나는 무대를 선보였다. 이들이 성장하는 데는 모차르트나 이생강이 필요했을지 몰라도 현재와 미래의 무대에 필요한 것은 그저 자신들의 열정과 의지뿐이리라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다. 이 공연을 독일 ECM레코드의 만프레드 아이허 대표 프로듀서가 못 봤다니….

손열음X이아림 <백야>

“아름다운 갤럭시, 장르로는 판타지, 빅빅 스테이지…”(아이브 ‘I AM’ 중)

과거와 현재, 장르와 장르의 만남 속에 가히 불가능해 보이는 미학을 화려한 판타지로 큰 무대에 올려야 하는 이들의 고충을 펜이나 굴리는 필자가 알까. 분명한 것은 그 수많은 고민과 준비 속에도 암초는 존재하고 때때로 좌초하는 순간이 올 수밖에 없다는 것을.
세 팀의 협업 공연을 돌아볼 차례다. 아쉬웠던 무대다. 더튠과 세움이 만난 <자유항Free Port>, 스쿼시바인즈와 김보미의 <신:지핌>, 킹 아이소바와 느닷의 <리듬 카타르시스Rhythm Catharsis>.
<리듬 카타르시스>가 열린 하늘극장 주변에서는 시작 30분 전부터 범상치 않은 오라Aura가 피어올랐다. 아프리카 가나에서 날아온 음악가 킹 아이소바가 펼쳐놓은 형형색색의 이국적 ‘굿즈’가 진앙지다. 월드컵 16강전 상대나 초콜릿 브랜드가 아니라면 우리가 가나의 문화와 대면할 기회는 희박하지 않은가. 제아무리 월드뮤직이나 힙스터 음악 팬이라고 해도 가나 음악을, 그것도 실시간으로 접할 기회는 드물다. 가나는 전통음악과 서구 음악을 섞은 ‘하이라이프’ 장르로 이름을 알린 데다 킹 아이소바는 마침 신작을 통해 서구 힙스터 음악 매체에서 극찬을 받고 있는 상황. <잔다리 페스타>나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에 나올 법한 핫한 아프리카 음악가를 여우락에서, 그것도 우리의 연희 팀과 맞붙여 볼 수 있다는 것은 축복에 가까웠다.
사물놀이 느닷과 킹 아이소바가 함께한 도입부 길놀이는 사실 충분히 폭발적이었다. 느닷이 차려입은 백의와 킹 아이소바의 원색 전통의상이 이루는 대비부터 가나 전통 구음의 듣도 보도 못한 바이브까지…. 그러나 각자의 무대가 1·2부로 분화돼 펼쳐져 그저 ‘스플릿 앨범’ 같은 뻔한 구성이 아쉬웠다. 합동 무대에서도 리듬과 장단의 결합은 이뤄졌지만 시너지라고 하기에는 서걱거렸다. 각 팀의 기량과 예기는 흠잡을 데 없었다. 다만 새로움과 협업의 의미가 옅었다. 물론 각자의 미학과 세계관이 모두 너무 달랐으므로 화학반응은 쉽지 않았을 테다. 리듬과 장단, 선율과 멜로디의 ‘영점’을 맞추는 것만으로도 벅차 보였다. 데스메탈에 가까운 난폭한 리듬과 서커스처럼 기묘한 신명이 교차한 킹 아이소바의 폭발력, 느닷의 노련한 장단 카타르시스는 각자 분출했지만 ‘하나’로서의 의미를 찾기는 매우 어려웠다. 카타르시스만 계속되면 쉽게 지친다는 것은 데스메탈부터 틱톡까지 자극적인 콘텐츠나 플랫폼이 잘 설명해 준다. 보는 내내 유연성과 부드러움이 고팠다.
록밴드 스쿼시바인즈와 해금 연주자 김보미가 만난 <신:지핌>은 지난해 여우락의 <고요한 씻김>(PAKK X EERU)을 연상시킬 수밖에 없었다. 무속과 하드록을 오간 ‘팎’의 귀곡성을 이일우의 전자음향과 피리·태평소·생황이 받친 절경이 생생해서다. 스쿼시바인즈는 사실 근년에 낸 앨범 「신세계」「출입: Mandala」에서 우리말 가사로 담은 한국적 정서와 절창으로 사납고 대단한 음악을 들려줬다. 그러나 <신:지핌>에서는 맥이 빠졌다. 기타 개방현을 활용한 대동소이한 조성과 음계가 곡마다 반복됐고, 김보미의 해금은 믹스 뒤에 묻혀 앞으로 뻗어 나오지 못했다. 음향적으로도, 음악적으로도. 스쿼시바인즈 보컬 이기범의 포효는 미국 밴드 펄잼의 에디 베더를 능가할 정도로 안정적이며 폭발력도 있었지만 그런 매혹마저 70분의 공연을 170분처럼 느끼게 한 동어반복의 허들을 넘을 수는 없었다.

킹 아이소바X느닷 <리듬 카타르시스>

더튠과 세움의 <자유항>은 국악·재즈·월드뮤직을 오가는 두 팀의 만남이 각자의 개성을 북돋워 주지 못한 무대였다. 두 팀을 모르는 이들에겐 그저 훌륭한 팀을 둘이나 알아간다는 것에 만족해야 했을 것이다. 미국 재즈 퓨전의 명작을 들으며 놀라듯 한국 재즈/월드 퓨전의 명연에 감탄하는 수준 이상의 것을 <여우락>에서 기대한 이들도 많았으리라.

더튠X세움 <자유항>

동어반복을 피하며 옛것에 기반하되 새롭고, 흥과 재미와 감동까지 갖추라는 필자의 한 점 부끄러움 없을, ‘이게 다 돼?’의 꼭짓점을 찾자면 올해는 박인혜X정연락X최인환의 <종이 꽃밭: 두할망본풀이>를 거론해야겠다. 제주도 무속 신화 ‘생불할망본풀이’에서 텍스트를 가져왔다. 생불신 자리를 두고 꽃피우기 경쟁을 벌이는 두 아가씨의 이야기를 <겨울왕국>의 엘사, 아이브와 지수의 세대도 눈과 귀 기울일 만한 재미로 치환했다. 때때로 번안 뮤지컬을 보듯 손발 오그라드는 지점이 아주 없는 건 아니었으나 가히 K-팝 세대도 잡을 만큼 감각적인 리듬감의 작사와 작창, 박인혜의 연기력이 눈에 띄었다. 절제돼 영민한 편곡, 종이꽃의 미학은 무대에서 하나의 탑으로 쌓여 올라갔다. 특히 작사와 작창 면에서는 펑키한 리듬 위로 제주 방언과 영어·현대어를 뒤섞어 내, 가독성 아니 가청성을 높였다. 만화경 같은 컬러감이 첩첩이 느껴졌다. 지난해 수림뉴웨이브 수상작인 이향하의 <긴긴밤>과는 또 다른 결의 쾌작이다.

박인혜X정연락X최인환 <종이 꽃밭:두할망본풀이>

모듈라서울의 <lull~유영>은 각자의 영역에서 활동하며 이따금 뭉치는 전자음악 콜렉티브(집단) ‘모듈라서울’이 우리 범패에 전기를 꽂은 작품이다. 몇 년 전 지리산 화엄사의 <화엄음악제>에서 그 분위기를 통해서나마 실험해 온 미니멀리즘과 앰비언트뮤직의 불교적 재해석(또는 그 역연산)은 <lull~유영>에서 프로토타입이 아닌 온전한 ‘ver.1’을 획득했다. 악곡 자체도 하나하나 빛났지만 전자음악가가 각자의 타악기로 과묵한 폴리리듬을 물리적으로 수행할 때 그것은 가히 시청각적으로 불교적 순간이었다. ‘feat. 인묵스님·동환스님’의 오라Aura는 말해 무엇하랴.

모듈라서울 <lull~유영>

잘하는 사람들이 잘하는 것을 제법 잘 보여준, 그러나 그래서 왠지 좀 기대보다 덜 본 것 같은 인상을 못내 줬던 미온수 같은 공연은 다음과 같다. 천하제일탈공작소 <가장무도: 탈춤의 연장>, 사토시 다케이시X황민왕 <장:단>, 프로젝트 여우락 SYNERGY의 <시너지>.
여우락아카데미 수료생 무대에 더해 신유진·리마이더스·저클·도리가 참여한 <여우락 홈커밍>은 국립극장 문화광장(야외무대)에서 열렸는데 여우락에 없어서는 안 될, 향후 양적·질적 확장이 기대되는 무대였다. 아카데미 수료생의 자작곡은 급조한 만큼 아쉬움도 있었지만 푸른 떡잎을 알아보기에 충분했다. 마당을 둘러싼 먹거리와 체험놀이는 공간의 한계가 있겠지만 라인업이 조금 더 입체적으로 보강된다면 좋겠다. 축제는 결국 ‘겪는’ 콘텐츠이기 때문이다. 예술감독 이아람과 음악감독 황민왕. 이 둘의 재담을 보고 있으면 기획자·공연자로만 무대 아래위에 머물게 하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당장 유튜브 콘텐츠 ‘여우담’의 보강과 확장이 시급하다고 느껴질 정도다.
과거를 현재에 잇고 미래를 바라보는 <여우락>은 존재 자체로도 아름다운 신기루다. 그래서 필자를 포함한 수많은 관객을 매년 물음표 하나 품고 남산으로 향하게 하는 촉매제가 되는 것이다. 다행히도 물음표는 수년간 느낌표로 바뀌었다. 자유롭고 위태로운 실험실, <여우락>이 배출한 스타들이 세상으로 나아가 현재의 세계를 흔들었다. 관객들 가슴에 달린 물음표가 없어지는 순간, <여우락>은 (여기 우리 음악이) ‘있다’에서 ‘있었다’로 간다. 부드러운 물음표를 유지하는 것이 내년 <여우락>, 내후년 <여우락>의 관건이겠다.
우리 몸에 새겨진 과거 예술의 문신은 다행히도 아름답고 풍성하다. 거기서 낙서를 발견하느냐, 단서를 발견하느냐는 온전히 레너드, 아니 우리 예술가·기획자·관객의 몫이다. <여우락>이 푸르고 신선한 어장으로 계속 펄떡이기를 올해도 내년에도 두 손 모아 바랄 뿐이다.

윤진철X김동언 <불문율>
글. 임희윤 음악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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